소설리스트

〈 78화 〉 혁명단­8 (78/265)

〈 78화 〉 혁명단­8

* * *

식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찾아가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아무리 혁명단이라도 전투 인력만 있는 게 아니라 비 전투 인력의 수도 꽤 됐는데 일과 시간의 대부분을 같은 방에서 보내는 전투 인력과는 달리 바쁘게 복도를 걷는 일이 많기에 식스가 어디갔는지 물으면 대부분은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식스요? 지금 검성님이랑 회의하고 있는 것 같던데요?"

"검성님은 어디 계시는 데요?"

"아마 C­2실로 가시면 계실 거에요. 둘이서 길게 얘기 할일 있으면 보통 거기서 많이 있거든요."

"감사합니다."

복면이가 어딘로 튀지 않게 잘 감시하면서 C­2실로 이동했다.

시설이 복잡하긴 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내다 보니 10분 정도만 헤매도 충분히 C­2실을 찾을 수 있었다.

­똑똑

"누구야?"

"나다."

"머저리들 교육하러 간다던 애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뭔 일 생겼어?"

방의 문이 열리고 식스가 나왔다.

안쪽 슬 살펴보니 작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내가 문가의 반대편에 검성이 앉아있었다.

'저 사람은 왜 저래? 뭐 이상한 거라도 봤나?'

평소의 진중한 분위기는 어디 가고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신입도 왔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데려온 거야? 말도 못 하더만 지배자한테 반감이 있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 했고."

"척 보면 알지, 그리고 말은 못하지만 지배자한테 반감 있냐니까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식스는 이게 문제다. 우리도 그렇고 복면이도 그렇고 굉장히 충동적으로 데려왔는데 이러다가 진짜 스파이라도 잠입할 까봐 걱정된다.

"그래서, 너는 말 못하는 애 관리 못한다고 찾아 온 거야?"

"말만 못 하면 다행이지. 훈련실 가보니까 다른 머저리들 다 뻗어 있고 신입 혼자서 서 있더라."

"뭐? 진짜?"

식스도 복면이가 얼마나 강한지는 몰랐는지 당황에 가득찬 눈빛으로 나와 복면이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봤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검성님보다 복면이가 더 강했어. 같은 신체 능력이라는 가정하에 검성님도 오래 못 버티실걸?"

"야! 검성님 계시는 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식스가 검성의 눈치를 보며 내 입을 막아왔지만 정작 검성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S급 각성자도 골이 아파올 일이 있는지 미간을 부여잡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뿐.

"신원 확인도 안된 사람을 이렇게 막 데려와도 되는 거야? 만약 신입이 지배자 측의 스파이었으면 머저리들이 다 죽을 뻔 했던 거라고."

"그럴 일은 없어. 나도 내 감을 믿고 사람들을 데려오는 거니까."

감?

아무리 감이 좋다고 해도 그렇지 그런 불확실한 것에 시설의 안전을 거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인가?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식스를 바라보자 식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 너는 모르지 참."

"뭘 모르는데?"

"어렸을 때 시설에서 지냈던 애들, 대부분 미약하지만 능력을 각성했어."

이건 뭔 또라이 같은 소리야?

"얼탱이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지 마 진짜니까."

"각성했다고 치기엔 너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는데?"

"F급 각성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작은 마나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지, 너무 적어서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서 사실상 일반인이랑 크게 다를 건 없어."

"그러면 그냥 각성을 안 했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시설에서 자란 애들 모두 미약하지만 능력을 가지고 있었거든. 나 같은 경우는 감의 형태로 능력이 발휘됐는데, 정말 미약한 능력이긴 하지만 내 감이 강하게 끌어당기면 대부분의 경우에 틀리지 않았어."

애들을 마나에 담구는 걸로 인공 각성에 성공했다고? 아무리 자연적인 각성에 비해서 훨씬 뒤쳐진다고 해도 놀라운 결과였다. 당장 식스의 감이 없었다면 나도, 복면도 이곳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될테니까.

'나도 능력이 있으려나?'

그건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애들에 비해서 시설에서 빠져나온 시기가 너무 일렀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은 없는데, 애초에 제어가 안 된다니까? 이 시설에서 얘가 폭주하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검성님 밖에 없어."

"사람이 무슨 맹수야? 폭주하긴 뭘 폭주해. 아무튼 신입이 그렇게 뛰어난 인재라니 기분이 좋네, 너보다도 훨씬 뛰어난 거 아니야."

"나 같은 거랑은 비교 대상이 못돼. 검성님보다도 세다니까?"

"어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어!"

복면이가 총총걸음으로 뛰어서 검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마치 싸우자는 것 처럼 검성을 툭툭 쳐댔다.

검성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자기를 치는 복면이의 손길을 막아냈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초면이라기엔 복면이가 검성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친근했다.

검성도 짜증 보다는 귀찮다는 느낌으로 복면이를 밀어내는 걸 보면 둘이 친한 사이거나 최소한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 할 순 없지만, 거의 확실한 것같네.'

검성이랑 같이 검을 배운 선배 느낌이려나?

이렇게 가정하면 검성과 복면이가 친한 것 처럼 보이는 이유도 설명이되고 복면이의 무시무시한 실력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설명이 되긴 하는데...'

그렇다고 진실이라고 확신할 순 없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천마급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둘씩이나 존재할 수 있을까?

복면이를 천마라고 가정하는 것이 검성과 복면이의 정체를 밝히는 데 가장 중요 한 요소가 아닐까?

복면이를 천마라고 가정하면 복면이가 그렇게 강한 이유는 아주 쉽게 납득이 됐다. 천마는 무지막지 하게 강하니까, 굳이 부연 설명조차 필요가 없었다.

마나가 없어 보이는 천마가 나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쉽게 설명 할 수 있고.

'그러면 검성은 누구지?'

그냥 중국에 있을 때의 부하 내지는 제자라고 생각하면 아다리가 딱 맞아 떨어졌다.

천마 성격을 떠올려 보면 제자랑 엄청 딱딱하게 지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지금 보여주고 있는 친근한 모습도 설명이 됐다.

그러면 왜 천마가 굳이 복면을 쓰고 내 앞에 나타났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아마 내가 세뇌 풀린 걸 알아채고 놀러 왔다가 내가 미르로 향할 걸 알고 검성을 미리 배치해 둔 건가? 내가 미르에서 고생하는 걸 구경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등장하려고 했는데 심심해져서 튀어나온 거지.'

충분히 그럴싸한 개소리였다.

천마가 여기 왜 있겠어?

중국에서 정복활동이나 하고 있겠지.

만약 왔다고 해도 바로 아해야, 거리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실험은 한 번 해볼까?'

어느새 친근하게 투닥 거리고 있는 검성과 복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혹시, 천마야?"

복면쯤 되는 실력자가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들어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진짜 천마라고 해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천마가 누군데? 하는 반응을 보이겠지. 아니면 완벽하게 무시로 대응하거나.

그런데 복면이의 반응은 내 생각과는 살짝 거리가 있었다.

­도리도리

복면이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보통의 사람에게 너 천마야? 라고 물으면 나 천마 아닌데? 보다는 천마가 누군데? 가 먼저 튀어나올테니까, 심지어 천마의 존재는 우리 도시에서도 비밀로 다루어 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미르의 일반인이 천마의 존재도 모르는데 나는 천마가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도 상당히 어색한 일이지.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충분히 나올 법한 반응이었다. 천마라건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직위를 가리키는 말 처럼 쓰이니까,

이 정도 정보로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을 때내 의심에 쐐기를 박은 것은 검성의 반응이었다.

­이 사람은 나와 같이 검을 배운 선배님이시다. 천마님 같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아무래도 미르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한 건 아닌 듯 하다. 천마님? 미르의 어떤 시민이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지배자의 이름을 알고 있겠어? 알고 있다고해도 천마님이라고 존칭을 표현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게 분명했다.

역시 무력이 강하다고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니까. 철저하게 잘 숨기다가 이런 사소한 실수로 비밀을 들어내다니...

"식스, 잠깐 나가있어 줄래? 셋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뭐야, 나 왕따시키는 거야?"

"어, 너 왕따 시키는 거니까 눈치 없이 물어보지 말고 그냥 나가 있어."

"와, 내가 먼저 말하고 있었는데 완전 치사해, 그래 간다 가!"

나가지 말라고 빤히 바라보는 검성의 시선을 보지 못했는지 식스는 문을 쾅!하고 닫고 나갔다.

­나는 슬슬 일이 생겨서...

"검성님, 신입이 천마가 아니라고 했죠?"

­당연하지. 천마님같이 대단하신 분이 왜 이곳에 있겠어?

"검성님은 천마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죠?"

­당연하지.

유도심문이 제대로 먹혀 들었다.

"그러면 천마 개새끼라고 한 번만 말해주세요."

그토록 진중하고 무게감 있던 검성의 눈빛이 지진이라도 난 듯 마구 흔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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