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 천마­1 (79/265)

〈 79화 〉 천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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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이 눈이 핑글핑글 돌아갔다.

들키지 않기 위해선 아무렇지 않게 천마를 욕하거나 내가 왜 그리 말해야 하지? 하고 태연이 맞 받아치면 될 텐데 이런 건 처음 경험해 보는 듯 천마를 흘끔흘끔 바라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처... 천마 개...

­빠아아악!!

천마가 검성의 뒷통수를 강하게 내리쳤다.

"이미 들켰는데 뭐 하고 있어? 그렇게 나를 욕하고 싶었니?"

20년에 가까운 세월은 천마에게도 짧은 시간이 아니었던 걸까? 천마의 어투는 이전과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고풍스럽다는 느낌이 남아있긴 하지만, 현대인이라고 쳐도 그렇게 까지 어색하진 않은 말투였다.

"눈치가 참 느리구나 아해야."

천마가 나를 바라봤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그녀의 눈이 보이진 않았지만 강렬한 시선이 나를 관통하는 듯 했다.

"눈치가 느리다니? 이 정도면 꽤 빨리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보는 순간 바로 알아차려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본좌는 실망했다."

"한 번에 알아차리길 원했으면 복면 같은 거 쓰지 말고 오지 그랬어?"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분명 내 앞에 있는 인간이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긴장조차 되지 않았다.

아마 천마의 말투에서 나에대한 배려가 가득히 느껴졌기 때문이겠지.

"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말이야. 이렇게 가려 놓지 않으면 과한 관심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이런 모습으로 찾아왔다."

"안 보던 사이에 자신감이 많이 늘었네? 그렇게 까지 예쁘진 않던 걸로 기억하는 데말이야."

"아해는 사람의 속을 긁어 놓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구나, 하긴 고양이는 목숨이 여러 개라고 하니 겁 없이 굴어도 문제 없겠지."

얘가 내가 알던 천마가 맞나?

내 기억 속의 천마는 늘 진중 하며 장난스럽게 나를 떠보던 일은 있어도 시답지 않은 농담이나 칠 정도로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하긴 그 때는 내가 천마랑 이렇게 친하지 않았지.'

천마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봐도 내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리라.

"여긴 왜 온 거야?"

"당연히 아해를 만나러 왔지 설마 이런 조그만 도시를 지배하려고 본좌가 직접 행차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조용히 나만 만나면 되지 왜 자기 부하까지 데려와서..."

천마가 검지 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아왔다.

"다 설명해 줄 터이니 진정 좀 하거라. 화 내는 아해는 귀엽지 않으니."

천마가 가볍게 손짓하니 허공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디 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그래 아해가 79호의 세뇌에서 완전히 풀려났을 때 부터 설명하면 좋겠군,"

"97호거든?"

"그녀의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입을 닫고 본좌의 말을 경청하거라."

천마의 말을 끝나자 마자 내 입이 다물어졌다.

억지로 벌리려고 해봐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는 내가 바빠서 당장 찾아올 수가 없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와 다름이 없는 몸인데 내가 떠나고 싶다고 맘대로 떠나면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었으니 할일 만 다하고 오자고 생각했지."

허공에 그려진 그림에 천마의 모습을 한 조그마한 캐릭터가 생기더니 이 건물 저 건물 박살내며 사람들을 학살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역시 무력을 사용하니 일이 금방 끝나더군, 한 달간 밀려 있던 일을 하루 만에 끝낸 걸 보면 역시 어줍잖게 머리를 굴리는 것 보다는 힘을 쓰는 것이 편했어."

이번엔 천마의 모습을 한 캐릭터와 검성의 모양을 한 캐릭터와 산과 바다를 건너서 날아오는 모습으로 그림이 변했다.

"얼추 일을 끝내고 내 애제자인 검마와 함께 아해를 만나러 이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임팩트 없이 만나면 역시 심심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림에 식스와 왕관 하나가 새겼다.

검마는 식스의 밑으로 천마는 왕관의 위로 움직였다.

"그런 와중에 아해가 79호와 관련된 일로 미르로 올 거라는 정보를 듣고 미르로 이동해서 아해를 기다리기로 했지. 작전은 좋았어, 검마를 6호의 혁명단으로 보내고 6호의 감각을 속여서 아해도 혁명단으로 보낸 뒤 나는 지배자의 근처에서 아해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지."

검마가 왕관을 배어내고 천마가 검마를 쓰러뜨렸다.

"지배자는 검마가 처리하고 나는 최종 보스로서 나타나 검마를 처리하고 아해에게 절망감을 선사하려 했다. 어떤가? 이 정도면 정말 임팩트 있는 만남이 아닌가."

"겁나 악취미네."

드디어 입이 열렸다.

"그런 계획을 짰으면 조용히 계획을 실천하면 되지 왜 나를 찾아온 건데?"

"지배자라 불리는 이가 너무 멍청해서 한시도 그의 곁에 있기 싫었다. 이를 첫 번째 이유로 삼는 게 좋을 듯 하군, 아해를 보고 싶어서 못 참겠다는 이유를 첫 번째로 삼으면 천마의 격이 떨어질 듯 하니."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걸 보니 나를 놀리는 게 참 재밌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렇게 보니 훨씬 마음이 편안해 지는 군,"

"그거 참 잘됐네."

"그럼 본좌는 다시 계획을 실행하러 가보겠다. 더 이상 아해를 보고 있으면 헤어지기 싫어질지도 모르니까."

"뭐?"

"다시 만날 때까지 실력을 키워 두도록 하거라, 다음에 만날 땐 지금의 나와 맞서야 할 테니."

눈깜짝할 사이에 천마가 사라졌다.

'얘는 왜 이렇게 미친 년이 됐어?'

아니 원래 미친년이었나?

한가로이 계획을 읇고 있길래 계획 따위 때려 치고 옆에 있겠다. 로 끝날 줄 알았는데 다시 계획을 진행하러 가버렸다.

아니 이미 임팩트 있는 만남은 사라져 버렸는데 왜 간거야?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어리둥절 하고 있었지만 검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원래 저런 사람이에요?"

­스승님이 좀 종잡을 수 없는 분이시긴 하지. 그래도 저렇게 까지 튀는 분은 아니신데 아마 너를 만난다고 흥분을 많이 하신 모양이다.

"진짜로 지배자 한테 간거에요?"

­당연히 지배자한테 갔겠지 우리 스승님은 빈말을 하실분이 아니시니까. 지배자 바로 근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지배자를 쓰러뜨리면 바로 나를 쓰러뜨리시고 너와 상대하실 거다.

"당연히 제가 지지 않을까요? 아무리 마나를 안 쓴다고 해도 상대가 천마인데."

­당연히 네가 지지, 그 이후의 흐름은 나한테 알려주시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대로 중원으로 너를 데려가실 듯 하다.

중원이라... 나 중국어 못 하는데.

"일단 다시 만나면 그 때 생각해 보죠."

­그래 알았다.

검성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마 천마 다음으로 강한 사람일 텐데 스승 잘못 만나서 고생이 많구나.

"식스한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나도 그게 고민이다.

공통된 적이 있어서 일까? 검성을 향한 심적인 친밀도가 빠른 속도록 올라갔다.

검성도 내가 편해졌는지 딱딱하고 진지한 표정을 접어두고 조금 더 자연상태에 가까워 보이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실 대로 말하는 건 말도 안되고..."

지배자를 쓰러뜨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인 혁명단이다.

그런데 지배자의 배후에 천마라 불리는 세계 최강자가 있고 그 사람이 나서면 검성이든 뭐든 썰려 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의욕을 상실해 버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식스를 위해서라도 일단 천마의 장난질에 맞춰줘야 겠네.'

­식스는 천마님이 나의 선배라고 알고 있을 터이니, 나가고 싶다고 조르길래 같이 나간 걸로 처리한 건 어떤가?

"좋은데요?"

­그리고 나중에 나 혼자 들어올게, 천마님은 갑자기 벽을 뚫을 가능성이 보여서 홀로 수련을 했다는 핑계로 속이는 거지.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런데 여기, CCTV 있지 않나?

기억을 곰곰히 되살펴 보면 인공 각성실험장에 CCTV실이 따로 있던걸로 기억이 났다. 시설의 모든 CCTV를 확인 하는 장소가 있는 만큼 CCTV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겠지.

"그런데 저희가 말한 거 다 찍힌 거 아니에요?"

­너는 S급 각성자를 둘이나 끼고 다니면서도 감시카메라에 우리의 모습이 잡힐까 걱정하는거야?

어째 말투가 점점 편해진다?

­아니면 나는 못 미덥다는 거야? 내가 감시카메라 하나 신경쓰지 못하고 이런 정보를 막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장난스러운 투정에 가까워진 검성의 말에 옅게 웃었다.

"네,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검마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푸흐, 하고 작게 웃었다.

­확실히 겁이 없는 놈이긴 하군.

"천마가 말했잖아요. 고양이는 목숨이 여러 개라서요. 그리고 어차피 저한테 위해도 가하지 못 하시잖아요?"

마! 내가 느그 스승이랑 밥도 같이 묵고! 같이 탈출도 하고! 다했어 마!

­스승님이 왜 너한테 빠지셨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군, 아주 재밌는 녀석이야.

검마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그러면 나는 이만 나갔다 오도록 하지, 식스한테 말 잘 하도록.

"넵, 다녀오십쇼."

가벼운 경례와 함께 검마를 떠나 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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