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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화 〉 천마­6 (84/265)

〈 84화 〉 천마­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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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개새끼야!!"

의식이 끊기자마자 내 다른 인격이 내 멱살을 잡아왔다.

맞은 건 육체 뿐이지만 큰 고통은 정신적으로도 타격을 줄 수 있었는지 녀석의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온몸은 멍투성이에 머리에선 피가 뚝둑 흘렀고 관절도 이리저리 뒤틀려 있는 걸보면 저러고도 살아있다는 것이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잠깐! 일단 진정 좀 해봐."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네가 멋대로 도망가는 바람에 내가 무슨 꼴을 당했는 줄 알아? 알겠지! 너는 의식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쥐포나 뜯으면서 내가 맞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을 테니까."

"쥐포나 뜯다니 말이 좀 심하다."

쥐포가 아니라 팝콘이거든?

"왜 잘못은 네가 했는데 내가 맞아야 하냐고!"

보통 억울한게 아닌 지 내 멱살을 잡고 탈탈 털어댔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일단 녀석의 분노를 모두 받아 주기로 했다.

"미안하다."

"미안했으면 바로 튀어나와서 바꾸든가 했어야지 내가 들어갈려니까 기를 쓰고 막더라? 너는 맞지도 않을 텐데 말이야."

"미안, 내가 어떻게 보상해 주면 될까?"

"일단 대가리 박아."

바로 땅에다가 머리를 박았다.

"좋은 생각이 났어."

"뭔데?"

"의식이 돌아오면 천마 얼굴에 주먹을 날려, 아마 피할 것 같긴 한데 갑자기 네가 공격한 것으로도 충부히 의지 표시는 되겠지. 그 다음엔 절대로 나한테 떠넘기지 마."

천마 얼굴에 주먹을?

가볍게 상상해봤다. 내 주먹을 가볍게 막은 천마가 나를 매친 뒤...

뭔가 어제랑 비슷하게 흘러갈 것 같은데...

"아무튼 꼴도 보기 싫으니까 구석에 박혀서 잠이나 자."

"넵!!"

더 화내기 전에 빨리 숨었다.

***

온몸이 박살난 것 처럼 아파왔다.

왜 다른 인격이 나에게 그 지랄을 했는지 바로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온몸이 다 아팠다.

'일단 천마 얼굴에 주먹은 못 박겠네.'

몸이 너무 아프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내가 일어난 건진즉에 알아차렸다는 눈빛으로 천마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하연이와 연하도 있었는데, 굉장히 불만에 차 있는 표정인 걸 보니 쉽게 넘어가기는 틀린 것같다.

'그냥 나올 걸 그랬나...'

내가 아픈 거 아니라고 다른 인격이 계속 맞게 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아플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해야, 일어났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보지 그러니?"

천마가 짗굿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무슨 말... 커흑!!!"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더니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팔 다리는 물론이고 등, 흉부, 머리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바로 치료할 수도 있었지만, 잘못한 건 아해니까 말이다. 아해의 다른 인격만 고통을 받게 하기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치료를 안하고 있었다."

그냥 치료 좀 해주면 덧나냐.

"치료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올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니, 아프긴 해도 좀 참고 있거라."

고개를 살짝 돌려서 하연이와 연하를 바라봤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무말도 안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기절한 사이 천마와의 이야기가 오갔던 게 분명했다.

"아, 아해의 동생들과는 이미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천마가 양 팔로 하연이와 연하에게 어깨동무를 시전했다.

"무슨... 얘기를 했길래... 애들 표정이."

"별 얘기 안 했다. 그냥 사이 좋게 지내자는 이야기를 한 것 뿐이지."

"맞아요.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자는 얘기를 하셨죠. 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릴 것 같이 흉흉한 분위기를 가지고 계셨던 게 문제지만요."

방금 하연이가 말한 거지? 연하가 한 말 아니지?

하연이가 나를 제외한 사람한테 존댓말을 하다니... 천마, 당신은 대체...

"그리고 언니가 화난 건 이분과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해 주시지 않은 오라버니 때문이지, 절대로 천마씨가 오라버니한테 뽀뽀를 마구 박는 모습을 보고 질투가 넘쳐서 화를 내는 게 아니에요."

연하 너 은근히 하연이 돌려깐다?

"안심하셔도 돼요. 둘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언니랑 저 말고 전부 기절해 버려서 둘이 싸우는 장면은 저희만 봤거든요. 식스나 머저리들은 오라버니가 처참하게 능욕당하는 걸 보지 않았으니 참으로 다행인 일이죠."

둘 다 많이 화났나 보네.

"그런데, 뒷처리는, 어떻게 했어?"

몸이 어느 정도 고통에 적응했는지 아픔을 참아가며 말할 수 있었다.

"6호한테 전부 말했다. 내가 천마라는 것과 검마가 내 제자라는 것까지, 상심을 좀 할 줄 알았건만 본좌가 미르 출신이라고 상심보다는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하더군, 아마 뒷처리는 그녀가 잘 할테지."

"이, 수아는?"

"79호를 말하는 건가? 그녀는 이미 도망갔다. 죽일 생각은 없었건만, 뭐가 그리 겁났는지 자신들의 신도를 모조리 데리고 사라져 버렸지."

조금 아쉽네, 그녀와는 완전히 화해하고 싶었는데.

"우리는 모두 외부인들 아닌가, 미르의 일은 미르의 사람이 해결하게 내버려 둬야겠지, 아마 6호가 전부 잘 처리 할 것이다."

"그러냐..."

"그나저나 우리 아해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몰랐군, 79호야 그렇다 쳐도, 동생한테 사랑 받고 도시에도 자네를 사모하는 여인이 있다지?"

은근한 압박감이 내 목을 타고 흘렀다.

"굵직한 사람만 이 정도이고 아마 아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여인은 더더욱 많겠지. 어쩌면 제어를 할 필요가 있겠어."

굉장히 섬뜩한 대사였지만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말의 섬뜩함과 다르게 천마는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으니까.

"아해가 얼마나 많은 여자를 꼬시든 나는 관심 없어. 하지만 단 하나만 명심하게, 언제나 아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할 것이며 내가 아해에게 반한 첫번째 여자라는 것도 절대로 잊지마. 그 정도만 지켜준다면 그대의 문란한 여성 관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문란하다니..."

내가 얼마나 건전한데!

"아, 상대가 본좌라면 얼마든지 문란해져도 괜찮아. 내 친히 그대의 변태성을 받아주지."

"변태는 당신이잖아요!!"

하연이 나이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해주네.

"흐음? 왜 본좌가 변태라는 거지?"

"어제 오라버니한테 한 짓이 기억나지 않는 거에요?"

"아, 오랜만에 만난 아해에게 뽀뽀 몇 번 해줬을 뿐인다. 그리고 얼마나 컸는지 확인도 했을 뿐이고, 어른으로서 아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그렇게 변태같은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어른은 무슨 어른이에요? 오라버니랑 동갑이라면서요!"

"육신의 나이는 아해와 같지만 내가 전생에 산 세월만 두 갑자 가까이 된다. 그 정도 나이차이면 아이 취급해도 문제 없지 않은가?"

"그러면 끝까지 아이 취급 하시던가 왜 갑자기 사랑을 바라시는 데요?"

"본좌도 가끔 소녀감성이 들 때가 있는 법이다."

둘의 대화를 듣다 보니 아주 재미졌다.

사람들이 왜 캣 파이트라는 장르를 찾아보는 지 알 것 같다.

달달한 팝콘 하나만 있었으면 훨씬 더 재밌게 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참 아쉬웠다.

연하도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미리 깍아둔 사과를 먹으면서 구경하는 게 참 좋아보였다.

침대를 톡톡 쳐서 연하를 부르니 입안으로 사과를 넣어줬다. 상큼하면서도 달달한게 아주 맛있었다.

눈앞에 좋은 볼 거리가 있으니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아해가 싫어하지 않았으니 내가 변태라는 말은 틀렸다."

"싫어했거든요? 주먹도 날리고 피하기도 했잖아요."

"아? 그게 거부의 표시였나? 나는 재롱피우는 줄 알았다. 부정의 의사라기엔 너무나도 연약하고 하찮아서 말이지."

둘이 싸우는 데 나한테도 공격이 들어왔지만 천마가 나를 조롱해봤자 격의 차이가 너무 커서 하나도 딜이 박히지 않았다.

한참동안 진행되던 둘의 싸움을 끊은 것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검마였다.

들어오자마자 하연이와 싸우고 있는 천마를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스승님 환자를 앞에 두고 뭐하시는 겁니까?

"환자라고 한들 스스로 자초 한 일이니 굳이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일단 나와 계쇼, 치료계 각성자를 데려왔습니다.

그녀가 비켜서니 C등급 정도로 추정되는 각성자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고위 각성자면 몰라도 나 같은 비각성자가 다친 걸 치료하는 데에는 C급으로도 차고 넘쳤다.

각성자의 능력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가니 몸이 개운해 졌다.

울리듯 아파오던 몸의 통증도 사라지고 어딘가 부러진듯 어색했던 감각도 사라졌다.

드디어 마음껏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해방감에 기지개를 쭉 피고 있을 때 내 다른 인격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 몸 나았으니까, 천마 때려.'

잔뜩 퉁명해진 목소리였다.

아마 저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한 평생 나를 괴롭히겠지.

'뭐해? 빨리 때리라니까? 설마 업보청산의 시간에도 머리를 굴리고 있는 거야?'

'알았어, 때릴 태니까 조용히 해.'

어쩔 수 없이 주먹을 들고 천마의 얼굴을 향해 내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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