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 천마­7 (85/265)

〈 85화 〉 천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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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따위는 없었다.

천마는 너무 나도 쉽게 내 주먹을 흘려냈다.

그나마 반전이 있었다면 흉부쪽으로 주먹을 흘린 것도 아니고 땅으로 메치고 내 위에 올라탄 것도 아니라는 거? 딱 주먹만 흘리고 가만히 나를 보고 서있었다.

"눈빛은 분명 아해인데 갑자기 나한테 주먹을 휘두른 것을 보아하니."

천마의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아무래도 다른 인격이 그대에게 명령을 한 모양이구나? 자기만 당했던 게 싫었던 모양이지?"

역시 천마라고 할까? 나의 내면에서 있던 일을 전부꿰뚫었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 따로 벌을 주지 않겠지만 날을 잡아서 교육을 해줄 필요가 있겠군, 아해의 다른 인격에게 그날을 기대하라고 전해라."

'좆된거 같은데?'

'아니 왜 나한테만 그래?!'

머릿속에서 빼애애액 거리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복을 빌어주도록 하자.

"근데 이제 어떻게 할거야? 중원을 제패하러 간 거 아니었어? 아직 다 못 먹었으니까, 다시 돌아갈거야?"

"중원의 모든 이가 내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숙인다. 중원의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이 정도면 이미 중원을 재패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몬스터들도 네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숙여?"

천마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저런 표정을 지을 만한 타이밍은 아닌것 같은데 도대체 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마수도 나를 죽일 수 없지."

"하지만 마수가 중원 전체에 퍼져있잖아. 그런데도 네가 진짜로 중원을 제패했다고 할 수있냐고."

천마가 씩 웃었다.

천마가 저렇게 웃을 때마다 느끼는 데 진짜 미치도록 예뻤다.

사실 천마가 아니라 서큐버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장이 쿵쿵 뛰어댔으니까.

"아해는 내가 중원의 모든 곳을 안정화 시키고 모두의 위에 적법한 지배자로 올라야 중원을 제패했다 생각하나 보군?"

"그런데, 왜?"

천마가 가볍게 기세를 일으켰다.

천마의 진짜 강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기세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바싹 굳어버렸다.

"아해야, 본좌가 누구지?"

"천마... 지..."

"그래 본좌는 천마다. 모든 마의 정점이다. 나는 군주가 아니며, 지도자 또한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공포와 경외를 받으면 충분한 존재일진데 왜 내가 중원의 모든 이를 지배해야만 하지? 어디를 가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없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는가."

"... 궤변이야. 그런 논리대로라면, 너는 중원에 도착한 순간부터, 중원을 제패한 것과 다름이 없어지니까. 도대체 누가 너를 막겠어. 네 힘의 일부만 보여줘도 모두가 너에게 복종할 텐데."

천마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기세를 풀고 푸하 웃었다.

"아해의 말이 맞다. 사실상 나는 중원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이미 중원을 지배했다고 봐도 무방했겠지. 지금의 중원엔 나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예 없으니까 말이다."

천마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아해와 해어지고 중원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나는 아직도 무림이 남아있을 거라 믿었다. 혈혈 단신으로 시작해서 정파놈들과 사파놈들을 모두 깨부수고 천마라는 지고한 이름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하였지."

그녀의 눈빛은 굉장히 슬퍼 보였다.

우수에 찾다고 하면 적당한 표현이 될까? 그녀의 깊은 눈동자도 그녀의 감정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데 중원에 무림 따윈 없더군, 정파도, 사파도 없었어.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었지. 결국 천마라는 이름은 내 생각보다 너무나 쉽게 중원 전체에 퍼지게 되었어. 그 누구도 나의 말에 반박하지 않으며 나와 제대로 대적할 수 있는 이가 존재하지 않았지. 이 감정이 어떤 느낌인지, 아해는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를 거야."

절대자의 무료라는 걸까?

천마가 지금까지 했던 말을 종합해오면 아마 무림에서 온 모양인데, 강자들이 많았을 무림과는 달리 이곳엔 그녀의 피를 끓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모양이다.

'S급 각성자도 충분히 세 보이던데...'

그런 강자들도 천마의 눈에 차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림은 얼마나 강한이들이 많던 세계인 걸까?

천마가 내 얼굴을 쓱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본좌가 망할 각성만 하지 않았다면 중원을 제패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어도 더 재미있는 일이었겠지. 중원의 공적으로 낙인 찍히고 내가 공격해도 자신들을 보호해줄 S급 각성자의 출동을 기다리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했을 거야. 중원에 존재하는 S급 각성자를 하나하나 죽이거나 내 밑으로 들이면서, 평생에 걸쳐 내 목표를 향해 걸어갈 수 있었겠지."

천마의 말에 노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망할 능력이 모든 것을 망쳤다. 내 노력따윈 하나도 깃들지 않은 이 능력이, 내 삶의 목적을 앗아 갔단 말이다!!"

­스승님!! 진정하십쇼!

칼날처럼 날카로운 폭풍이 방안의 모든 것을 난도질 했다. 분노에 차오른 상태여도 최소한의 제어는 가능했는지 옷만 찢어지고 몸에는 상처가 나지 않았다.

"... 미안하다, 본좌가 예전 같지가 않군."

천마가 나를 스윽 바라봤다.

"그래, 그냥 내가 아해의 찢어진 옷을 보기 위해서 기세를 발휘한 것으로 하지."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좌는 이만 물러가겠다. 아무리 치료를 받았어도 아해는 환자인데 너무 신경을 쓰게 한 것 같군.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지."

천마가 방밖으로 나섰다.

"평생에 걸쳐 오르려 도달하려 했던 목표를 발을 내딛자마자 끝내 버린 기분... 느껴 본 적은 없지만 이해는 돼요."

연하가 동정에 찬 눈으로 문을 바라봤다.

"목적이 없다고 해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건 아니겠지만, 천마씨같이 강한 분이라면 지금까지 뚜렷한 목표를 보고 달려오셨을 텐데, 그런 분이 목적 없이 방황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좀 아프네요."

­글쎄 내가 보기엔 앞으로는 계속 괜찮아 지실 것 같다.

"검마라고 하셨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에요?"

검마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이 이수현에게 보여주신 애정과 관심은 내가 지금까지 봤던 스승님의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어. 어쩌면 스승님은 이수현을 다시 만남으로서 자신의 호적수를 만날 수 없다는 미련을 버리고 목표를 다시 설정하신 걸 지도 모르지.

"내가 뭐라고 천마가..."

­감정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한 법이니까, 스승님이 너에게 가지고 있던 애정과 추억을 생각하면 마냥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야. 그리고 스승님도 본인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건 알고 계셨을 테니 너를 만난 기쁨으로 기존의 미련을 벗어 던지려고 하셨을 거다.

추억? 내가 1호랑 추억이 많았었나?

기억을 다시 한 번 뒤져볼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튼 스승님의 마음속에서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거야. 능력을 각성하기 이전시절의 추억이고, 그토록 사모했던 사람이니까.

"그 정도야?"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너무 신경 쓸 거 없다. 우리 스승님은 강하신 분이시고, 너를 만나서 얻은 기쁨은 한치의 거짓 없이 진실 되어 있을 테니까. 스승님이 잃어버린 목표의 대체재로 너를 선택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냥 속 편하게, 스승님이 너를 좋아한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고 있어.

뭐지? 대리 고백인가?

­그러면 나도 이만 가보겠다. 다음에 보자.

천마와 검마 둘 다 중국으로 가는 걸까?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거라지만 너무 뜬금없어서 당황했다.

오랜만에 만났다가 헤어지는 건데 스승이고 제자고 다음에 보자 한 마디로 퉁치는 건 뭐야.

천마가 없으면 몸과 마음은 더 편하긴 하겠지만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천마는 세니까, 중국과 한반도쯤 되는 거리라도 금세 올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떠나가는 건 완전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으로 가는 거야?"

검마가 뭔 개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내 말 하나도 안 들었어? 스승님이 널 좋아하신다니까? 널 버리고 어딜 가겠냐. 같이 데려 가면 모를까. 너 진짜 바보야?

아니, 그럴 거면 다음에 보자는 소리를 하질 말던가, 누가들어도 나 떠나가요. 하는 어투로 말해놓고 왜 나한테 그러는데.

일반적으로 다음에 보자는 말은 최소 일주일은 못봐야 하는 소리잖아. 내일 올거면 내일 보자고 말하라고!

"다음에 보자면서? 영영 떠나는 건 아니어도 당분간은 떠나갈 때야 하는 소리 아니야?"

­하루 정도면 충분히 긴 시간이지, 이미 저녁이니 내일 아침은 돼야 올테니까.

시발 괜히 울컥했네.

내가 보기에 이건 고의다. 마치 중국으로 떠나가는 듯 한 느낌을 심어줘서 나를 울컥하게 하려 했던 천마의 노림수가 틀림이 없었다.

마음이 심란한 상태에서도 저러 노림수를 걸어오다니, 천마는 속에 구렁이를 수십마리씩 키우는 게 분명했다.

"그래 잘 가라."

몸이 아파서 손도 안 흔들어주고 침대에 누웠다.

절대로 삐져서 그런거 아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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