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 천마신교­2 (87/265)

〈 87화 〉 천마신교­2

* * *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천마의 부하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천마가 중국어로 뭐라고 말하니까 부하들이 매우 즐거운 얼굴,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딘가에서 해방된 얼굴을 뛰면서 나에게 허리를 숙이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도 대충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협.

왜 저들의 전음에서 울음기가 느껴지는 것 처럼 느껴지는 걸까?

왜 저들은 오늘 처음 본 나한테 대협이라는 칭호를 써가면서 감사해 하는 걸까?

'근데 대협은 정파쪽에서 쓰는 말 아니었어?'

무협은 읽어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그리고 아무리 천마신교라 해도 이전에는 중국이었던 곳이니 단어가 혼용되어 사용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겠지.

"다짜고짜 왠 감사에요?"

내 말에 천마의 부하들이 물음표를 뛰우고 있을 때쯤 검마가 중국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검마는 한국어를 배운 적이 있나보네.'

능력으로 알아들은 건 줄 알았는데 다른 부하들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걸 보면 듣는 것 정도는 따로 배운 적이 있는 모양이다.

­대사부님을...

­고오오오오오

천마가 근엄한 분위기로 남자를 쳐다보자 남자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쓸데 없는 말은 하지 말거라."

"예썰!"

나도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려는 듯 영어로 대답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검마한테 물어보면 될일이고.'

주변을 쭉 훑어봤다.

뒷 쪽으로는 아까 상공에서 봤던 거대한 건물이 펼쳐져 있었고 앞쪽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내가 보였다.

잠깐 본 것으로 도시의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건물이 낙후되지 않고 신식으로 지어진걸로 보아서는 이곳이 수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 내가 말했던 아해가 이 녀석이다."

"@%#@!#%*@?"

"아해의 동생이라고 하더구나, 아해 혼자 이곳에 보내는 게 걱정이 되었는지 따라 왔다."

"!@$!%?"

"일은 잘 처리했다. 애초에 아해를 만나러 간 것인데 이렇게 무사히 데려왔으니 말이다."

한국어로 말하는 것 처럼 보이는 데 남자가 다 알아 듣는 걸 보면 따로 전음을 날리는 것으로 보였다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다. 나는 아해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으니 적당한 방을 찾아 안내하도록."

"@!$!!"

"당연히 방을 내어 줘야지 설마 손님을 밖에 내버려 두고 싶은 것이냐?"

그 이후로는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 남자는 우리를 호텔처럼 생긴 방으로 안내했는데 거실도 있고 방도 3개나 있는 큰 곳이었다.

'왜 방이 3개 뿐일까?'

사람은 4명인데 말이지.

"중국어를 배워야 하나..."

"굳이 배울 필요가 있나? 어차피 아해가 만날 내 제자들은 마나로 자신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의 고수들이고 아해가 말을 전달하고 싶을 때는 검마나 하연의 도움의 받으면 될지니."

"하연이 너도 저거 할 수 있어?"

"네, 할 수 있어요."

S급 각성자가 되면 외국어도 배울 필요가 없어지는 건가. 정말 굉장하군.

"그리고 이곳에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 나는 아해와 함께라면 천마산이든 미르든, 아해의 도시든 상관이 없지만 아해는 아무래도 원래 살던 도시가 편할 것 아니냐? 아해보고 나에게 맞추라 할 생각은 없으니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여행왔다고 생각하며 편히 있거라."

"편히 있으라고 해도, 검마랑 하연이가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거란 보장이 없잖아."

"하연은 몰라도 검마는 그대의 곁에 늘 붙여 둘 수 있다. 나의 애제자에게 통역이나 맡기는 건 인력낭비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만큼 적절한 인재가 없으니 아해가 원한다면 검마에게 일러 주겠다."

"너 나한테 부담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천마가 프흐 하고 웃었다.

"내가 아해에게 왜 부담을 주겠나.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여자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 만으로 이미 충분히 중압감을 느낄 터인데 내가 굳이 부담을 더 얹어줄 필요는 없지."

"글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니까 그냥 장난 삼아서 나를 놀릴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호의를 의심하지 말거라, 나는 아해에게 부담을 주고 싶어서 검마를 붙이는 게 아니라 아해가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지내면 좋겠기에 검마를 붙여 주는 것이니까. 특히 하연이 아니라 검마가 옆에 있으면 너에게 의지를 전하지 못하는 다른 이들의 말도 검마를 통해 들을 수 있을 테니. 흠 이렇게 말하니 검마를 반드시 아해에게 붙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천마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검마에게 내려오라 명할 테니 지금부터는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하거라, 제자들에게 쉬고 싶다 말하긴 했지만 할 일이 태산이라 말이지, 벌써 부터 나태해 지면 반년이 지나도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달간 밀려 있던 일을 하루 만에 끝냈다면서?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일을 끝내면 6일이면 끝낼 수 있겠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해야. 나에게 반감을 사고 있는 이들과 나의 제자들을 같은 방식으로 대할 순 없으니까. 그래도 한달 정도면 충분히 일이 마무리 될테니 천마신교도 구경하고 내 제자들과 교류도 쌓으면서 시간을 보내거라."

그리 말하고는 현관으로 나섰다.

"지금 헤어지면 밤이 깊어서야 볼 수있을 텐데 이별의 키스 같은 건 없나?"

"있겠냐? 가서 일이나 하셔."

천마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볼에 입을 맞췄다.

"아해의 볼은 상당히 중독성이 넘친단 말이지. 아까 아해가 잠들었을 때도 그 감촉이 얼마나 좋았는지."

"도대체 뭔짓을 했길래..."

"그냥 손으로 좀 주물러 줬을 뿐이다. 내가 볼에 입만 맞춰도 열이 오르는 아해의 동생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동하는 내내 아해의 볼을 유린했겠나."

천마가 다시 웃으면서 뒤로 움직였다.

"그러면 진짜 가보겠다. 밤에 다시 보도록 하지."

천마가 나가자 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하연이의 시선이.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볼이 좀 더 촉촉해졌다.

***

­천마신교엔 강자들이 많다.

"그럴 것 같긴 해."

­능력을 각성하지 않은 이라 하더라도 천마님의 가르침을 받아 강해진 이들이 많으며 능력까지 각성했다면 저등급 능력을 각성했어도 훨씬 상위의 각성자와 싸울 수 있는 경우도 많지.

"그렇겠지. 나만해도 D등급 각성자 까지는 무난하게 잡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S급의 격에 다다르긴 쉽지 않으니, 너무 걱정할 거 없다.

"걱정한 적 없는데."

지금 내 눈앞엔 하연이와 천마의 제자간의 대련이 벌어지고 있다.

검마 다음가는 천마의 제자라고 하는 데 상당히 어린 시절 부터 천마의 가르침을 받아온데다가 A급 각성자이기도 했기에 천마신교 내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강자라고 한다.

그런 남자와 하연이가 대련하게 된 것은 정말 사소한 계기 때문이었다.

'쓸 데없는 자존심 싸움이지.'

하연이와 남자, 그러니까 권마 중에서 누가 더 강할 것인가.

이 쓸데 없는 자존심 싸움이 대련으로 까지 이어졌다.

­둘이 전력을 다해 싸우면 도시 전체 가 위험할 것이니 마나를 최대한 제한해서 대련을 진행할 것이다. 때문에 둘 모두 다칠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나를 제약하면 하연이가 불리한 거 아니야? 무공인들은 내기를 쓴다면서?"

­천마님이 계셨던 무림에선 그리 사용한 모양이지만 천마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세계에는 기가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때문에 상당 부분 형질이 비슷한 마나로 대체해서 무공을 운영하고 있지. 따라서 그대의 동생이 그렇게 불리하지는 않다.

"네 생각엔 누가 이길 것같아?"

­동료인 권마를 응원해 주고 싶긴 하지만...

검마가 말끝을 흐렸다.

­권마와 다른 S급 각성자 사이의 전적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대의 동생의 승리를 점칠 수밖에 없겠군

"권마랑 S급 각성자랑싸우면 권마가 져?"

­초반에 압도하다가 점점 밀린다. 때문에 전투가 벌어지면 늘 내가 도와줬지.

그렇단 말이지?

"내기 할래?"

­내기? 둘 다 같은 쪽에 걸어서는 내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나는 권마쪽에 걸건데?"

검마가 그게 무슨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권마를 아는 나로서는 그대가 왜 일부러 불리한 내기를 나에게 신청했는지 모르겠군.

"권마가 S급 각성자랑 대련을 한 건 본적 있어?"

­있긴 하지, 우리 천마신교에 S급 각성자가 나랑 천마님만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 때마다 권마는 늘 패배해 왔고, 때문에 요즘엔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것 같더군.

"이번에 자신감 좀 얻으시겠네."

하연이가 나름 싸움을 잘하긴 하지만 천마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도 이길 수 있을까?

그것도 마나가 제한된 상태인데 말이야.

­그래서 무엇을 걸것인가?

"내가 이기면 본격적으로 나에게 가르침을 내려줘."

­가르침이라...

"내가 지금 벽에 막혀 있는 상태거든."

­그대는 무공을 배우기엔 너무 늦었다.

누가 무공을 알려달래?

"무공 말고 싸움법 말이야. C급 각성자도 잡아보고 싶거든."

­좋아. 그대가 내기에서 이긴다면 그리 하도록 하지. 대신 내가 내기에서 이긴다면 작은 소원하나만 들어주게.

"좋아. 근데 작게 느껴지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

­협상 성공이군.

우리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둘의 대련이 시작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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