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천마신교3
* * *
권마와 하연이의 대련은 마나가 제한 되어 있음에도 아주 화려 했다.
하연이의 권능이 권마를 덥칠 때마다 권마는 아슬아슬 하게 피해가며 하연이를 공격했다.
'하연이 권능이 베기라고 했었나?'
S급 각성자의 권능도 무공과 조합된 A급 각성자의 능력은 뚫지 못 했는지 하연이가 계속 밀렸다.
외뿔이와의 전투를 구경한 뒤 내가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고위 각성자들의 싸움은 사실상 마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소비하고 상대의 마나를 더 많이 소비 시키느냐의 싸움이라는 것.
'내가 각성자가 아니라서 각성자들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을 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하연이가 권마보다는 마나가 많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이 추측의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이런 추측을 할 수 있던 이유는 권마가 다른 S급 각성자들을 상대로 초반에 압도하다가 후반에 밀렸다는 단서 하나 뿐이었으니까.
이 단서 하나로 권마가 S급 각성자들 보다 마나를 효율적으로 쓴다는 가정과 S급 각성자가 권마보다 마나가 많다는 가정을 세우긴 했지만 아주 확실한 건 아니었다.
권마가 마나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데 짧은 시간에 몰아치는 능력이 더 뛰어난 걸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뭐 어때, 내 장기가 걸릴 것도 아니고 그냥 친한 사이에 거는 내기일 뿐인데.'
내가 지면 지는 데로 일이 재밌게 흘러가겠지.
권마가 하연이 보다 마나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권마가 승리할 것이다.
서로 전력을 다하는 총력전이 아니라 마나를 제한에 두고 싸우는 대련이니까.
같은 마나라면 효율이 더 좋은 쪽이 승리하겠지.
'육탄전쪽은 권마가 압도적으로 강할테니까.'
하연이는 나보다도 싸움을 못한다. 내가 검마한테 압도적으로 지는 걸 생각하면 하연이가 권마를 상대로 잘 싸울 수 있기를 바라긴 힘들겠지.
실제로 하연이는 계속해서 밀리다가 결국 경기장을 이탈해 버렸다.
"어때? 내가 이겼지?"
일단 그대가 이기긴 했군,
뭐야 반응이 왜 그래? 나를 가르쳐 주는 게 그렇게 싫나?
서로 상처를 최대한 입히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었기 때문에 권마가 승리한 것이다.
"하연이가 제대로 싸웠다면 하연이가 이겼을 거란 소리야?"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모든 마나를 사용해서 권마의 목을 노렸다면 그대로 권마의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녀의 권능은 그만큼 강력하니 말이다.
S급 각성자의 권능이 그렇게 강하다고?
지금 둘이 진행한 것이 친목대련이라는 걸 잊고 있었군, 일단 내기는 그대가 이겼다.
"한 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권마라 하연이, 둘 중에서 누가 더 마나가 많아?"
무엇을 묻나, 당연히 그대의 동생이 훨씬 더 마나가 많지.
내기를 이겨 놓고도 기분이 씁쓸 했다.
권마도 천마의 밑에서 오랜시간 수련하고 A급으로 각성까지 한 존재인데 하연이한테 무슨 수를 써서도 이기지 못하다니.
권마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보였다.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고, 검마에게 나름의 가르침을 받아왔음에도 C급조차 이길 수 없었다.
'그래, 사람은 자기 자리에 순응하면서 살아야지.'
권마와 하연이의 대련이 완전히 끝나고 열기가 어느정도 가라앉기 시작할 때 작은 소녀가 대련장 중앙으로 나왔다.
"!@@#!%#"
내쪽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소리치는 데 당연하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뭐라는 거야?"
그대와 싸우고 싶다는 군.
나랑 싸운다라...
내가 우리 도시에서는 나름 최강 소리를 듣는 강자지만 천마산에 오고 나서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지나다니면서 만나는 그 누구도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누군데?"
나랑 권마와 같이 천마님의 밑에서 수련한 친구다. 각성을하진 못했기에 마 라는 호칭을 받지는 못 했지만 순수한 실력으로 따지자면 늘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친구지.
아니 그런 인간이 나보고 싸우자고 한다고?
리우잉, 이자는 비 각성자야.
"!#@%@"
자기도 비각성자라고 하는 군.
아니, 같은 비각성자라고 다 똑같은 사람인가? 무림으로 따지면 무공을 배운 사람과 안 배운 사람 정도의 차이가 있는 건데.
그렇다고 대련을 거절하자니 너무 열망에 가득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가르침을 청하는 느낌으로 한 번 붙어 볼까?"
저 아이는 장난기가 상당히 심해서 말이야. 그대가 다치는 일은 없겠지만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싸워보는 것도 좋겠지.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한 번 붙어 보지 뭐."
처음 검마와 싸울 때 처럼 꼴사납게 패배하겠지만.
단검 하나를 챙기고 대련장으로 내려갔다.
소녀는 굉장히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스승님의 남친이지?
뭐야? 전음 할 수 있었잖아?
하긴 아무리 비각성자라고 해도 천마의 직속 제자인데 못 쓸리가 없지.
천마님이 네 얘기를 엄청 많이 했어.
"그래?"
나, 네가 얼마나 강한지 궁금해.
"네 생각보다 엄청 약하니까 너무 기대하진 마."
알아, 그래도 궁금한걸.
단검을 들고 소녀가 덤벼오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내실력으로 먼저 공격해 들어갔다가는 빈틈만 보이고 쳐맞을 테니까.
되도록이면 빈틈을 최대한 들어내지 않는 상태로 소녀의 공격을 기다리는 게 맞지.
그러면 간다.
쾅!!
정신을 차리니 벽에 부딪혀있었다.
앞을 바라보니 소녀가 내가 있던 자리에서서 발을 쭉 뻗고 있었다.
이것도 반응못해?
실망이 다분히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소녀의 약올림이 너무 절묘해서, 내면의 분노를 끌어올랐다.
'고작 7글자짜리 문장에 화가 많이 나네.'
검마가 똑같이 말했으면 순순히 인정했을 텐데 쟤가 말하니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봤냐?'
'처음에 움직이는 거 조금?'
다시 덤벼봐.
단검을 들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에도 반응하지 못하고 벽에 처박혔다.
약해!
계속해서 벽에 박혔지만 나름 성과는 있었다.
일단 저 소녀는 계속해서 내 오른쪽 어깨를 공격해 온다는 것.
그리고 움직임의 전조를 보이고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후 공격이 내 몸에 닿는 다는 것.
'수련을 시켜 주고 있다는 게 너무 티나는 거 아니야?'
싸움을 하는 느낌도 아니고 능욕을 당하는 느낌도 아니었다.
마치 어려운 게임을 공략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반응 할 수 있을 때까지 소녀가 나에게 계속 자극을 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천마가 시켰어?"
천마님이라고 해야지!
일단 천마가 시킨 건 맞나 보네.
왜 굳이 이런 일을 하는 거야.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소녀의 공격을 겨우 막아 낼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조금의 변화조차 적응하지 못하고 뻗어 버릴 텐데.
다시간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벽으로 처박힌 횟수만 백번이 넘어가고 몸이 아파서 바들바들 떨려올 때 쯤이 되어서야 소녀의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었다.
캉!!
'발이랑 칼이랑 부딪힌 소리 맞아?'
당연한 소리지만 벽으로 날아갔다.
흘려낸 것도 아니고 단지 막은 것 뿐이니까, 물리력을 전부 상쇄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생각보다는 빨리 클리어했네. 편법도 안쓰고, 아주 잘했어!
소녀가 나에게 엄지를 치켜 들었다.
미리 어깨를 막는 짓을 한 번쯤 할 줄 알았는데, 우직하게 정론으로 덤빈 천마님의 남친에게 잘했어요!
"괜히 편법을 썼다가 호되게 당할 것 같았거든."
정답! 리우링은 천마님의 남친이 편법을 썼으면 얼굴에 킥을 날리려 했답니다!
얼굴 다 뭉개졌겠네.
일단 스테이지 1은 클리어했어.
"단계가 여러 개가 있는 거야?"
천마님이 말씀하시길, 남친이 천마신교를 떠나기 전까지 스테이지 7까지는 클리어 하면 좋겠다고 하셨어.
"사실상 무조건 하라는 거지?"
아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하던데?
나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은데?
스테이지 1을 클리어 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다시 한 번 하라고 해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복습의 시간이야.
소녀가 자세를 잡았다.
소녀의 움직임에 최대한 집중했다.
단 한순간이라도 시선을 놓쳐버리면 바로 바닥을 구르게 될테니까.
'지금!'
다른 인격의 목소리가 전달 되기도 전에 내 단검은 어깨를 막고 있었다.
캉!!
이번에도 역시 날아가긴 했지만 무사히 막아낼 수 있었다.
천마님 말씀이 맞았어. 남친은 정말 재능이 뛰어나구나? 내공도 없고 능력도 없이 내 움직임에 반응할 수 있는 걸 보면 검마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게 분명해!
글쎄?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식스의 말에 따르면 시설에서 지낸 애들에게 미약한 능력이 발현됐다고 했다.
다른애들에 비해 시설에서 지낸 시간이 현저하게 적었던 나지만, 나도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평범한 사람치고는 비 정상적이게 빠른 반사신경과 순발력이 내 능력은 아닐까?
'능력이면 뭐해, 어차피 진짜 능력자들한텐 발 끝에도 미치지 못 할텐데.'
그러면 바로 다음 스테이지에 도전할래?
"좋아.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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