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천마신교4
* * *
스테이지 2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소녀는 내 어깨를 공격했고 나는 그를 막아내야 했다.
달라진 건 소녀의 첫 움직임에 따라 왼쪽을 맞을 때도, 오른쪽을 맞을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소녀가 움직이는 걸 보고 재빠르게 어깨를 막아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어려웠는데, 한 쪽 어깨만 노릴 때는 소녀가 움직이는 모습만 포착하면 바로 어깨에 단검을 가져다 대면 됐지만 이제는 소녀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 까지 알아낸 다음에야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쪽 어깨만 막을 때보다 난이도가 몇배는 더 어려웠고 처음엔 운으로 막아내는 경우가 아니면 계속 벽에 쳐박혔다.
남친 연약해! 약해!
그나저나 약 올리는 거 진짜 잘하네.
몇 번 맞고 날아가다 보니 얼추 공식을 파악했다.
소녀가 처음 움질일 때 발끝이 날를 향하고 있으면 오른쪽 어깨, 그렇지 않으면 왼쪽 어깨를 가격해 왔다.
이를 한 눈에 파악하고 몸을 움직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예 불가능 한 건 아니었기에 소녀의 공격을 막아내는 비중이 점점 늘어났다.
잘 하는데? 연약한 남친 치고는 아주 잘하고 있어!
당연히 잘 해야지, 똑같은 공격을 수십 번째 당하고 있는데.
그러면 스테이지 3으로 넘어갈게, 남친도 예상했다 싶이 이번엔 3군데를 노릴거야. 양 어깨랑 오른쪽 무릎이고, 어깨를 노리던 공격은 전조가 똑같으니까, 참고하라구!
소녀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소녀의 공격을 수십번을 막아냈지만 아직도 멀쩡한 단검을 들고 소녀를 경계했다.
묵직한 침묵이 흐른 후 소녀가 움직였다.
캉!!!
오, 남친 눈 좋은데? 어떻게 한 번에 맞췄어?
소녀가 노려온 곳은 오른쪽 무릎이었다.
출발하는 발이 다를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기에 좀 더 알아차리기 쉽기도 했지만 사실 심리전을 통해 막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방금 전까지 어깨에 익숙해져 있던 나니까 왠지 무릎을 공격해 올 거라는 느낌이 들었거든.
스테이지 4까지 한 번에 갈까?
"그래, 어차피 같은 방식이면 여러개에 동시에 익숙해 지는 게 더 적응하기 편할 것 같아."
당연하게도 다음은 왼쪽 무릎이었다.
캉!!
소녀의 움직임은 소녀의 발을 보면 파악할 수 있었다.
오른쪽 발이 앞으로 나와있고 나를 향하고 있으면 오른쪽 어깨, 오른쪽 발이 나를 향하고 있지 않으면 왼쪽 어깨.
왼쪽 발이 앞으로 나와있고 나를 향하면 오른쪽 무릎, 왼쪽 발이 나를 향하고 있지 않으면 왼쪽무릎.
리듬게임을 하는 느낌으로 단검을 들어올리다보면 얼추 막아지긴 했다.
생각보다 진도가 엄청 빠른데? 나는 스테이지 4까지 오는 데도 하루가 넘게 걸릴 줄 알았는 데 벌써 스테이지 5에 오다니, 남친 대단해!
소녀가 웃는 얼굴로 나에게 엄지를 치켜 들었다.
그런데 스테이지 5는 많이 다를 거야. 아마 오늘 안에 못 끝낼 걸?
"단순히 부위 하나가 늘어나는 건 아닌가 보지?"
당연하지, 훨씬 어려울 거야.
소녀가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러면 간다.
소녀가 몸을 움직였다.
오른쪽 발이 나를 향하고 있긴 했지만 몸을 앞으로 뺀 걸 보니 새로운 부위겠지. 어딘지 모르니까 일단 맞고 생각...
콱!!!
쾅!!!
"커헉!!"
소녀에게 맞은 가슴 부분이 미친듯이 아파왔다.
어깨나 무릎을 맞아도 멀리 밀려나기만 할 뿐 크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지금 공격은 나름 힘을 준 듯 무지막지하게 아팠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고통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1분 정도를 충격에서 해어나오는 데 사용했고, 결국 내가 이러 날 때까지는 5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많이 아팠어? 스승님이 이 정도면 버틸수는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버틸수... 는 있지, 겁나게 아파서 문제지."
어떻게든 일어나긴 했는데 계속 명치 부분이 아파왔다.
치료를 안하면 일 주일은 갈 듯 한 통증에 숨 쉬기도 힘들었다.
그러면 자세 잡아 다음 공격 준비 할거야.
"... 어깨나 무릎도 이 세기로 때릴 거야?"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불행 중 다행이네.
소녀가 움직였다.
오른발, 내쪽.
당연히 오른쪽 어깨를 막아야 했지만 나도 모르게 내 명치 부분을 막아 버렸다.
쿵!!
당연하게도 벽으로 날아갔고 명치를 맞았을 때보다는 훨씬 더 적은 충격이 내 몸을 덮쳤다.
어떤 훈련인지 이제 이해가 되지?
"그래, 잘 알 것 같다."
겸사겸사 반응 속도 훈련도 하면서, 고통에 대한 내성을 기르는 훈련인가?
가슴에 맞으면 엄청난 고통을 받고 다른 곳을 맞으면 적당히 아픈 상황에서 고통에 지지 않고 합리적으로 막아내는 거지.
'불합리 하네.'
문제는 내가 아직 소녀의 모든 움직임에 반응할 수는 없었다는 거였다.
소녀가 움직이는 걸 파악해도 발은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었고 아예 소녀의 움직임 조차 볼 수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공포같은 경우는 금방 극복이 되거든.'
"리우링이라고 했나?"
리우잉이야 바보야!
"내가 오늘안에 스테이지 5를 깰 순 없을 거라고 했지"
응! 절대! 못 깨!
"깨면 어떡할 건데?"
깨면?
리우잉이 고개를 숙인 채 고민했다.
남친이 깨면 내가 앞으로 남친을 오빠라고 부를게! 대신 오늘 안에 못 깨면 남친이 나를 누나라고 불러야 해!
"너 몇 살인데?"
21살!
뭐야 성인이었어? 아무리 잘 쳐줘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상관 없어. 어차피 내가 이길 내기니까."
그러면 바로 공격한다?
'야, 부탁한다. 너는 짜피 고통을 안 느끼니까 객관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오케이.'
이번엔 왼발이 나를 향했다. 하지만 아까처럼 몸을 앞으로 빼고 있었다.
쾅!
가슴 앞에 단겸을 가져다 대니 어느새 벽이 내 등을 반겨 주고 있었다.
'막아도 존나 아프네.'
충돌 순간에 단검을 뒤로 빼면서 충돌 시간을 늘려보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너 나한테 감정 있냐? 왜 이렇게 세게차?"
이 정도 위력이 안되면 남친한테서 공포를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천마님이 말씀하셨어.
"다시 덤벼봐."
이후의 훈련은 스테이지 4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진행됐다.
공포고 뭐고 없는 내 다른 인격은 소녀가 내 가슴을 노릴 것 처럼 심리전을 걸어도 올바른 부분을 막아냈고, 소녀의 움직임을 놓쳐서 그녀의 공격을 맞는 걸 제외하면 내 몸에 그녀의 발이 닿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클리어 한거 아니야?"
클리어 한 거 아니야! 아직 완벽히 못 막잖아!
"지금까지 다 완벽히 못 막아도 넘어왔었잖아. 아무리 네 공격에 익숙해 져도 신체 능력의 차이가 있는 데 설마 모든 공격에 다 반응해야 클리어라고 말하고 싶은 건아니지?
소녀가 볼을 빵빵 하게 부풀렸다.
그렇게 오빠소리를 듣고 싶어?
"그게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서 그렇지, 네가 부르기 싫으면 부르지 말던가."
내기를 걸었잖아. 난 내가 한 말은 무조건 지켜. 그러니까 어떻게든 남친이 오늘안에 스테이지 5를 못 넘어가게 할거야.
"되게 치졸하네."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벌써 저녁이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가 진걸로 하자."
내가 이렇게 순순히 물러날 줄은 몰랐는지 소녀가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응? 남친이 졌다고?
"그래,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주면 되는 거지?"
어린애랑 더 싸워봤자 나만 피곤해지지.
"그럼 나는 간다. 내일 여기로 나오면 돼?"
어, 여기로 나오면 돼.
소녀가 무슨 말을 덧 붙일 세도 없이 도망갔다.
양심에 찔리면 내일 따로 말하겠지.
"기다리고 있었어?"
기다림이라기 보다는 구경이지.
하연이와 검마 모두 떠나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빨리가자. 나 배고프다."
천마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하니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겠군.
"오늘은 일이 좀 빨리 끝났나봐?"
그럴리가 있나, 저녁시간에 잠깐 시간을 내서 돌아오신 거지 밤에도 일을 하셔야 한다.
그러면 빨리 가야겠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이자 어느새 우리 방에 도착해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나!"
방으로 들어오자 마자 천마의 호통소리가 들렸다.
"수련하다가 늦었지. 네 제자보고 나 훈련시키라고 했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늦었잖아! 본좌가 아해를 보고싶어서 일부러 시간을 낸 것인데 가장 한가한 아해가 시간을 못 맞추면 어쩌자는 거야?"
"미안, 그렇게 보고 싶었으면 미리 말하지 그랬어."
"서프라이즈도 모르나? 아해가 오면 놀려주려 했단 말이다."
"그래서, 시간 얼마나 남았는데?"
"30분 후면 다시 가야 한다."
30분이라, 그렇게 널널한 시간은 아니네.
"자리에 앉아있어, 일단 네 저녁부터 해줄게."
"뭐?"
천마의 어깨를 눌러 식탁에 앉혔다.
그녀와 나 사이의 무력차이를 생각하면 꼼짝도 안해야 정상이겠지만 당황한 듯 보이면서도 즐길 건 즐기고 싶은 모양이었나 보다.
"금방 나오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았다."
저렇게 보니까 천마도 귀엽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