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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화 〉 천마신교­5 (90/265)

〈 90화 〉 천마신교­5

* * *

"흥~흐음~"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니 천마가 콧노래를 흥얼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있으니 꼭 부부라도 된 것 같군."

"부부는 뭔 부부야, 주인님 요리 만들어 주는 하인이지."

"그것도 좋군."

낯 선 재료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익숙한 재료들도 있었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아해의 동생들한텐 조금 미안하군, 나만 이런 시간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야."

"너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하연이랑 연하도 네가 있을 때 만큼은 나랑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겠데."

"사려 깊은 동생들을 뒀군."

만들어진 음식을 식탁 앞에 내려놨다.

그렇게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한끼식사의 반찬으로는 충분한 음식이었다.

"역시 아해다. 아주 뛰어나군."

그렇게 맛있는 음식도 아닌데 과한 칭찬이네.

"아해도 앉아서 먹거라. 혼자만 먹으니 심심하군."

"심심하긴 뭐가 심심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밥 한 공기 퍼서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행복하군."

그녀의 얼굴만 봐도, 지금 그녀가 얼마나 큰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눈매는 부드럽게 풀려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고 입꼬리가 올라가다 못해 보조개가 살짝 보일 정도로 웃고 있었다.

"그래, 이런 걸 바래왔다."

"그렇게 원했으면 진작 찾아오지 그랬어."

"그럴 수는 없었다. 아해는 79호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아해가 스스로 79호한테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내 도움으로 79호의 손에 벗어나 봤자. 아해는 의존하는 대상을 나로 바꿀 뿐 더 나아지지 않을 테니."

천마의 눈은 매우 진지했다.

반론 따위는 받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너한테 의존하는 게 싫었어?"

"나에게 의존하는 아해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만 그 의존이 79호의 능력에서 기반한 거라는 생각이 들면 굉장히 불쾌해 지지."

천마가 내 볼에 손을 올렸다.

"아해가 나에게 가지는 감정은 오롯이 나로 인해 정해져야 한다. 다른 이의 개입으로 아해와 나의 관계가 변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끝까지 이수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면 어떡할려고 했어?"

"글쎄, 일단 내 제자들이 굉장히 힘들어지겠지, 최근에도 아해를 만나고 싶어서 제자들에게 자주 예민한 모습을 보였는데 딱 1년만 지났어도 히스테릭 덩어리가 됐을 거다."

"20년을 참았는데 1년을 더 못 참아?"

천마가 나는 뭘 모른 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난 20년간 내가 아해를 만나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있었던건 중원내에서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커다랗게 형성된 마목들의 숲도 제거해야 했고, 각 성들의 지배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지. 일에 억지로 집중해서 아해를 만나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잊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

"요즘엔 일이 많이 없었나봐?"

"중원은 거의 점령했으니 말이다. 딱 한 달만 더 있었으면 모든 지역을 안정화 시킬 수 있었겠지. 그 뒤로는 계속 아해를 추억하며 살았을 테고, 어쩌면 아해를 찾아 아해가 사는 성으로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본좌는 지금의 모습보다 수배는 더 사나운 상태가 되어있겠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밥을 전부 먹었다.

"지금당장 설거지를 해야하는 건 아니지?"

"너 가면 애들 밥 챙겨줘야해. 한 번에 몰아서 하면 되지 굳이 지금할 필요가 어딨어? 그리고 너도 겨우 시간 낸 건데 너를 두고 설거지나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다행이군.

천마가 슬 웃으면서 소파에 앉았다.

"뭐하나? 옆에 앉지 않고."

앉지 않으면 큰일 날 분위기로 나를 바라봤기에 자연스럽게 천마의 옆에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천마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는데, 천마 또한 작은키는 아니라서 그리 자연스러운 자세는 아니었다.

"지금 하던일만 마무리 지으면 이게 일상이 된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

"글쎄? 네가 하던일이 마무리 되면 이젠 경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별 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야."

그래봤자 3명 남짓이지만.

"아해는 내가 경쟁에서 밀릴 거라고 생각하는가?"

천마가 붉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아."

"그럼 된 것이지 무얼 걱정하나."

천마가 온몸을 나에게 기대왔다.

따뜻한 체온이 나에게 전해지자 마음속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슬슬 가봐야겠군,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도 돼."

"본좌는 천마다. 고작 이 정도의 일로 힘들 순 없다. 그리고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아해가 월래 살던 도시로 돌아갈 수 있지 않는가."

"나 때문에 무리 하는 거야?"

"무리 하기는, 본좌의 인생에서 무리라는 건 아해의 귀여움을 보고 심장이 아픈 것 밖에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천마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간다고 하면서도 나에게 몸을 기대고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 가기 싫은 모양이다.

"이제 진짜 시간이 됐군."

결국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난 건, 처음 가겠다고 말한 뒤 5분은 지난 시점이었다.

"내일 보도록 하지."

"그래 잘가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마가 사라졌다.

'이제 애들 밥 준비해야지.'

뭔가 굉장히 바쁜 하루였다.

***

어제 훈련을 진행했던 곳으로 나오자 소녀가 바로 나에게 달라붙었다.

­큼큼, 어제는 잘 잤어?

"그래, 잘 잤다. 너는?"

­나는 항상 잘 자지. 그리고 밤새 생각해 본 건데,

밤새 생각하다니, 바로 전엔 잘잤다면서?

도대체 어느장단에 맞춰서 생각해야 하는 걸까?

­자기보다 어린 여자애한테 누나라고 부르는 건 아무리 벌칙이어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더라고! 그러니까 앞으로는 사저라고 불러!

"스승이 아니라?"

­사제 주변에 스승님이 있는데 어떻게 나보고 스승이라고 부르라고 하겠어.

"그래, 알았어 사저."

­좋아! 그러면 바로 스테이지 6을 진행해보자.

소녀가 장난스러운 기운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웃었다.

­스테이지 6은 지금까지와 비슷하면서도 달라. 이제는 내가 전조를 일부로 보여주지 않을거야. 대신 몸을 조금 느리게 움직일 건데 내 움직임을 간파하고 막아야 할 부분을 막으면 돼.

소녀의 장난기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참고로 위력은 어제 사제의 명치에 박았던 발차기랑 거의 비슷하게 공격할 거니까. 맞기 싫으면 잘 파악해서 막는 게 좋겠지?

"뭐?"

어제랑 비슷하게 때린다고? 어제 그렇게 세게 때린건 그냥 내가 공포를 이겨내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런거 아니었어?

­절대로 죽지 않게 조심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죽지만 않으면 오케이야? 너무 가혹한데.

­그러면 자세 잡아.

일단 단검을 들고 소녀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슉

­쾅!!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벽에 박혀 있었다.

정말 다행인 건 단검으로 소녀의 발을 막아냈다는 것이다.

'이게 막아지네!'

정말 흐릿하게 소녀의 동선이 보였다.

그 동선을 파악하고 분석하기도 전에 몸이 움직였고 무사히 소녀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 막았어?

당황한 티가 역력히 들어나는 목소리였다.

막은 당사자인 나도 어이가 없는데 직접 공격한 소녀는 나보다 더 어이가 없겠지

­사제, 꼼수 쓴 거 아니지?

"꼼수는 무슨 꼼수야! 나는 정당하게 몸을 움직여서 공격을 막은 것 뿐이거든?"

­사제 수준에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 아닌데...

막을 수 없는 수준의 공격이면 왜 수련을 하는데? 어차피 못 막을 텐데.

"어차피 못 막는 거면 수련의 의미가 없는 거 아니야?"

­사제가 어느 정도 고통에 익숙해 진 다음에 속도를 줄이려고 했지. 설마 한 번에 막을 줄은 상상도 못했단 말이야.

"그러면 스테이지 6은 바로 클리어 한거야?"

소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돌렸다.

­이 공격을 열 번 연속으로 막아야 클리어로 인정해 줄거야. 한 두번 막는 건 운이 개입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비 정확하니까.

"... 속도 줄여서 덤벼줄래?"

­싫어! 이 훈련은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 또한 과정이란 말이야.

고통은 이미 익숙한데...

­다시 자세 잡아.

"알았어."

무얼 설명할까. 그냥 엄청나게 쳐 맞았다.

내가 소녀의 공격을 막는 비중은 열 변에 한 번도 채 되지 않았고 그 위의 모든 공격은 내 몸에 직격했다.

많이 맞아본 부위는 조금 견딜만 했는데 한 번도 안 맞아 본 곳이나 얼굴 같은 대를 맞으니까 정신이 혼미해지더라.

­푸하하하! 사제 약해! 겁나 약해!

"시끄러."

나도 너희 처럼 어릴 때 부터 훈련 받아왔으면, 너만큼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치졸한 변명인 것 같아서 지금까지는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 놨었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유린당하다 보니 점점 억울함이 쌓여갔다.

'나는 왜 약하지?'

사실 나는 약하지 않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너무 강해서 그렇지 나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다.

'그래도 더 강해지고 싶어.'

예전처럼 강렬하게 강함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조금 정도는 더 강해지고싶었다.

'야, 본체, 나 좋은 생각 났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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