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천마신교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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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을 움직이는 건 영 어색하단 말이지.'
늘 이수현 뒤에 숨어서 보조만 해왔는데 오랜만에 내가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어색하기 이를 데없었다.
'이중인격이라는 걸 말하고 다니는 게 좋으려나.'
이수현이랑 내 성격차이가 작으면 몰라도 나름 특징적인 차이가 있으니까. 괜히 이중인격인 걸 밝히지 않고 얘기를 하면 내가 이수현을 연기하거나 상대로 하여금 엄청난 당황을 뽑아 낼 수 있으니 앤간하면 내가 이수현의 다른 인격이라는 것을 밝히는 방향으로 가자.
'그래도 처음 딱 한 번 정도는 속이고 들어가도 되잖아.'
한 번 밖에 없는 기회니까 시원하게 놀려먹어야지.
"검마 어딨냐."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도 아침 수련을 위해 스스로 나타날 태지만 기다림을 참을 수 없었다.
평소에 수련하는 곳에 먼저 이동해 있으면 검마가 내가 이동한 걸 알아차리고 금방 오겠지.
왠 일로 이렇게 일찍 왔나? 그렇게 수련이 하고 싶었나?
"어, 오늘 따라 수련이 하고 싶어서 말이야."
마침 잘 됐군. 나도 그대와 같이 수련을 하고 싶었다.
검마가 몸을 뚜둑 거리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어? 분위기가 이상한데?'
검마가 이수현이랑 훈련할 때도 이런 분위기였나?
부드럽게 바라보면서 먼저 덤벼오라고 했던 게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그대의 몸에 두 가지 인격이 들어있다는 건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저번에 나를 사대로 두개의 인격을 적극 이용한 걸 보면 두 인격 사이의 관계도 그렇게 나쁘진 않겠지.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멋대로 수현의 몸을 뺏은 건 용서 할 수 없다.
아니 스승도 그렇고 제자도 그렇고 왜 이수현이 나를 강제로 밖으로 빼냈다는 생각은 안하고 내가 이수현의 몸을 뺏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도 편안한 정신 공간에서 귤이나 까먹으면서 구경하고 싶다고!!
"저기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 일단 주먹과 몸의 대화를 진행 한 다음에 풀어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만?
"내가 이수현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수현이 멋대로 나보고 몸을 조종하라고 시킨 거거든?"
변명도 잘 못하는 군, 수현이 그럴이유가 어딨는가, 설마 요즘에 힘들어서 휴식이라도 취하고 싶다 했는가?
나는 천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했다.
쥐꼬리 만한 마력이라도 키우려면 이수현 보다는 내가 몸을 지배한 상태에서 마나를 다루는 게 좋다는 점, 그 때문에 내가 당분간 이수현의 몸을 차지했다는 내용까지 아주 세세하게 말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튀어나와서 마나를 전부 소진할 때까지 다루면 되지 왜 항상 나와있는가?
내가 그렇게 싫나?
"한번에 많은 마나를 쓰는 것 보다는 마나 회복량에 맞춰서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 게 더 효과가 좋다고 해서 이러고 있지. 그리고 이수현이 이 참에 나도 현실에서 많이 움직여 보라고 하기도했고."
아무튼 나는 마음에 안 든다. 수현에게 다시 말해서 되도록이면 수현이 몸을 지배하고 있는 시간을 늘리도록 해라.
네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쩔 건데?
괜히 이수현에 대한 반발 심리가 생겨서 사납게 검마를 노려봤다.
확실히 수현과는 전혀 다른 존재군, 수현은 그런 눈빛을 하지 않는데.
그럴리가 있냐. 네가 이수현한테 호의를 보여줬으니까 늘 친절한 거지. 걔도 누군가가 자기에게 이유 없는 악의를 보내면 나랑 똑같이 반응할걸?
"마음에 안 들면 꺼지든가. 나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랑 더 얘기 하고 싶은 마음 없거든?"
그래,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수현이 다시 몸을 차지하면 그 때 다시 오도록.
검마가 뒤도 안보고 쌩하고 사라졌다.
'쯧, 어차피 몸을 양보할 거면 아예 관계가 없는 곳이었으면 좋으렸만.'
지금 꼴로는 어디를 가든 이수현의 그림자 때문에 방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수현이 모르는 사람이랑 전혀 새로운 인연을 쌓자니 이곳은 중국이어서 말이 통하는 사람 조차 없었다.
'천마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어. 걔는 이수현을 너무 좋아하니까. 내가 몸을 지배하면서 생기는 이수현 손실을 참을 수가 없겠지. 그런데 검마는 나를 왜 싫어 하는거야?'
이수현의 다른 인격이라는 사실 만으로 내가 혐오를 당해야 하나?
네거티브한 감정이 내 몸을 지배했다.
'그래, 나 따위는 굴러들어온 돌이라는 거지. 어디를 가든 환영도 못 받는 신세잖아? 그냥 구석에 처박혀 있을게.'
'그런거 아니...'
'닥쳐!'
이수현 말을 억지로 끊었다.
꼬우면 다시 몸을 지배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너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아서 모르나 본데, 나는 밖으로 나올 때 마다 혐오어린 시선을 받아왔거든? 뭣도 모르는 놈이 참견하려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꼬우면 그냥 다시 몸을 되찾아가. 그게 나도 편하니까.'
한참을 기다려도 몸의 주도권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도 가만히 안 있는다.
도시 안에서 깽판을 치고 다녀도 네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지 보자.
최대한 깽판을 쳐서 이수현의 정신안에 영원히 봉인당하자.
어차피 나는 딱 역할이잖아? 이수현의 전투를 보조하고 마나를 사용하는 도구, 그 정도면 됐지 괜히 밖으로 나와서 상처 입을 필요가 하나도 없지.
무작정 걸어갔다.
출구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지구 한바퀴를 똥그랗게 감아 놓은 경우가 아니라면 한쪽으로 계속 걸어가다보면 출구든 벽이든 뭐든 나오겠지.
한참을 걸어가자 산길이 나타났다.
사실 산길이라기 보다는 야생산 그 자체였지만 천마산은 넓으니까 산을 넘어가도 도시가 보이겠지?
괜히 넘어가다가 다칠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크게 다쳐도 천마가 살려줄 텐데 뭘 걱정해? 오히려 크게 다치면 내 위험성을 알아차린 천마가 나를 영원히 다시 꺼내지 말라 할지도 모르니 오히려 이득이었다.
그렇게 산을 타고 올라가길 5걸음, 갑자기 누군가가 내 등을 잡고 당겨서 무력하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누구야!"
짜증을 가득 담아 위를 올려다 보자 이수현이 사저라고 부르는 소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사제 뭐하는 거야! 여긴 방어진 있는 곳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갔다간 크게 다치는 수가 있어.
"내가 크게 다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어차피 다쳐봤자 천마가 고쳐줄텐데 뭐가 문제야?"
평소와 다른 반항심 가득한 말투에 놀랐던 걸까? 소녀의 눈이 크게 띄었다.
사제, 혹시 요즘 인생 살기 힘들어? 스승님이 너를 괴롭히기라도 해? 아닌데? 우리 스승님은 좋아하는 남자를 괴롭힐 만한 분은 아니신데.
검마와 천마와는 다르게 소녀는 나를 본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지금 이 몸에 수현 대신에 다른 인격이 들어온 것 조차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같이 지낸 사이가 짧다 보니, 오늘은 얘가 예민해서 폭발해 버렸구나 정도로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
"난 이수현이 아니야."
응? 사제 맞는데?
"생긴거야 당연히 똑같겠지 나는 이수현의 다른 인격이니까."
소녀가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확실히 사제랑은 조금 다르긴 하네. 아직 어린 티도 많이 나고 세상에 불만도 많아 보여.
"그럼 불만이 많지 안 많겠냐? 검마랑 천마는 나를 보자마자 주먹부터 휘두르려 하고, 나는 그냥 꺼져 버리라는 듯 노려 보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소녀가 동정이 가득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다른 사람한테 호의를 받은 기억은 없어?
"없어. 지금까지 내가 몸을 장악했던게 3번 정도 밖에 안 됐는데 조금 예외적이었던 첫 번째를 포함해도 남들이 나를 좋게 봐준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어. 저번에 나왔을 땐 천마한테 처맞았고 방금전엔 검마한테 한소리 들었지."
삐뚫어질만 했네.
소녀가 까치발을 들고 내 머리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래서 여기를 나가려고 했던거야? 검마랑 스승님이 보기 싫어서?
"도시에서 깽판 좀 치고 있다보면 알아서 제압당하고 앞으로는 다시 나를 꺼내지 말라는 판단을 내리겠지. 나는 그냥 이수현의 보조로 정신 세계 한켠에 박혀 있는게 맞아. 괜히 밖으로 나서봤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의미도 없다고."
소녀의 시선에 더욱더 짙은 동정이 담겼다.
'내가 그렇게 불쌍한가?'
그래, 착한 년 눈에는 불쌍해 보일 수도 있겠지.
검마가 너한테 뭐라고 얘기했는데?
"그걸 내가 왜 너한테 알려줘야 하지? 정 궁금하면 검마한테 직접 물어보던가."
그래, 검마한테 물어볼게.
소녀가 내 손을 잡아챘다.
피할 세도 없이 빠르게 움직인 손길에 나는 꼼짝도 못하고 잡혀 버렸다.
대신 너도 같이 가야 해. 누나가 검마랑 동생을 화해 시켜 줄테니까. 맡겨둬.
"뭐? 누나? 왜 네가 누나야?"
너 태어난지 얼마나 됐는데?
3개월이 안됐지 아마?
"1년 안됐어."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1년 안 됐으니까.
내가 한참 누나네. 맞지?
소녀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근복적인 무력에서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손길을 따라 걷는 수 밖에 없었다.
누나가 화해 시켜 줄테니까 안심하고 있어!
화해는 무슨 그냥 싸움이나 붙여 줬으면 좋겠다. 대판싸우고 봉인당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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