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 천마신교­10 (95/265)

〈 95화 〉 천마신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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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몸을 조종하고 있으면 영원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거란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자기 입으로 내가 정신에 박혀 싶고 있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말해 놓고 나중에 가서 말을 바꾸진 않겠지.

­좋아좋아. 이제부터 사제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재밌는 건지 알려주겠어!

­그런데 우리는 얘를 뭐라고 부르면 되지? 언제까지고 너나 얘 같은 대명사로 부를 순 없을 터인데.

­사제! 따로 이름 없어?

이름이라, 이수현이 나보고 알아서 지으라고 떠넘겼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름이 없었다.

"아직은 없는데?"

­그래? 그러면 고양이 처럼 생겼으니까. 고 영희로 하는 건 어때?

"영희는 일반적으로 여자 이름 아니야? 그리고 일단은 이수현이랑 같은 몸을 쓰니까 성 정도는 같이 쓰고 싶은데?"

­그러면 이 고양 어때? 부를 때는 고양이가 되는거지.

아니 왜 자꾸 고양이가 붙는 건데? 내가 그렇게 고양이 처럼 생겼나?

'월하도 이수현보고 고양이 닮았다고 그러던데.'

"내가 고양이를 닮았다는 이유로 이고양 같은 이름을 가질 거면 이수현도 고양이를 닮았으니까 똑같은 이름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

­수현 보다 사제가 더 고양이 같아. 생긴 것 똑같지만 틱틱대는 모습이나 표정이 진짜로 고양이를 연상케 하거든.

"아무튼 고양이랑 엮는 건 금지야. 나는 사람이라고."

­좋아! 그러면 나비랑 엮어서 나비라고 하자.

틀렸어. 얘한테 맡기느니 내가 짓는 게 차라리 낫겠다.

"그냥 깔끔하게 뒤집어서 현수로 할까?"

­너무 평범한 이름 아냐? 사제의 이미지랑은 어울리지 않아!

"내가 도대체 무슨 이미지길래 그래?"

­세상에 불만이 많고, 늘 틱틱 거리고 불쌍하고 귀여운 이미지지!

저기여. 저랑 님이 만난지 30분도 안 됐거든요?

지금 님이 보고 계신이미지를 첫인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누가 첫인상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냐고.

"네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랑 맡는 이름이 뭔데?"

­이고양이라니까? 그냥 고양이 그 자체잖아! 틱틱 거리고, 불쌍하고 귀엽고! 아주 고양이랑 판박이네.

"몰라, 앞으로는 그냥 현수라고 불러."

­힝, 너무 밋밋한데.

힝은 뭔놈의 힝이야. 네가 말이야?

­현수가 그리 하고 싶다는 데 우리가 간섭할 권리는 없지.

­누가 간섭한데? 나는 그냥 어올리지 않다는 거지! 현수같은 평범한 이름보단 좀 더 멋지고 특이한 이름 더 어울려.

"안돼 협상 안해 줘. 나는 그냥 현수로 살 거야."

그렇게 축 처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어도 안 바꿔줘.

­그래... 현수야... 스스로 원한거니까. 나도 그렇게 불러줘야 겠지.

­너무 신경쓰지 마라. 리우잉은 원래 감정이 꽤 오락가락 하는 아이라서 지금은 이렇게 축 쳐져 있어도 금방 다시 기운을 차릴 거다.

­맞아! 해야 할 것도 있으니까 금방 정신을 차릴거야.

어질어질 하네.

­사제한테 소개 시켜 줄 사람 없나?

­현수에게 사람간의 인연을 알려주려 하는 거라면 우리 같은 통역이 없는 것이 더 편할 텐데,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일단 권마한테 찾아가 볼까?

천마 제자들은 한국어를 기본 베이스로 알아들을 수 있는 거야?

하긴 얘들 나이대를 보면 어릴 때 부터 천마랑 함께 해온 것 같은데 천마가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애들을 가르쳤으면 듣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지.

­걔도 요즘에 자존감 잃고 축 쳐져 있잖아. 현수가 권마를 어느 정도 자극 하는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좋아! 바로 이동하자!

리우잉이 다시 내 손을 잡아왔다.

"안잡아도 따라갈 수 있거든? 놔라."

­부끄러워서 그래? 누나는 괜찮으니까 맘 편하게 따라와.

"누가 부끄럽데?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데 네가 괜히 나를 제어하는 것 같아서 그런거지."

­누나한테 몸을 맡기고 편히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리우잉이 그대로 나를 끌고 움직였다.

솔직히 기분이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꼬마가 애교부리는 거라고 생각하니 심정이 심하게 상하진 않았다.

­나는 네 적이 아니야. 너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남에게 남을 맡겨도 괜찮아.

"일단 지금은 아닌것 같은데."

­거참 쪼잔하네!

리우잉이 나를 끌고 계속 움직였다.

"권마가 어디있는지는 알고 움직이는 거야?"

­어, 걔는 늘 같은 곳에서 수련을 하니까.

검마도 조용히 우리를 따라왔다.

'권마라...'

그와 이수현은 접점이 아예 없다.

권마에게 이수현은 자기 스승님의 남친으로서 스승님의 히스테릭을 잠재운 고마운 남성일 뿐이고 이수현에게 권마는 하연이와 대련을 한 적이 있는 사람에 불과했다.

"인연을 쌓는 즐거움을 알려준다고 했지?"

­응! 다양한 사람들이랑 이야기 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그러면 권마라는 사람한테 내가 이수현의 다른 인격이라고는 말하지 마."

­좋아!

리우잉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었다.

­사제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해 준다니, 누나는 기뻐요.

"아까부터 누나, 누나 거리는 데, 신체 나이는 내가 더 많거든? 그리고 기억도 내가 더 많고."

­뭐래, 아직 한 살도 못먹은 아가가, 우쭈쭈, 우리 아가는 누나라고 부르는 게 그렇게 부끄러웠어요?

리우잉 이여자는 사람 약올리는 데에는 도가 튼 인간이다.

이수현의 정신 속에 있을 때도 이수현의 분노를 통해 대충 느낄 수 있었는데 직접 대화해 보니까 짜증의 수준이 차원이 다르다.

"... 네가 올해 몇 살이라고 했지?"

­21살! 사제보다 아득히 누나지!

"20살 차이면 아줌마지 어떻게 누나야. 이 아줌마야."

리우잉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아줌마라니! 한참 나이 처녀한테 무슨 망발이야!

"20살차이면 아줌마지. 아니면 이모라고 불러줄까?"

나이 가지고 장난치는 건 유치해서 안 할려고 했는데 상대쪽이 먼저 승부를 걸어왔는데 뺄 수는 없잖아?

"죄송합니다. 1살밖에 안 된 꼬맹이가 야야, 거리셔서 참 심기가 상하셨겠어요. 앞으로는 꼬박꼬박 존대하겠습니다. 이모님."

­거짓말 마! 죄송한 게 아니라 그냥 놀리려고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누가 먼저 시비 걸래?"

­내가 언제 시비 걸었어? 나는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었을 뿐이야.

우리가 싸우고 있자 검마가 자신의 미간을 부여잡았다.

­둘 다 아직 어린애군.

­누가 어린애야!

"누가 어린애야!"

­이미 둘이 충분히 친한 것 같은데 굳이 권마를 찾아가야 하냐는 의문 조차 드는 군, 그냥 둘이서 친구 먹고 둘이서 놀다가 심심해지면 그 때 권마를 찾아가는 게 어떻겠나?

"저는 한 살 짜리 어린애라서 20살이나 많은 아줌마랑은 못 친 해지겠는데요?"

온 몸의 띠꺼움을 전부 끌어올려서 말했다.

­누구는 너랑 친해지고 싶은 줄 알아? 불쌍해서 도와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네.

"누가 도와달랬어? 지 멋대로 참견해 놓고 왜 나한테 그래."

­어린이를 보호하는 건 어른의 의무라서 그랬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분명 잘 못된 길로 빠질 걸 아는데 그걸 어떻게 내버려둬.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내가 걸어봤던 길이라서 알지!

리우잉이 악에 바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얘도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이구만.'

자기도 세상에 불만이 가득했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나보지?

그렇게 생각하니 리우잉이 나에게 참견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는 됐다.

'그렇다고 네가 하는 짓이 좋다는 건 아니야.'

시간이 지나서 리우잉이 나에게 행했던 선의에 대해 감사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리우잉 덕분에 내 미래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때는 그 때가서 감사하면 되고 지금은 화 낼거다.

리우잉이 말했든 나는 어린애니까. 맘대로 행동해도 되잖아? 어차피 이수현 정신 속에 영원이 봉인 되는 것이 목표기도하고.

"그...으읍!"

­으읍!!

­둘 다 조용히 좀 해봐라. 너희들 싸우는 소리를 계속 들으려니까 골이 다 아프다.

입이 딱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입이 아니라 의지로 말을 거는 리우잉의 소리조차 끊긴 걸 보면 입에만 조치를 행한 건 아닌 듯 보였다.

­도대체 왜 싸우는 거야? 이렇게까지 싸울 만큼 심각한 사안이었어?

­읍읍.

리우잉이 자기 입을 톡톡 두드렸다.

­또 싸우면 바로 다시 입을 막아 버릴거야.

­푸하, 나는 사제를 위해서 너랑 화해도 시켜주고! 도움도 주려고 했는데 쟤가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잖아! 이제 21살 먹은 처녀한테!

"누가 도와달랬어? 멋대로 도와줘 놓고 왜 보상심리를 갖는데?"

­누가 보상을 달랬어? 정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 뿐이지.

"누나라고 부르는게 어떻게 정당한 대우..읍!"

­내가 보기에 이 상황은 상당히 답이 없다.

검마가 나와 리우잉의 입을 틀어막고는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앞으로 발언은 서로 한 마디씩만 허용한다. 서로 존대하고 상대에게 시비를 거는 낌새가 느껴지는 순간 다시 입을 막겠다.

검마의 서슬 어린 눈빛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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