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이현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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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마의 차가운 시선앞에서 리우잉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상처를 받았어.
검마의 눈치를 보면서 말을 하다 보니 말이 굉장히 어색했다.
'존댓말은 안해도 되는 건가?'
"네 마음은 나도 알아. 네가 보기에 내가 불안정 해 보이고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았으니까 네 나름대로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거겠지. 너 덕분에 검마랑 화해하게 된건 고맙게 생각해."
그런데 왜 나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는 건데?
"나는 조용히 있고 싶으니까, 되도록이면 그냥 조용히 있다가 영원히 이수현의 정신에 박혀 있고 싶어."
나는 네가 그런 인생을 살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아. 이미 태어난 자아인데다가 너를 막는 게 아무것도 없잫아. 네가 세상을 즐겼으면 좋겠어.
서로 말 안 통하는 건 여전하네.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알아, 서로 가치관이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다른 것 뿐이니까."
리우잉을 지긋이 바라봤다.
"내가 다시 이수현의 정신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시간을 줄게. 그 시간 동안엔 네가 말하는 모든 걸 따르겠어. 그 시간 동안 내가 더 살고 싶다. 라는 마음을 가지게 하면 네 승리고 그렇지 못하면 그대로 끝이야. 내 자신을 너에게 맡겨도 네가 나를 갱생시킬 수 없다면, 나는 아예 갱생될 수 없다는 뜻 아니겠어?"
좋아. 대신 내가 너에게 뭘 요구하든, 전부다 들어줘야해.
무난한게 끝나가는 설전에 검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포착됐다.
일단 나를 누나라고 불러.
"그건 네 사심이잖아!"
뭐가 사심이야? 나는 너한테 누나가 생긴 기분을 알려주려... 읍!
사상이 문제가 아니었군, 너희는 애초에 호칭 때문에 싸우게 된거 였어.
그랬었나?
기억을 곰곰히 읇어보니 서로 목소리가 높아져 갔던 근본적인 이유가 '누나'라는 단어 하나에서 시작된 것임을 기억해 냈다.
양보하고 싶은 자는 없는가?
나와 리우잉 모두 맹렬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보면 쓸대 없이 고집을 부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건 고집이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생긴것도 꼬마 같은 놈에게 누나라고 부르라니. 이건 정신 고문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현수가 양보하는 것으로 하지.
"아니, 왜 내가 양보해야해?"
리우잉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따르겠따고 한건 그대 아니였나? 설마 한입을 가지고 두말을 할 작정인가? 고작 사람 하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 가지고 그렇게 거부한다면 리우잉의 말을 전부 듣는다던 너의 발언을 도대체 어떻게 믿어야 하지?
리우잉이 의기 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반론을 할 수 있다면 해보도록,
"... 알았어, 부르면 될거 아니야!"
괜히 리우잉의 말을 다 따르겠다는 말을 해 가지고...
지금 바로 누나라고 불러봐!
"누나."
몸에 힘을 쭉 빼고 뇌를 비운 뒤 무지성으로 입을 여니 막 힘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몰려오는 수치심에 얼굴을 식힐 때 리우잉이 화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감정이 하나도 안 담겨 있잖아. 다시!
"아니, 한 번 했으면 됐지 왜 또 시키는데?"
어허,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누나 말에 말대답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차라리 때려라! 그게 더 편하겠다.
"... 누나..."
뭐라고 안 들리는데?
"누나! 됐지?"
좋아좋아, 비록 분노긴 하지만 아주 감정에 가득 찬 목소리였어.
리우잉이 기특하다는 듯 미소지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 하는거지. 지금은 분노로 시작해도, 언젠간 나를 누나라고 받아들이게 될거야.
"혹시 목표가 나를 화나게 해서 너한테 복수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게 만들고 싶은 거였어?"
누나.
리우잉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단호한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듯 굳건해 보였다.
"... 누나 목표가 나에게 누나에 대한 증오심을 이끌어 내는 거였냐고."
그럴리가, 나는 우리 현수랑 친해지고 싶은걸! 귀엽고! 재밌고! 사랑스러워!
리우잉이 나를 꼭 안아왔다.
'정신은 나지만 육체는 이수현 것인데 이렇게 안아도 되는 건가?'
혼나도 이수현이 혼나지 내가 혼나진 않을 거다.
'천마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수현의 하렘에 리우잉이 끼어든다고 해서 그렇게 화를 낼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그렇게 친해지고 싶으면 오늘 권마한테 가는 건 취소하고 둘이서 있어 볼까?"
우리 현수, 그렇게 누나랑 붙어 있고 싶었어?
"이상한 착각하지 말아줄래? 나는 아직 누.나랑도 친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이 상태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러 간다는 것도 이상하거든."
좋아! 맘껏 친해져주지.
검마가 우리 둘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엔 이미 충분히 친한 것 같은데?
"친하다니? 도대체 누가 누구랑 친하다는 거야?"
그치? 우리 둘 친하지? 사이좋지?
사이가 좋다기 보다는 악우에 가까운 느낌이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근해 보이는 군.
검마 저사람, 그렇게 안 봤는 데 참 보는 눈 없네.
아무튼 둘이 친해질 예정이라면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아무래도 현수는 나를 불편해 할 터이고, 둘이서 친해지는 데 나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터이니.
딴지 거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어야 재밌는데.
나도 내 나름대로 수련이 필요해서 말이다. 이만 가보겠다.
검마가 손을 흘들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시간의 고요가 우리 사이를 감돌았다..
이제 우리 둘만 남았네.
뭐지? 저 음산한 대사는? 이제 둘 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젠 가식 따윈 집어던지고 본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미인가?
구경하고 싶은 곳 있어? 말만 해주면 어디든 데려가 줄게.
아, 내 착각이었군.
"구경하고 싶은 것 보다는 궁금한 게 조금 있어.
크으 사제가 뭘 좀 아네, 처음 보는 사람이랑 친해지려면 상대에 대해서 알아가는 게 중요하지! 물론 직접적으로 물어 보는 경우는 잘 없지만 말이야.
"누나는 어떻게 한국어를 알아듣는거야? 천마한테 배웠어?"
어허! 천마님이라고 해야지!
"아무튼, 따로 배운 적이 있냐고."
리우잉이 나를 정말 멍청한 사람 쳐다보듯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당연히 배웠으니까 알아듣지 안 배웠는데 알아듣겠니? 동생 너 바보야?
"무공으로 어떻게 커버가 되는 영역일 수도 있잖아."
의지를 쏘아 보내는 건 되도 상대의 말을 듣고 의지를 읽어낼 순 없단다 동생아, 무공에 대해서 너무 큰 환상을 가지지는 마.
그렇게 큰 환상이었나? 일반적으로 송신이 되면 수신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닌가?
"듣는 것만 가능하고 말하는 건 안돼?"
듣는 것 만큼 빠르게는 못하지. 네 말을 듣고 해석하는 건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면 버벅 거린다고나 할까? 제대로 말도 안되고 발음도 엄청 이상할 거야.
"한 번 해봐."
리우잉이 볼을 크게 부풀렸다.
내가 왜 해야 하는데?
"나도 누나라고 부르잖아. 고작 이정도도 못해주면서 나랑 친해지고 싶다는 거야?"
"... 안녕하세요."
육성으로 들은 리우잉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목소리와는 차이가 있었다.
기존에 들어왔던 음성 보다 귀여운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발음도 어색하고 소심한 기색이 많이 보여서 은근히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무공으로 말해라 그게 더 편하겠다."
자기가 시켜놓고는!
리우잉이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내 어깨를 쳤다.
문제는 리우잉은 무공을 배운 강자고 나는 한낯 민간인에 불과했다는 것일까?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위력에 어깨를 부여잡고 땅을 뒹굴었다.
"끄아악! 아프잖아!"
당연히 아프라고 때린거지! 아프게 할 게 아니었으면 왜 때려?
"누나랑 나랑 힘 차이가 얼만데..."
엄살 부리지마! 별로 세게 때린 것도 아니거든? 자꾸 반항하면 한 대 더 때린다?
리우잉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폭력 멈춰!"
뭐래.
그렇게 같은 부분을 몇 대 더 맞고서야 폭력이 멈춰졌다.
"아흑... 개 아프네."
동생은 누나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누나말에 거부해 봤자 남는거 하나도 없어요.
역시 누나는 있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어... 여동생이 최고야.
당장 하연이랑 연하가 이수현한테 하는 행동들을 봐, 꼬박꼬박 존댓말 쓰고 오라버니라고 부르면서 예의를 갖추잖아? 가끔 횃까닥 돌아버리는 건 이수현이 관리를 못 해서 그런거고.
뭘 그렇게 봐. 또 혼나고 싶어?
역시 누나는 아니야. 난폭하잖아.
"아냐."
아, 나도 너한테 궁금한 거 있어!
리우잉이 굉장히 쾌활하고 즐거운 어투로 말했다.
"뭔데?"
너는 어떻게 탄생한거야? 네가 잘 못 태어났다고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순수하게 궁금해서, 나중에 동생 생일 축하해 주려면 그 정도는 알아둬야지.
으음, 꽤 무거운 이야기인데... 말해도 괜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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