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 이현수­4 (99/265)

〈 99화 〉 이현수­4

* * *

"으으..."

천천히 의식이 돌아왔다.

잠을 잤다가 일어난 것 과는 다른 느낌에 머리가 아찔 했다.

'이것들이 은밀한 짓이라도 하려고 나를 재워 놓은 건가?'

하연이랑 할 때도 나보고 빨리 자라고 하긴 했었지.

­일어났어?

"... 뭐야? 누나가 왜 여깄어?"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리우잉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눈빛이 굳어 있는 게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한 것 처럼 보였다.

­어디서 부터 설명해야 할까...

"잠시만,"

'야, 이수현! 자지 말고 일어나봐. 너는 무슨 일이 일어난지 알고 있을 거 아냐.'

나는 천마때문에 의식을 잃어서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이수현은 정신이 깨어있을 테니 전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 이수현?'

아무리 정신을 뒤져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보통은 작정하고 숨어봤자 조금 찾아보면 금방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는데 이번엔 아무리 힘을 써도 그의 모습을 발견해 낼 수 없었다.

"... 설명해 줄래?"

­나도 정확한 건 잘 몰라, 정신을 차려보니 처음 보는 도시에서 눈을 떴고 근처에 네가 보여서 안전한 장소로 데리고 이동했을 뿐이야.

"그게 말이 돼?"

어떤 방법을 통해서 내가 이곳에 도착했느냐를 떠나서 천마가 이수현을 지키고 있을 텐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내가 이곳에 잡혀왔다는 건 곧 이수현도 이곳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천마는 절대로 이수현의 위기에 눔감고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따질 상황은 아니야. 어찌됐건 우리는 처음 보는 환경 앞에 놓여졌고, 이곳이 우리에게 호의적인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으니까 지금은 인과관계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리를 하는 게 훨씬 나아.

위기상화이라서 그런걸까? 리우잉의 모습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활기차고 귀여운 어투는 늠름하고 귀엽게 변해 있었고 얼굴도 계속 굳힌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마님의 장난일 확률이 60퍼센트가 넘을 것 같긴 하지만 진짜로 큰일 난 걸 수도 있으니까 계속 대비를 해야지.

"어느나라 도시인지는 알 수 있어?"

­몰라. 간판들을 읽어 봤는데 처음 보는 언어였어.

"일단 중국은 아니라는 뜻이네. 다른 사람들이랑은 이야기 해봤어?"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은 없었어. 건물들도 대부분 무너져 있고 마목들도 많이 자라나 있는 걸 보니 이미 몬스터에게 무너진 도시인가봐.

그게 더 이상한데? 왜 주변 도시가 아니라 아예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로 온 거야?

생각하면 할 수록 알 수 없는 것 뿐이었다.

­제일 큰 문제는 천마님의 기가 아예 느껴지지 않는 다는 거야.

"... 그걸 느낄 수 있는 거였어?"

­일반적으로는 못 느끼는 게 맞는 데 천마님은 제자들이 자신이 어딨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신호처럼 계속 기세를 내뿜고 계시거든, 특정 주파수의 기라서 우리끼리밖에 못 느껴. 제자들 몰래 움직이실 땐 다른 곳에 있는 것 처럼 신호를 속이시기도 하는 데 아예 느껴지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천마가 없다고?"

말도 안돼.

그 괴물 같은 여자가 어떻게 사라져? 누구랑 싸워도 절대 안 질 것 같은데.

­돌아가시거나 하신건 당연히 아닐거야. 우리 스승님은 강하니까, 누구랑 싸워도 질리가 없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인간을 누가 죽이겠냐."

­천마님이 원래 살던 세계로 가신 건 아닐까?

"이수현을 두고 어디를..."

이수현도 없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확실한 건 이세계에서 천마님의 신호가 느껴지지 않는 다는 거고 우리는 처음 보는 도시에 단 둘이서 떨어졌다는 거지.

"절망적이네."

­너무 걱정하지 마 이 누나가 동생만큼은 반드시 지켜 줄테니까.

리우잉이 싱긋 하고 웃었다.

­일단 주변 수색부터 하고 올게. 권마나 검마였다면 마나 한번 쓱 돌리면 금방 주요 정보들을 다 알아냈겠지만 나는 그 정도로 마나가 넘쳐 나지 않아서 말이야 갔다 올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아니 이 인간이 미쳤나. 위험한 상황이라면서? 혼자서 나가다가 큰일나면 어쩌려고 나를 두고 가?

"같이 가. 누나 혼자 나갔다가 안 돌아오면 나 혼자 남잖아."

­하하, 그래 같이 가자 우리 현수.

리우잉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일단 사람의 기척은 안 느껴지는데 몬스터들은 꽤 많은 것 같으니까 조심히 따라와야 한다?

"알아서 잘할테니까 움직이기나 하셔."

내가 누나처럼 무공을 배우진 않았지만 일반인 중에선 나름 강한 편이라고.

리우잉을 따라 밖으로 나오자 완벽하게 무너진 도시가 보였다.

간판의 글씨를 읽어보니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어서 이곳이 어디인지는 특정 지을 수 없었다.

­몬스터 들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 한 번에 달라 붙는 게 아니라면 누나가 다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아까부터 내가 무서워 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멀쩡하거든? 그러니까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 나를 괜히 걱정 안해도 돼."

­미안, 위험한 상황인데, 너까지 잃어버리면 내가 미쳐 버릴 것 같아서 그래.

"잃어 버리다니? 나는 죽을 생각 없거든?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야."

­그 의지 좋네.

리우잉을 따라서 도시를 이동 하다 보니 작은 몬스터들이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금방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머리가 박힌 아이들인가 보네 어떤 애들은 내가 기세를 뿜건 말건 그냥 공격해 오는 애들도 있는데.

"기세를 내뿜는 것 만으로 몬스터들을 막을 수 있어?"

­동생은 F급 몬스터가 상위등급 몬스터한테 먼저 덤벼든거 본 적 있어? 하위 몬스터들은 자기가 공격당한 게 아니면 절대로 먼저 상위종을 공격하지 않아. 마나를 적당히 방출하고 다니면, 내 위치는 들킬 지언정 몬스터들이 덤벼들진 않겠지.

문제는 역시 사람인가?

아무리 망한 도시라 하더라도 소규모 무리들은 존재할 지도 모르니까.

"상위 몬스터가 너를 알아보고 덮치면 어떡해?"

­각성자면 몰라도 몬스터는 B급도 무난하게 잡을 수 있어. A급 몬스터가 있다면 도시 반대편에 있어도 내가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는데 내 기감에 잡히는 A급몬스터는 없어.

"그러면 문제는 인간 뿐이겠네?"

­그렇지. 특히 각성자 같은 경우는 조금만 싸울 줄 알아도 힘들어지니까. C급 까지는 어떻게든 처리가 되는 데 B급 이상 부터는 너를 지키면서 싸울 자신이 없다.

나를 지켜가면서 싸워? 어이가 없네.

"나도 한싸움 하거든? 싸움에 도움이 되진 못하겠지만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푸하하, 올해 들은 농담 중에서 가장 재밌는 농담이었어!

억지로 텐션을 올리려는 걸까? 리우잉이 평소의 텐션보다도 훨씬 높은 어투로 말했다.

"진짜거... 컥!"

정신을 차리니 리우잉에게 목이 잡혀있었다.

­응? 뭐라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칠 수 있다고? 난 모르겠눈데?

"잠깐.. 놔봐!"

­스스로 빠져 나갈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알아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말투 진짜 개 얄밉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사람이 빡치게 말할 수 있지?

­동생은 그냥 누나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어. 적어도 전투에 한해서는 누나가 너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말이야. 괜히 나서다가 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

리우잉이 내 목을 놔줬다.

­도시 외곽이라 그런가? 딱히 위험한 건 없는 것 같아. 몬스터들도 다들 약하고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고, 일단 먹을 걸 구한 다음에 천마산으로 돌아가기 위한 대책을 세우자.

"일단 여기, 지구 맞지?"

­모르지. 천마님이 사라지신 게 아니라 우리가 다른 세계로 온 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천마님 한 명이 사라지는 게 우리 둘이 동시에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 보다 확률이 높지 않겠어? 아마 천마산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천마산이 나올거야.

"천마가 사라진 거면 우리가 이런 이름 모를 도시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천마님이 이동하는 데 휩쓸려서 튕겨나오기라도 했나보지. 중요한 건 지금 이 일이 왜 일어났냐가 아니야.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냐가 중요한거지.

리우잉의 말이 맞긴 하다. 도시를 탈출하고 천마산 까지 가는 것도 일인데 다른 것에 집중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잠깐 방금 인기척이...

리우잉이 말을 하다가 멈췄다.

­이거 인기척이 아닌 것 같은데?

­크르르르륵!

목을 긁는 듯 한 괴성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좀비처럼 생긴 좀비가 우리를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몬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이미 다리가 박살난 좀비는 굉장히 기괴한 걸음걸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징그러웠는지 나름 비위가 강한 나 조차 헛구역질이 올라올 뻔했다.

­일단, 생포해 볼까?

"할 수 있겠어?"

­해보다가 안되면 죽이면 되지.

리우잉이 딱을 박차고 좀비에게 날아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