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이현수5
* * *
좀비를 향해 날아가는 리우잉의 모습은 정말 든든했다.
키도 작고 위엄보다는 귀여움이 넘치고 몸매도 탄탄하다기 보다는 어린애 체형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든든했다.
펑!
리우잉의 주먹에 맞은 좀비는 펑! 하고 터져버렸다.
...응?
당황한 리우잉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멀찍히 떨어져 있던 나조차 당황해서 입이 살짝 벌어졌는데 직접 주먹을 휘두른 리우잉은 더욱 당황했겠지.
뭐야...
리우잉이 주먹을 털면서 내쪽으로 다가왔다.
뭔가 이상해, 일단 절대 사람을 때리는 느낌은 아니었어. 당연히 몬스터를 때리는 느낌도 아니었고, 굳이 따지면 환ㅇ...
"일단 생긴 걸 보면 영락없이 좀비인데 고위 몬스터에 의해 감염된 인간 아닐까?"
그럴 수도있지. 선례가 없는 건 아니니까. 몬스터가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간의 사체를 자원으로 쓰는 건 정말 희소하긴 해도 가끔 일어나는 일이니까.
"좀비라... 어이가 없네."
다행히 몬스터에 의해 발생하는 좀비는 원형 몬스터의 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죽은 자만 감염시킨다.
아무리 좀비한테 물려 봤자 좀비로 변하지는 않고 단순히 아픈 정도로 끝난다.
아무리 좀비의 상태가 안 좋았다는 걸 감안해도 내 주먹 한방에 터질 정도면 이 사태의 원흉도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 것 같아. 끽해야 B급 최상위 정도? 아마 다른 몬스터로 인해 한 번 멸망한 도시를 지나가던 몬스터가 좀비화 시켜 버린 것 같아.
"그럼 위험한 거 아니야? 보통 그런 몬스터들은 좀비를 정보원으로 사용하잖아.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챘을 수도 있어."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사태의 심각성과 다르게 리우잉의 말투는 아주 경쾌했다.
좀비를 고도화된 전략으로 사용하는 몬스터가 이렇게 약하게 좀비를 감염 시켜 놨을리가 없잖아? 아마 우연히 감염이 된거거나, 그냥 다른 몬스터에게 성가신 일을 당하는 걸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감염 시킨 걸거야.
"확실한 거야?"
아마도 그렇다는 거지. 도시 중앙부에서 B+정도 되는 몬스터가 느껴지거든, 아마 내 추리가 빗나갈 확률은 거의 없을거야. 혹여나 빗나갔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안생기고.
"그러면 일단 도시 중심부로 가볼까?"
좋아, 일단 눈앞의 사건부터 처리하자고! 도시를 완전히 정리해야 식량이든 잠자리든 구하기 쉬울테니까.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애초에 식량이랑 잠자리는 굳이 몬스터를 잡지 않아도 구할 수 있잖아."
그래도 주변이 깔끔해야 좋으니까. 어차피 한 동안은 이 도시를 거점삼아 지낼 것 같은데, 일단 도시를 먼저 깨끗하게 만드는 게 내 성미에 맞아.
그래, 뭐, 리더가 그렇게 하겠다는 데 더 반대의사를 표할 필요는 없겠지.
일단 당장 먹을 것 부터 구하자. 아무리 나라도 B+급 몬스터랑 하나의 도시급 좀비를 전부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으니까. 며칠에 걸쳐서 좀비 들을 정리하고 몬스터를 잡을거야.
"근데 먹을 만한 게 있을까?"
언제 멸망한 도시인지도 알 수가 없는데 말이지...
보관기간이 긴 음식들은 아마 거의다 남아있을 거야. 몬스터로 인해 한 순간에 멸망한 도시니 만큼 누군가가 음식을 따로 챙기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정 먹을 게 없으면 저걸 먹으면 되지.
리우잉이 내 쪽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내 뒤쪽에 몬스터라도 있나보지?'
슬 움직여서 몬스터와의 동선을 바꾸려는 데 리우잉의 손가락이 내 몸을 계속 따라왔다.
"무슨의미야?"
나도 모르게 겁이라도 먹었던 걸까? 경계어린 말투가 튀어나왔다.
푸하하하!! 현수 개 귀여워! 무서웠어? 쫄았어?
눈에 미소가 가득담긴 채 크게 웃는 리우잉의 모습에 화가 치솟아서 주먹을 휘둘렀다.
엄청난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고, 어차피 맞아도 안 아플걸 아니까 하는 장난 같은 거다.
쾅!
우리 동생, 누나한테 주먹을 휘두르러면 아직 10년은 이르단다.
천마신교 출신 여자들은 남자를 매치는 데 패티쉬가 있는게 분명해, 어떻게 한명도 빠짐없이 일단 바닥에 박고 생각하는 거지?
설마 누나가 동생을 먹자고 하겠니? 정 먹을 거 없으면 몬스터라도 잡아 먹으면 되고, 그 마저도 없으면 내 살을 뜯어서 먹여줄 생각은 있는데 너를 먹을 생각은 없어.
"나도 누나를 먹을 생각은 없거든?"
어차피 몬스터 많으니까.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자.
리우잉이 눈누난나하는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걸어갔다.
매쳐지면서 등에 가해진 충격을 겨우 이겨내고 비틀 거리면서 섰다.
"으으. 아파..."
오구오구, 우리 동생 아빠쪄요? 그렇게 아파요?
진짜 저 말투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들으면 들을 수록 분노가 끌어오른다.
"됐고, 생 몬스터고기를 그냥 구워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최대한 가공식품 위주로 찾아보자."
좋아, 동생한테 위협이 될만한 몬스터도 없고, 비명 지르면 당장 도움을 주러 올 수 있으니까 둘이 찢어져서 찾아보자. 먹을 걸 못 구한다고 해도 30분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는 거야, 알았지?
"그래."
다행이 과보호 할 생각은 없나보네.
쿨하게 리우잉의 말에 대답한 후 음식이 있어보이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일단 망한지 그렇게 오래된 도시는 아닌것 같네.'
몬스터 고기가 잘 안썪는데다가 한 번 가공까지 했다고 해도 음식들의 상태가 상당히 괜찮았다.
잡다한 병균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자체 면역력으로 충분히 극복가능하다.
'먹고 탈나면 마나를 쓰는 방법도 있고.'
그렇게 음식을 챙기고 있을 때 저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리우잉의 육성이 저 멀리서 들렸다.
무슨일이지를 생각하기 전에 일단 발이 움직였다.
챙겨놓은 음식들을 모두 버리고 소리가 들린 곳으로 뛰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이 도시에서 리우잉에게 위협이 될만한 건 하나도 없으며, 혹시라도 리우잉에게 위협이 될 수있는 존재가 나타났다해도 리우잉이 비명따위는 지르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
"누나!!!"
전력으로 뛰자 비명의 근원지까지 도착하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나까지 다 끌어써서 약간의 탈진현상까지 겪고 있던 나를 반겨준 것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가득 담고 있는 리우잉이었다.
또 속았다는 느낌과 함께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분노가 나를 덮쳤다.
푸하하하 그걸 속... 동생? 잠깐만?
말도 섞지 않고 뒤돌아 나갔다.
현수야? 화났어?
이번엔 약올림 하나 없이 평범한 말투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이런상황에서 까지 나를 약올렸으면 화가 더 심해져서 고혈압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으니까.
"누나."
내가 화난 게 맞는 지 내 목소리는 정말 낮아져 있었고,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리우잉이 나보다 강자여도 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모야이었다.
어, 동생 왜?
"이건 좀 선 넘은 거 같지 않아?"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나를 놀리는 것 정도는 참아줄 수 있어. 그래, 누나가 동생 좀 놀릴 수 있는거지. 화가 나긴 하지만, 남매라고 치면 이 정도 화는 일상이잖아? 나도 누나한테 장난치고 누나도 나한테 화나면 충분히 해결되는 일이지. 그런데,"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쉬었다.
"이건 아니잖아. 내가 누나를 얼마나 걱정했는 줄알아?"
모를리가 없겠지. 그 짧은 시간에 몸안의 모든 마나를 다 쓰면서 뛰어왔는데, 아마 리우잉이 나보다 내 몸의 상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누나가 아까부터 계속 장난을 치는 건 이해하겠어. 어려운 상황이고 심각한 상황이니까 분위기 좀 풀려고 장난을 친거겠지. 그런데 이건 말도 안되잖아. 누나가 무슨 양치기 소년이야?"
누나가 진짜 미안해,
리우잉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니, 이런 반응까지는 바란 게 아닌데...'
애처로운 표정으로 무릎꿇은 리우잉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딱 한 번만 용서해 줄거야. 다시 한 번 누나의 안전 가지고 장난 치면 그때는 얄짤없어. 그날 이후로 바로 나랑 연 끊는거야."
=현수야, 연까지 끊는 건 좀...
"안 하면 되잖아? 어차피 안 하면 누나랑 나 사이의 연이 끊길리도 없는데 왜 걱정해?"
아냐, 미안해.
이제 나도 좀 진정하자.
상대의 잘못을 가지고 압박하는 것도 결코 떳떳한 행위는 아니니까.
"그래서, 왜 부른거야? 음식은 찾았어? 설마 음식도 못 찾았는데 그냥 장난 좀 쳐본다고 비명을 질러서 나를 부른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우리 동생을 위해서 누나가 맛있는 음식 찾아 놨어!
리우잉이 내민 것은 내가 찾은 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몬스터 고기 가공품이었다.
"맛있는 음식 맞아?"
어... 솔직히 맛 없긴 하지? 싸구려 움식이긴 하니까.
"아, 누나입엔 맛 없구나? 하긴, 누나는 천마님이랑 같이 다니면서 온간 산해 진미를 다 먹었을 테니까. 나는 생 몬스터 고기를 뜯어 먹으면서 지냈던 적도 있었는데 누나한테는 이런 것도 맛없는 음식에 들어가는 구나?"
리우잉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는게 불쌍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리우잉이 나를 실컷 놀려 먹었으니, 나도 좀 놀려먹어도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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