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이현수9
* * *
이수현은 참 여난이 많던 놈이다.
당장 하연과 월하, 그리고 루시아 정도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이런 기센 여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수현이 터득한 여러 방법이 있다.
최대한 피해 없이, 여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이지.
누나는 내 품에 얼굴을 박고 계속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조금 그친 것 같아서 물러나려고 하니까 오히려 나를 꽉 끌어 안았다.
어디 간다는 소리 하지 마.
"알았어. 안 할게."
한 번만 더 그딴 얘기 꺼냈다가는 사지를 뜯어버려서 아무대도 못 가게 할거야.
정말 섬뜩한 말이었지만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일단 목소리가 울음기에 가득차있어서 두려움 보다는 측은함과 동정을 먼저 불러일으켰고, 정신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말 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내 팔다리를 뜯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 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진짜로 뜯어버리려 해도 천마가 나타나서 지켜주겠지.'
이 육체는 이수현 거니까. 내 잘못으로 이수현의 신체가 날아가는 걸 두고 보고 있을 여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귀여운 협박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절대로 어디 안 간다니까? 누나는 동생 못믿어?"
... 믿어...
누나가 내 가슴팍을 팍 밀면서 떨어졌다.
"그러면, 이제 잘까?"
안아줘.
누나가 하라는데 동생으로서 반항 할 순 없겠지?
게다가 나 때문에 예민해 지기도 한 상황이니까.
누나를 꼭 안고 누웠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온기가 내 몸에 맞다았다.
"그러면 잘자고, 내일보자."
그래, 내일 봐.
자고 일어났는데 사지가 뜯겨 있거나 하진 않겠지?
***
"스승님, 계속해도 되는 거 맞습니까?"
"왜?"
스승님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설마 최종보스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지?"
당연하게도 하기 싫었지만 내가 지금 우려를 표하는 건 단순히 내가 하기 싫어서 그런것은 아니다.
"이 몰카, 원래 현수가 세계에 정을 붙이게 하고 리우잉과 친해지게 만들기 위해 진행 한 거 아닙니까?"
"일단 우리 아해가 제안할 때는 그렇게 시작했지."
"보시면 아시다시피 이미 현수는 리우잉에게 정을 붙였습니다. 아마 이 시점에서 끝낸다고 하더라도 리우잉을 만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빼달라고 수현에게 부탁하겠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반항적이고 정을 못 받은 아이라고 해도 본질적인 성격은 아해를 닮았으니까. 리우잉과 붙여두면 금방 친해질 거라 생각했어."
"그러면 지금 시점에서 몰카를 종료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천마님이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검마야.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야."
진지한 이야기를 하시려나 보네, 굳이 이렇게 나를 부르시는 걸 보면.
"설마 너는 본좌가 이현수 하나만을 위해 이 몰카를 계획했다고 생각하느냐?"
"..."
"아까 말했지 않느냐. 이현수가 가진 성격의 본질은 아해와 같으니 리우잉과 붙여두기만 해도 금방 친해질 것이라고, 굳이 몰카를 진행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리우잉 때문에 이 몰카를 기획했지."
천마님이 씨익 하고 웃으셨다.
그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같은 여자인 나조차 가슴이 철렁했다.
"폭주하는 리우잉을 보고 걱정이 드는 건 이해한다. 너희 둘은 자매 같은 아이니까. 당연히 걱정이 들겠지. 하나 뿐인 여동생이 정신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천마님은 처음 몰카를 시작하실 때부터 리우잉을 염두에 두신 걸까?
"하지만 그 시련을 이겨내야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다. 만약 지금 몰카를 종료시킨다고 해도 과연 리우잉이 괜찮아질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와 똑같겠지. 밝은 티를 내면서 검마 너와 권마를 오가면서 즐겁게 놀고자 할 거다. 다른이들에게는 다시 다가갈 생각도 못하고 말이지."
천마님이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는 리우잉이 이번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할 거라 믿는다.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먼저 다가갈 수 있던 이현수와 좋은 관계를 이루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진전 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현수는 아해의 어린 모습이니까. 이현수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 알고 계셨으면, 지금까지는 왜 리우잉을 내버려 두셨던 겁니까?"
천마님이 모르실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웃고 있는 리우잉의 뒷면에 어두운 모습이 존재하고 늘 행복한 것 같은 모습엔 사실 불안함이 가득 깔려 있다는 사실을 천마님은 알고계실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리우잉에게 도움을 주시지 않은 이유는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 내버려 두었느냐라... 건드릴 수가 없었다."
천마님이 쓸쓸하게 말했다.
"중원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있더구나. 나는 리우잉의 부모와 같은 존재다."
리우잉의 부모시기만 말까. 나와 권마또한 사실상 천마님을 부모님 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를 줍고 키우신 건 천마님이셨으니까.
"때로는 부모의 입장으로서는, 가족의 입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존재한다. 특히 나같이 사춘기의 리우잉에게 관심도 가지지 않고 내 할일만 하던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극히 빈약하겠지."
"스승님."
"하지만 그런 문제도 친구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많지. 그 동안은 리우잉의 친구로 데려올 만한 이를 찾지 못했기에 건드릴 수 없었지. 중원의 이라면 리우잉의 악명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아마 리우잉만 봐도 덜덜 떨테고, 리우잉 스스로도 상대에게 벽을 쌓겠지. 상대가 아무리 친근하게 대해온다고 해도, 속으로는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을 할 수밖에 업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 현수 처럼 외국인을 데려오는 건 어떨까? 리우잉은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는 있으니 한국인으로 데려오면 참 좋겠지?"
고개를 저었다.
리우잉은 그렇게 보여도 낯을 꽤 가리는 애니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외국인을 데려온다고 잘 친해질 수 있을리가 없다.
'상대쪽도 문제고.'
갑자기 천마님께 납치돼서 다른 나라에서 눈을 떴는데 리우잉에게 마음을 열어줄리가 없잖아?
"원래는 아해에게 리우잉을 맡기려고 했어. 아헤는 참 착하고, 정을 주는 방법도 충분히 배운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저번에 아해가 몰카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겸사겸사 이현수도 세상에 정을 붙이게 할 겸 이현수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그 너와 이현수가 있던일과 리우잉이 둘을 화해시켜 준 걸 듣고나니 확실히 이현수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마님이 싱그럽게 웃으시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다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거니까."
내가 스승님을 못 믿었구나.
저렇게 깊은 생각을 가지고 실행하신 일인데.
"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최종보스, 잘 할 수 있겠지?"
... 리우잉을 위해서니까 열심히 하자!
***
거대한 몬스터가 우리 앞에서 자고 있었다.
자신들의 수족이 전부 없어졌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는 건지 그 거대한 몸을 뉘이고 쿨쿨 잘만 자고 있었다.
어디 안갈거지?
"누나, 벌써 열 번째야. 설마 내가 누나를 두고 다른데를 갈 것같아?"
맞아... 다른데로 도망가면 내가 어떻게든 찾아내서 동생의 사지를 뜯어내 버릴 거니까. 현수는 절대로 못 도망가.
누누히 말하지만 정말 귀여운 협박이다.
이 누나는 그냥 사지를 뜯어낸다는 어감이 너무 강해서 하지도 않을 짓을 협박이랍시고 계속 말하고 있는 것 뿐이니까.
"그러면 잘 다녀와.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도망가야 한다?"
위험하긴, 고작 B+정도 밖에 안 되는 몬스터 정도에 내가 위험할 거 같아?
어깨를 쭉 펴며 자랑하는 누나의 머리카락을 한 번 쓰다듬어 줬다.
"누나 다치면 나도 누나 사지를 뜯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푸하하하하하하! 현수 네가 내 사지를 뜯는다고?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아?
당연히 불가능하지. 일단 신체적으로 밀리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내가 누나의 사지를 뜯을 각오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몬스터 잡기 전에 우리 동생 농담 덕분에 크게 웃었네, 누나 일하고 올테니까. 잘 기다리고 있어.
"잘 다녀와."
누나는 몬스터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솔직히 말하면 달려가는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누나는 이미 몬스터의 미간에 발을 내려찍고 있었으니까.
쿠어어어어어어어!!!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잔뜩분노한 눈으로 누나에게 공격을 가하기도 전에 누나의 후속타가 몬스터에게 박혀 들어갔다.
'아무리 무공을 배웠다고 해도 저게 진짜 비각성자가 맞아?'
발차기 한 번으로 몬스터를 저 멀리 날려버린 각력을 보고 있노라면, 저번에 내가 맞았을 때 설마 전력으로 때린 게 아닐까? 싶었던 의문이 싹 사려졌다.
누나가 나를 전력으로 쳤다면, 한 방에 즉사해 버렸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