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이현수10
* * *
누나가 몬스터를 잡아내는 데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0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만에 누나는 거대한 몬스터를 완전히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누나가 오른팔을 크게 들어 올렸다.
미리 정해놨던 신호였기에 바로 누나 쪽으로 뛰어갔다.
"괜찮아?"
어, 괜찮아. 마나를 다 써서 조금 기운이 없긴 한데, 금방 괜찮아질거야.
"다행이네."
조금 쉬었다가 수색할까? 아니면 바로 도시를 뒤져볼까?
"누나만 괜찮다면 나는 바로 해도 상관 없는데."
나도 바로 해도 상관 없어. 마나가 다 떨어지긴 했지만 체력적으로는 쌩쌩하니까.
이젠 좀비도 없고 위험한 몬스터도 없는 도시였지만 누나는 내 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괜히 떨어지려고 했다간 사지가 뜯어질 위험이 있기에 굳이 따로 다니지 않고 같이 다녔다.
응? 저기 뭔가 이상한 게 있는데?
"게이트 인가?"
누가봐도 게이트 처럼 생긴 현상이었지만 내가 아는 게이트랑은 살짝 달랐다.
일단 게이트의 입구가 검은색이었고 그 어떤 몬스터도 뱉어내지 않았다.
'이미 다 몬스터를 뱉어냈다고 해도 주변에 시체들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탄생한지 얼마 안 된 게이트인가?
영구 게이트인거 같은데?
"그게 뭔데?"
영구 게이틀라니, 이수현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비슷한 거 하나 없었다.
발생 원인은 알 수 없는데 게이트가 사라질 시기 이후에도 계속 남아있는 게이트야, 중원에도 몇 개 있는데 아무도 못 들어가게 관리하고 있긴 해도 계속 안 사라지더라.
"그게 왜 여깄어?"
여기 있을 수도 있지, 중원 전체에도 몇 개 없는 거지만 이런 작은 도시에 영구 게이트가 나타날 확률이 0인 건 아니니까.
그 도시에 우리가 올 확률은 더 낮지 않을까?
"이 게이트 안에 우리가 천마신교로 돌아갈 답이 있지 않을까?"
그건 너무 억측 아니야?
글쎄? 천마가 우리를 굳이 이 도시로 데려온건 아마 이 게이트 때문일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야.
개발자의 의도대로 행동하는 게 게임을 승리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잖아?
"그래도 한 번 들어가 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위험할 수... 는 없겠구나, 그렇게 높은 등급의 게이트는 아니야. 도시에서 어슬렁 거리던 고위 몬스터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면 게이트 안엔 위험요소가 하나도 없을 확률이 높긴해.
"한 번 들어가보자."
리우잉이 고민하듯 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좋아, 마나도 얼추 회복됐으니까, 들어가서 조사해 보자! 대신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너 들고 튈거니까 그렇게 알아.
"오케이. 들어가자."
게이트에 살짝 손을 대니 쑤욱하고 빨려 들어갔다.
이수현의 인생까지 포함해도 단 두 번밖에 되지 않은 게이트 입장이라서 상당히 신기한 감각이 들었다.
"아우... 어지러워."
흔들리는 머리를 다잡고 정신을 차린 나에게 보이는 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
뭐라고 말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항의 의지가 없다는 걸 표시해야 겠지
조심히 양 손을 들고 항복의 의사를 표시했다.
누나가 옆에서 고심하는 듯 하더니 결국 나를 따라서 양손을 들어올렸다.
우리는 이상한 사람들 아니야!
불행 중 다행이게도 우리는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저들은 우리말을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게이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인가?'
서양쪽 보다는 동양쪽 사람들인 것 같은데 국적이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현수야, 우리 큰일 난 것 같은데?
"왜?"
저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에 S급 각성자가 있는 거 같아.
***
두꺼운 밧줄로 포박 당한 후 게이트 입구에서 대기 하고 있던 사람들을 따라서 이동했다.
우리 죽일 거야?
리더로 보이는 남작 고개를 저었다.
풀어줄 생각은 있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죽지는 않을 것 같아.
"그건 모르지 이 사람들은 말단이니까,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일이 흔한 건 아닐테니 기다리고 있으면 고위 간부가 들어올 것 같은데 그 때가 돼서야 우리가 살지, 죽을지가 결정나겠지."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진짜로 죽을 거란 생각은 하나도 안하고 있었으니까.
'천마가 장난 친거겠지.'
우리 어떡해, 죽는 거야?
"알 수 없다니까 그러네."
이 곳의 지배자를 불러줘. 아마 그 사람과 나는 말이 통할 거야.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안의 공간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었으니, 지배자라고 해도 그렇게 바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남자가 나가고 5분도 안돼서 키가 2미터도 넘어보이는 여성 하나가 들어왔다.
너희가 도시에서 들어온 자들이냐.
뭐라고 해야할까.
첫인상이 구렸다.
일단 말투부터 조금 어색했는데 진짜로 멋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일부러 멋있음을 연기하는 듯한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연상됐다.
맞아! 도시의 좀비들이랑 몬스터를 다 쓸어버리고 들어왔어!
고맙군.
고맙긴 뭐가 고마워, 비각성자인 리우잉이 처리 할 수 있는 걸 너라고 처리 못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왜 네가 처리 하지 않은거지? S급 각성자라면 그 정도 몬스터랑 좀비 따위는 순식간에 정리 할 수 있잖아."
여자의 몸이 살짝 굳었다가 곧 바로 다시 움직였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아, 나 한국어 못하지?' 라고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너무 확증편향인가?'
처음부터 검마라고 생각하고 여자를 보고 있으니까. 그녀가 뭘 하든 검마처럼 보이는 거지.
호오, 그대는 아주 잘생겼군.
퍽이나 잘생겼겠다.
이수현에 대한 콩깍지가 맥스까지 끼워진 하연이와 월하조차도 이수현의 얼굴을 잘생겼다고 말하지 않는다.
늘 귀엽다와 고양이 같다로 뭉개고 넘어가지. 그런데 갑자기 나보고 잘생겼다?
'엄청 의심스러운데.'
미남에 대한 엄격한 조건은 어느나라를 가도 바뀌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 데 말이야.
내 첩으로 들이도록 하지.
뭐 이 개새끼야?
오, 누나가 욕하는 거 처음 보는데 어떻게 욕하는 것도 저리 앙증맞을 수가 있지?
너는 가만히 있거라.
누나의 몸이 실 풀린 인형마냥 툭하고 쓰러졌다.
"... 검마씨?"
여자의 몸이 굳었다.
일단 따라와라, 내 방에서 모든 걸 말해 주겠다.
앞장서는 그녀를 따라서 4분 정도 이동하니 게이트 안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소박한 집 한 채가 보였다.
스승님, 데려왔습니다.
"들라해라."
집 안에는 천마가 차를 마시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역시 천마 짓일 줄 알았다니까?'
99%의 확신이 100%로 변하면서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별로 놀라지 않는군, 내 소행이라는 걸 진작에 눈치 챘던 것인가?"
"당연하지, 네가 이수현의 육체를 아무데나 내팽겨쳐 둘 사람이 아니잖아? 네 짓이 아니면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그렇다면, 이수현도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디 숨어있는 거겠지?
'요!'
'뭐가 요야 이 쌍놈아.'
'그래도 우리 덕분에 리우잉한테 정을 붙일 수 있지 않았어?'
'그게 너희 덕이냐? 너희 없어도 누나한테는 정을 붙였을 거야. 굳이 이딴짓을 안했어도 네 의도대로 누나한테 정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싶었을 거라고.'
그런데도 쓸 데 없이 이딴 짓을 했다는 건...
"누나 때문에 이짓을 한거야?"
"역시 눈치가 빠르군, 그렇다. 리우잉을 위해서 준비한 몰카지."
"누나를 위한 거 맞아? 둘이서만 있으니까 더 불안 해 보이던데."
하루에도 사지를 찢어버린다는말을 열 번도 넘게 말하니까.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나를 누나 옆에 붙여 놓는 게 좋지 않을까? 이대로 누나가 일어나면 바로 폭주 할 것 같은데?"
"나름 안배해 둔것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너의 역할은 내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구해지는 것으로 족하다."
"그걸로 누나의 의존이 해소될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 리우잉이 너에게 의존하는 건 환경때문에 그런 것 뿐이다. 둘 밖에 없으니 당연히 너에게 의존 할 수 밖에 없지. 이 몰카로 리우잉이 얻었으면 하는 건,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자존감이다. 그 아이, 네가 보기엔 늘 발게 보였어도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에겐 말도 잘 못 거는 아이었거든, 이 몰카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이현수 네가 옆에 붙어서 꾸준히 관리를 해준다면 차차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참스승 납셨네.
"그래서, 나는 뭘하면 되는데?"
"본좌가 말했지 않느냐 그냥 리우잉에게 구해지면 된다고."
"구해진 다음엔 어떻게 할 건데? 와! 모든 게 연기였습니다! 하고 끝낼 거야? 그리고 검마가 S급 각성자로 위장하고 있는데 누나가 S급 각성자를 어떻게 이겨?"
권마도 못 이긴다면서!
"우리가 다 작전을 짜놨으니 너는 작전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 믿어도 되는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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