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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화 〉 리우잉­1 (106/265)

〈 106화 〉 리우잉­1

* * *

"진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되는 거 맞아?"

"그렇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리우잉에게 구해지면 그대의 역할은 끝난다. 어색하지 않게 구해지고 리우잉을 칭찬해 주는 과정도 포함되긴 할테지만,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을 테니 굳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참견하진 않겠다."

뭔가 미심쩍은데, 이렇게 쉽게 보내줄 만한 년놈들이 아니다.

분명 무언가가 숨어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바라보지 마라. 초안은 네가 NTL당하는 방향으로 가려다가 네 성격과도 안 맞고 리우잉의 회복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아 빼버렸으니."

"NTL이 뭔데?"

"자세한 건 이수현에게 물어보도록."

'야,NTL이 뭐냐?'

'네가 직접 찾아봐.'

네 기억이 얼마나 많은 데 그 중에 NTL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찾아내냐?

'바로 생각 안 나는 거 보니까 많이 사용한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은 뺏으니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 됐고... 누나를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진행 상황을 알아야 연기를 하던가 말던가 하지."

"보여줄 수 없다. 괜히 쓸모 없는 말을 했다가 리우잉이 자신의 행동을 네가 다 보고 있던 걸 들키면 큰일이 날테니까. 너는 여기서 가만히 앉아서 리우잉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도록."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

"그건 리우잉이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일이지."

답답하겠네...

"그러면 검마는 다시 연기하러 가거라."

­알겠습니다.

"어차피 할게 기다리는 것 밖에 없으면 이수현이 몸을 조종하는 게 낫지 않아? 천마 너도 나 보다는 이수현이랑 함께 있고 싶잖아."

"당연히 그러고 싶지만, 아해가 격하게 반대했다. 약속한 일주일 까지는 네가 계속 몸을 조종하게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해서 말이지."

'내가 언제 사정사정을 했어.'

"자기가 언제 사정했냐는 데?"

"맞다. 아해는 아직 사정한 적이 없지. 내 앞에서는 말이다."

순간 벙쪘다.

갑자기 왠 색드립이지?

'그렇다는데?'

'왜 갑자기 말을 돌리냐고 전해줘.'

"왜 갑자기 말을 돌리녜."

"나는 너의 말을 듣고 바로 해석한 것 뿐이다. 전달을 잘못한 너의 문제지 본좌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만?"

"그래, 내가 잘못했네, 자기는 사정사정 한 적 없다고 말했어."

"맞다, 아해는 나에게 사정사정하면서 빈 게 아니라, 다시는 나랑 이야기 하지 않다고 협박을 했으니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그 입을 꽤매주고 싶지만, 본좌가 참아야지. 내가 어른이니."

'어른은 무슨, 진지한 척 하면서 온갗 유치함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

뭐, 그렇다고 하내요.

'... 뭐해? 전달 안해?'

이럴 거면 그냥 이수현 네가 나와!

그렇게 한참을 둘의 대화를 전달해줬다.

처음에는 둘이서 싸우니까 좀 나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달콤해지더니 종국엔 아예 꽁냥질로 변해 버려서 그냥 죽음을 택했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들리는 말만 바로 전하니까 그렇게 힘들진 않더라.

***

눈을 뜨니까 철창이 보여.

차근차근 기억을 되짚었어. 내가 왜 여깄을까? 아니, 내가 왜 혼자 있을까?

'그 망할년 때문이지.'

갑자기 나를 쓰러뜨리더니 우리 귀엽고 사랑스럽고 멋진 내 동생 현수를 데려간 나쁜년.

분노가 닥쳐올 때는 머리를 식히라는 스승님의 조언이 떠올랐지만 내 머리는 식을 줄을 몰랐어.

오히려 점점 극단적인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지.

게이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여버리고 동생의 사지를 찢어서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거야. 그러면 그 누구도 현수를 볼 수 없으니까 지금처럼 다른 사람한테 뺏기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겠지.

아니면 지하실에 가둬 놓고 외부와의 접촉은 완전히 차단하는 건 어떨까? 내가 내려갈때만 빛을 볼 수 있고 나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거야.

그러면 현수는 점점 나에게 의존하게 되겠지? 내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몸이 되겠지?

그 년이 나에게 무슨짓을 했는 지는 몰라.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몇 시간 동안을 끔찍한 망상을 하면서 지냈어.

수많은 망상의 대부분의 경우에는 현수가 나를 보고 울고 있었고, 나는 그런 현수를 지배하고 있었어.

'그러면 안돼...'

동생을 울리다니 그런 나쁜 누나가 어디에 있어?

몇 시간 동안 속에서 분노만 불태워서 그런 걸까? 뜨거웠던 머리는 천천히 식기 시작했어.

이전에 어떻게 했다면, 이라는 의미없는 망상은 사라져 가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현수를 구해낼 수 있을 지에 대한 계획들이 내 머리를 차곡차곡 채워나가기 시작했지.

'검마언니나, 권마 오빠 둘 다 나보고 머리쓰는 데 재능이 없다고했지만 사실 전혀 멍청 하지 않거든!'

언니나 오빠가 더 머리를 잘 쓰니까 맡겨 왔던거지, 내 머리는 나쁘지 않아.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년이 내 몸에 이상한 짓을 한 건 아닌 것 같아.

나를 묶고 있는 밧줄에 이상한 짓을 해서 내가 힘을 못 내고 있는 거지 몸이 이상해 진 게 아니야.

어떻게든 밧줄을 풀어내면 만사 오케이라는 뜻이지!

고개를 들어 철창 밖을 바라보니 꾸벅꾸벅 졸면서 나를 바라보는 경비원이 보였어.

다른 경비원은 없어. 인기척도 없고, 무엇보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거든.

마나가 제어 당하고 있는 상태라서 철창을 뚫을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저런 경비병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죽여 버릴 수 있어.

'아냐 죽이면 안되지.'

적당히 겁을 줘서 일단 철창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자.

"후우... 야, 개새끼야."

얼마만에 꺼내보는 옛날 말투일까?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하니 경비병이 눈을 뜨는 게 보였어.

내 목소리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경비원이 덜덜떠는 게 딱 보였어.

"철창 열어."

경비원이 덜덜떨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어.

마나를 쓸 수 없는 상황이니 내 의사를 전달할 수도 없는데 어떡할까?

그냥 철창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말을 알아듣지 않을까?

말 없이 철창을 바라보고 있으니 경비원이 고개를 젓는 게 보여. 네가 뭔데 나한테 반항해?

"그르르르릉."

목을 긇으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니 경비원이 주저 앉았어.

옛날엔 지나가던 사람 붙잡고 한 번 들려주면 제발 살려달라고 빌던 소리였으니까.

언어가 다르다고 해도 통할 수 밖에 없겠지.

고개를 까딱이며 이쪽으로 다가오라는 모션을 취하자 벌벌기며 나에게다가오는 경비원이 보여.

누가 날 묶었고 누가 철창을 새웠는지 모르겠지만 이들이 잘못한게 두가지나 있어.

"으읍?"

첫째는 밧줄로 상체만 묶고 하체는 묶지 않았다는 거고 두 번째는 철창 사이의 간격을 내 다리가 빠져나갈 정돌로 넓게 만들어 놨다는 거지.

­쾅쾅! 쾅! 쾅!

발가락으로 경비병의 몸을 잡고 바닥으로 찍었어.

마나는 사라졌어도 육체능력이 감소된건 아니니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

"죽는다. 빨리 열어."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내 목소리에 담겨있는 분노는 알아들었는지 경비병이 바들바들 떨며 철창을 열었어.

"풀어 개새끼야."

이걸 마지막으로 욕은 더 하지 말아야 겠다.

괜히 말 버릇 돼서 동생이랑 얘기할 때 나오면 큰일이니까.

경비병이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내 밧줄을 풀어주자마자 배를 쿵, 하고 밟아서 깔끔하게 죽여줬어.

피도 제대로 나고 숨도 안 쉬고, 내부 장기의 기능도 멈춰가는 것 같으니 확실히 죽었겠지.

혹시 경비병이 권마오빠나 검마 언니급 되는 강자라면 완벽하게 죽은 척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강자가 여기 있을리가 없잖아?

심지어 경비병이나 하고있을 확률은 더더욱 없지.

'마나도 돌아왔고, 이제 어떡하지?'

아무 생각 없이 망할년을 잡으러 갔다는 역으로 당하고 말 거야.

아마 이번엔 목숨을 잃거나 절대 탈출 할 수 없는 곳에 갖히게 되겠지.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머리를 차분히 식혀봤더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

일단 있는 마나 없는 마나를 전부 끌어올려서 은신술을 사용했어.

은신술이라고 해도 마나나 겉모습만 겨우 가리는 정도긴하지만 여기 수준으로는 이것도 못 알아차리겠지.

'한시라도 빨리 현수를 구해야 해.'

초면에 잘생겼다고 칭찬부터 날리던 여자야. 현수가 잘생겼다는 걸 바로 알아차린 그 눈은 나도 인정 할 수 밖에 없지만 현수의 몸에도 관심이 있을 게 분명하니까, 내가 현수한테 하려고 했던 이런 저런 일들을 당할지도 몰라.

그렇게 넓지 않은 구역을 이리저리 헤집고 돌아다녀 보니까, 어디를 가든 게이트 안을 지배하고 있는 S급 각성자에 대한 불만이 들렸어.

기득권층은 밖에 나와있지 않은 건지 아니면 인구가 너무 적어서 기득권층이 그 년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좋은 소식이지, 이들을 이용할 방법이 생긴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녹색 머리카락에 자색 눈동자를 가진 여자 한 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겉으로 보이는 마나를 분석해 보니 최소 A급 각성자... 이런 실력자라면 그년의 부하일 게 분명해. 어떡하면 좋지?

나를 보고 뭐라 중얼거리더니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어.

"혹시 한국어 할 줄 아시나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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