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업보청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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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에 천마와 동생들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아해 왔느냐?"
""오라버니 오셨어요?""
세 명이 짠 듯이 동시에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에 재빨리 소파 앞에가서 섰다.
'어? 분명 연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연하가 앉아 있을 자리에 왠 녹색머리에 자안을 가진 여자가 앉아있어서 잠시 벙쪘지만 곧 연하인 걸 알아챘다.
머리카락이랑 눈동자 색만 바뀌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연하의 모습이랑 똑같았으니까.
나름 일찍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는데 애들이 보기엔 너무 늦게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오라버니? 설마 머리카락 색 바뀐 걸로 저를 못 알아 보신 건 아니시죠?"
"동생 얼굴도 못 알아보는 오빠라니, 실망이다 아해야."
"실망이에요 오라버니."
연하가 한 마디 하자 다른 두 명도 바로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가져다 댔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연계공격에 쭈그리가 돼서 최소한의 변명을 했다.
"아니... 갑자기 염색을 하고 와서 당황해서 그랬지."
"염색 아니거든요? 이게 원래 제 머리카락이고 지금까지 하얀색으로 있던 게 염색이란 말이에요."
"그것도 못 알아보다니, 오빠 자격이 없다. 아해야."
"맞아요. 오라버니, 어떻게 동생을 못 알아 볼 수 있어요?"
생각보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일단 무릎을 꿇어 앉자.
"미안."
"뭘 잘 못하셨는데요?"
"연하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 한거?"
"저희가 설마 진짜로 그거 때문에 화나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죠?"
하연이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너희한테 상의도 안 하고 멋대로 현수한테 몸을 넘겨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일주일 가까이 넘긴건데..."
'꼴 좋다 이자식아!'
넌 좀 닥치고 있어.
"그래도 뭘 잘 못한지는 아시네요."
"일주일 동안 오라버니를 못 만난 것도 화나긴 한데, 저희한테 한마디도 안하셨다는 게 더 화가 나요. 언질 정도는 해주실 수 있었잖아요."
"맞다 아해야. 너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동생들인데, 자신의 생각정도는 말해 줄 수 있지 않느냐."
"진짜 미안해, 어떻게 하면 내가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일단 올라오세요."
천마가 일어나서 자리를 비켰다.
"그러면 약속대로 일단 나는 물러가도록 하지. 남매끼리 오봇한 시간을 보내도록."
"다녀오세요."
애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니, 그 동안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 얼굴에 거부감이 하나도 없네.
천마가 빠져나간 빈 공간으로 들어가자 하연이와 연하가 양 옆에서 붙어왔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내가 지금 불만을 말할 상황은 아니지. 조용히 앉아있으니 연하와 나를 꼭 안았다.
"앞으로 어디 가면 말 좀 해줘요. 다른 사람 입에서 오라버니를 한 동안 못 본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게 얼마나 충격적인 줄 아세요?"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사라지지도 마세요."
"그래, 내가 미안하다."
다행이라고 할까? 당장 나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큰 분노를 느끼지는 않는 모양이다.
서로 꼭 안고 온기를 나누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더 있고 싶지만 천마님이랑 약속한 게 있어서 말이에요. 일단 오늘은 여기서 끝."
연하와 하연이가 동시에 일어나더니 빠르게 방으로 들어갔다.
'굳이 저렇게 빠르게 퇴장할 필요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내 몸을 감싸오는 무언가의 손길을 느꼈다.
"보고싶었다 아해야."
고개를 살짝 내리니 아랫쪽에서 나를 안고 있는 천마가 보였다.
천마가 천천히 위로 올라오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구나."
기껏해야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천마 입장에서는 꽤 길게 느껴졌겠지. 평소에는 하루에 한 번 만나는 것도 오랜만에 만난다고 투덜거렸으니까.
"앞으로는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다. 일이 전부 마무리 돼서 말이지. 마음만 먹으면 내일당장 아해의 도시로 떠날 수 있겠지."
"우리 도시라..."
너무 오랜만인데?
한동안 미르에 있다가 우리도시에 제대로 들릴 틈도 없이 천마신교로 왔다.
타지 생활에 어느정도 적응하긴 했지만 역시 우리 도시만큼 편한데는 없지.
날 키워주신 사장님도 계시고, 월하도 있으니까.
'...잠깐만 월하?'
갑작스런 불길함에 몸이 덜컥 굳었다.
안 본지 거의 한 달이 다 돼가는 거 같은데... 다시 만났을 때 후유증이 엄청 크지 않을까?
갑자기 우리 도시로 가기 싫어졌다.
월하가 보기 싫다는 건 아닌데... 좀 무섭잖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약속했던 컨셉 플레이도 못하게 돼서 엄청 이를 갈고 있던 거 같은데...'
"일주일만 더 이따가 가면 안돼?"
"왜? 혹시 현수와 리우잉이 걱정돼서 그러나? 괜찮다. 리우잉도 데리고 이동할 테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해야. 업보라는 건 원래 청산의 시기를 미루면 미룰 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무림에서 돌아다니던 말이야?"
"아니, 아해의 미래다."
그래... 내가 잘 못했으니까. 일단 업보부터 청산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월하라는 아이도 아해를 좋아하는 여성이지 않은가. 너무 심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심한짓을 할까봐 걱정이 드는 건데..."
"죽지만 않으면 되는 것을 무얼 걱정하나."
확실히 죽지야 않겠지만...
"하아... 괜히 한숨만 나왔다."
***
천마의 말대로 바로 이동했다.
올 때는 천마의 손에 들려 왔지만 갈 때는 하연이에게 안겨 갔는데 연하와 리우잉은 검마의 손에 들려서 오고 있었다.
타지 생활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지만 월하와의 재회만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왔다.
한 번 업보청산을 하면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월하를 대할 텐데 처음 만나는 게 문제라고 할까?
마음 같아서는 하연이의 손을 뿌리치고 바다로 떨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월하 그년한테 주어질 시간은 딱 하룻밤일 뿐일테니까요."
그 하룻밤 동안 오라버니가 무슨 일을 당할지는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 거니 동생아?
한숨을 푹푹 쉬며 날아가다 보니 어느새 육지가 보였다.
아마 금방 우리 도시까지 날아가겠지.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 도시에 도착했다.
하연이가 나서서 경비병과 이야기를 했는데, 망할 경비병들은 한달쯤 안봤으면 하연이의 얼굴을 잊을 법도 했건만 바로 하연이를 알아차리고 문을 열어줬다.
"저랑하연이는 길드장에게 보고 하고 올테니까, 먼저 월하집에 가서 기다리고 계세요."
"알았어..."
무거운 마음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니 천마가 옆에서 따라붙었다.
"월하라는 아이는 나의 존재를 알고있는가?"
"알고 있지 않을까? 길드장한테 너의 존재를 보고 하고 움직였던 걸로 기억하니까."
"참 아쉽군."
천마가 입을 다셨다.
"몰랐으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데?"
"아해를 데리고 금태양짓을 하려고 했다. 어깨의 팔을 걸치고 뺨을 핥아주면서 참 맛있었다고 말해주면 표정이 참 볼만 했을 텐데, 내 정체를 알고 있다면, 바로 나인걸 눈치 챌테니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나."
가만 보면 천마도 참 미친 것 같단 말이지...
"나는 이만 사라지겠다. 리우잉과 함께 도시를 구경할 테니 오늘 하루 동안은 월하라는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도록."
"야!"
암흑가를 뚫고 월하의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천마가 리우잉을 데리고 뛰었다.
어찌나 빠른지 눈 한 번 깜박한 사이에 이미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하아..."
한숨을 푹푹 내쉬며 건물로 들어갔다.
이미 하연이의 기운으로 우리가 돌아온걸 알고 있던 걸까? 아직 마음의 준비는 하나도 되지 않았는데 월하가 건물 입구에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오랜만이지?"
"네, 오랜만이네요."
월하가 싱긋 웃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딱히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다. 마치 기대하지 않은 복권에 갑자기 당첨된 듯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잖아요 기사님."
"미안해, 너무 오랜만에 돌아왔지?"
"아니에요. 일이 있으셔서 그런건데 제가 불만을 표할 수는 없겠죠."
차라리 화를 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있으니 오히려 불안했다.
"다른 분들은 어디계세요? 하연씨랑 연하씨는 길드장님을 만나러 갔다고 해도, 미르에서 새로 만나신 분이 있다면서요?"
"오늘 하루는 너랑 둘이서 시간을 보내라고 다른데 놀러갔어."
"그래요?"
월하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 미소에서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욕망이 보였다.
"다행이네요. 기사님을 보지 않은 채로 버티는 건 가능했는데, 이렇게 만나니까 욕망이 차오르더라고요. 시간을 더 끌었으면 진짜 큰일 날뻔했어요."
월하가 내 손목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잡아 끌었다.
"마음의 준비는 필요 없죠? 이렇게 될거라는 걸 알고 계셨을 테니까요."
아니요! 몰랐는데요! 이렇게 다짜고짜 끌고갈거라는 건 예상 못했는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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