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5화 〉 일상­3 (115/265)

〈 115화 〉 일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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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 갑자기 왜?"

"그냥 문득 오라버니가 염색을 하셔도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호오, 염색이라."

천마가 내 머리를 빤히 바라봤다.

"3남매가 전부 백발로 하고 다니는 것도 꽤 볼만 하겠군, 확실히 잘 어울릴 것 같긴 해."

"돈은 제가 내 드릴 테니까. 한 번 해보시는 건 어때요? 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그 때 지우면 되잖아요."

"잘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에 100만원을 태우긴 싫은데."

"제가 내 드린다니까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저 돈 많으니까."

너 돈 많은 거 알긴 하는 데 아까워서 그래. 100만원이면 도대체 몇 달치 생활비냐...

"지금 염색하시면 할인해 드립니다. 염색을 위해서 사용하는 재료들은, 한 번 꺼내면 시간이 지나서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지금 바로 하신다고 하시면 20만원은 깎아 드릴 수 있어요."

"와, 149만원 밖에 안 해요 오라버니!"

아니 149만이 뉘집 개 이름이냐!

"나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해가 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단지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백발 아해를 보지 못 하는 것은 나도 꽤 아쉽군."

"쯧, 어쩔 수 없지."

"이리로 오세요."

염색사를 따라서 자리에 앉으니 염색사가 새 물건들을 꺼내서 내 머리에 바르기 시작했다.

반쯤 생각을 버리고 가만히 앉아있으니 거울 속에 비친 내 머리카락이 점점 하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잘 어울리는 거 맞아?'

"샴푸하실게요."

일단 염색사의 손길을 따라 머리를 감고 다시 거울을 확인하니 내 머리카락이 아주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어색한 것 같은데,"

"아니에요, 충분히 잘 어울리세요. 하지만, 뭐라고 할까, 생각만큼의 이펙트는 없네요."

"맞다, 그냥 머리가 하얀 아해라는 느낌이지 딱히 엄청 더 멋있어지진 않았군."

"혹시 제가 스타일링 해드려도 될까요?"

염색사가 나에게 물어왔다.

"여기 커트도 해줘요?"

"네, 한번에 백만원 이상을 받는 데 커트는 서비스로 해드리죠. 다시 자리에 앉아보세요."

다시 염색사의 손에 끌려서 의자에 앉았다. 보자기 같은 걸로 몸을 덮고 머리를 조금 자르고 만지고를 몇 번 반복하니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분명 머리만 바뀐 것 뿐인데, 인상이 조금 더 거칠고 날카로워졌고 왠지 모르게 더 잘 생겨져 보이기 까지 했다.

"역시 남자는 머리빨..."

뒤에서 연하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나도 부정은 하지 않았다. 머리 하나만 바뀐 것 가지고 내 모습은 믿기 힘들 정도로 달라져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염색사의 능력에 대상의 외모를 버프해주는 능력도 포함되어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다 됐어요."

"와아..."

월하가 나를 고양이라고 자주 부르는데, 이제 내 얼굴에는 고양이 같은 느낌은 남아있지 않았다. 굳이 동물에 비교하면 늑대에 가깝겠지.

얼굴상은 둘째로 치고, 객관적인 외모 수준이 말도 안되게 올라갔다.

이전 까지는 다른 사람한테 내 외모를 평가 받으면 '으음, 훈남이지?' 정도에서 확실하게 미남의 영역으로 올라온 느낌이랄까?

"오라버니 진짜 잘생겨지셨어요!"

"허, 머리카락만 달라졌는데도 이렇게 사람이 변하다니... 역시 남자는 머리하나만 바뀌어도 인상이 크게 변하는 군."

남자만 그런줄 알아? 여자도 많이 변하거든?

"집 돌아가면서 금색 서클렌즈 사드릴 테니까. 그것도 한 번 껴보세요.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꼭 끼어야해?"

"다들 좋아할 것 같은데 한 번만 끼어 주면 안돼요?"

연하가 나를 간절히 올려다 봤다.

"쯧... 알았어, 한 번만 낀다. 두 번은 없어."

"예!"

연하가 신난 듯 손을 올려 들었다.

"계산은 아까처럼 해주세요."

"네!"

그렇게 염색을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잘 사는 동네라 다른 사람한테 관심 가질 여유도 있는지 연하와 나를 흘끔흘끔 훑어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되게 부담스럽네...'

어쩔 수 없지, 이 정도 하얀색이면 엄청 튀는 색이니까. 길가던 사람들이 한 번 씩 훑어 보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바로 총포상으로 이동했다가 바로 집으로 가요! 오라버니의 멋진모습을, 월하언니한테도 보여주고 싶으니까요."

응? 연하가 월하를 언니라고 불렀던가?

'모르겠다. 나 없는 사이에 친해졌나 보지.'

천천히 걸어서 우리 총포상으로 이동했다.

무사히 돌아오시고 장사를 재개했는지, 가게 안에서 불빛이 보였다.

­띠링

"저 왔습니다. 사장님."

"이게 누구야, 우리 풀어준다고 했다가 저 멀리 떠나가서 돌아오지도 않은 놈 아냐?"

"죄송해요 사장님 갑자기 일이 생겨서..."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사장님이 나를 바라보지 않고 총기를 손질하면서 말하셨다.

"잘 지냈냐?"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미르에서는 좀 바빴지만 천마신교에서는 널널했지. 거의 놀러간 느낌이었으니까.

"호오, 품질이 꽤나 좋군,"

"아가씨가 보는 눈이 있으신데? 누구 작품인데 당연히 뛰어날 수 밖에 없지."

사장님이 손질하던 총을 내려놓고 고개를 드시다가 나랑 눈이 딱 마주쳤다.

"너 머리가 왜 그러냐? 길가다가 페인트라도 맞았어?"

"염색했어요."

"푸하하하, 천하의 이수현이 염색이라니, 월세 내는 돈도 아까워서 빈민가에서 누워자던 놈은 어디가고 이렇게 멋쟁이가 되셨데?"

"동생이 제발 염색해달라고 사정을 해서요."

연하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뭐, 그 쪽이 훨씬 보기 좋긴 하네. 그래서, 여긴 왠일로 왔어?"

"오랜만에 사장님 얼굴이나 보러 왔죠."

"내 얼굴은 뭐 하러 보러 와, 나 말고 기술자 자매나 찾아가지 그래? 기껏 방패를 만들었는데 네가 안 찾아간다고 일주일에 한 번은 와서 나한테 화풀이 한단 말야."

언제 한 번 시간 내서 찾아가봐야 겠네...

"큼큼, 주인장, 이건 얼마나 하나?"

뒤쪽에서 총을 구경하던 천마가 권총 두 자루를 들고 사장님께 다가왔다.

"응? 이거 반동 심해서 아가씨 같은 사람은 못 다뤄, 이 수현같은 괴물놈이나, 각성자들 쓰라고 만들어 둔거야."

"풉, 반동?"

천마가 가볍게 기세를 끌어올리자 사장님의 표정이 덜컥하고 굳었다.

"큼... 아가씨 같이 대단한 사람에게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라는 뜻이지, 총은 비각성자나 저등급 각성자가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있는 거지, 아가씨 같이 고위 각성자를 위한 게 아니야."

"그래도 쌍권총은 간지가 나지 않나."

그래, 쌍권총은 인정이지.

"그리고 내가 아해한테 배울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니 말이다."

천마가 나를 보고 찡긋, 윙크 했다.

"단순히 간지를 위해서 구매하기엔 가격이 꽤 나가는데..."

천마가 말없이 연하를 빤히 바라봤다.

"알았어요. 제가 사드릴게요."

"고맙다."

"태양길드의 연하 앞으로 달아주세요."

"알겠수다."

아마 저 권총이 내가 쓰고 있는 것보다 더 비쌀 텐데...

괜찮아. 연하는 돈이 많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면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

"갑시다! 집으로!"

'그러고 보니 서클렌즈는?'

연하가 잊어버린 것 같으니까,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서클렌즈를 끼는 게 무서운 건 아닌데 괜히 귀찮아 지기 싫단 말이야.

빨라진 연하의 걸음걸이에 맞춰 집으로 가니 월하가 혼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연이는 아직 안 왔나 보네.'

"오셨어..."

월하가 나를 보더니 멍하게 굳었다.

"뭐에요? 기사님 맞아요? 기사님이시죠? 왜 그렇게 멋져져서 오셨어요? 마법이라도 부렸어요?"

짧은 순간에 수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엣햄! 저 염색하는 김에 오라버니도 염색하고 머리도 만지셨답니다. 어때요? 엄청 멋있어지셨죠?"

"이 정도면 사기 아니에요?"

아니 사기라니! 아무리 머리를 만졌어도 본판이 어느 정도 되니까 잘생긴 거거든!

"진짜 멋있어지셨네요. 이제는 고양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는데요?"

외모칭찬은 거의 못 들어봐서 그런가, 엄청 부끄럽네.

"하연이 언니도 오라버니 보면 아마 깜짝 놀라겠죠?"

"그럴게 분명해요. 진짜 몰라볼 정도로 달라지셨으니까."

계속 되는 칭찬에 귀를 막았다.

***

오후 4시가 됐다.

이수현이 나랑 누나랑 놀라고 몸을 던져놨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와! 동생이 하루만에 백발이 되고 머리가 바뀌어서 돌아왔어!

하고 반겨 주지 않으려나?

일단 누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방으로 이동했다.

"누나, 나왔어."

­현수! 오랜... 뭐야? 왜 이렇게 달라졌어?

누나가 재빠르게 내 앞으로 뛰어오더니 내 머리카락을 빤히 바라봤다.

"이수현이 밖에 나간김에 염색하고 머리를 좀 정돈한 모양이야. 어때?"

­엄청 멋있어! 현수는 원래도 엄청 잘 생겼는데, 머리까지 깔끔하니까 진짜 미친듯이 멋있어! 당장 사지를 잘라서 나만 보게 하고 싶을 정도로 멋있어!

참고로 사지를 자른 다는 표현은 우리 사이엔 그냥 애정의 표시에 불과하다.

너무 신경쓰지 말도록.

"그 정도야?"

­어! 진짜 진짜 멋있어서 반할 거 같아!

"뭐, 괜찮다니 다행이네."

­우리 동생 잘생겼다!

나에게 팍! 하고 안겨오는 누나를 껴안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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