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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화 〉 일상­4 (116/265)

〈 116화 〉 일상­4

* * *

8시가 땡 하고 지나자 마자 현수가 나에게 몸을 넘겼다.

4시간동안 커플들의 꽁냥거림을 보고 있다보니 괜히 속이 쓰렸다.

'천마 보고 싶다.'

얌전해진 리우잉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다른 애들이 다 모여서 티비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식구같네?'

왜 이렇게 친근해 보여?

"오라버니 오셨..."

하연이가 덜컥하고 굳어 버렸다.

월하나 하연이나, 반응이 똑같은 걸 보면, 내 모습이 어지간히 충격적인 모양이다.

"오라버니 맞죠?"

"그럼 내가 네 오라버니지 귀신이겠니?"

"아니 그런건 아닌데..."

"어때요! 개 멋지죠!"

하연이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기에서 졌으니까 돈 내놔요."

이걸로 내기까지 걸었어?

'애들도 참 독하다...'

"이따가 줄게."

하연이가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와아, 진짜 잘생겼다."

내 눈을 바로 보고 말하는 하연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괜히 부끄러워져서 하연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머리 하나만 가지고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까요?"

"난들 아냐."

볼을 만져오는 하연이의 손길을 뿌리치고 소파에 앉았다.

여자들의 시선을 피하고 있으니, 애들이 요리를 하는 게 보였는데, 아리랑 가연이가 내 머리를 한 번 번보고, 사현이 머리를 한 번 보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현이 녀석... 조만간 머리색이 바뀌겠네.'

가연이는 월하의 혈육이니까. 백만원 정도는 크게 아깝지 않겠지.

"저녁 다 됐어요!"

아리가 크게 소리치자 다들 식탁에 앉았다.

음식은 애들이 해도, 상을 차리는 것 까지 맡기기에는 양심이 찔렸는지 다 같이 움직여서 상을 채워나갔다.

"국 맛있다. 이거 누가 했어?"

"오빠가 했어요!"

"사현이 실력 많이 늘었네."

그래도 아직은 모자란 부분이 보이지만, 애들을 가정부로 고용한 것도 아니니까 마음 껏 칭찬해 주도록하자.

"내일은 내가 밥 차려 줄까?"

말을 꺼내자마자 여자들이 바라봤다.

각자 담겨 있는 감정은 달랐지만, 대체로 오라버니가 왜요? 라는 느낌으로 통일됐다.

"왜 오라버니가 밥을 하려고 하세요? 오라버니는 그냥 편하게 앉아만 계시면 된다니까요?"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해주는 건데 왜? 너희는 내가 해 준 음식 먹기 싫어?"

"아닙니다!"

역시 연하야, 태세전환이 아주 빠르다니까?

"그러면 내일 아침엔 늦잠 자도 돼요?"

가연이가 사현이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너희도 내일은 푹 자렴."

그렇게 화기 애애한 분위기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하연이가 과일을 까서 디저트로 먹었다.

"오늘은 누가 오라버니랑 같이 자는 게 좋을까요? 매일 번갈아가면서 하기로만 했지, 정작 누가 먼저 같이 잘지는 안 정했잖아요?"

"당연히 본좌랑 같이 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만?"

천마가 먼저 말을 하고 나섰다.

리우잉을 제외한 다른 여자애들이 천마를 미묘한 표정으로 노려봤는데, 그래도 천마는 당당했다.

"리우잉이야 이현수랑 며칠을 같이 지냈으니 당연히 선택권이 없고, 월하 자네는 당장 그저깨 아해랑 같이 잤으며, 백씨 자매는 천마신교에서 내가 일할 때 늘 셋이서 같이 잤으니, 응당 내가 같이 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인정할게요. 천마님은 아직 오라버니랑 같이 자 본적도 없으신 분이시니까요."

연하의 단어 선정 때문에 착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야기 하는 건데 연하가 말한 같이 잔다의 의미는 진짜로 잔다는 의미다.

성적인 의미 하나 없이 순수하게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는 행동.

"그러면 일단 오늘은 천마님이랑 오라버니랑 같이 주무시는 걸로할까요?"

"찬성입니다."

"저도 찬성이에요."

생각보다 평온하게 진행되는 회의에 마음이 놓였다.

솔직히 허구한날 싸우지 않을까 걱정 많이 했거든.

하연이가 깎아 놓은 배를 아삭! 하고 씹은 뒤 티비나 봤다.

체널도 별로 없고 대부분 뉴스지만 그래도 시간 죽이는데는 이것만 한 게 없거든,

마침 티비에는 태양길드와 미르가 정식적으로 계약을 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다.

"보호 계약이라... 하긴 미르에는 이제 S급 각성자가 없으니까."

"무슨 소리세요. 미르에 S급 각성자 있는데요?"

"응? 이수아 사라지고 나서 미르에 있는 S급 각성자는 전부 사라진 거 아니었어?"

연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사라졌던 이수아가 돌아왔어요. 혁명단을 피해서 잠시 사라졌던 모양인데, 지금은 식스랑 화해하고 도시를 지키는 S급 각성자라는 입장으로 적당한 종교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의외네, 저번에 보여줬던 광기를 생각하면 절대 타협 같은 건 안 할 줄 알았는데...

"늦게라도 정신 차린 것 같으니 다행이죠.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상태라서 예의주시하고 있긴한데, 태양길드의 무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함부로 움직이진 못 할거에요."

하연이가 배를 아그작 씹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수아 저년도 우리 오라버니 좋아하지 않았어? 아마 오라버니가 천마신교에 있는 줄 알고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데려와야 하나?"

정적이 흘렀다.

아마 다들 싫다는 뜻이겠지.

평소에 이런 정적을 해소해 주는 천마조차 입을 다물고 있는 걸 보면, 천마도 이수아는 싫나 보다.

"일단 말 없이 있을까요?"

"그래, 나중에 들키면 들키는 거고, 일단은 숨긴 채로 있자."

하연이와 연하의 의견에 아무도 거부하는 사람 없이 계속 정적을 유지했다.

'하긴, 지금이야 좀 괜찮아졌지만, 처음 수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애들이 완전 빡쳐했지.'

감히 누구 오라버니한테 세뇌를 걸었냐면서 노발대발 했던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천마도 이수아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보이고."

천마의 기억력이면 이수아의 번호정도는 무난하게 기억할 텐데 일부러 바꿔서 부르잖아.

어떻게 보면 내가 천마랑 오랜 시간동안 만나지 못 한게 이수아의 탓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세뇌만 없었으면, 내 정신이 안정화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아마 바로 중국으로 데려가지 않았을까?

"흐음, 다들 좀비가 된 기분이에요. 아무리 저녁도 다 먹고, 마땅히 할 것도 없다지만, 다들 티비만 보고 있는 건 너무 재미없다는 생각 안 해요?"

정적이 찾아온 거실의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연하가 입을 열었다.

"그럼 무엇을 할까? 이런거 라도 하면 되나?"

천마가 내 어깨에 자신의 팔을 걸어왔다.

"꽁냥질은 이따가 밤에 하시고요. 저희가 다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좋으나 싫으나 이제 저희는 식구고 천천히 친밀감이나 추억을 쌓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거 있어?"

하연이의 말에 연하가 곰곰히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보드게임이라도 하실래요? 찾아보니까, 대격변 이전시대에 생산된 걸 복각해서 만들어 놓은 것도 많던데."

"보드게임?"

"네! 보드게임이요!"

"괜찮은 것 같다. 서로 웃으면서 즐겁게 이야기 하다 보면, 없던 친밀감도 생기기 마련이지."

"그러면 내일 저녁까지는 제가 구해 놓을게요."

평화롭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몸에 무료감이 찾아왔다.

한참 바쁘게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평화가 찾아와서 그런걸까?

아마 내일만 되도 이 평화에 익숙해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익숙해 져야 한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천마가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는 지금처럼 아무런 위협 없이 평화롭게 살 테니까 말이야."

"익숙해 질 거야. 하지만, 너희한테 보호만 받고 살 생각은 없어."

다른 취미나 내가 할 수있는 일을 찾아봐야 겠다.

연하한테 업무를 배워도 좋을 것 같고, 아니면, 사장님께 기술을 배워보는 것도 좋겠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기엔 내 성미가 버티지를 못하니까.

"그러면 나는 이만 들어가서 자보겠다."

천마가 자연스럽게 내 손목을 잡고 일어났다.

"아직 9시도 안됐는데 벌써 오라버니를 독점하려는 거에요?"

"이해해 다오, 나는 지금까지 아해랑 같이 자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늘은 길게 즐기고 싶구나."

천마의 부탁의 다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방에 들어가서 자면 되지?"

"기사님 방에 가서 주무시면 돼요."

"안내해라 아해야."

팔목에 천마를 메단채 방으로 이동했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천마가 내 팔목을 잡고 침대에 누웠다.

천마가 자연스럽게 내 자세를 조정해서, 서로가 마주 보는 자세를 취하게 됐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천마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해 있었다.

"진짜 꿈만 같은 일이다. 내가 아해와 함께 잠자리에 들다니..."

"사실 꿈 맞아."

"나는 진지한데 꼭 그런 장난을 쳐야 겠나?"

살짝 부풀려진 천마의 볼을 콕 찔렀다.

"이런 장난기 많은 성격까지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맞다 내가 아해의 어떤 면을 싫어할 수 있겠나."

천마가 나를 꼬옥 안아왔다.

"일단 오늘은 이러고 자자, 아해와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오늘은 그냥 마음편하게 자고 싶구나."

"알았어. 너도 잘자."

천마를 마주 안았다.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는 천마의 손길을 느끼고 있다보니 어느순간 잠에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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