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일상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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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가연이의 실책이었다.
어린애한테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해선 안되겠지만, 만약 가연이가 반대를 했었더라면 당장 원정을 떠나진 못했을 지라도 가연이가 악인 사실은 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천마 입장에서 가연이가 악인 걸 추리해 낼 수 있었냐고?
'당연한 거지, 가연이가 합리적인 플레이를 한다고 가정하면, 가연이가 될 수 있는 건 악밖에 없으니까.'
자기가 선이라면, 자기가 안 가는 데 굳이 찬성을 줄 필요가 없다. 심지어 가연이는 반대만 계속하면 결국 자기 차례가 돌아오는 상황이기도 했으니까.
'잠시만... 천마의 입장에서 정말 수가 그것 밖에 없나?'
나는 가연이가 악인 걸 알지만, 천마는 그걸 모른다.
만약 천마 입장에서 가연이가 멀린 이라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가연이는 가는 사람들 중에서 악이 한 명도 없었으니, 찬성표를 던진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확률이 낮으니까 배제한 건가?'
아니면 본인이 멀린이라서 가연이가 멀린이라는 선택지는 제거하고 말 한걸까.
"그러면 원정을 떠나지."
망설임 없이 실패카드를 제출했다.
블러핑을 한 번 섞는 것도 좋겠지만, 내가 실패를 냄으로서 실패 스택 2개가 쌓이면 승리 가능성도 높아지고, 내가 실패를 낸다고 나만 의심을 받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원정은... 실패했어요. 흑흑."
"가식적이군,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아니거든요!"
"대충 감을 잡았다. 다음 원정을 진행하지."
다음 원정 대장은 월하였다.
"가연이는 일단 악일 확률이 높고... 일단 저랑, 리우잉씨, 그리고 천마님, 마지막으로 아리랑 같이 가도록 할게요."
"위험하지 않겠나?"
"위험해도 답이 없잖아요. 일단 이렇게 가서 선을 어느 정도 확정 지어놔야 될 것 같아서요. 결국 마지막엔 선만 5명을 뽑아서 원정을 가야만 하니까요."
천마가 나를 슬쩍 바라봤다.
"만약 아해가 악이라면 게임이 아마 이 시점에서 게임이 끝날지도 모르지. 아해가 악이라면, 월하와 리우잉 중에 악이 있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가니까. 그런데 아해가 악일 거란 생각은 안든다. 아해가 악이라면, 악이 악이랑 같이 원정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는 건데, 그건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플레이다. 둘 다 실패를 내면 바로 게임이 끝나는 것 아닌가."
내가 선이라면, 이 조합에 찬성표를 던지라는 의미겠지?
어차피 천마의 가정 속에서 불확실한 건 아리 하나 뿐일 테니까. 내가 악이 아니라면, 연하 하연 중에 악이 하나, 아리, 사현 중에 악이 하나, 가연이가 악 이니까. 리우잉, 월하는 거의 확정적으로 선이다.
'까짓거 뭐, 찬성해 주지 뭐.'
가는 사람들과 나까지 해서 찬성이 5장이 나왔다.
원정의 결과는? 말 해 뭐해, 당연히 성공이지.
"오케이! 일단 이 4 명은 선이다!"
천마, 왤케 하이텐션이야?
"다음 원정은 5명이 가지만, 실패 한개까지는 허용되는 원정이에요. 악을 걸러낼 수 있는 마지막 찬스죠."
"일단, 주의해야 할 점은 5번째로 선택권이 있는 자가 연하라는 거다. 저 자에게 선택권을 줬다간 게임이 바로 끝날테니, 4번째에서 끊는 것이 맞겠지."
"왜 자꾸 저한테 그러세요!"
리우잉이 잠시 고민하더니, 아까 가서 성공했던 조합에 자신 한 명만 꼈다.
"이대로 가도 성공은 하겠지만 조금 돌려보는 것이 어떠한가. 되도록이면 다음 5번째가 나나 월하까지 왔으면 좋겠거든. 그리고 정보도 필요하고 말이지."
시작하기 전엔 엄청 딴지를 걸더니 막상 시작하니 천마 얘가 제일 적극적인거 같아.
일단 원정대는 모두 반대로 돌아갔다.
가연이와 사현이의 픽도 반대를 먹고 물러났고, 아리의 차리의 차례가 다가왔다.
"음... 일단 아까가서 성공했던 분들이랑, 하연이 언니랑 같이 갈래요!"
"여기서 통과 시켜야 한다. 연하는 위험하다."
"아니, 확률적으로 하연 언니랑 저랑 악일 확률이 똑같은 데 왜 저한테만 그래요!"
"반응이 격한것이 악으로 의심된다."
아예 불가능한 말은 아니었다.
이 게임, 일단 마피아 류 게임이니까. 상대 반응 보고 상대의 캐릭터를 유추할 수 도있자.
일단 투표는 성공으로 연결됐다.
그리고 떠나간 원정의 결과는 전부 성공.
'하지만 이걸로 하연이의 결백이 증명되진 않아.'
지금시점에서 실패를 냈다간 당연히 악으로 낙인찍히는 거니까, 하연이가 악이더라도 무조건 성공을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스코어 2대2! 치열한 경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하도 아까 성공한 조합에 자신만 끼워넣었지만 역시나 반대를 먹고 물러났다.
하연이 역시 4번째 원정과 같게 원정을 선택했는데 조금 더 지켜보자는 천마의 선동으로 넘어가버렸다.
"나랑, 아까 3번쩨에 갔던 사람들."
"아해..."
천마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갑자기 아해가 악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뭐? 갑자기 왜?"
"아해라면 처음에 악을 두 명 데려가는 짓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하연의 결백은 거의 확실하다. 더 확실한 픽이 있는데 아해를 선택할 이유는 없지."
하연이의 결백이 확실하다라... 연하를 악으로 가정하면 그건 당연한거지, 연하와 하연이가 악이고, 가연이도 악이라고 치면 두번째 원정에서 실패가 나올 이유가 없으니까.
억지로 눈물을 찔끔내서 축 저진 연기를 해 보였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반대를 하던가..."
"! 게임일 뿐이다! 너무 실망하지 마라."
당황해서 나를 달래주는 천마가 귀여워서 무심코 웃음이 나올 뻔했다.
"몰라, 반대해."
투표에서 나조차 반대를 하고 넘어갔다.
천마의 차례에서 하연이를 포함한 다섯명이 원정을 떠났으며, 결국 올 성공으로 게임이 끝났다.
"악이 누군지, 밝혀야 하지 않는가?"
아직 사현이가 악이라는 상황도 나올 수 있었기에 천마가 내 눈치를 살폈다.
"밝히긴 해야죠. 악은 자신의 카드를 뒤집어 주세요."
나와 연하, 가연이가 카드를 뒤집었다.
암살자는 연하였다.
"뭐야! 아해가 악 맞지 않은가!"
천마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정도 연기는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 처음부터 악 두명이랑 같이 가다니 정말 발칙한 생각이군."
"일단 제가 멀린을 찾아서 죽이면 되는데, 저희 모두 하나, 둘, 셋 하면 멀린 같은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볼까요?"
"응? 왜 굳이 그런일이 필요하지?"
"이번 멀린은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너무 티 났거든요."
연하가 씩, 하고 웃었다.
"하나, 둘, 셋!"
모든 사람이 일제히 천마를 가리켰다.
심지어 어린애들 조차 한치의 망설임 없이 천마를 가르킨 걸보면, 천마의 플레이가 얼마나 티가 났는지는 쉽게 유추 할 수 있겠지.
"아니, 왜 내가 멀린이라고 생각하는가!"
부끄러운건지, 볼을 붉히며 소리치는 천마는 꽤 귀여웠다.
"아니 누가봐도 멀린이잖아요! 아무런 근거 없이 저를 악으로 몰아가는 게 어딨어요?"
"자네가 악처럼 행동해서 악이라고 한 거지 내가 멀린이라서 알고 있던 게 아니다!"
"아무튼 플레이가 너무 티났어요. 빨리 카드 까세요."
천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카드를 깔락 말락 고민 하길래 내가 대신 까줬다.
"아해야 대체 뭐하는가?"
"힘든 것 같아서 내가 대신 까줬지."
천마의 카드엔 '멀린' 이라는 두 글자가 명확하게 박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안거지?"
"아니 플레이가 너무 티났다니까요? 설마 자기 플레이가 잘했다고 생각한 거에요?"
연하의 말대로 천마는 자기가 멀린이 티를 너무 많이 냈다.
일단 연하가 악이라는 확실한 배재가 모든것을 말아먹었다.
만약 연하가 악이 아니라면? 내가 악이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정에서 실패를 낸 사람이 둘 다 나라면?
당연히 리우잉과 월하의 결백이 밝혀지지 않기 때문에 세번째 게임에서 박살이 났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세번 째 원정단은 월하가 꾸리지 않았냐고?
'천마가 너무 강하게 멀린티를 내고 있으니까, 월하도 천마의 의견을 들어준거지.'
"... 암살자가 멀린을 죽여서 악이 승리하는 설정이지?"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여 보거라."
천마가 기세를 방출했다.
집 전체가 덜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 작자야 게임이라고요! 너무 과몰입 하지 말라고!"
연하가 자기 머리를 쥐어 뜯으며 소리쳤다.
기세를 방출하는 천마를 뜯어 말리고, 빠르게 카드를 정리했다.
정신 없고 난장판이 된것 같긴한데, 그래도 상당히 재밌었다.
"재밌는데? 나중에 몇 판 더하자."
"좋아요! 두고두고 즐겨요."
"흥, 나는 싫다."
천마가 삐지기라도 한듯 고개를 휙하고 돌렸다.
"정작 다시 하면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할 거잖아?"
"진짜 안할거다."
천마가 소파로 빠르게 걸어가 강하게 앉았다.
'화 좀 풀어줘야 겠네.'
쟤는 왜 자기가 잘 못 한거 가지고 남한테 화를 내는 걸까. 조심스럽게 천마의 옆에 앉아서 천마에게 몸을 기대니, 천마도 피하지 않고 내 몸을 받아들였다.
"큼큼, 이런다고 화 안 풀린다."
'안 풀리긴 무슨, 누가 봐도 풀려가는 얼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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