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일상11
* * *
"그렇게 까지 나랑 자고 싶어?"
목소리를 평소보다 낮게 깔고 물어보니 천마의 볼이 훅하고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 목소리 내지마라..."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그래, 자고 싶다. 얼마만에 아해랑 만난 건데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아해의 옆에 붙어 있고 싶다. 가끔은 아해를 데리고 저 멀리 떠날까 하는 감정이 치솟기도 한다."
천마가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하지만 그래선 안됨을 안다. 나는 내가 아해를 좋아하는 만큼 아해가 나를 좋아해 주길 원하며, 다른 애들 또한 나만큼 아해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나는 아해가 인정해 줄 수 있는 영역안에서 아해의 곁에 최대한 붙어 있을 수 있게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천마가 내 바로 앞까지 붙어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 정도는 그냥 애교라고 치고 같이 자주면 어디가 덧나나?"
그리 말하는 천마의 눈이 어딘가 애처로워 보였다.
"안돼, 다른 애들이 억울해 할 거 아니야."
천마의 눈에 애처로움이 완전히 새겨지기 전에 얼굴을 움직여서 입을 천마의 볼에 가볍게 댔다.
'내가 먼저 스킨십을 건건 이게 처음인가?'
늘 다른 애들이 나한테 스킨십을 걸고, 부탁 받았을 때 움직이기만 했지. 내가 먼저 다가간 건 처음인 거 같은데.
천마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고작 볼뽀뽀 한 번 한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하자?"
"알았다! 만족했다."
천마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니 다른 애들의 제지가 들어왔다.
"자 로맨틱 영화는 이쯤 찍으시고요. 감동적인 장면은 이제 끝난 것 같으니 떨어지시죠!"
"알았다. 난 이미 충분히 만족했다."
천마님천마님 거리던 연하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천마를 향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연하만 남았다.
'쟤는 과거에 태어났으면 간신이 됐을 것 같아.'
아닌가? 박쥐가 됐으려나.
"솔직히 같이 자는 것 보다 이게 훨씬 더 기쁘군, 아해가 먼저 나에게 애정 표현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니."
'처음... 맞겠지?'
기분 풀어주려고 몇 번 한 것 같기도 한데.
"로맨틱 영화찍지 마시라니깐요!"
"부럽나?"
천마가 연하에게 다가갔다.
내 쪽에서 보이는 천마는 뒷모습 뿐이라,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잔뜩 약올리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애정이 고프다면 내가 주도록 하지."
그러더니 재빨리 연하의 뒤로 이동해서 연하를 꼭 안아버렸다.
"뭐하시는 거에요."
"귀여운 동생 안아 준다만? 불만 있나?"
상당한 장신인 천마가 엄청난 단신인 연하를 안고 있자 그림이 멋들어 지게 나왔다.
연하가 반항적이면서도 부끄럽다는 듯 츤데레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잘 어울렸다.
"그러면 이제, 다들 기세를 감추고 아해의 사냥을 구경하도록 하지."
"그거 끝난 거 아니었어? 굳이 해야 해?"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가 아해에게 총기술을 배우기 위함이었는데."
여기서 나한테 총기술을 배워야 하는 사람은 리우잉 밖에 없는 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솔직히 말해서, 내가 뭐라고 알려주든 아무런 의미 없지 않아? 너희 들 전부 나보다 잘 쏘면서 도대체 뭘 알려달라는 거야?"
"알려달라는 건 핑계죠."
월하가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희는 그냥 기사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에요. 이렇게 웃고 떠들고 재밌게 지내는 이 시간 자체가 저희한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랍니다. 기사님은 저희랑 같이 다니는 게 피곤하세요?"
"그건 아닌데..."
저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그러면, 너희를 가르친다기 보다는, 내가 어떻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지 알려주는 느낌으로 설명해줄게. 일단 다들 기세 없앴지?"
애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땐 합이 아주 잘 맞는 다니까?
"사실 몬스터 잡을 때는 그냥 몬스터 용 탄환 쓰는데 몬스터용 탄환이 없다는 가정하에는... 권총을 안 쓰는데?"
"그게 뭐에요! 시시하게 끝내지 마요!"
아니 진짜 안 쓰는데 어떡하냐, 몬스터한테는 일반 탄환 쏘는 것 보다 달려들기를 기다렸다가 칼로 한 번 쑤시는 게 낫다니까?
"어쩔 수 없잖아. 진짜 안 쓰는 걸 어떡해. 얘네들한테 일반 탄환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냥 가서 칼로 베는 게 나아."
"그러면 오라버니가 칼도 없다고 가정하고 몬스터랑 붙어봐요."
"... 단검이 없다고?"
그건 좀... 아니 많이 빡센데?
내가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싸움실력 덕분이 아니다.
물론 내 실력도 충분히 대단하기는 하지만, 비각성자의 신체 능력 정도로는 몬스터에게 피해를 못 입힌다.
그나마 천마가 만들어준 단검 덕분에 싸울 수 있는 건데...
"일단 한 번 해볼까?"
재밌는 도전이 될 것 같은 느낌에 단검을 집어 넣고 권총만 꺼냈다.
"순수 몬스터용 총알 말고, 추진력을 더하는 방식의 총알도 안돼?"
"네! 안돼요. 무조건 일반 탄환만 사용하셔야 해요."
그렇게 하면 못 잡는다니까 그러네.
'야, 이수현.'
'왜?'
'아예 방법이 없을 것 같진 않은데? 네 몸에 마나가 있잖아.'
그 쥐꼬리 만한거? 그걸로 뭐 어쩌겠다고?
'마나를 탄두 부분에 두르면 어느정도 피해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응, 안돼.'
우리 마나량으로는 탄두는 커녕 총을 지나가는 동안 마나가 다 사라져버릴 거란다.
단검을 사용해서 일시적으로 큰 위력을 낼 수 있는 건 단검 중심부에 있는 마나를 잠시 밀어내서 단검부에 가져다니까 가능한...
'잠깐.'
'너도 그 생각했냐?'
단검의 중심부에 마나가 다량 저장되어 있다면, 그 마나를 가져다가 쓸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이 단검의 재료는 쌍뿔이었던 외뿔이의 뿔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S급 몬스터의 신체니 만큼, 나름 마나도 잘 통하지 않을까?
'이거 되는데?'
온몸의 감각을 끌어서 내부를 확인하자 단검을 통해서 극소량의 마나가 내 몸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워낙 소량의 마나라서 단검을 들고 내리찍을 땐 큰 의미가 없었을 것 같았지만, 1분쯤 모으다 보면 탄환하나 정도에 씌우기에는 충분한 양이 모일 것 같았다.
'근데 이렇게 까지 해야 되냐? 너 어차피 강해지는 건 포기했다면서?'
'그래도 가능 할 것 같으니까, 한 번 시도라도 해보자. 안 될 것 같으면 포기하면 되지.'
현수가 단검에서 나온 마나를 탄환에 차곡차곡 쌓고 유지 시켰다.
현수의 머리가 빠개질 듯 집중하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난 멀쩡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거 아니니까.
"저기 뱀 한 마리 있는데요?"
자이언트 스네이크 한 마리가 우리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만만한 인간들이 무더기로 있으니 오랜만에 만찬이라도 즐기고 싶은가 보지?
현수의 집중을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권총을 조준했다.
키야아아아아아아악!!!
아무리 마나를 둘렀어도 몬스터의 단단한 외피를 뚫고 지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이 정도 거리에서 놈을 직접 타격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말했었나? D등급 게이트에서 나오는 자이언트 스네이크는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돌진하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몬스터라고,
저 놈도 마찬가지로 입을 쩍 벌린 뒤 나에게 돌진했다.
최대한 기다렸다. 입안에 쏘는 것 만으로도 나름 피해를 입힐 수 있겠지만, 겨우 그 정도로 이 놈을 잡을 순 없으니까.
'뇌를 노려야지.'
녀석이 나를 물기 직전에 방아쇠를 당겨서 입천창을 뚫어 버리고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키야아아악!!
그렇게 자이언트 스네이크가 나를를 물기 직전에
탕!
입안에서 총을 쐈다 보니 굉장히 커다란 소리가 울려퍼졌다.
문제는 내가 총의 위력을 너무 과신했다는 것일까?
자이언트 스네이크는 고작 총알 한 발로 쓰러지지 않았다.
잠깐 주춤했던 입은, 다시 빠르게 닫혀가고 있었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나를 물려던 자이언트 스네이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 천마를 바라보니,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는데, 저렇게 편안한 표정으로 나는 멀쩡히 내버려 두고 자이언트 스네이크만 흔적도 없이 없애 버렸다고 생각하면, 역시 세계관 최강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탄환에 마나를 모으는 걸 보고 뭐하나 싶었건만, 뻔한 전략을 구사했더구나."
"뻔하긴 한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잖아? 눈을 맞추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것도 결국 입천장에 쏘는 거랑 비슷했을 걸"
"눈을 노렸다면 아해가 방금처럼 위험에 빠질 일도 없었겠지."
"위험은 무슨 위험이야, 너희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위험에 빠져?"
애초에 내가 진짜로 위험했으면, 천마 너는 그렇게 평온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니라 나한테 화를 내고 있었을 거잖아.
그렇게 평화로운 표정으로 넌 위험했어! 라고 해봤자, 진짜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들었다.
"아니, 위험한 것 맞다. 아해가 자기 몸을 소중이 하지 않은 죄를 물어 벌을 줄터이니 말이다."
네? 갑자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