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캣 파이트1
* * *
시간이 지나 천마가 다 같이 자자고 했던 날이 찾아왔다.
평소엔 12시는 돼야 잠자리에 들어갔는데 오늘은 천마를 필두로 고작 8시에 잠자리에 모였다.
여자들은 각자의 잠옷을 입고 침대에 앉았는데, 각각의 개성이 뚜렷해서 눈이 굉장히 즐거웠다.
"그러면 지금 부터, 제 1회 캣 파이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
연하의 말에 월하와 하연이가 영혼 없는 환호성을 냈다.
"근데 왜 캣 파이트야?"
"찾아보니까 한 남자를 두고 여자들끼리 싸우는 걸 캣 파이트라고 하더라고요."
"너희 싸울 거야?"
제대로 싸우면 우리 도시 날아갈텐데?
"당연히 진짜로 싸우는 것은 아니다... 그래, 굳이 따지면 운동회라고 생각하면 편하겠군, 간밤에 놀면서 친목도 쌓고, 승자는 상으로 아해를 취하기도 하고 하는 거지."
"뭐야 그게..."
"그러면 첫 번째 종목을 발표하겠습니다!"
연하가 텐션을 끌어올렸다.
"첫 번째 종목은 바로... 알까기 입니다!"
"알까기?"
캣 파이트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너무 소박하지 않아?
"첫 종목이니까 가볍게 가는 거죠. 상으로 걸린 건 저희 오라버니의 포옹입니다!"
이래서 저항하지 말라고 했구만?
"그러면 판 가져 올게요."
연하가 나무로 만든 판과 바둑 돌 여러개를 가져왔다.
"토너먼트 그 딴거 없고요. 승자 연전제입니다. 이긴 사람이 계속하고 모두를 쓰러뜨리면 바로 우승이에요!"
연하가 하얀알 5개, 검을 5개를 바둑판 위에 뿌렸다.
"1차전부터 들어가고 싶은 사람?"
나나나나나나!!
리우잉이 손을 빠르게 흔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리우잉씨가 우승하면 현수오라버니가 나오셔서 포옹해 주셔야 합니다."
'나는 그런 약속 한적 없는데...'
'그래서 싫어?'
'당연히 좋지.'
"리웅씨말고 다른 분?"
"제가 한 번 해볼까요?"
연하가 리우잉의 바로 앞에 섰다.
"먼저 치세요"
나한테 선공을 넘겨줘도 되겠어?
리우잉이 바둑알 하나에 손을 가져다 대고 이리저리 팔을 움직이며 각을 잡았다.
그리고...
타다다닥!
단 한 번의 튕김으로 무려 4개의 돌을 떨어뜨려 버렸다.
아자! 현수야 기다려라 누나가 간다!
"월하언니, 마나는 못쓰는 거 아시죠?"
"알아요."
월하가 돌을 잡더니 신중히 손을 튕겼다.
하지만 월하의 돌은 고작 두개를 떨어뜨렸을 뿐이다.
'두 개 떨어뜨린 것도 엄청 잘 한 건데 하필 리우잉이 상대여서...'
당연히 다음 리우잉의 차례에 하나 남은 월하의 돌이 떨어졌다.
다음 나와!
리우잉은 파죽지세로 다른 사람들을 이겨나갔다.
모든 적을 상대로 2턴 만에 게임을 끝냈다.
이 정도면 모 영화에 나오는 보라돌이씨 보다 대단한 게 아닐까? 걔는 반밖에 못 없애잖아.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제자야."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안 봐드려요!
어지간하면 천마가 이기겠지?
리우잉도 분명 뛰어난 실력자지만 상대가 나빴다.
내 머릿속엔 이미 리우잉이 첫발에 천마의 알 4개를 날려버리고 남은 알 하나에 다른 모든 알이 털려 버리는 미래가 그려졌다.
"먼저 하거라."
천마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리우잉에게 선턴을 양보했다.
후후후후후, 모두들 말했지. 나는 머리 쓰는 건 잼병이라고.
타다다다닥!
리우잉이 아주 가볍게 천마의 모든 알을 날려버렸다.
그 말도 안되는 기행에 내 입이 쩍하고 벌어졌지만 천마는 아주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부로 넘겨 준건가 보네.'
자기 제자라고 챙겨주는 건가?
'나와 이새끼야.'
'알아서 나올 건데 굳이 욕까지 해야했니.'
현수가 내 몸을 조종하자마자 리우잉을 꼭 안았다.
커플들 다 뒈져버려라.
나는 커플아니냐고?
맞아 이 솔로들아.
"그러면 2차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2차전을 진행할 동안 두 분은 계속 안고 있어주시면 됩니다. 따라서 리우잉씨는 2차전 참가 못해요."
그런게 어딨어!
"아까 설명해 드렸잖아요! 여기서 룰 모르는 사람은 수현오라버니랑 현수 오라버니밖에 없는 데 사기 치려고 들지 마요!"
너희는 다 생각이 있었구나?
"그러면 2차전! 손바닥 치기! 아까처럼 승자 연전제로 치뤄집니다. 보상은 오라버니의 백허그 마찬가지로 이번 라운드 승자는 다음 라운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손바닥 치기라... 누가봐도 천마가 압승할 것 처럼 보이는데.
애초에 기술 수준이 차원이 다르잖...
'설마, 지금 천마를 나에게 넘기고 다음 경기에 좋은 상품을 걸려는 속셈인가?'
어쩌면 천마가 리우잉에게 포옹기회를 양보한 것이 리우잉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천마가 다리에 쥐가 났다고 자리에 주저앉고 하연이가 승리해서 백허그를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정말 사소로운 종목들과 약한 보상의 경기가 계속됐다.
"이제 슬슬 무거운 상품을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후우... 알았어요. 이번엔 전경기 우승자도 참여할 수 있는 경기입니다. 그 보상은 무려 오라버니의 볼 키스!"
"질문! 볼 뽀뽀가 아니라 키스면 혀도 사용해 주실까?"
"누가 볼에 입 맞추는데 혀를 써요?"
"쳇."
하연아 네 음습한 욕망을 여기서 들어내지 마렴, 애들 문화 충격 받아.
"보상이 큰 만큼 난이도도 올라갑니다! 종목은 오라버니에게 죄송합니다! 혹은 미안해! 라는 말 듣기! 절대로 오라버니한테 손대면 안되고 말만 사용하셔야 합니다. 걸린 시간을 측정해서 가장 빨리 죄송하다는 말을 들은 한 명이 오라버니의 입술을 자신의 볼로 더럽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연하야, 문장 선정이 이상하다? 굳이 내 입술을 더럽힌다는 표현을 써야 겠니?
"제가 먼저 해볼게요."
월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다가왔다.
"시...작!"
"내 돈을 훔쳤더구나?"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저번에 월하와 같이 잤을 때 소매치기와 기사라는 컨셉으로 컨셉플을 했는데 그 때 트라우마가 너무 강렬하게 남아서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아...아닙니다."
"아니긴 뭘 아니야. 감히 기사의 돈을 훔쳤으니 벌을 받아야 겠지?"
"죄...죄송합니다..."
"끝! 7초 47! 엄청나게 빠르게 끝났습니다!"
"나 기권할래..."
"나도 기권하겠다."
"저도 기권할거에요..."
엄청난 스피드에 모두 기권을 선언할 때 리우잉이 나에게 다가왔다.
현수야, 나와봐.
다시 의식을 교체했다.
"그러면... 시..."
리우잉이 현수의 귀 근처에 입을 가져다 댔다.
"작!"
현수 사지 자르고 싶어, 잘라서 나만 보게 만들고 싶어, 현수의 팔다리를 먹는 걸 구경시켜주고 싶어, 그걸 보고 절망하는 현수의 표정을 보면 너무 귀여울 것 같아, 이거 전부 다 네가 꿈속에서 납치돼서 일어난 일이니까 전부 네탓이다? ♡
리우잉이 정말 상큼한 말투로 빠르게 말했다.
상큼한 말투와는 다르게 말의 내용은 굉장히 끔찍했기에 현수의 몸이 공포로 떨렸다.
"자..잘못했어요."
현수가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6초 96! 리우잉 선수 엄청난 속도로 승리를 차지합니다!"
히히 내가 이겼다.
리우잉이 자신의 볼을 톡톡 쳤다.
누나한테 볼뽀뽀 해줘야지?
"알았어...요..."
현수가 리우잉의 볼에 입을 맞췄다.
리우잉의 눈치를 보며 입을 쉬이 때지 못하는 걸 보니 진짜로 겁 먹은 모양이다.
"끝! 도대체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에요!"
현수가 안 떨어지는 걸 어떡해~ 현수도 누나가 좋지?
결국 연하가 나서서 현수를 분리해 냈다.
'사지 자른다는 말은 애정표현이라면서? 왜 그렇게 떨어?'
'진심으로 하는 말인 줄은 몰랐지.'
'에이, 장난 일거야. 너한테 빨리 사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까, 엄청 진지하게 말한 것 뿐이겠지.'
'그렇겠지?'
미안 새빨간 거짓말이란다.
너도 이 생각을 읽고 있겠지.
'이 쌍놈이...'
아니 저렇게 묵직하게 꽃아 넣는데 어떻게 장난이야. 누가 봐도 진심이잖아.
아마 나의 존재랑 나를 좋아해주는 여자애들이 없었으면 넌 이미 사지가 잘려서 어디에 감금됐을 거다.
밖에 나갈 일 있으면 입막고 배낭 같은 거에 넣고 다녔겠지.
"리우잉... 방금한 말 진심으로 한 말이냐?"
진심이긴 한데, 진짜로 할생각은 없어! 현수는 내 소중한 동생이니까. 망상은 망상으로만 남길거야!
"그렇다고 하기엔 저번에 저한테 와서 사람은 어떻게 괴롭히는 게 좋은지 물어보셨잖아요."
괴롭히기만 하는 건 괜찮지 않아? 사지가 날아가면 복구가 안되지만 적당한 상처는 치료할 수 있잖아!
'그렇댄다.'
'...누나한테 괴롭힘 당하는 건 괜찮을 지도.'
이상한 길로 빠지지 마라 현수야.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도록 할게요. 이제는 진짜 캣 파이트 입니다! 종목은 엉덩이 씨름!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밀어서 먼저 바닥에 발을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가 닿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보상은 바로...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오늘 하루동안 오라버니의 엉덩이를 마음껏 주물럭 거릴 수 있는 권리입니다!"
애들의 눈빛이 아주 진지하게 바뀌었다... 아니 왜 바뀌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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