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캣 파이트4
* * *
하연이가 리우잉을 씩씩 거리면서 노려봤다.
내가 왜? 나는 그냥 아까부터 생각해 왔던 말을 했을 뿐이야.
"맞아요. 하연언니, 과민 반응하지 마세요. 누가 보면 찔리는 줄 알겠어요."
"찔리니까 하는 말 맞거든!"
이야, 하연이도 당당하네.
"아무튼 오라버니, 누가 가장 잘 삐질 것 같으시죠?"
"연하."
나를 보고 해맑게 웃고 있던 연하의 얼굴이 그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네? 왜 저에요?"
"이미지잖아. 그냥 그럴 것 같아서 말했는데?"
"아니, 왜 제가 가장 잘 삐질 것 같은 이미지냐고요?"
"몰라, 그냥 그럴 것 같아서 그랬어."
하연이가 아주 통쾌하다는 표정으로 연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하는 억울함을 잔뜩 담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죠..."
연하가 눈을 무섭게 빛낸다.
"다음 제 차례다, 이거에요."
연하가 입가를 씩 올렸다.
"여기서 오라버니를 가장 안 괴롭힐 것 같은 사람은?"
내가 너를 안고르면 나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니?
그런데 어떡하냐.
"연하 넌데?"
"아, 생각 잘 못했다."
너를 골라버리면 너만 왕창 손해 보는 거잖아.
나를 괴롭힐 수도 없고 괜히 점수만 먹고.
"이번엔 왜 또 저에요?"
"월하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왜 저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거죠?"
넌 사디스트잖아. 제일 많이, 그리고 제일 무섭게 괴롭히는 주제에 뭘 물어?
"천마도 나름 나를 많이 괴롭히고."
"본좌가 언제 아해를 괴롭혔다는 것이지? 본좌는 늘 아해를 사랑으로 대했다만?"
내 엉덩이는 너에게 유린 당한 과거를 기억하고 있단다.
"하, 아직 진정한 괴롭힘을 당해 보지 못해서 그런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해야. 다음 나랑 같이 잘 땐 단단히 각오하고 오도록해라."
괜히 혹 때려다가 더 센 혹을 붙인 느낌인데...
"저는요?"
"지금은 괜찮은 데 옛날엔 성격나빴잖아. 오빠 지배하려고 들고, 협박하고."
"지금은 안 그렇잖아요!"
"근데 연하는 예전에도 그런적이 없거든."
나는 왜? 리우잉은 엄청 착하단 말이야!
'그렇다는 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우리 누나 참 착하지... 그런데 저번에 월하한테 괴롭히는 방법 배워온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그것 때문에 연하한테 점수를 준거야.'
"리우잉은 저번에 월하한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제외했어."
"크윽, 제가 제일 덜 괴롭힐 것 같다 이거죠. 제가 오라버니한테 본때를 보여드리고 말겠어요."
글쎄? 가능하겠어? 네 언니도 처음엔 완전 공세였다가 바로 역전당했는데.
"네 연하선수, 지금 2점으로 단독 꼴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마가 아까 연하한테 당했던 걸 갚아주듯 아까의 연하와 똑같은 말투로 말했다.
"게임은 끝까지 봐야 아는 거에요."
"이제 제 차례죠? 가장 기계치일 것 같은 사람."
망설임 없이 천마를 가르켰다.
천마라는 이름자체가, 그냥 기계랑 안친하게 생겨먹은 이름이잖아?
"이번엔 왜 또나냐?!"
"이미지 게임이잖아? 이름에서 와 닿는 이미지가 기계치일 것 같았어."
"억울하다! 애초에 본좌의 이름은 천마가 아니다!"
"그래, 1호."
"1호도 아니야!"
"그렇게 화낼거면 이름을 말해주지 그래?"
"그건... 말할 수 없다. 아직은."
그렇대. 못 말해 준데.
"아무튼, 다음은 천마 네 차례야."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지?"
천마가 기세를 강하게 풍기며 나를 내려다 봤다.
'시발... 뭐가 정답이지?'
천마를 고르면 내가 그렇게 무섭나? 하면서 공격해 올것 같고, 월하를 고르면 내가 무섭지 않나? 하면서 공격해 올 것같다.
'어디를 골라도 내가 지는 이지선다 아니야?'
왜 문항이 두개인데 둘 다 오답이냐고, 정답 내놔!
'야, 이거 객관식 아냐, 서술형이야.'
'서술형이라고?'
내 머릿속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지나갔다.
"다 안 무서운데? 다들 나를 좋아해주고 사랑해주는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들인데 내가 어떻게 너희를 무서워할 수 가있겠니?"
급한 마음에 애교까지 담아서 말하자 천마의 표정이 훅, 하고 풀어졌다.
'정답이다, 본체여!'
'고맙다! 덕분에 답을 찾아낼 수 있었어.'
"아, 안 무서우시다는 거죠?"
월하가 빵끗하고 웃었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난 예상했는데! 멍청한 본체 같으니라고.
안 무섭다는 거지?'
'이것까지 예상했니?'
'아니...'
"그러면 이 질문은 무효로 하고 다시 질문하도록 하지."
"아뇨. 넘어가야죠. 어딜 자연스럽게 1질문을 더하려고 하세요?"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기사님이 선택을 포기하시긴 했지만 결국 답을 들은 거잖아요."
"허, 어이가 없군."
천마를 제외한 모두가 반대를 외쳤기에 천마의 턴은 그렇게 스킵됐다.
이후의 게임은 다들 진심으로 했다.
가장 적게 걸리면 내 오른쪽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상 때문에 천마에게 다량의 견제가 들어가서 순식간에 천마의 점수가 5점까지 올라갔고, 다음엔 연하가 저격당해서 5점이 됐다.
"크윽, 원통하다."
그렇게 천마 5점, 연하 5점, 하연 1점, 월하 1점, 리우잉 2점 인 상황에서 최후의 질문권을 리우잉이 잡게 됐다.
내가 하연이나 월하를 선택하면 선택하지 않은 사람과 자는 거고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을 지목하면 연장전을 치뤄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리우잉은 같이 못자니까... 이 사람이 때리면 수현이가 기분 좋게 맞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없는데?"
그나마의 영역에서 제일 괜찮은 사람!
그나마의 영역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내가 고른 사람은 그나마든 뭐든 신경 안 쓰고 '저한테 맞는 거 괜찮다면서요?' 라고 하고 때릴 거아냐.
'근데 이건 해법이 정말 간단하지.'
"당연히 리우잉이지."
'야!'
현수의 반발이 들려왔지만 상관 없어싿.
어차피 리우잉이 때리면 맞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현수가 될테니까.
그리고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힘이 제일 약하잖아."
다른 애들은 A급S급 하는 데 리우잉은 혼자서 비각성자였기 때문에 힘이 더 약했다.
따라서 맞았을 때 덜아프다는 거지.
큼큼 알았어, 현수랑 놀 때 참고할게.
'그런 거 참고하지 마!'
"그러면... 연장전을 펼처야 겠네요. 하연언니와 월하언니, 둘 중 오라버니의 오른쪽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은 누구일지...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너 꽁트하니?"
"데헷!"
아까부터 뭐가 자꾸 데헷이야.
"연장전 말고, 화끈하게 싸워보죠. 이름도 캣 파이트잖아요. 진짜 싸움이 있어야죠."
"오, 나랑 싸우겠다고?"
하연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단하게 갈까요? 끝말잇기 어떠세요?"
"좋지 덤벼봐."
... 응? 대련이라도 한 판 할 것 처럼 굴더니 갑자기 끝말잇기?
팔씨름 도 아니고?
"혹시 너희 짰니?"
"왜요 오라버니, 끝말잇기 정도면 정말 공평하고 좋은 경기잖아요."
"설마 저희가 진짜로 싸우기라도 할 줄 아신건가요 기사님?"
너희가 그런 분위기를 풍겨놓고 왜 나한테 그래?
"그러면, 하연씨 먼저 시작하세요."
"시소."
"소듐."
하연이의 얼굴이 바로 굳어버렸다.
"월하 언니가 우승을 차지합니다!"
"예에!"
정말 한 순간에 끝나버렸네.
월하가 내 오른쪽에 와서 앉았다.
"월하 언니, 지금 아니에요. 이따가 잘 때 가셔야 해요."
"지금 앉아있을 수도 있는 거지 왜요?"
"그건 그렇긴 한데요..."
연하가 표정을 찡그렸다.
"그러면 다음 게임을 진행해 볼까요?"
"다음게임은 내가 진행해도 돼?"
"당연하죠."
집안에 굴러다니는 스케치북과 볼펜을 들고 왔다.
"이번 경기는 내 왼쪽자리가 걸려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애들이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외뿔이랑 싸울 때 보다 더 진지해진 하연이와 월하는 물론이고 리우잉도 불 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마또한 진지해진 건 당연한 일이고.
"일단... 룰을 설명할게."
스케지북의 중앙에 선을 하나 긋고 왼쪽에는 동그라미를, 오른쪽에는 세모를 그렸다.
"이렇게 너희한테 보여줄건데, 내가 뭘 골랐는지 맞추면 되는 게임이야. 조작을 없애기 위해서 뒷면에 내가 뭘골랐는지 표시해 줄거고, 리우잉을 위해서 현수가 뭘 선택했는지도 따로 표시해 줄거야."
"많이 맞추는 사람이 승자로군요?"
"그렇지, 이 게임은 결국 나에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니까, 내 옆자리에 누가 앉을 지를 결정하는 아주 공정한 게임이라고 볼 수있겠지?"
"공정하다니 아해야. 당연히 내가 우승할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아해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데 이를 어찌 공정하다고 표현 할 수 있는가."
"천마님이 오라버니를 잘 아신다고요? 어릴 때 잠깐 만나시고 다시 만나신지도 얼마 안되셨는데요? 심지어 그 기간 중 상당시간을 오라버니랑 떨어져 계셨잖아요. 오라버니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아는 건 저라고요."
시작도 하기 전인데 벌써부터 치열한데?
"어릴 적에 기사님과 24시간 붙어 다닌 적이 있었죠. 저는 기사님의 몸에 있는 은밀한 점의 위치까지 다 안답니다."
그건 좀 소름 돋는다 월하야...
"일단 문제좀 만들어 올게."
구석에 가서 현수와 상의를 해가며 문제를 만들었다.
"자, 첫번째 문제입니다."
애들이 불을켜고 스케치북을 노려봤다.
"저는 찍먹일까요 부먹일까요?"
스케치북엔 찍벅과 부먹이라는 글씨가 양쪽에 쓰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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