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캣 파이트6
* * *
"내가 좋아하는 색은 하얀색 일까 검은 색일까."
상당히 어려운 난이도라고 느꼈는지 이곳저곳에서 곡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둘 다 충분히 잘 어울리시는 데 말이예요."
"하얀색? 아니면 검은색?"
다들 고민고민하다가 자기 자리 찾아갔다.
연하와 천마, 리우잉은 검은색 월하와 하연이는 하얀색을 선택했다.
"고른 이유를 들어 봐도 될까?"
"하얀색을 그렇게 좋아하셨으면 제가 염색하자고 했을 때, 바로 하셨을 것 같아서요."
"나도 비슷한 이유다."
현수는 검은색을 좋아해!
'검은 색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어?'
'아니? 없는데?'
"검은색이면 너무 쉬울 것 같아서 한 번 꼬아봤어요."
"제 머리카락이 하얀색이잖아요."
하연이의 충격적인 말에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하연씨 머리가 하얀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죠?"
"하얀색을 자주보니까, 하얀색을 더 좋아하실 거예요."
"미안 하지만 본좌도 검은 머리고 월하도 검은 머리고, 리우잉도 검은 머리다. 머리수롤 따지면 검은 머리가 더 많다."
"그래도... 결국 흰머리로 염색을 하셨잖아요? 그만큼 하얀색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유감이네 하연아.
목소리를 깔고 연기를 시작했다.
"이건 다들 맞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들 깜짝 놀랐는지 긴장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눈썰미로 맞출 수 있는 문제였잖아? 너희가 나랑 하루 이틀 같이 다닌 것도 아니고..."
축축 처지는 목소리로 말하자, 5명 전부가 내 눈치를 보면서 떨었다.
여기서 틀린 사람은 나의 실망까지 덤으로 가져가는 거니까,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겠지.
"내가 평소에 무슨 색의 옷을 입고 다니는 지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뭐? 머리색?
아무리 흰색을 좋아해도 머리를 하얀색으로 염색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지.
내가 검은색을 좋아할지 하얀색을 좋아하는지는 내가 평소에 입능 옷의 색상을 생각하면 쉽게 나온다.
남이 만들어서 사준 제복 같은 건 그냥 입지만, 일상복은 늘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다닌다.
당연히 검은색이지.
"무슨 색을 좋아하시는 데요?"
연하가 총대를 메고 물어 왔다.
"검은색."
천마와 연하의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나왔고 하연이와 월하의 얼굴엔 미안함이 가득 찼다.
"죄송해요 오라 버니, 제가 눈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기사님."
"아니야 모를 수도 있는 거지. 검은색 옷은 엄청 많이 입었는데 하얀색 옷은 한 번도 입어 본 적 없던 걸 기억해 내지 못할 수도 있는 거지."
내가 딜을 조금 돌려서 넣다보니 하연이와 월하의 표정이 금세 핼쑥해졌다.
내가 말했잖아! 현수는 검은 색 좋아한다고!
"미안 리우잉, 현수는 하얀색 좋아한데."
리우잉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미안하다고 전해 줄래?
"그럴 필요 없다는 데?"
왜?
리우잉이 울먹거리며 물어 왔다.
"그야, 거짓말이거든, 현수도 검은 색 좋아하는 거 맞아."
이 나쁜 수현이!
그대로 배를 강하게 맞았다.
'먼저 제안한 건 현수놈인데 왜 내가 맞아야 해?!'
'저번에 나도 천마한테 겁나 맞았어 임마.'
그 뒤로도 계속해서 문제가 출제됐다.
리우잉과 천마는 정말 잘 맞췄고, 다른 애들도 폼이 많이 올라오긴 했지만, 천마와 리우잉이 거의 모든 문제를 다 맞추고 있어서 다른 애들이 내 옆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은 낮아져만 갔다.
"슬슬 마지막 문제 할까?"
"그래요..."
점수차이가 얼마 안났으면 따라잡을 수 있는데 왜 벌써 끝내냐면서 노발대발을 했겠지만 점수차이가 정말 많이 났기 때문에 다른 애들은 금방 포기했다.
"마지막 문제, 이수현의 키는 177일까요? 178일까요?"
"당연히 177이지, 설마 눈대중으로 키를 못 잴거로 생각해서 낸 문젠가 싶지만 당연히 눈으로도 길이를 정확히 잴 수 있..."
천마가 말을 하다말고 얼굴을 굳혔다.
"이거, 아해의 진짜 키가 아니라 아해가 생각하는 키를 맞춰야 하는 문제이지?"
"당연하지."
"으으, 분명 177이긴 하지만 소수점까지 더 하면 조금 더 크단 말이지. 남자들 자존심을 생각하면 충분히 키워서 말할 수 있는 수치다."
"내가 자존심을 부릴지 안 부릴지를 맞추면 되는 문제야."
나는 골랐어! 이제 스승님만 고르면 돼.
천마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내가 아는 아해... 어릴 때는 나름 큰 편이라서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꼴을 본적은 없군."
"지금도 작은 편은 아니거든?"
"자기 동생보다 작으면서도?"
"그건 하연이가 비 정상적으로 큰 거고, 그리고 너보다도 크잖아."
천마가 푸흡하고 웃었다.
"지금, 이 키는 아해를 위해서 낮춰준 것뿐이다. 아해도 남자인데 나보다 키가 작으면 맘 상해할까 봐 일부러 작은 키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아무리 S급 각성자라고 해도 키를 줄렸다가 늘이는 게 가능한가?
맞아! 원래 천마님은 지금 보다 훨씬 더 크셔.
증인도 있으니 마냥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내 진짜 모습은 나중에 아해의 입술을 뺏을 때 보여 주도록 하지."
"됐고 빨리 답이나 골라."
"결정했다."
천마는 178에 해당하는 왼쪽에 섰다.
"키에 대해 민감한 걸 보면 분명 키워서 생각하고 있겠지."
나는 177! 우리 현수는 애초에 나보다 커서 굳이 키를 늘리고 싶지 않아 할 거야.
둘이서 다른 대답을 골랐지만 각자 맞추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둘 다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정답 공개합니다."
스케치북을 확 뒤집었다.
"아니! 오만감 좀 가지고 살아라! 왜 자기키를 줄이려 하는 것이냐?"
"줄이긴 뭘 줄여 177밖에 안 되니까 177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사는 거지."
두 개의 동그라미는 모두 177 란에 그려져 있었다.
아싸! 현수옆에서 같이잔... 잠깐, 잘 때는 수현이 네가 인격을 차지하고 있지 않아?
"그렇겠지?"
힝... 그러면 의미 없는데, 수현이도 귀엽긴 한데 나는 현수 옆에서 자고 싶은 거란 말이야.
"그러면 내일 빈 날을 너랑현수한테 넘길 테니까. 오늘은 천마한테 양보해."
좋아!
"갑자기 그런 게 어딨어요!"
"뭐가? 원래 일주일에 이틀은 내 자유로 쓰는 날이잖아. 그날 중 하나를 리우잉과 현수를 위해서 준건데 문제 있어?"
"문제... 없죠. 그 시간을 쓰는 건 오라 버니의 자유니까요."
"그러면 결국 오늘 내 옆에서 자는 건 천마랑 월하로 결정된거네?"
"네!"
월하가 저렇게 하이텐션인 모습, 정말 오랜만인 거 같아.
이른 시간부터 놀기시작해서 그런지 아직도 12시가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누워서 자도 되겠지만, 조금 정도는 더 놀다 자도 되지 않을까?
애들도 더 놀 것 같은 분위기이기도 하고.
"다음은 오라 버니의 얼굴에 볼뽀뽀를 할 권리가 걸려 있는 매치입니다."
"좋목이 뭔데?"
"오라 버니를 차지하라!"
그건 또 뭐야?
"진짜 캣 파이트 같은 종목입니다. 제한 시간이 끝날 때 오라 버니의 몸에 신체 부위가 더 많이 맞닿아 이기는 경기예요."
"이렇게 치열한 경기에 고작 볼 뽀뽀 밖에 안 걸어?"
내가 의문을 표하자 연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치열한 경기니까 보상을 낮춘거죠. 이 경기에 보상을 크게 걸었다간 아마 제한 시간 끝나기도 전에 오라 버니의 전신이 너덜너덜해 지실걸요? 그건 싫으시잖아요."
"그건 그래."
하긴, 다들 승부욕 세니까. 굳이 센 보상 없어도 잘 싸우겠지.
"미리 말하지만 다들 전력을 다해 싸워주시되 오라 버니가 다치지 않게 계속 신경 써 주셔야 해요."
"그건 당연한 거죠. 당연히 신경 쓸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나는 당연히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당연하죠. 마나를 사용했다간 우리 오라 버니의 몸도 문제지만 아마 방도 난장판이 될 걸요? 심하면 건물 전체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당연히 마나 사용금지예요! 지금까지 안썼으면 계속 안쓰는 걸로 아시면 되지, 왜 질문 하시는 거예요?"
"마나를 굳이 싸움에만 이용한다는 법은 없지 않나. 마나로 아해의 정신을 건드려서 잠깐 재워두는 방식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건 더더욱 안 되죠! 저희 오라 버니 정신을 도대체 왜 건드려요!"
연하가 큰 목소리로 따졌다
"나는 건드릴 생각이 없지만, 혹시 누가 건드릴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지금 미리 말함으로서 혹시나 하는 상황을 완전히 차단하고자 했다."
"설마 오라 버니의 정신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겠어요? 저희는 이수아가 아니라서, 절대로 그런 일 없어요!"
"알았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엄청 혼 나는군.
"일단 오라 버니가 방 중앙에 서 주시고 다들 방구석으로 움직여 주시길 바라요."
연하가 시계를 조작해서 엎어뒀다.
"시각은 5분에서 10분 사이, 무작위로 결정됩니다. 알림이 울리는 순간을 기준으로 오라 버니랑 더 많이 맞 닿아 있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예요. 어차피 5분까지는 소리가 울리지 않으니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겠죠?"
연하가 시계를 내려 둔 뒤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러면 시... 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