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2화 〉 잠입­1 (132/265)


〈 132화 〉 잠입­1






* * *






모든 도시에는 범죄 집단이 있다.


당장 솔에는 붉은 달을 비롯한 여러 빌런 집단이 있었고, 우리 도시에는 월하가 지배하는 암흑가가 있었다.


암흑가야 워낙 월하가 확실하게 지배하고 있어서 큰 문제가 없었지만 우리 도시에 다른 빌런 세력이 있다는 모양이다.


"너희도 걔네 때문에 고생하냐?"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조금 번거로워지고 이득이 좀 줄어들긴 했는데 임팩트 있는 손해는 본적이 없거든요."


"우리는 걔네 때문에 아주 죽을 맛이다. 경비대 인력 중 30%를 거기에 쏟아붓고 있는데도 해결이 안 된다니까?"


때문인지 하연이가 한숨을 쉬는 횟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하연씨도 S급 각성자인데 그깟 빌런 조직 하나 처리 못한다는 게 말이 돼요?"


"일반적인 빌런 조직이었으면 내가 나서는 순간 바로 처리되는 거랑 마찬가지인데, 아무래도 평범한 놈들은 아닌 것 같아. 아마 게이트 내부에서 나온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몸을 숨기는 것 같은데, 잡을 수가 없어."


"아무리 아티팩트여도 S급 각성자의 기감을 속이는 게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내가 그놈들을 못 잡은 거지."


아티팩트, 게이트 내부에서 나오는 뛰어난 물건이다.


단순 무기나 방어구 같은 경우는 몬스터의 시체를 가공해서 만드는 걸로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아티팩트는 각자가 특이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텔레포트를 할 수 있게 되는 신발이라던가, 투명화가 가능하게 해주는 반지라던가, 소문으로 엄청 떠돌아다니는 애들이 있지.'


실제로 그런 게 있는지는 아마 높으신 분들만 알 거다.


"그래서 잠복수사라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놈들이 무슨 범죄를 저지르는데요?"


"납치, 절대로 도시 안의 사람은 안 건드리고 빈민가 쪽 사람들만 납치 한다더라, 그것 때문에 그놈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도 시간이 엄청 걸렸어."


'우리도시는 빈부격차가 엄청 크니까.'


빈민도 엄청 많다.


태양길드가 우리 도시를 세울 때, 대부분의 사람이 빈민이 됐거든, 그러면 도시 중심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냐고?


'솔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지.'


때문에 빈민과 일반 시민들의 사이가 썩 좋진 않았다.


같은 외곽지에 사는 시민들이랑은 좀 괜찮은데, 경비대나 도시 중심부에 사는 시민같이, 솔 출신의 사람이라고 하면 아주 치를 떨었다.


"빈민 새끼들이 협조도 안 해 줘서 수사도 힘들어 진다니까?"


"하연아, 입조심."


"아, 죄송해요."


이제 우리도시도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들어섰는데 슬슬 빈민구제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거 아닐까?


요즘 연하한테 도시 운영을 배우다 보니 자주 드는 생각이다.


"하아.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수사가 너무 힘들어."


"아마 솔에서 나타났어도 쉽게 잡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힘들단 말이지?


"천마님이 나서신다면 바로 끝날 것 같긴 하지만..."


"도와줄 생각 전혀 없다. 나는 공식적으로 이곳에 없는 사람이고, 너희의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뺏고 싶지도 않으며, 굳이 내 힘을 쓰고 싶지도 않다."


천마가 딱잘라서 거절했다.


"너희의 일은 너희가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알겠어요. 부탁 안 하면 되잖아요."


연하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예 답이 없는 거야?"


"열심히 조사를 해 보지만 꼬리가 잡히지를 않네요."


"잠복같은 건 안해봤어?"


"해봤죠. 그런데 아무리 마나를 숨겨도 그놈들이 어떻게 알아냈는지 저있는 곳만 피해가더라니까요? 그래서 경비대 내부에서는 상대가 최소 3가지 이상의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거로 결론을 내렸어요."


"황금 고블린의 던전이라도 털었나 보군."


천마가 나즈막히 말했다.


"내? 황금 고블린의 던전이요? 그게 뭔데요?"


"중원에 한 번 나타난 적이 있는 던전이다. 등급은 F등급 밖에 안되는데 아티팩트만 9개에 상당히 뛰어난 재료들도 많이 나왔던 던전이었지."


"그거... 천마 신교의 기밀 같은 거죠?"


"나름 기밀이지. 다른 이들한테 이야기 한적도 없고 말이야."


하연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왜 그딴게 빌런들 손에 들어가냐고..."


"경비대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 그런 거죠. 하연씨가 부임하기 전까지만해도 경비대는 꽤 개판이었으니까요."


"나도 알아."


하연이가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잡냐..."


하연이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티팩트로 하연이의 마나가 탐색돼서 잠복을 못 하는 거면, 나랑 리우잉이 잠복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래도 되긴 하는데, 위험하잖아요."


"위험해?"


천마를 빤히 바라봤다.


"목숨까지 위험해 지면 천마가 구해 주지 않을까?"


"아해야, 나는 세이브 포인트 같은 것이 아니다."


"어쨌든 죽을 일은 없을 거 아니야."


내 말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가 아해를 죽게 내버려 둘 일은 없다."


천마의 말을 들으니 하연이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좋아요! 그러면 바로 작전을 세우죠!"


"우리끼리 새워? 경비대 가서 세워야 하는 거 아냐?"


"그러면 내일 출근해서 세우죠."


하연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이튿날 하연이를 따라서 경비대로 이동했다.


"빌런은 최소 3개 이상의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명났다. 따라서 경비대의 인원이 잠입수사를 벌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어 민간인 실력자를 이 자리에 모셨다."


하연이의 손짓에 따라 리우잉과 내가 앞으로 나왔다.


나 같은 경우는 하연이가 부임하자마자 거의 바로 경비대에 한 번 온 적이 있었고, 암흑가에서 내가 세운 공에대해서 하연이가 설명하자 다들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랴우엥이다. 실력은 확실하니 의심하지 말도록."


하연이가 경비대를 꽉 잡고 있어서 그런 걸까? 누구하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이들을 어떻게 변장시켜서 잠복시킬 지 회의하도록."


회의는 1시간 정도 진행됐다.


일단 염색한 하얀 머리를 검은 머리로 되돌리고 서클렌즈를 뺐다.


그리고 특별한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나의 체격을 상당히 줄였다.


177이라는 작지 않던 내 키가 20cm나 깎여나갔지만, 적당히 강해 보이는 성인 남성은 건들이지 않는다는 정보가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수현이라는 이름은 빈민가에서 나름 유명한 이름이기도 해서 나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으니...


"이거 돌아오는 거 맞지?"


"돌아오기 싫어도 시간 지나면 돌아오니까 걱정 하지마요."


­푸하하! 수현이 작아졌어! 이제 나랑 키 차이도 얼마 안나!


"랴우엥, 한국말할 줄 알지?"


리우잉의 동공이 천천히 흔들렸다.


"이제부터는 아무리 어눌해도 한국어로 말해야 해. 마나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라는 정보를 알려줄 순 없으니까."


"알아써어."


"이거 드세요."


"그게 뭔데?"


하연이가 나에게 알약같은걸 내밀었다.


"위치 추적기가 들어 있는 알약이예요. 능력으로 만들면 아티팩트에 잡힐까 봐 순수하게 기계로 만들었어요. 일주일 정도 있으면 몸 밖으로 빠져나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으면 천마가 빼주겠지.


"랴우엥도 먹어라."


"응."


알약을 삼키고 물을 마셨다.


"그러면 지금부터 숙련된 경비대원들이 변장을 시켜 주시겠습니다."


"변장이라고 해도 크게 대단한 건 없어요. 그냥 가난하게 보이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머리를 다시 검은 색으로 바꾸고 서클렌즈를 빼고 낡고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진짜 거지티가 날 수 있게 흙먼지도 좀 뭍히고 햇빛에 오래 노출 된 것처럼 피부도 더럽히니 진짜 거지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보다 지금 내 모습이 더 불쌍하게 생겼다.


"완벽하네요. 진짜로 안쓰러운 거지 남매 같아요."


"내가 누나지?"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요."


"야호!"


리우잉이 한국어를 쓰면서 말 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아마 중국어로 말했으면 훨씬 더 길게 말하지 않았을까?


"내가 잠입하는 것보다는 현수를 잠입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리우... 랴우엥이랑 성격도 더 잘맞고, 남매 연기도 더 잘할 테니까."


"그게 좋을 것 같아요."


"현수랑 같이 가는 거야? 야호!"


야호라는 말을 꼭 붙였어야 했던 걸까?


"더 할 거 있어?"


"아직 많죠. 기억을 읽을 수도 있으니까 가짜 기억을 보여 주는 능력도 걸어야 하고, 진짜 거지의 몸짓도 배우셔야 해요."


"그걸 누구한테 배우는 데?"


"진짜 거지한테 배우죠."


하연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빈민가에서 방금 막튀어 나온 것 같은 사람이 덜덜떨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가르쳐 드려라."


"네! 알겠습니다요!"


하연이가 남자를 째려 보자 남자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거지들은, 다요라고 말해야 하는 거다요?"


"그런 건 아닙니다요. 그냥 제 말투입니다."


"힝, 아쉽당."


어차피 잠입하는 건 현수 였기 때문에 의식을 현수에게 넘기고 의식의 세계로 떠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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