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잠입2
* * *
"현수! 빨리 따라와."
"알았어 누나."
우리는 분명 잠입수사를 하고 있는 건데 누나는 너무 밝았다.
즐거운 소리를 내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옆으로 따라가며 입을 열었다.
"너무 밝은 거 아니야? 빈민가의 거지를 연기하는 것 치고는 과하게 밝다는 생각 안 들어?"
누나의 옆에 딱 붙어서 귓속말로 묻자 누나가 기분 좋은 듯 몸을 가볍게 떨었다.
"밝을 수도있지, 설마 거지라고 항상 기분이 안좋진 않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거지 행동 배울 때 늘 주눅들어 있으라고 했잖아."
"그렇기도 하네..."
누나가 축 늘어지는 모션을 취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보이는데 꼭 연기를 해야해?"
"해야지, 아무도 없을 때 부터 꾸준히 연기를 하고 있어야 실전이 왔을 때 안 햇갈리는 법이야."
"알았어,"
누나와 함께 빈민가의 초입을 계속 걸어나가자, 어두운 분위기를 가진 빈민가가 우리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 이런데 처음와봐."
누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마, 우리는 다른 빈민가에 있다가 오늘 이곳으로 넘어 온 설정이란 말이야. 처음 왔다고 하면 안되지."
"힝."
지나다니는 사람 자체는 꽤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정말 분위기가 어두웠다.
바닥에 앉아서 구걸 하는 사람이 수십 명에 서서 움직이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조폭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부턴 진짜 제대로 연기해야 해,"
"알았어."
그럼 일단 구걸할 자리부터 잡아볼까?
원래 이런데는 텃세가 심해서 일단 구석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저기가 좋겠다."
"저기는 너무 구석 아니야?"
"누나, 여기는 우리가 평소에 구걸하던 곳이 아니야. 상도덕이라는 게 있는 데 다른 사람들 근처에서 구걸하면 안되지."
누나와 함께 골목길바로 앞으로 가서 앉았다. 구석진 자리긴 했지만 빈민가가 잘 보이는 곳이었다.
"여기서 앉아있어만 있어도 되는 거야? 다른 곳도 돌아보면서 정보를 수집해야 하지 않을까?"
"거지들이 어디를 싸돌아다녀, 괜히 돌아다녔다가는 의심만 맏으니까 그냥 가만히 앉아서 정보를 수집하는 게 나아."
"이 근처로는 아무도 안올 것같은데 정보는 무슨 정보야?"
"우리한텐 안 와도 다른 거지들한텐 사람들이 가잖아?"
대부분이 돈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상납받고 돈뜯어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사람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우리는 납치 당하는 걸 전제로 찾아 온거란 말이야. 굳이 정보를 얻겠다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적들이 우리를 납치하는 걸 기다리는 게 훨씬 나아,"
"알았어."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한 덩치 큰 형님이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너희들 누구 허락 맡고 여기서 장사하냐?"
"아이고 죄송합니요 형님."
주머니를 뒤져서 미리 챙겨놨던 치폐를 꺼내 줬다.
잔뜩 꼬깃해 져 있는 돈으로 미리 조사한 결과 조폭들한테 주기 부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은 돈이라는 듯 했다.
"초보들은 아니각 보군."
이미 상납금을 낸 시점에서 우리는 나름 돈을 낳는 거위가 되었기 때문에 조폭도 더 건들지 않고 그냥 갔다.
꼬르르륵
"나 배고파..."
"당연히 배고프지."
현실성을 위해서 몇끼를 굶고 들어왔더니 상당히 배가 고팠다.
주변에 먹을 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주린 배를 부여잡고 계속 구걸했다.
나름 어려보이는 두 남매가 구걸을 하고 있으니, 그래도 가끔 가다 돈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가 돈을 받을 때 마다 다른 거지들이 우리를 노려봤지만, 아직 낮이라서 그런지 직접 덤벼오지는 않았다.
'한 번 더 뜯기겠네.'
이따가 거지들이 우리에게 찾아오면 굳이 돈 안 주겠다고 반항하지 말고 그냥 맘편하게 돈을 주자. 어차피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구걸을 하니 5천원이 넘게 모였다.
오늘이 첫날이고 이곳이 빈민가이며, 골목길 구석이라는 걸 생각하면 아주 많이 번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질 시간이 찾아오자 거지 몇명이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야, 신입."
"아이고 선배님들 오셨습니까?"
싹싹하게 말하며 오늘 번 도늘 다 쥐여주고 돌려보냈다.
놈들도 처음 부터 돈을 주고 시작하는 우리에게 마땅히 더 할 말이 없었는지 돈을 받고 바로 돌아갔다.
"누나 이제 나 때리는 척해."
"응?"
"내가 멋대로 돈을 바쳐서 싸우는 연기를 하자는 거지."
내가 작게 말하자 누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걸 다 주면 어떡해?"
"어? 아니, 우리는 여기선 신입이니까. 처음엔 일단 선배님께 상납을..."
"그래도 다 주는 게 말이 돼?"
짝!!
누나의 손이 내 뺨을 세게 쳤고 나는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구경들 나셨구만.'
소리가 상당히 커서 그런 걸까? 다른 거지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개같은 놈."
리우잉 누나가 나를 마구 밟았다.
힘조절은 잘해서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대 맞을 때마다 아픈척을 했다.
"커헛! 누...누나 미안해애."
울먹이며 빌자 그제서야 누나는 발길질을 멈췄다.
"앞으로 돈 받으면 전부 나한테 넘겨, 내가 다 쓸 태니까."
"어? 반반씩 나눠 갖기로..."
"또 맞고 싶어?"
누나가 주먹을 들자 바로 고개를 내렸다.
"아...아냐..."
'이 정도면 캐릭터 성은 어느정도 잡힌 것 같네.'
동생 때리는 나쁜 누나와 쳐맞는 동생이 있는 남매라, 어딘가엔 있을 법한 애들이네.
방금 전까지 싸웠는데 바로 화해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없었기에 우리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앉았다.
"나 잘게..."
"응."
쭈구려 앉아서 눈을 감았다.
상대가 아무나 막 납치하는 놈들이면 당장 오늘 끌려갈 수도 있었지만 최소한의 조사를 마친 후 철저하게 우리를 파악해서 납치하는 놈들이라면 며칠은 더 잠복해야 효과가 나올거다.
'우리 연기가 들키지만 않는 다면 우리를 납치할 게 분명해.'
당장 여기있는 거지들 전체랑 비교해 봐도 우리들의 육체 능력은 최약인 것 처럼 보였으니까.
약자들만 납치한 다는 놈들의 특성상 언젠가 우리에게 손을 뻗을 것이다.
'거기에 우리는 이 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들이지.'
여러모로 납치하기 최적의 인재가 아닐 수 없다.
"많이 아팠어?"
밤이 가까워져 오는 저녁, 누나가 나에게 나즈막히 물어왔다.
누나가 아무 생각없이 말하진 않았을 테니, 주변 사람들은 다 잠든 모양이었다.
"아냐, 안 아팠어. 힘 조절 했잖아."
"그래두, 많이 때렸잖아."
"진짜 괜찮아. 이 정도는 아픔도 아니야."
눈을 감은 채 작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일단 자고 내일 다시 보자."
"잘자 누나."
"너도 잘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보니 스르르 잠에 들었다.
맨바닥에서 자는 거다 보니 내일 아침의 고생이 예상되었지만 어쩔 수 없지 거지가 잠자리 투정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아침 햇살이 내 눈을 간질였다.
스르르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누나는 어느새 나에게 다가와 나를 앉고 있었고 다른 거지들은 아직 자고 있었다.
'아직 사람이 많이 지나갈 때는 아니니까.'
누나를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
주변에 적들이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는 기감은 누나한테만 있었으니까.
"으우 벌써 아침이야?"
"어, 아침이야."
누나가 기지개를 쭉 폈다.
"우리는 언제 납치될까?"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납치 되지 않으면 새 방법을 찾아봐야지."
내 걱정은 기우였다.
점심시간이 막 지날 때쯤 로브를 깊게 눌러 쓴 사람 두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으니까.
'이건 너무 너무빠른데?'
우리가 여기 도착한 게 어제다.
그런데 오늘 바로 납치를 당해?
'얘네가 걔네가 맞나?'
아니면 다 부수고 나와서 다시 잠입을 하면 되는 거니까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한푼만 주세요."
"너희들 강해지고 싶지 않니?"
두 사람 중 키가 더 큰 사람이 우리에게 물어왔다.
"강해 지다뇨?"
"말 그대로의 의미지, 더 강해져서 굶지도 않고, 돈도 많이 벌고 싶지 않아?"
정신계 능력을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갑작스럽게 감정이 변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순수하게 말로만 꼬시나 본데?'
도대체 거지들이 얼마나 순수하면 말만 듣고 바로 따라가는 걸까?
"그렇긴 한데... 아저씨들이 저희를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그럼, 당연하지."
작은 키의 로브가 손에서 불을 피웠다.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늘 약자로만 자라왔잖니? 우리만 따라오면 부자가 될 수 있어."
"부자..."
누나가 옆에서 작게 읍조렸다.
"싫으면 따라오지 않아도 좋아. 그런데 아마 정말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후회하게 될걸?"
"갈게요!"
"누나..."
벌써 넘어가는 건 좀 이른 거 아닌가 싶긴 하지만, 사람 성격은 천차만별인 만큼 이 정도 설득에도 넘어가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겠지.
"누나는 따라 온다는 데 너는 어떻게 할거니?"
"... 누나를 혼자 보낼 순 없어요. 저도 따라갈게요."
"잘 생각했어. 따라오렴."
남자 둘을 따라서 천천히 걸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