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4화 〉 잠입­3 (134/265)

〈 134화 〉 잠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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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따라서 걸어갈 때 정말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빈민가라도 해도, 로브를 눌러쓴 남자 두 명을 어린애로 추정되는 거지 두 명이 따라가고 있으면 나름 시선이 끌릴텐데 단 한명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티팩트를 쓰고 있긴 한가보네.'

한 명도 관심을 안 가지는 걸 보면 말이야.

'황금 고블린의 던전이라는 게 진짜 있긴 한 모양이야.'

조금 걸어서 구석진 곳으로 이동한 뒤 남자들이 배지같이 생긴 물건을 우리에게 건내줬다.

"가슴에 차라."

"네."

납자의 말에 따라 배지를 가슴에 차니 지금까지는 안 보였던 게이트가 눈 앞에 보였다.

'게이트를 여는 아티팩트인가? 아니면 원래 게이트가 있었는데 그걸 잘 써먹은 걸까?'

일단 남자들을 따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게이트에 들어가면서 우리의 위치신호는 사라질테고 하연이가 나서서 이부분을 조사하기 시작하겠지.

이 자리에 게이트가 있는 게 아니라 아티팩트로 입구만 연 거라고 하더라도 하연이는 우리를 금방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이 우리의 기지다. 너희가 앞으로 훈련을 받게 될 장소기도 하지."

"훈련이요?"

"우리가 너희에게 강해질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맞지만, 너희 스스로 노력을 해야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남자를 따라 이동하니 10대 중후반 쯤 돼 보이는 애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애들의 눈이 전부 충혈되어 있다는 점?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상태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힘을 줘서, 뭘 하고 싶으신 건가요?"

"이 썪어빠진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썪어빠진 세상이요?"

"빈민가에서 태어난 이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이는 모두 각성자들이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거 아닌데요.'

굳이 각성자 때문이 아니라, 태양길드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한 도시라서 그렇다.

솔 출신의 인물들이 높은 관직을 다 따먹고 기존에 우리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빈민가로 밀려났기에 빈민가는 늘 배고픈 상황에 처한거지.

'우리 도시가 고쳐야 할 문제점 중 하나지.'

요즘 하연이랑 연하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몰두하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는 이 도시에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너희와 우리의 힘을 모아, 이 도시를 지배할 것이다."

'혁명단 비슷한 건가?'

모든 도시에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단체긴 하다, 도시의 상황이 개판이면 개판일 수록 사태가 심각해 지는 데 우리 도시가 아무리 심각해도 미르만 못하잖아?

'게다가 여기는 검마처럼 도움을 줄 S급 각성자도 없고 말이야.'

각성자가 지배하는 도시에 반항하는 집단이 각성자를 고용할리가 없잖아.

'이것도 일종의 업보지.'

이 사람들도 이 사람 나름대로 억울한 점이 있고, 그 억울함은 태양길드가 만들었으니 이 또한 업보라고 볼 수 있겠다.

되도록이면 평화롭게 해체하고 더 나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하연이의 약속 정도로 끝났으면 참 좋겠지만...

'애들 건드리는 건 선 넘었지.'

게다가 이상한 조치까지 취하고 말이야.

혁명단 처럼 뜻이 있는자들을 찾아가서 모집하는 것도 아니고, 어린이나 약자들에게 찾아가 다짜고짜 힘을 주겠다.

하고 끌고 와서 자신의 뜻에 참여하라?

'인정 못하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표정을 하고 있군?"

"아닙니다."

"그래, 그런 마음은 당장 버려라, 네가 이곳에 온 이상 너는 우리 단체의 일원이며 우리의 명령을 모두 따라야만한다."

'혁명단 절망편이네.'

이쯤되면 그런 의심도 해봐야 한다.

이 집단의 수뇌부가 진짜로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 있을까?

작은 집단에서 권력을 유지하면서 그냥 평범한 빌런 세력으로 남으려는 게 아닐까?

과연 진심으로 사회의 전복을 꿈꾸는 건가?

'멋 모르는 사람들을 이용해 먹는 것일 뿐일 수도 있어.'

'우리 현수 추리 잘하는 데?'

'닥치고 있어라.'

그건 여기서 지내다 보면 알게 될거다.

"너희에게 본격적으로 힘을 주기 전에 이미 힘을 받은 아이와의 차이를 알려주지, 17호, 이리 오도록."

17호라, 아주 익숙한 숫자였다.

나도 실험체로 있을 때는 17호라고 불렸지.

"네."

한 여자아이가 이지가 없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눈이 충혈되어 있는데도 무표정으로 느낄 수 있다니,

"한 번 싸워봐라, 여자애라고 해도 너보다 훨씬 강할테니 적당히 두들겨 맞다가 항복 하도록."

"이건 불공평 한거 같은데요?"

"뭐?"

남자가 당황한 어투로 나에게 물었다.

"저는 3일동안 굶었단 말이에요. 저 쪽 여자애는 지금까지 잘 먹었을 거잖아요. 배부른 사람과 배고픈 사람이 싸우면 당연히 배부른 사람이 이기는 거 아니에요?"

"허, 참 당돌한 놈이군, 한 번 싸우기나 해봐라, 고작 배부름과 배고픔으로 나누어 질 수 없는 격차가 있을 테니."

"이왕 싸울 거면 가장 센 애랑 붙여 주변 안돼요?"

남자가 분노에 찬 어투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알았다. 13호, 이리오도록."

13호라 불린 아이는 이미 흰자위가 붉은 색에 가깝게 강하게 충혈된 상태였다.

"훈련병 중에서는 13호가 가장 고참이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항복하도록, 그렇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저 상태가 훈련병이다 이 말이지?'

그러면 제대로 훈련된 상태의 사람들은 어떨까?

"13호, 저 남자애가 오늘 네 사냥감이다."

"크르륽."

여자아이의 목에서 짐승이 울듯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들 애들한테 뭔짓을 한거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누나도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꼈는지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왜? 이게 미래의 너희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두렵나? 이미 늦었다."

13호라 불린 여자아이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미친듯이 빠른 속도였고, 나름 비각성자 중 차강이라 자랑하던 나보다도 빨랐지만 아쉽게도 리우잉 누나보다 느렸다.

­쐐애애액!!

여자아이의 주먹이 내 앞을 바로 지나갔다.

못 피할거라고 생각한 일격이 완벽하게 빗나가면 당황할 법도 한데 아이는 바로 다른 손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한 대 맞으면 중상이겠는데?'

그런데 이걸 어쩌나.

'상대가 나네!'

아이의 전투는 상당히 투박했다.

분노에 사로 잡혀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 밖에 모르는 듯 했다.

단순히 빠르기만한 공격은 처음 휘두를 때나 무섭지 익숙해지면 피하기 어렵지 않다.

'아예 못 피할 정도로 빠르면 또 몰라.'

"저 새끼 뭐 하는 새끼야?"

뒤쪽에서 남자가 크게 소리치는 게 들렸다.

'좀 더 연기해? 아니면 지금부터 깽판을 쳐?'

애들가지고 장난 치는 인간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솟아 올랐지만, 시간을 더 끌어야 하연이와 연하가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비 전문가인 내가 나서는 것 보다는 이 놈들을 다 잡을 수 있게 시간을 끄는 게 낫겠지.'

자세를 바꿔서 마치 중국 무술 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여자아이의 공격을 피했다.

진짜 중국무술인건 아니고, 그렇게 보이는 움직임이라는 뜻이었다.

"이새끼들... 뭐 하는..."

­퍽!!!

최대한 안 아프게 맞고 멀리 날아가서 뒹굴었다.

"13호! 그만!"

나에게 다가와 마무리를 하려는 여자아이의 몸이 우뚝하고 멈춰섰다.

'리우잉 누나 제발 가만히 있어...!'

내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을 맞은 걸 보고 누나도 내 의지를 알아차렸는지 몸만 바들바들 떨면서 남자들을 노려봤다.

"발음이 어눌하다 싶었더니 짱깨 새끼들었나?"

"요즘 짱깨 애들은 무술도 배운 답니까?"

"나도 모르지. 하지만 이놈들, 이미 무술을 배운 만큼 더 쓸 만한 전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로브를 썼음에도 그 음산한 웃음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듯 했다.

"이것들은 우리 대장님께 직접 끌고 가야겠어. 아마 좋아하실 거다."

"늘 강한 전사에 목메이시던 분이니 말이에요."

"이봐 여자애, 너도 이 놈처럼 무술을 쓸 수 있나?"

누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13호를 시켜서 이 놈을 죽여버리겠다."

"내가 리오엔 보다 훨씬 강해."

리오엔은 이번 작전 동안 내가 쓰기로 한 가명이다.

막 지었는데 그래도 중국인 같지?

"진짜 짱깨 새끼들이었군, 너희는 이 무술을 어디서 배웠냐?"

"어렸을 때 스승님께 배웠어."

"그 스승님은 어떻게 됐는데."

"죽었어. 각성자들의 손에."

오올, 누나 분노한 연기 잘하는 데?

"나는 내 자아가 날아간 것보다 무술을 쓸 수 있는 게 훨씬 더 강해. 약속해, 내 자아를 남겨두기로 내 손으로 직접 각성자들을 부숴버리고 싶으니까."

"그건 우리가 약속해 줄 수가 없는 내용이야, 우리 대장님이 너희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실 거다."

"누나... 아무리 그래도..."

"닥쳐 리오엔!"

리우잉 누나가 나에게 다가와서 내 뺨을 내려쳤다.

사이 나쁜 남매 컨셉 그대로 유지하는 거야?

"동생 아니었나?"

"쓰레기 같은 동생일 뿐이에요."

리우잉 누나가 중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남자들은 누나의 어색한 연기를 그냥 한국어가 어눌해서 그런거라고 착각했을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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