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5화 〉 잠입­4 (135/265)

〈 135화 〉 잠입­4

* * *

남자들을 따라서 쭈욱 이동했다.

알 수 없는 시설들을 지나가다 보니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이 건물들은 어떻게 지은거지?'

게이트 안에서 공사라도 한 건가?

"뭐야?"

입구에는 남자들 처럼 로브를 쓴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방문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듯 상당히 경계하는 눈초리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무예에 재능이 있는 놈들이다. 대장님께 직접 보여 드리고 처분을 결정하려고 해."

"알았다. 들어가도록."

커다란 건물이었지만 인기척은 거의 없었다.

남자들을 따라서 건물을 계속 올라가니 사장실 처럼 보이는 방이 나왔다.

­똑똑

"뭐냐?"

"이번에 잡아온 놈들 중 재능이 있어보이는 년놈들이 있어서 데려 왔습니다."

"들어와라."

남자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가 양 옆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 두명을 끼고 앉아 있었다.

"재능이 있다고? 내가 보기엔 그냥 거지새끼들 같은데."

"나름 무예를 배운 것 같습니다."

"무예라..."

남자가 고민하듯 눈을 감았다.

"이번엔 타입 B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어. 언제까지고 짐승같은 년놈들만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까."

"내 의식은 남아있는 거지?"

리우잉 누나가 당돌하게 물었다.

"타입 B는 의식이 남아있다, 짐승같은 본성으로는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테니 말이야."

"그러면 됐어."

"그나저나 꼬맹이가 당돌하군, 말투를 보니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부모님이 중국인이셔."

"혹시 존댓말이라는 걸 배워본 적이 없나?"

"그게 뭔데? 그 누구도 나에게 존댓말을 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연기하는 게 차차 익숙해 지는 건지 점점 말투가 편안해 졌다.

"남자쪽도 무예를 배웠나?"

"이 놈은 좆밥이야."

리우잉 누나가 나를 넘어뜨렸다.

"내가 타입 B면 다른 놈들은 타입 A란 소리지? 얘는 무조건 타입 A로 넣어."

누나는 누나대로 정보를 얻고 나는 나대로 정보를 얻으라는 소리인가?

"일단 네 실력을 좀 보고 싶군."

"실력?"

리우잉 누나가 우리를 끌고 온 남자 둘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어때?'

"생각 보다 더 대단하군. 너 같은 년이 왜 길에서 거지 생활이나 하고 있는 거지?"

"그러면 뭐, 조직에라도 들어가야 해? 중국인이라고 무시 당할 게 뻔한데?"

"그건 아니다."

남자가 씨익 웃었다.

"혹시나 하는 데 나한테 덤빌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나는 너 같은 년 정도는 가볍게 죽일 수 있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거든."

"덤빌 생각 없어."

"그리고 마음 가짐도 확인해 봐야 겠어. 저 남자 꼬맹이, 네 동생이지?"

"동생으로 삼기도 싫어질 만큼 머저리리긴 하지만, 일단 동생이지."

아무리 연기가 익숙해 져도 나를 욕하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죽여."

"뭐?"

"왜? 아직 남매간의 정이 남아있나? 쓸모 없는 머저리라면서, 그러면 죽여라."

리우잉 누나가 잠시 멈칫하더니 실실 웃기 시작했다.

"왜? 가만히 내버려 두면 타입 A인가 뭔가를 당해서 짐승처럼 변할 텐데? 나는 애가 죽는 꼴 보다는 그렇게 처참해 지는 게 보고 싶은 걸."

누나의 목소리에는 광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연기만큼은 아주 완벽했는데, 평소에도 종종 사지를 자른다며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는 누나였기 때문에 광기를 연기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듯 했다.

"푸하하하, 아주 웃긴년이군, 그래 너같은 년이 필요했어. 꼬마, 밖으로 꺼지고 너만 남아있도록."

"누...누나아..."

"뭐해 꺼지라잖아."

­퍽!!!

누나가 나를 발로 밀어서 벽까지 날렸다.

진짜로 찬게 아니라 발로 민 거라서 그렇게 앞으지는 않았다.

"흐으윽... 누나아아..."

"빨리 안 나가면 진짜 죽여버린다."

우는 척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할까.'

타입 A인지 B인지 모를 수작이 나랑 누나에게 먹힐일은 없다.

월하의 권능이 우리 몸을 두르고 있었으니까.

월하가 혼신의 힘을 다해 건 만큼, 남에게 들키지 않으면서도 아주 성능이 좋아서 아티팩트고 지랄이고 전부 무시할 수 있다.

'놈들도 타임 B를 그리 많이 써본 것 같지 않으니 누나는 그냥 마음대로 연기하면 되겠지만...'

미친 연기를 어떻게 해야하지?

'그나마 다행인건, 비교적 최근에 끌려온 것 같은 애들의 정신상태는 멀쩡해 보였다는 거야.'

처음엔 멀쩡하다가 천천히 미쳐가는 방식인 거 같은데 적당히 주변애들 눈치보면서 연기하면 되겠지.

'일단 나갈까?'

천천히 걸어서 건물 밖으로 나가니, 아까 들어왔을 때 봤던 로브가 나를 봤다.

"왜 너 혼자 나와?"

"아저씨들은 누나가 쓰러뜨렸고, 누나는 대장님이 타임 B인가 뭔가를 쓴다고 하셨거든요."

"너는?"

"나가라고 해서 나왔는데요? 이제 아저씨가 저를 실험장에 데려다 주시면 되는 게 아닐까요?"

막상 말해 놓고 보니 납치당한 애치고는 너무 태연하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기... 너무 어려운 것.'

일단 남자를 따라서 조용히 걸어가다가 대장의 건물이 보이지 않을 때쯤놈을 공격했다.

"무슨....컥!"

얼마 안되는 마나를 이용해 강력하게 공격하니 바로 쓰러져 버렸다.

"본격적으로 조사를 해볼까?"

누나에게 배운 대로 발걸음 소리를 최대한 줄여 걸었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선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보법이라고는 하는데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해서 완벽하지는 않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숙인 뒤 이곳저곳을 돌아녀봤는데, 훈련병을 제외하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았다.

'로브가 7명, 훈련을 끝난 걸로 보이는 아이가 12명.'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다.

작전이고 뭐고 하연이만 들어와도 다 처리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곳이 본거지가 아닐 수도 있고 다른 데에 쥐구멍을 파 놨을 수도 있다.

'일단 여기가 뭐하는 데인지 부터 알아보자.'

그 뒤로 수 시간 동안 몸을 숨기고 게이트 안을 돌아다녀보니 대충 뭐하는 곳인지 감이 잡혔다.

'그냥 훈련소네.'

로브들은 훈련병을 훈련시키고, 이미 훈련을 끝낸 아이들도 계속 훈련만 했다.

건물은 많은 데 전부 사용되지는 않는 걸 보아하니 건물들도 이놈들이 세운 게 아니라 원래부터 게이트에 있던 건물인 모양이다.

'이놈들이 나타난지 아주 오래 된 것 같진 않단 말이지.'

다 훈련 시킨 아이들을 다른 곳에 보내서 써먹고 있었을 쯔음이면 엄청나게 많은 애들이 납치됐을 텐데, 연하의 말로는 100명 정도 되는 아이가 근래 들어서 사라졌다고 한다.

'진짜 이게 끝이야?'

도망치는 것만 막고 하연이 부르면 끝이겠는데?

'그 도망치는 걸 막는 과정이 문제인 거지.'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게이트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하는 놈들이니까. 아마 쉽게 막을 수는 없을 거다.

'구조나 외워두고 있어야 겠다.'

마음 같아서는 로브들 전부 패서 쓰러뜨려 버리고 아이들의 상태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는데 대장이라는 놈이 무슨 아티팩트를 들고 튈지 모르니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슬슬 내가 없어진 걸 눈치챘나본데?'

대장의 명령을 받은 듯 보이는 로브가 입구에 다른 로브가 없는 걸 보고 의심하더니 곧바로 대장에게 무전을 치는 게 보였다.

얼마 잊지 않아 로브들이 대장이 있는 건물로 모였고, 내가 숨겨둔 로브도 쉽게 찾아서 데려왔다.

'서로간의 위치를 파악할 수는 있는 방법이 있나본데?'

나름 어렵게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지나치게 빨리 찾아냈다.

"당장 찾아내!"

얼마나 크게 소리쳤는지 나름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도 소리가 잘 들렸다.

'그냥 아티팩트를 써서 날 찾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

설마 게이트 안에 들어온 침입자를 찾아내는 아티팩트가 없을까.

막말로 적당한 수색 아티팩트를 쓰면 금방 찾아낼 텐데.

'진짜 없나보네.'

로브들이 2인 1조로 묶여서 나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에게 제압당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모든 로브들이 손에 총을 들고 있었으며 각 조당 아이들 2명을 대동하고 움직였다.

"쯧... 할 것도 많은 데 대장님은 왜 이런걸 우리한테 시키시는 거야."

"맞습니다. 그냥 아티팩트 한 번 쓰면 되는 건데 말이죠."

"우리에게 아티팩트를 넘기기 싫으신가 보지."

작은 상자 안에 몸을 구기고 숨어 있으니 로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그냥 애새끼들한테 맞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저놈들이 뒤지면 10분도 안돼서 찾아낼텐데."

"그러면 걔도 뒤질 거 아니야. 대장님 말씀 못들었어? 살려서 데려오라잖아."

"평소라면 그냥 죽여버리라고 하실 분이신데... 요즘 납치할만한 애들이 없긴 한가봐요?"

"그렇지, 그래서 이번에도 조사도 다 안된 짱개 년놈들 납치해 온 거라잖아."

납치할 만한 애들이 없다라...

'납치를 할 때도 가이드 라인이 있긴 했나보구나?'

그 조건에 맞는 애들이 다 없어지자 이제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거고.

"진짜로 이 도시를 전복시키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야! 닥쳐, 애들 앞에서 그런 말하지마."

"크르르르륽"

두 아이가 사나운 눈빛으로 로브들을 노려봤다.

"암, 가능하고 말고. 당연히 가능하지. 그러니까 진정 좀 해라 얘들아."

'로브는 아이들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는 모양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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