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잠입5
* * *
애들이 나를 찾는 데 도움이 돼서 데리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내가 공격하는 걸 방어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감각이 뛰어나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거리에 들어섰음에도 놈들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 새끼는 대체 어디 숨은 거야."
결국 나를 찾지 못하고 나갔다.
'어떻게 할까...'
일단 지금은 계속 도망다니는 게 좋아보였다.
모든 로브들이 나를 찾으러 돌아다니기 때문에 애들의 훈련이 지체됐으니까.
'최대한 일을 방해해야지.'
그 뒤로는 계속 숨어서 돌아다녔다.
놈들이 나를 찾는 걸 포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다시 나타나서 로브들을 때려잡았고, 밥은 놈들이 어디서 밥을 먹는지 미리 파악해 놨다가 몰래 훔쳐 먹는 식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이틀 정도를 반복하니 로브들이 축 늘어진 게 육안으로도 보였다.
"꼬맹이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인지..."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는 2인 1조로 다니던 놈들이 나 때문에 3개 조로 묶여서 다녔다.
애들이 로브를 지켜주긴 했지만 애들 시선을 피해서 몰래 쓰러뜨리고 귀환하는 행위가 가능했기 때문에 로브는 계속해서 뭉치기만했다.
"일단 먹을 것만 철저히 지켜, 굶겨서 죽여버린다는 마인드로 접근하란 말이야. 아무리 놈이 날쌔다고 해도 일주일 쯤 굶으면 죽겠지."
'내가 일주일 쯤 굶기 전에 하연이가 오지 않을까?'
게다가 굶을 생각도 없다.
"리오엔!"
훈련 받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니 아직 훈련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애들이 나를 반겼다.
'훈련이 다 끝나기 전까지는 자아가 멀쩡하더라고.'
17호나 13호가 엄청 딱딱하게 군건 훈련이 거의 끝나가는 데다가 로브의 명령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뿐이고, 평상시에는 상당히 온건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애들이었다.
"네 몫 남겨 놨어."
"땡큐."
괜히 나를 경계하느라 애들 단속은 제대로 안 하는 로브들 덕분에 식사시간이 완전히 지나간 이후 몰래 들려서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네 말만 따르면, 우리 풀려날 수 있는거지?"
"당연하지."
"그 말만 벌써 몇 번째야..."
13호가 상당히 사나운 어투로 말했다.
"13호..."
"후우, 미안해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이제 거의 끝났잖아. 조그만 있으면 선배들처럼 될거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짜증이 치솟아서 그래."
"너희 선배들까지 전부 멀쩡하게 만들거니까 걱정하지 마."
"돼겠냐."
14호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애가 사납게 말했다.
"뭐라고 했었지? 암흑가의 지배자인 달빛아래의 여왕과 친하다고 했었나? 참나 어이가 없어가지고, 그런 사람이 왜 우리를 구하러 오겠어?"
"구하러 올거야. 이건 도시차원의 문제니까."
"네, 아주 잘나셨습니다."
14호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로브들한테 내가 여기에 들른 다는 걸 말하지 않는 걸 보면, 너도 나를 믿고 있는 거 아니야?"
"널 믿는 게 아니라 로브들한테 반항하는 거야. 네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네가 저놈들한테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속이 다 편안해지거든."
"다행이네."
애들한테 받은 빵을 맛있게 먹었다.
"리오엔은 몇살이야?"
"25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진짜인데 어떡하니 꼬마들아.
"아무튼, 나는 다시 돌아가볼게, 나 여기 온거 로브들한테 말하지 마."
"안말한다니까 그러네."
애들을 뒤로 하고 건물을 돌아다녔다.
나한테 당하는 게 무서워서 늘 뭉쳐 다니는 로브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라 시설을 공격하면 되지.'
고작 3묶음으로 뭉쳐 다니는 만큼 시설을 지키는 것에 공백이 많았다.
원래 시설을 지키던 아이들까지 로브를 지키기 위해 배정됐기 때문에 이 시설 저 시설 박살내고 다니면, 로브들이 금방 수리하러 오긴 하지만 늘 대장한테 잔소리를 들을 거라면서 두려워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내가 시설을 박살내는 게 대장한테도 충분히 피해가 가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누나는 뭐하고 지내려나.'
대장이 있는 건물을 몇번이고 주시했지만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진짜 위험한 일이 있었으면 진작 천마가 구해줬겠지, 하는 마인드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장이 모처럼 타입B로 만든 누나를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게 크게 이해되지 않았다.
'아직 훈련이 다 안 끝났나?'
타입A를 완전히 각성하기 위해서 훈련 시간이 필요한 것 처럼 타입 B도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몰랐다.
'모르겠다.'
천마가 안 나타난거 보면 멀쩡한가 보지.
그리고 나는 누나를 믿는다. 위험한 일이 발생해도 누나가 스스로 해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대장건물을 내버려두고 한참 동안 시설만 파괴하고 있으니 이놈들이 수를 냈다.
내 힘으로도 부수기 힘든 재질로 시설을 막아버린 건데, 내가 파괴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망가지면 도대체 어떻게 수리하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완전히 막혔다.
'깽판도 이제 슬슬 끝인가?'
인간을 노릴 수도 없고, 시설을 노릴 수도 없다.
그러면 이제 나는 뭘 노릴 수 있지?
'훈련 끝난 애들이랑 맞다이 까면 내가 이길 수 있나?'
13호와의 싸움을 되짚어 보면 나는 충분히 놈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공격이 제대로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마나도 있으니 치명적인 일격 정도는 가할 수 있겠지.
'그런데 애들을 건드려 봤자 큰 의미가 없다는 게 문제야.'
로브들은 시설을 관리하고 애들을 훈련시키는 등의 일을 하기 때문에 기절시키는 게 의미가 있지만 혼자 다니는 애 하나 잡아다가 기절시켜 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다.
'그렇다고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애들은 기본적으로 피해자라서 죽일수가 없고, 로브들은 생명유지 장치라도 달려있는지 아무리 패도 안 죽길래 포기했다.
'앞으로는 조금 자중해서 움직이자. 아예 죽은 듯 있다 보면 놈들도 경계를 풀겠지.'
놈들이 본격적으로 음식을 막아 놓은지도 꽤 됐으니, 지금 시점에서 죽었다고 착각하게끔 만들어서 놈들의 방심을 노리자.
내가 나서지 않으면 놈들도 경계를 풀고 원래 처럼 혼자서 다닐 테니까.
'우리 현수, 머리 잘굴리는데?'
'징그럽게 그렇게 부르지 마. 우리 현수가 뭐냐?'
'그러면 너네 현수야?'
혼자서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지루했기 때문에 이수현 놈이랑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렇게 이틀이 더 지난 시점에 놈들이 경계를 풀고 다시 2인 1조로 다니는 게 보였다.
'좋아 그러면 슬슬 사냥을 시작할까?'
싶던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내 동생, 여기서 뭐해?"
"... 누나?"
고개를 틀어 뒤를 바라보니, 대장과 리우잉 누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우잉 누나가 대장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자신의 앞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는 걸 알았는지 눈을 미친듯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타입B에 대한 부작용으로 눈이 떨리는 것 같지는 않고 아마 자신의 정신이 멀쩡하다는 매세지를 필사적으로 나에게 전달하고 있는 거겠지.
"시술 끝내고 나오니까 우리 동생이 여기를 완전 헤집고 다닌다더라구, 그래서 찾아왔는데, 진짜 별거 아닌데에 숨어있었구나."
"다른 놈들은 일주일이 다 지나도록 놈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는데, 너는 한 번에 찾는 구나."
"제 동생의 행동 패턴 정도는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어요."
조심히 뒷걸음질 치며 도망칠 준비를 했다.
"동생 어디가려고 그래?"
쿵!!
정신을 차리니 바닥에 박혀 있었다.
바닥에 크게 깨져있긴 했지만 내가 부딪혀서 깨진게 아니라 누나가 먼저 바닥을 깬 뒤 그 위에 나를 올려놓은 거라서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역시 대단해, 아주 걸작이야. 이게 타입 B의 위력인가?"
'아니요, 저희 누나의 순수한 강함인데요.'
예전에 이수현 훈련시킬 때는 이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것도 본적 있는 것 같은데 말야.
"얘 굳이 죽일 필요 없죠?"
"네 마음대로 하거라."
"타입 A로 조치해 주세요. 이 머저리가 미쳐가는 꼴을 제 눈으로 보고 싶거든요."
"그래, 알았다. 그놈을 데리고 따라오도록."
대장이 저 멀리서 먼저 걸어갔다.
"미안, 많이 아팠어?"
"하나도 안아팠어. 안아프게 내려치고 아프냐고 물으면 도대체 어떻게 대답해 줘야 해?"
"헤헤, 안 아프다니 다행이다. 잠깐 머리채 좀 잡을게?"
누나가 내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질질끌었다.
대장 입장에선 바닥에 금이 갈 정도로 강하게 매쳐진 것으로 보였을 텐데, 멀쩡하면 이상할 것 같아서 조용히 눈을 감고 기절한 척 했다.
"현수 자?"
"안자, 자는 척 하는 거야. 그렇게 세게 매쳐졌는데 당연히 기절하지 않겠어?"
"힝, 그렇게 아팠어?"
"아니, 대장 입장에선 그렇게 보였을 거 아니야. 바닥에 파일 정도로 바닥에 부딪히는 걸 봤는데 내가 멀쩡할 걸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냐구."
"아하!"
아하는 뭐가 아하야... 가끔보면 누나는 너무 멍청한 것 같다니까?
'물론 그래서 더 귀엽기도 하지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