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잠입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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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다가 처박는 건 아프지 않게 할 수 있어도 머리채를 잡고 끌고가는 건 아프지 않게 할 수 없었나 보다.
머리카락이 다 뜨길 것 같은 아픔이 있었지만, 탈모가 와도 내 머리가 아니라 이수현의 머리라고 생각하면 버틸 수 있었다.
"네가 알아둬야 할게 있다."
"뭔데요?"
"타입 A는 바로 진행되지 않는다. 적어도 2달 간의 훈련을 해야 서서히 미쳐가는 거지."
"기술적 한계라면 어쩔 수 없죠. 매일매일 얘를 지켜 보며서 실시간으로 미쳐가는 걸 구경해도 되는 거죠?"
"그건 상관없다."
멈춘 것 같아서 조용히 실눈을 떻다.
실눈 뜬 거 들키면 어떡하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누나한테 배운 실눈은 정말 완벽해서 들킬일이 거의 없다.
내가 실눈을 뜨고 있는 걸 알았는지, 누나가 나를 바닥에 던지면서 주변을 스캔할 수 있게 해줬다.
'로브들인 가보네.'
"너희가 일주일동안 흔적도 못 찾은 놈을 얘는 단 한 시간도 안돼서 찾아냈다."
"면목이 없습니다 대장님..."
"하긴, 너희는 그저 떨거지일 뿐이니..."
대장이 혀를 차는 소리가 크게들려왔다.
"앞으로는 이 년이 너희의 상사다, 부대장으로 여기고 모시도록."
"네?"
"불만 있나?"
"아니요... 없습니다..."
없긴, 목소리로만 들어도 억울함이 가득히 느껴지는데,
"그러면 이 놈에게 타입 A를 투여하라."
"알겠습니다."
내 몸이 잠시 들리더니 지면 보다 높은 곳에 내려졌다.
잠시 어수선 한 소리가 들리더니 주사 바늘 같은 게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이것도 일종의 아티팩트인가?'
아무리 이상한 약물이 들어와도 월하의 능력이 나를 보호해 줄거라 생각하니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약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뭔데?'
'그냥 아티팩트 같아, 주사 바늘같은 걸 꽃은 느낌은 있는데 무언가가 들오는 것 같진 않았거든.'
'그게 느껴져? 감각기관이 혈관 안에도 있었나?'
'주변 피부가 얼마나 늘어나느냐로 대충 짐작하는 거지, 혈관에 감각기관이 어떻게 있냐?'
이수현과 이야기 하다보니 바늘이 내 팔에서 쑥 뽑혀나갔다.
"다 주입했습니다."
"훈련이 진행됨에 따라 천천히 미쳐 갈거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돌아가 보도록..."
덜덜덜덜덜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연아! 구하러 왔구나!'
"뭐지? 대체 무슨 일이..."
대장의 목소리에서 엄청난 당혹감이 느껴졌다.
"말도안돼... 내 게이트가 깨지고 있다고?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당연히 말이 되죠!'
쩌적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티팩트... 아티팩트부터 챙겨야 해. 다들 따라와!"
사장이 밖으로 뛰어나가는 게 느껴졌다.
로브들도 잠시 주춤하더니 모두 밖으로 나갔다.
"일어나, 다들 나갔어."
"나도 알아."
눈을 떠보니 누나가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미안, 상처많이 받았지..."
"응, 상처 많이 받았어."
누나가 잔뜩 울상이 된 표정을 지었다.
"누나 연기가 너무 어색해서 내상을 입었거든, 어눌한 한국어가 아니었으면 쟤네들 상대로도 금방 들켰을 걸?"
"그게 뭐야..."
누나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하연이가 이 곳을 박살내려는 것 같지?"
"응, 역시 S급 각성자는 대단하다, 아티팩트로 만들어진 게이트도 부숴버리다니...'
"자연게이트가 아니었구나?"
"어, 그 대장이라는 놈이 멍청하게 비밀을 다 불어버리더라고, 내가 그렇게 믿음직 스러웠나?"
"연기는 어색했어도 광기는 진짜였거든."
"현수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연기하니까 엄청 잘되더라."
예전이라면 누나의 웃는 얼굴을 따라 마주 웃었겠지만, 저번에 캣파이트 할 때 들었던 섬뜩한 말이 아직도 기억나서 마음 놓고 웃을 수가 없었다.
"저 누나, 내 사지 찢어버린다는 거, 장난으로 하는 말이지."
"애정표현이지~"
그래... 애정표현이지.
"그런데 어지간히 단단한 아티팩트인가 보네, 아직도 안깨지는 걸 보니까..."
"아마 뒷구멍 다 막느라고 늦는 걸껄? 내가 그놈한테 들었던 뒷구멍만 12개였으니까."
"자기 안전은 오질라게 챙겨요,"
뒷구멍을 전부 다 막았는지 허공의 균열이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우리 같이 꿈속에서 경험했던 거랑 비슷하지 않아?"
'누나는 그 일이 진짜로 꿈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그러게, 둘 이서 이렇게 모험도 하고 비슷한 것 같네."
콰직.... 콰지지직!!
완전히 부서지려는 듯 거대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깨져버렸다.
순간적으로 거대한 빛이 눈뽕을 선사했기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너희는 포위됐다. 너희는 포위됐다. 얌전히 투항하라."
눈을 완전히 뜨니 보인 것은 도시 외부에 있는 커다란 공터와 그 공터를 둘러싸고 있는 경비대, 그리고 이 도시에 셋이나 있는 S급 각성자중 두 명인 하연이와 월하였다.
하연이와 눈을 마주치니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말도... 안돼... 내가 어떻게 이룩한 것들인데..."
"네놈이 주동자냐?"
대장이 말이 없길래 내가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룩하기는, 결국 아티팩트를 악용한 것에 불과하지 않나."
"이놈들이!"
대장이 커다란 총 모양 아티팩트를 들고 이리저리 난사했지만 월하가 손 한 번 들자 생선된 불투명한 검은색 막에 막혀서 사라져 버렸다.
"내 병사들이여! 가라!"
대장의 명령에 12명의 훈련이 끝난 아이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이 새빨게 져서 경비병들에게 뛰어갔다.
"죽이면 안돼!!"
얘네들은 순수한 피해자들이다.
단순히 이용만 당한 애들이 어른들 싸움에 휘말려서 죽는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 빌런 조직을 무찌르고도 납치 당한 일반인들을 모두 죽여버렸다는 이유로 괜히 여론이 나빠질지도 몰랐다.
스윽
월하가 손 한 번 휘두르니 검은 색 연기가 주변을 덮었다가 사라졌다.
검은 연기가 한 번 지나갔을 뿐인데 모든 아이들을 쓰러졌으며 대장과 로브가 들고 있던 아티팩트중 상당수가 빛을 잃었다.
'근데 왜 내키는 안 돌아 오냐?'
내 키 작아진 것도 능력에 의한건데 이건 왜 안 사라지냐고!
'쟤 설마 이 와중에도 나한테는 적용 안되게 능력을 펼친거야?'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투항해라."
로브들이 재빨리 아티팩트를 던져 버리고 바닥에 무릎꿇었다.
"죄송합니다! 전부 이 새끼가 시켜서 저지른 일입니다!"
"맞습니다! 저희의 죄를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이 새끼가 가장 잘 못했습니다."
"이것들이..."
대장이 아티팩트들을 들고 이리저리 휘둘렀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 투항하지 않는 걸로 알겠습니다."
하연이의 뒤에 숨어있던 연하가 스르르 모습을 들어냈다.
그리고 곧 능력을 발휘하듯 손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대장의 처참한 비명이 공터를 가득 매웠다.
'대체 연하의 능력이 뭐길래 고문을 저렇게 잘하는 걸까?'
"잘못했습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살려주십쇼제발 목숨만은..."
그렇게 당당했던 대장이 단 3초간의 고문으로 모든 의지를 잃고 바닥에 무릎 꿇고 빌고 있었다.
"체포해."
경비대원들이 움직여서 로브들과 대장을 묶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매트 가져온 거 있지? 그거 깔고 일단 그 위에 눕혀 놔."
경비대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하연이가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수고많으셨어요. 현수 오라버니."
"오냐."
"리우잉도 수고 많았어."
연기하는 게 재밌긴 했는데, 저 망할 놈들이 애들을 건드렸다고 생각하니까 열불이 치솟더라. 무조건 엄벌을 줬으면 좋겠어.
"당연히 엄벌을 해야지. 이럴 때 본보기를 잡아놓지 않으면 빌런들이 자꾸 날 뛴단 말야."
좋아 좋아.
누나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모든 입구를 찾아낸 다음 일제히 막았어야 했거든요."
"이제 내 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홀가분해 진다."
"당분간은 못 돌아갈거야."
월하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응? 네가 풀어주면 되잖아."
"못 풀어, 너한테 걸어준 가호랑 간섭 안받게 따로 조정한 거라서, 자연적으로 풀리는 걸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걸?"
'어디서 사쿠라여?'
S급 각성자가 자신이 조정한 능력을 못 푼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무래도 네가 작은 모습을 보고 싶은 모양이다.'
'하아... 변태들...'
애들은 어떻게 할거야?
"일단 빈민가로 다시 보내야지,"
없어졌던 애들이 한번에 빈민가로 들어오는 건데 파장이 심하지 않을까?
"앞으로 빈민가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거야. 더 나은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면, 당장은 거짓된 약속이다 뭐다 말이 많겠지만, 실천으로 옮기면 계속 욕을 하면서도 나아졌다곤 생각할 거야."
욕을 안 먹는 방법은 없어?
"없어. 지금까지 우리 도시가 잘못한 게 너무 많거든."
리우잉과 하연이가 이야기 하는 동안 주변을 둘러 보니 애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애들이 금방 깨어나서 애들을 데리고 성문으로 걸어들어갔다.
"네말 진짜였어?"
"대다네!"
애들한테 둘러쌓여서 걷는 느낌은 색달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빈민가로 들어오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다들 안녕한가. 나는 이 도시의 경비대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백하연이라고 한다."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일단 사과부터 박겠다. 미안하다."
하연이가 허리를 45도 정도 숙였다가 일어났다.
"내 뒤에 있는 아이들은 빌런 무리에게 잡혔다가 오늘 구출 된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납치되게 만든 환경을 만든 것도 도시의 책임이고 빌런 조직을 제어하지 못한 것도 도시의 잘못이지."
여기저기서 욕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앞으론 변하겠다. 지금까지 소외받은 제군들이 만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고 싶군."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엄청난 비난과 욕설이 들려왔다.
너희가 우리에게 해준게 뭐냐, 말로만 잘한다고 될 일이냐는 기본이고 더 심한 욕도 서스럼없이 쏟아졌다.
"그럼 나는 이만 물러가겠다."
하연이가 상처 하나 받지 않은 표정으로 뒤돌아 걸어갔다.
최대한 빨리 따라 붙었다.
"괜찮아?"
"예상했던 일이에요. 당연히 욕을 먹죠. 그동안 못한 게 있는데. 이제 욕 안 먹게 노력하면 되죠."
'방긋하고 웃는 하연이의 미소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걸 왜 네가 말하냐.'
'말해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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