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요리대결2
* * *
'애들도 없고... 할 것도 없고...'
아무도 없이 텅 빈 식당에 나 혼자만 남아있으니 굉장히 심심했다.
의자를 일렬로 깔고 그 위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보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식당을 빙빙 돌기도 해봤지만 심심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뭐 재밌는 거 없나?'
식당 전체를 싹 다 치워 놔서 그런지 음식을 올려놓는 트레이 같은 것도 없었다.
결국 의자 위에 누워서 시간만 죽이고 있으니 한 시간이 꼬박 지나서야 애들이 나왔다.
"다 됐어?!"
"엄청 화색을 하시네요. 그렇게 배가 고프셨어요?"
"배가 고프다기보다는 너무 심심해서 말이야. 혼자서 멍하니 누워만 있는 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데."
"앞으론 책이라도 한 권 들고 다니시는 게 어때요?"
책? 좋은 생각인데?
"왠 일로 네가 좋은 아이디어를 다 녜냐."
"왠 일이라뇨? 캣 파이트 아이디어도 제가 낸 거고 당장 지금하는 요리 대결도 제가 낸 건데요."
그것도 그렇네, 연하는 생각보다 아이디어 덩어리일 지도?
"그렇긴 하네.."
"그쵸?"
"이러다 음식 다 식겠다. 시작 안 할 건가?"
천마가 어울리지 않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날카롭거나 무섭다기 보다는 기운이 축 빠진 목소리에 가까웠기 때문에 굉장히 안쓰러워 보였다.
"알았어요. 바로 시작하죠."
커다란 식탁하나에 자신들이 만든 음식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제가 만든 건 파스타에요! 그것도 치즈가 잔뜩 들어간 크림치즈 파스타!"
"치즈는 어디서 구했어?"
"있던데요? 제가 구한 거아니니까 저한테 물어보지 말고 월하 언니한테 물어보세요."
월하를 쓱 바라보자 월하가 방긋 웃으며 대답해 줬다.
"비밀이에요."
"뭐야, 말해줄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비밀이야?"
"제가 만든 음식을 공개하겠습니다."
말 돌리는 거봐.
"제가 만든 건, 랍스터 찜이랑 스테이크예요."
"재료빨로 날먹한다! 우우우!"
연하가 높아진 텐션으로 월하를 비난했다.
"뭘 만들든 상관 없는 거 아니었나요? 저는 제 요리실력이 미천한 걸 알아서, 제 실력으로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걸 만든 것 뿐이랍니다. 재료가 고급이니 그냥 찌고 굽기만 해도 맛이 나겠죠."
두꺼운 고기를 제대로 익힐 자신은 없었는지 사각형 모양으로 잘라서 찹스테이크 형식으로 내왔다.
"저는 일단... 볶음밥을 만들었는데요..."
"볶음밥? 비빔밥이 아니고?"
볶음밥 특유의 고소한 냄새도 없고 밥이 딱히 볶아진 것 같지도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볶음밥이 아니라 그냥 비빔밥 처럼 보였다.
"일단 만들어 본다고 만든 건데 이렇게 됐네요."
각성자면 신체를 굉장히 잘 쓸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왜 이렇게 나왔지?
아무리 요리가 처음이여도 S급 각성자 쯤 되면 볶는 것 정도는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아?
"하하하! 아무래도 제가 제일 잘 만든 것 같은데요?"
"글쎄요? 혹시 모르는 거죠. 기사님이 단순하게 고급요리를 좋아하실지 어떻게 알아요."
"뛰어난 셰프가 고급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야 고급 요리지 요리 초보가 단순하게 찌고 구운 음식이 어떻게 고급요리에요!"
"큼큼."
과열되는 분위기에 천마가 작게 헛기침 했다.
"나는 라면이랑 삼겹살을 만들었다."
"날먹이다! 여긴 진짜 날먹이다!"
"피차 요리에 자신이 없어서 말이다. 라면과 삼겹살은 누가 만들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으니, 이걸 선택했다."
천마가 끓인 라면과 바삭하게 구워진 삼겹살은 보기만해도 군침이 나왔다.
"천마가 뭘 좀 아네, 전략을 잘 세운 것 같아."
천마가 말없이 주먹을 꽉 지었다.
나는 고구마 맛탕 만들어 봤어!
'고구마... 맛탕?'
현수의 비명이 들려왔다.
리우잉이 내려놓은 건 고구마 맛탕이 아니라 까맣게 탓당이었으니까.
'고구마가 탄게 아니라 설탕이나 물엿같은 게 탄게 아닐까? 누가 고구마를 저렇게 태워먹을 때까지 조리를 하겠어?'
'리우잉누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일단 꼴찌는 확정인 것 같았다.
'저거 한입은 먹어봐야 한다. 비쥬얼만 보고 손도 안 댔다가는 엄청 삐질거야.'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을...'
"그럼 일단 다 한입씩 먹어 볼게."
일단 연하가 만든 크림치즈 파스타를 한입 먹어봤다.
'맛이 없진 않은데...'
나름 간도 잘 되어 있고 면도 잘 익었다.
치즈도 짭조름 한게 참 좋긴 한데...
'너무 느끼해...'
자기 입맛에 맞춘 건지 모를겠는데 너무 느끼했다.
한 두 입 정도는 먹을 만한 데 더 먹는다고 생각하니 손이 콱, 멈췄다.
'좋은 점수는 못 줄 것 같네.'
다음은 월하의 랍스터와 스테이크.
껍질이 모두 제거된 상태였기에 랍스터의 속살을 맛볼수 있었다.
'맛이 없진 않는데... 뭔가 밍밍하다?'
살짝 퍽퍽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반찬삼아 먹으면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스테이크도 먹어봤는데 작게 잘라서 익혀서 그런지 그러저럭 먹을만 했다.
'얘는 그냥 고기 맛 밖에 안나네.'
소금도 안 뿌렸나?
내가 아무말 없이 먹고 있기만 하자 다들 침을 꼴깍삼키며 긴장한 상태로 나를 바라봤다.
다음은 하연이의 볶음비빔밥.
'고추장 맛 밖에 안나는데.'
밥도 고슬하지 않고 질척한 느낌이었다.
얘도 손이 잘 안 갈 것 같다.
그리고 다음은...
'이건 우승 아니냐.'
라면에 삼겹살이라니, 누가 만들어도 완벽한 조합이잖아.
라면 한 젓갈 먹고 삼겹살을 한 점 집어먹으니 그만큼 완벽한 조합이 없었다.
라면 자체가 짜고 매웠기 때문에 조금 밍밍했던 랍스터랑 스테이크와도 나름 궁합이 잘 어울렸다.
"오라버니? 왜 제 파스타는 더 먹어주시지 않는건가요?"
"느끼해... 한 입까지는 맛있게 먹겠는데 더 손이 안 가더라."
라면을 후루룩 먹고 있으니 천마가 주먹을 쥔채 몸을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이긴 것 같군."
아직 모르는 일이지! 현수의 평가가 남았단 말이야!
"리우잉... 너 진짜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까맣게 탓당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일단 나 먹을 거 다 먹고 넘겨줄게."
라면이 워낙 맛있어서 라면을 다 먹고 삼겹살도 절반 정도 해치웠다. 랍스터랑 스테이크도 어느정도 먹었지만, 파스타와 볶음비빔밥은 한 입 먹고 더 먹지 않았다.
"아 잘 먹었다. 맛있게 먹었어."
"저랑 하연언니 음식은 한 입먹고 더 먹지도 않으셔 놓곤..."
"맛이 없는 게 아니라 입맛에 안맞아서 그런거야. 너무 상심하지 마. 그러면 이제 현수한테 넘긴다?"
의식을 현수랑 바꿔치기했다.
"...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고구마 맛탕밖에 없는거야?"
당연하지!
현수놈이 눈물을 흘리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현수가 이거 다 먹으면 내가 우승 하는 거지?
"그렇기는 하다만... 다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군."
하긴, 배가 많이 차기는 했을 테니까. 그래도 다 먹을 수 있지 현수야?"
리우잉이 방긋 웃으면서 현수를 바라봤다.
다 먹어야 나랑 같이 잘 수 있는 건데 현수는 다 먹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왜 요리대결에서 괴식먹기 챌린지로 종목이 바뀐 것 같지?
"하아..."
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 까맣게 탔당을 하나 들어올렸다.
"일단 먹어 볼게."
현수가 입에 까맣게 탔당을 넣는 동시에 미각과의 연결을 끊었다.
'어떤맛이냐?'
'생각보다 그렇게 맛이 없진 않아. 그냥 탄 맛 그 자체야.'
'우리는 그걸보고 맛이 없다고 부르기로 했단다.'
'더 먹기 싫은 데...'
현수가 리우잉의 눈치를 봤다.
왜? 더 못먹겠어? 진짜로 못 먹는 다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지? 우리 현수는 누나랑 같이 있기 싫은 거야?
'하다못해 생 고구마를 가져왔어도 다 먹었을 텐데...'
현수가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기 시작했지만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나에게 의식을 넘겼다.
"다 먹었데."
거짓말! 스승님이랑 같이 자려고 현수의 의식을 강제로 뺏어 버린거지?
"아닌데? 자기가 싫다고 제발 들여보내달라기에 들여보내준 것 뿐이라고."
결과에 승복하라 리우잉, 내가 이겼다.
천마가 우쭐하는 표정으로 리우잉을 내려다 봤다.
크윽. 분하다.
아니, 어느정도 잘 만들고 분해하시라고요. 연하도 잘 만들었놓고 한 입 먹혔는데, 그거 가지고 투정 안부리고 자기가 만든 거 스스로 먹고 있잖아.
"일단 우승은 천마!"
"날먹이다 날먹!"
"날먹이어도 우승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꼬우면 너희도 날먹을 했으면 되지 왜 머리를 안 쓰고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이냐?"
"요리대결이잖아요 요리 대결! 저흰 조리대결을 한 게 아니라고요!"
"난 모른다. 아무튼 아해가 나를 우승자라고 했으니 내가 우승자다."
애들 싸움 보는 것 같네.
"근데 너희들 알지? 너희가 만든 음식들은 너희가 나눠서 먹어야 한다?"
현수가 반 정도 먹긴 했지만 아직도 꽤 남은 까맣게 탔성을 보고 말했다.
"어... 저는 제가 만든 파스타나 먹을게요."
"나는 아해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니 괜찮다."
"먹을.. 수 있어요. 맛이 센 비빔밥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돼죠."
나도 먹을 수 있어!
"그러면 리우잉의 음식은 리우잉 혼자서 처리하는 것으로 하지."
"네! 그렇게 해요."
리우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니까 왜 저런 음식을 만들어서는...'
'업보 청산이지 뭐.'
그렇게 다들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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