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경비대3
* * *
"대련 하기 전에 잠깐 천아님이랑 얘기 좀 할게요."
천마를 끌고 구석으로 갔다.
다른 사람 안 들리게 방벽이라도 치라는 의미로 발을 동동구르니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 설마 진짜로 싸울 건 아니지?"
"이미 싸운 다고 못을 박아놨는데 안 싸우면 어떡하나? 당연히 싸울거다."
"아무리 마나를 줄이고 신체 능력을 줄여도 무조건 네가 이기는 승부잖아."
"내가 이기는 승부니까 대결을 신청했지 지는 싸움을 하자고 했을 것 같나? 그리고 그년! 아해를 음흉한 표정으로 쳐다봤단 말이다!"
역시 그것때문에 화난 거였네.
"저기요. 음흉한건 네가 제일 윰흉하거든요?"
"나는 아해와 연인사이니 음흉해도 상관 없다. 오히려 음흉하지 않으면 안되지."
말은 참 잘해요.
"근데 저년은 아해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보면 변태가 틀림없다! 그런 변태가 아해를 만지고 싶어서 대련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단 말이다!"
"그래서... 아예 박살을 내줄거야?"
"마음 같아서는 죽여버리고 싶지만 하연의 체면도 있고 여기서 사람을 죽여버리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 뻔하니 적당히 밟아주는 선에서 끝낼 것이다."
"하아... 너무 심하게 하지 마라."
"알았다."
천마는 그래도 포용력이 있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쟤도 나랑 관련있는 일에는 눈이 돌아간단 말이지?
'봐주는 건 연하, 하연, 월하, 리우잉까지란 말인가?'
일단 천마를 데리고 다시 훈련장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둘은 무슨 사이야?"
"동기입니다. 그럭저럭 친해요."
대련은 바로 시작됐고 바로 끝났다.
천마는 여성의 공격을 너무 나도 손쉽게 받아냈고 최고의 마나 효율을 발휘해서 여성을 때려 눕혔다.
"... 쟤 신입 맞아?"
"각성을 한지는 꽤 시간이 지났데요. 경비대에는 처음 들어온 거니까 신입이 맞죠."
박지현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분명 신체능력도 비슷하고 마나도 비슷했는데 여성이 손도 못쓰고 참패를 당해 버렸으니까.
"이야, 이거 완전 슈퍼루키가 들어왔구만? 제대로 키우면 일 좀 편해지겠는데?"
"제대로 큰 이후에는 솔로 돌아가겠죠."
"아..."
유나씨의 한 마디에 박지현이 축 쳐졌다.
"열심히 키워서 다른 도시에 뺏긴다고 생각하니까 기분 나빠지는데?"
"애초에 솔 소속인데 무슨 욕심을 부리시는 거에요..."
"아래 애들은 가끔 휴가 나가는 데 우리같이 고위 각성자들은 대체 인력 없다고 휴가도 없잖아! 휴가 욕심이다 왜 됐냐!"
"저 분이 게이트 관리 부로 들어올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아직 수습기간인데..."
할말이 없는 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일단 기본적인 일처리 부터 알려줄건데...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 누구지?"
"지현님이죠. 당장 고위 게이트가 터진 것도 아니고, 저급 게이트는 자주 터지는 데 반해서 고위 게이트는 출현률이 낮잖아요? 그리고 마천아씨는 고위 게이트에 들어 갈테니, 이러나 저러나 지현님이 교육을 해주시는 게 낫죠."
"FM대로 교육하는 법 모르는데..."
"화이팅 입니다!"
유나씨가 오른손을 들고 한번 흔드셨다.
"혹시 신입들한테 궁금한 점 있는 사람?"
여자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뭔 질문인데?"
"이고양씨, 이상형이 어떻게 되십니까!"
천마의 열이 슬근슬근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등급은 S급이면 좋겠고, 키는 185가 넘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에 커다란 성 몇 개정도는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야, 너는 아니랜다."
"까비."
너무 어이 없는 조건이라 단순한 장난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천마를 달래주기 위해 천마의 특징을 읇은 것에 불과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화난 기색이 좀 줄어들고 살짝 미소가 감도는 듯 했다.
"조건이 너무 빡센거 아니야? 그 조건이면 우리 대장님도 안 들어간다고, 솔직히 S급 각성자가 사귀자고 하면 당장 사귀는 게 정상아니야? 뭘그렇게 따지는 게 많어?"
최지현이 장난스런 어투로 물어봤다.
'S급 각성자가 사귀자고 하면 바로 사귀는 게 정상이라...'
아직 미르에 방치돼서 찾아가지도 않고 있는 이수아를 떠올렸다.
걔랑은 정 붙이기가 힘들어.
"아무랑도 사귀기 싫다는 뜻이죠. 지금은 제 실력을 올리고 경비대 일을 배우는 것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포부는 좋은 데 재미가 없네, 더 질문할 거리 있는 사람 있어?"
"마천아씨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번에는 남자쪽에서 질문이 들어왔다.
"없다. 정확히 말하면 소꿉친구가 이상형인데 아쉽게도 나한텐 소꿉친구가 없군."
이건 나를 겨냥해서 한 말이겠지?
"외형적인 이상형은 어떻게 되십니까?"
"그런 거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의 외형과 관계없이 항상 같은 사랑을 말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못 커지게 하냐고!'
"오올, 마천아씨 생각보다 낭만파신데요?"
유나씨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낭만파인게 아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마천아씨랑 사귀는 사람은 참 행복하겠어요."
천마야 입꼬리 간수 잘해라, 여기서 입꼬리 올리면 분위기 확 깨는 거야.
"그러면 이제 슬슬 해산하고 각자 일하러 갈까요? 지금부터는 지현님이 신입분들께 교육도 진행해야 하고, 각자 할 일도 있으니까요."
"그래, 다들 들어가라, 게이트 터지면 알아서 출동하고."
순식간에 해산해서 다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으으, 교육 같은 건 잼병인데... 일단 가장 기본적인 것 부터 이야기 해 줄게. 육체적으로는 우리 경비대 보다 더 완성된 걸 봤으니까 따로 훈련을 시키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는 몸을 움직이는 대신 재미없는 외우기만 반복해야 한다는 거지. 일단 앉아."
최지현이 먼저 바닥에 털썩하고 앉았다.
"게이트 관리부가 뭐하는 데라고 생각해?"
"게이트가 발생하면 그 게이트를 통제하고 몬스터를 막아내는 곳 아닙니까?"
"맞아, 정의를 따지면 그렇지, 하는 일도 네가 말한 거랑 크게 다르지 않고 말야, 그냥 게이트를 막는 게 일이야. 근데, 효율을 높히기 위해서 여러 절차를 도입한거지."
설명을 잘 못한다는 엄살과는 다르게 그녀의 말은 썩 들어줄만 했다.
나름 정신을 확 잡아끄는 말투기도 했고, 말이 헛돌지도 않았다.
"너희들 게이트가 발생하고 몬스터를 내뱉을 때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지 알아?"
"30분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 30분이지, 처음 게이트가 생성됐다는 보고를 받으면 15분안에 1단계가 시작돼.게이트를 막는 필요한 여러 단계중 하나지 일단 키퍼라고 불리는 인원들이 가장 빠르게 다가가서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막아, 대부분의 게이트는 약한 몬스터가 먼저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적은 수의 키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시간이 지나서 내부의 몬스터가 공격해 올 때쯤 전문 처리반들이 출동해, 원래는 전문 처리반이 처음 부터 끝까지 게이트를 막았는데 인력이 너무 모자라서 초반은 키퍼들이 처리하는 걸로 바뀌었어, 너희는 아마 키퍼도 해보고 전문 처리반도 해볼거야, 근데 전문 처리반이 되면 아무래도 깍두기 신세가 되겠지. 이미 만들어진 팀안에서 활약하는 건 힘드니까."
"그건 키퍼도 똑같지 않나요?"
"맞긴 한데 전문처리반 만큼 빡빡하지는 않아."
그 뒤로 게이트 처리 단계에 대한 교육이 계속 됐다.
처음부터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 이변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상품가치가 높은 몬스터가 나오거나 위험도가 높은 몬스터가 게이트 내부에 있을 때 게이트 진입은 어떤 단계로 이루어지는 지, 우리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지 등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변수가 가장 위험다고 줄창 말했지만 정작 그 변수들을 너희가 처리할 일은 없을 거야. 너희 선배들이 알아서 처리할 건데, 너희는 그 선배들의 해결법을 어깨너머로 바라보면서 실력을 키우면 되지."
"네!"
"알았다."
"그리고 마천아, 너한테 할말이 있어."
"뭔가?"
"게이트 처리 부에서 일할 땐 딱 일반적인 A급 각성자의 힘만 발휘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육체랑 마나를 기가막히게 잘 쓰는 걸 알겠는데, 그런 제한이 없으면 너한테는 어떤 위험도 없을 것 같거든, 진짜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힘을 제한해."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모래 주머니를 차고 운동하는 거라고 생각해, 네 수준을 생각하면 수습 기간동안 위기 상황이 생길일은 없을 것 같은데 솔에 발령나면 모르잖아. 어떤 위기가 너를 덮칠지... 미리 위기관리 능력을 키운다고 생각하고 수습기간 동안은 내 말대로 힘을 좀 숨겨."
"알았다."
처음 봤을 때는 장난기 넘치고 가벼운 사람인줄 알았는데, 진지할 때는 되게 진지하구나.
'하긴 괜히 게이트 처리부의 차장을 맡고 있는 게 아니겠지.'
박지현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변하자 천마가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악!'
슬쩍 천마를 바라보니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이걸 때릴 수도 없고...'
아픔을 꾹 눌러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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