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7화 〉 현장­2 (147/265)

〈 147화 〉 현장­2

* * *

"무슨 등급 게이트에요?"

"E급 게이트, D급 게이트면 변수도 많고 나름 위험한 감이 있는데 E급이니까 큰 위험은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허공에 있던 실 선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잘 보고 있어."

당장이라도 몬스터를 뱉어 낼 것 같이 빵빵하게 부푼 게이트였지만 그 무엇도 뱉어내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 싶어서 다른 경비대원들의 눈치를 살피니 다들 같은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제발 나와라..."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에도 몬스터는 튀어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조장이 무전기를 켰다.

"이상현상발생, 이상현상발생,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다."

뒤쪽에 미리 설치했던 사진기를 작동시켜서 게이트 주변의 상황을 찍은 뒤 본부로 보냈다.

"뭐래?"

"아직 분석 중이랍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었나?"

"게이트 자체가 아예 안열리고 사라지는 일은 있었어도 게이트가 열리고 아무도 나오지 않은 적은 없었죠."

묵직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차라리 다행이네 우리가 있을 때 이런 변수가 벌어져서...'

우리가 없었으면 주변에 박지현이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경비대원들이 무슨 일을 겪었을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이 하필 우리가 현장을 체험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들 곁엔 박지현도 있었고 모든 변수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천마도 있었다.

게이트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천마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 별로 무섭지 않았다.

다른 경비대원들 또한 주변에 박지현과 천마, 그러니까 마천아가 있기에 괜찮다고 생각한건지 적당한 긴장감만을 유지한 채 게이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상현상이 발생했다고?"

갑자기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하연이와 연하가 보였다.

'경비대장이 직접 나설 정도로 긴급한 상황인가?'

집에서야 내 여동생이고 어느정도 동네북 기질이 있는 하연이지만 경비대의 대장이며 S급 각성자기도 하다, 그런 하연이가 찾아올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어?

'아닌 것 같은데?'

박지현이, 네가 왜 거기서 나오냐는 표정으로 하연이를 보고 있는 걸 미루어 볼 때 심각한 상황이긴 하지만 하연이까지 나설 필요는 없는 상황으로 추측됐다.

'이것들 나 보러 온 거 아니야?'

천마랑 박지현이 이야기 하는 데 우리가 자연스럽게 가운데에 껴있다.

하연이 실력이라면 그냥 박지현 바로 옆에 순간이동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전례가 있는 현상인가?"

"솔에도 정보가 없어요, 완전히 처음 보는 현상이에요."

천마는 이런 걸 경험해 본적이 있을까? 저번에 황금 고블린의 던전도 그렇고 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이런 변수들도 더 많이 겪어 봤을 것 같으니까.

슬쩍 천마를 바라보자 바로 전음이 전해져 왔다.

­나도 이런일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내 추측에는 게이트 내부에 세력이 두 개가 있는 것 같다.

'세력이 두개라고?'

기본적으로 게이트 안에는 주류세력이 하나만 있다.

대수림에 가기 전에 연하랑 들어갔던 게이트에서는 오크들이 주류 세력이었기에 하나로 단결되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간뒤 홀로 남아있는 자이언트 스네이크를 잡은 것이고, 대부분의 게이트에서 하나의 주류세력이 게이트 밖으로 돌진하고 나머지는 상황봐서 나올 수도 있고 남아있을 수도 있는 게 보통이다.

­간혹 지도자가 두 마리인 게이트가 발견 되는 데 이 경우 두 세력 모두 상대를 견제하며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몇 번 나타난 적이 있는 데 한국에서는 나타난 적이 없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나는 경비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신참, 혹시 예상 가는 게 있나?"

하연이가 천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게이트에 대한 지식이 더 풍부한 천마에게 정보를 요청한거지.

"... 안에 대가리가 여러마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가리가 여럿이라... 확실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게이트 안에 세력이 여럿 형성되어 있는 게이트가 터지면 지들끼리 눈치 보느라 우리랑 잘 못 싸우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게 극한까지 치달았다고 생각하면, 아예 밖으로 안나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 마저 확실한 게 아니지..."

하연이가 고민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잖아요."

"당연하지, 언제 갑자기 몬스터가 쏟아질 줄 알고..."

"그렇다고 게이트가 닫히는 24시간 뒤까지 이 인력을 여기서 계속 낭비 시킬 수도 없고... 내부로 들어가야 겠죠?"

"그래야 겠지, 다행이 연하네가 한가로운 편이고, 능력도 상황에 안성 맞춤이니 연하 너와 보조 인력들을 데리고 들어가면 될 듯 해."

"언니는요?"

"나는 게이트에 함부로 못 들어가. 솔에서 일어난 일을 잊은거야? 길드장이 게이트 들어갔다가 테러가 터졌잖아. 우리 도시에 테러를 저지를 정도로 큰 빌런 조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만에 하나 S급 게이트가 터지면 내가 막아야 하니까."

"알았어요. 제가 들어갔다 올게요."

조장과 몇몇의 경비대원들이 손을 들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 처음 있는 일이니 만큼 기록할 것도 많고 조사해야 할 것도 많으니까... 아니다. 그냥 여깄는 애들 다 같이 들어가자. 그게 더 확실할 것 같아. 괜히 소수가 들어가서 정보를 제대로 못 얻어오는 것 보다는 조금 과하게 투자해서 정보를 얻어놔야 다음에 편하지."

"신입들도 들어갑니까?"

"이고양이라고 했었나? 남자 신입은 안들어와도 돼. 근데 마천아는 따라오도록, 쓸만한 무력을 가진 사람이 3명은 있어야 무난하게 지킬 수 있을 것 같거든."

"아무리 이상 현상이라고 해도 E급 게이트인데 이 정도 인력은 과한 것 아닙니까?"

"나야 외교관 신분이라 사실상 다른 일이 없고, 박지현 너도 시간 비는 데다가, 마천아도 신입이다보니 전력외 아니야? 그렇게 대단한 전력을 가져다 쓰는 것 같진 않은데? 다른 경비대원들은 어차피 일할 시간이었고 말이야."

연하도 일할 때는 멋지구나, 평소의 높은 텐션과 활기참을 가진 연하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연하를 보니 상당히 멋있게 느껴졌다.

"바로 준비해, 20분 후에 돌입한다. 경비대원들은 본부가서 게이트 진입용 장비챙겨오고, 박지현 너도 장비 챙겨와. 신입들도 혹시 놓고온 개인 장비가 있다면 챙기도록."

"챙겨 왔다."

천마가 자신의 허리에 달린 검을 가리켰다.

"너희들,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지?"

"네, 처음입니다."

"처음은 아니다."

"마천아 너도 이렇게 단체로 들어가는 건 처음 일거 아니야."

"그렇다. 저번에 들어갔을 땐 나 혼자 들어갔을 뿐이니."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은 신입들한테 많은 걸 바라진 않겠어. 되도록 조용히하고 눈치껏 행동해. 아, 수신호는 다 외웠나?"

"외웠다."

"그러면 크게 걱정 안해도 되겠군."

연하가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해. 그래야 안전 할 수 있어."

"알았다."

연하가 말을 마치고 게이트를 빤히 쳐다봤다.

경비대원들이 게이트 주변의 장비들을 지키고 있을 최소한의 인력만 남기고 트럭을 타고 다시 본부로 떠나자 게이트 주변이 텅텅 비었다.

박지현도 오토바이 타고 짐 챙기러 떠났으니 이 주변엔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하아... 하필 오라버니가 있을 때 일이 터지네요."

"그러게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어차피 E급 게이트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저 하나 위협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 것 치고는 사람을 많이 데려가는군."

천마가 연하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아까 말했잖아요. 모든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데려가는 거라고요."

"근데 세력이 두개로 나뉘어서 안나온다는 정보는 확실한거야?"

"확실하지 않으니까 제가 들어가는 거죠. 그게 확실한 정보였으면 그냥 박지현한테 맡겨도 돼요. 혼자 들어가서 다 쓸어버리고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근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서 제가 들어가는 거에요."

"네 말대로 그래봤자 E급 게이트인데 과한 전력인거 아니야?"

"시간 남으니까 들어가는 거죠. 오라버니랑 같이 게이트 들어간다는 느낌으로."

가벼운 말과는 달리 연하의 표정은 상당히 진지했다.

잘 들여다 보면 조금의 심각함 또한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보통일은 아닌 것 같은데...'

속으로 불안감만 키우고 있을 때쯤 게이트 진입용 장비를 모두 챙겨온 경비대원들과 박지현이 도착했고, 우리도 경비대원들의 말에 따라서 게이트 진입용 슈트와 장비들을 장착했다.

"다들 준비됐으면, 이제 돌입한다."

'별일 없겠지?'

연하를 시작으로 한 명 한명씩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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