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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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시는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다.
인프라나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크기가 작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구나.'
이렇게 작은 도시에 호수가 있을 거라는 건 진짜 상상도 못했다.
천마산에서나 구경하던 게 호수였는데...
"천마산 보다 더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아무래도 모두가 다 같이 사용하는 호수가 아니라 호수 접근할 수 있는 잘 사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곳이니 만큼 더 관리가 잘 된 듯 하군"
호숫가로 가는 데에도 돈을 받았다.
당연하게도 하연이가 준 카드로 긁고 들어갔는데 가까이서 본 호수는 진짜 깨끗했다.
"여기서 점심 먹는거, 괜찮은 거 같지?"
"나는 찬성이다."
"전생에서는 이것보다 더 대단한 호수도 많이 봤지?"
천마가 나를 째릿하고 노려봤다.
'너무 티 나게 물어봤나?'
"흥! 전생 이야기라면 해줄 생각이 아예 없다!"
천마가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에이, 네 얘기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전생에 어떤 풍경들을 봤는지 얘기 해 달라는 것 뿐인데 그것도 못해줘?"
"못해준다!"
천마가 팔짱을 끼고 아예 몸을 돌렸다.
"알았어, 화 좀 풀어라."
주변에서 돗자리와 간단한 식재료를 구매하고 취사 도구를 빌려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호오,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땐 그런 도구들을 이용하는 군."
"나도 처음 써봐."
취사도구 대여해 주는 사람이 절대로 쓰레기 버리고 가지 말라고 거듭 당부를 하던데 이런데에도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뭘 해줄 것인가."
"뭘 먹고 싶은데?"
"이미 재료들을 가져와 놓고 나한테 뭘 먹고 싶냐고 묻는것도우습군, 아해가 뭘 만들지 이미 정했을 텐데 내 의견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하면 새로 사 올려고했지."
"됐다 아해가 알아서 해라."
천마가 돗자리 위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다.
"진짜 알아서 한다?"
"그래 알아서 해라."
밖에 나와서 먹는 거다 보니 빡센 요리는 할 수가 없었다.
불판에 불을 키고 삼겹살을 굽고 라면을 끓였다.
"익숙한 조합이군?"
"틀리지 않는 조합이지. 너도 저번에 나한테 이렇게 해줬잖아."
"간단하지만 맛있는 조합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정말 가성비가 좋은 방법이지."
삼겹살은 노릇하게 익어가고 라면도 아주 잘 끓여졌다.
"추릅... 맛있겠군."
음식들이 냄새를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하자 천마가 침을 꼴깍삼키며 일어났다.
"맛있을 수 밖에 없지."
다 익은 고기를 접시에 내려놓고 나무 젓가락를 뜯어서 천마한테 내밀었다.
"먹어도 되나?"
"어, 먹어도 돼."
천마가 나무젓가락을 들어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호로록 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라면에 고기를 싸서 먹었다.
"크흠, 역시 배신 하지 않는 맛이다."
"그러게 말이야."
삼겹살에 라면이라니... 예전엔 이렇게 먹는건 꿈도 못 꿨는데.
"오후에는 어디를 갈 예정인가?"
"오후? 그걸 지금 말해주면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잖아. 모르는 채로 가는 게 더 나을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천마가 입에 음식을 넣은 채로 볼을 가볍게 부풀렸다.
"됐다. 내가 아해한테 뭘 기대하겠나."
"기대해, 너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해 뒀으니까."
"나는 아해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어디를 가든 아해의 옆에 있다는 기쁨이 가장 큰데 어디를 가든 나는 큰 상관이 없다."
"그래도 기대 좀 해줘. 나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 기쁘다고 해도, 나랑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도 좋잖아?"
라면을 호로록 먹었다.
"근데 호수 진짜 멋지네, 그치?"
"확실히 멋지긴 하군, 깨끗하기도 하고 말이다."
점심을 다 먹은 뒤 깨끗하게 치우고 호수를 한바퀴 쭉 돌았다.
나중에 여유가 있으면 들어가 보고 싶기도 한데 아무도 호수에 들어간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시설에서 막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제 다음 장소로 안내해라. 나를 기다리게 한 벌을 물어 만약 재밌지 않은 곳이라면 엄벌에 처하도록 하겠다."
"걱정 하지마 너라면 충분히 좋아할 곳이니까."
천마를 데리고 호숫가를 빠져나와서 주변에 있는 빌딩으로 들어갔다.
"여긴 뭐하는 곳이냐?"
"잘 사는 분들이 노는 곳이지."
"설마... 아해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나는 춤도 잘 못 춘단 말이다!"
도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
'내가 지금 클럽같은데로 대려간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런 대낮에?
"그런곳 아니야."
엘리베이터로 들어가서 4층을 누르니 빠른 속도로 위로 이동했다.
"잘 사는 사람들이 놀아? 사격장이라도 데려가려는 것이냐?"
"비슷한 게 있긴 하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오락기구들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와아..."
천마가 작게 입을 열고 감탄했다.
"여기가 어디냐?"
"오락실이지."
"오락실이라... 확실히 아해가 장담할만 했군, 아해랑 그냥 같이 있는 것보다는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즐거울 테니..."
천마가 오락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게임기들을 살펴 봤다.
"아해야! 이건 둘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 같은 데 같이 하지 않겠나!"
천마가 가르킨건 원판 하나를 가운데에 두고 그걸 서로 쳐서 상대 진영에 넣는 게임이었다.
"너무 빨리 하지 마 기기 망가진다."
"아해도 참,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나, 힘 조절 정도는 할테니 너무 걱정하지마라."
천마가 반대편에가서 섰다.
카드를 사용해서 뽑은 동전을 넣으니 게임이 작동되기 시작했다.
따악!
천마가 먼저 원판을 날렸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다.
나름 힘조절을 한게 보이긴 했는데 기기가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만 힘조절을 한 모습이었다.
겨우 팔을 움직여서 쳐내자 아까랑 비슷한 속도로 원판이 날아왔다.
따악! 딱! 따악!!
짧은 시간동안 원판이 수십 번을 왔다갔다 거렸다.
천마만큼은 아니지만 내 순발력과 동체시력도 상당히 뛰어난 편이어서 서로 1점도 내지 못한채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러다 안끝나겠는데?'
결국 손에 힘을 살짝 풀어서 천마가 점수를 내게 했다.
"아해야."
천마가 굉장히 사나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을 보니 느낄 수 있었다.
'좆됐다.'
"설마 지금 나를 봐준 것이냐? 내가 눈치를 못 챌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손에 힘이 풀려서 그랬어..."
"나보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 믿어 주면 안될까?"
"앞으로는 전력으로 하거라."
다시 랠리가 시작됐는데 아까와 마찬가지로 쉽게 끝날 각이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지는 건 안된다고 했으니...'
조금 무리하게 몸을 움직여서 공격했다. 속도는 더 붙일 수 있는데 자세가 흐뜨러져서 방어에 공백이 생기는 자세로 말이다.
따악!
띠링!
역시 천마라고 할까? 천마는 내가 만들어낸 빈틈으로 빠르게 원판을 보내서 점수를 올렸다.
"아자!"
그 뒤로는 계속 비슷한 방식이었다. 내가 무리하게 공격하고 천마는 빈틈을 찾아서 공격을 넣고, 그걸 반복하다보니 결국 천마의 승리로 게임이 끝났다.
"후우, 후련했다. 아무리 상대가 나라지만 1점도 못 내는 건 너무 하지 않나 아해야."
"네가 잘해서 그런건데 어떡하냐."
오랜시간 팔을 흔들었기에 슬슬 저려 오는 팔을 가볍게털었다.
"오늘 여기 있는 게임 다 하고 가자 아해야."
"그래, 다 하고 가자."
다음으로 선택한 게임은 밤브라는 게임이었다.
리듬게임이었는데 손으로 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발로 밟는 방식이었다.
일단 내가 먼저 올라갔는데 최고난이도도 아니고 적당히 어려운 난이도도 깨지 못했다.
분명 눈은 노트들을 파악하고 발도 무난하게 움직였는데 완벽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다 보니 벌어진 일인듯 싶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 훨씬 잘할 것 같아.'
"나도 한 번 해보겠다."
천마의 움직임은 완벽했다.
떨어지는 노트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밟았고 단 하나의 타이밍도 어긋나지 않고 모든 걸 완벽하게 밟아냈다.
그녀의 움직임은 완벽했고 점수도 완벽했다.
[SSS]
"크흠! 살살 하려고 했는데 이게 본 실력이 나타나 버렸군."
한껏 거들먹 거리는 모습조차 귀여워서 천마의 어깨를 살살 주물러 주며 아부했다.
"대단하십니다요. 천마님."
"맞다!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 이후로도 많은 게임들을 했다.
리듬게임들은 천마의 손에 걸리면 아무리 어려운 난이도여도 모두 풀콤이 났고 다른 게임들도 대부분 천마의 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그런 천마 조차 정복하지 못한 게임이 있었으니...
"도대체 왜 안나오는것이냐!"
인형 뽑기 되시겠다.
검은 색 고양이 인형을 보고 나랑 닮았다면서 무슨 수를 써도 뽑는다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솔직히 뽑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사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고양이를 뽑고야 말것이다."
천마는 눈에 불을 켜고 인형 사냥에 돌입했고 무려 12만 5천원을 사용하고 나서야 인형을 뽑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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