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유화련7
* * *
"흐흠~"
천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고양이 인형을 껴안았다.
저 고양이를 뽑는데 12만 5천원이라는 돈을 사용했다는 걸 생각하니 조금 아깝긴 했지만 내 돈도 아니고 하연이 돈이니까, 괜찮겠지.
'내 재산에서 12만 5천원이 날아가면 천재산의 5%가 날아가는 거지만 하연이 재산에서 12만 5천원이 날아가는 건 껌값이나 다름 없는걸.'
"보아라, 정말 귀엽지 않은가."
"그래 귀엽네."
자그마치 12만 5천원 짜리 고양이님이신데 당연히 귀여워야지.
사실 고양이 보다는 고양이 인형을 꼭 안고 있는 천마가 훨씬 귀여웠지만 천마가 귀여운건 아주 당연한 사실이니까 굳이 추가로 언급할 필요는 없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이냐. 이제 오락실도 질렸다. 할 것들을 다 했단 말이다."
저녁을 먹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다른 걸로 시간을 더 때울 필요가 있었다.
"높은데 안 무서워하지?"
"무서워 할 것 같나?"
천마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우리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향했다.
나름 관광용으로 쓰이는 건물인것 같은데 나 같은 빈민들은 단 한번도 못 갔던 곳이다.
"오오, 딱봐도 엄청 높아 보이는 군."
"가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바라본 주변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꽤 멀찍히 떨어진 유리창에 우리가 사는 도시가 전부 보여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리 높은 편도 아니군."
천마가 감동을 깨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천마산에는 이것보다 더 높은 건물이 있었지?"
"이것보다 두배는 높다."
천마와 함께 유리창 근처로 다가가니 우리 도시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도시가 작긴 하군, 이 정도 높이에서 바라봐도 전부 다 보일 정도니."
"그냥 풍경을 감상하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초를 쳐야 겠어?"
"나는 풍경감상엔 취미가 없다. 아해도 알지 않은가."
"풍경 보러 온거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천마를 뒤에서 껴안았다.
"오늘 즐거웠어?"
"나름 괜찮았다. 아해랑 함께라면 집에서만 있어도 충분히 즐거웠겠지만, 확실히 같이 움직이면서 추억을 쌓으니 훨씬 더 좋은 것 같군 데이트 라는 거 내 생각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내가 왜 갑자기 데이트를 하자고 했는지 의심한 적은 없어?"
"내 과거를 캐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 정도 뻔한 의도를 내가 못 알아차리진 않는다."
천마가 내 팔을 풀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내 과거에 대해 아해에게 얘기해 주지 않을거다."
"그건 불공평해, 너는 내 과거에 대해서 다 알고 있잖아."
"불공평하다 해도 어쩔 수 없지, 인생은 원래 불공평 한 것이다 아해야. 참고 살도록."
"왜 과거를 알면 안되는데, 천마 너는 전생부터 시작된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잖아. 나는 너의 모든 걸 알고 싶은데, 말해주면 안돼?"
"..."
천마가 숨을 살짝 들이키며 침묵했다.
"하아... 그래, 생각 좀 해보겠다. 언제까지 숨기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해의 말대로 내 과거만 숨기는 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지."
이게 먹히네? 왜지? 어제까지만 해도 엄청 반대하면서 나는 절대로 과거를 밝히지 않겠다는 태도를 고수했잖아.
'역시 분위기로 밀어붙이는 게 답인가?'
아무리 천마라도 이런 핑크빛 분위기 속에서 내 요구를 거절하기는 힘들었나 보다.
"근데 왜 굳이 여기로 올라온 것이지? 이런 풍경감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다."
말 돌리는 거 봐.
"그냥 우리 도시가 다 보이는 곳이라서 와봤어, 저녁 먹을 때까지 잠시동안 시간을 쓸 장소가 필요하기도 했고."
"저녁이라... 점심은 아해가 만들어 줬는데, 저녁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먹고 싶은 거 있어?"
"고급진 레스토랑에 한 번 가보고 싶군. 소박하게 먹는 것도 언제나 좋지만 이왕 데이트라고 나왔으니 좋은 곳에서 먹어보는 경험도 해보고 싶다."
"천마산에서는 고급 레스토랑 가본 적 없어? 여기보다 잘 사는 데잖아."
"제자들이랑 같이 고깃집에 가본 적은 있어도 레스토랑에 가본적은 없다. 그런 음식을 먹고 싶으면 내가 가는 게 아니라 요리사를 초대하는편이라 말이지."
너무 친근해 져서 잊고 있었는데, 천마 얘, 나름 중국의 지배자였지?
"그러면 레스토랑으로 갈까?"
"벌써 저녁을 먹을 생각이냐? 아직 시간은 많다."
천마가 자기를 안으라는 듯 어깨를 톡톡 쳤다.
정확히 말하면 안으라는 듯 행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안으라고 말했지만.
안 안고 뭐하나 아해야.
자기가 풀었으면서...
뒤에서 천마를 껴안고 도시만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저녁시간이 되었다
"아쉽군, 조금 더 안겨있고 싶었는데 말이다."
"집에가서 많이 안아줄게."
"집가면 내가 아해를 안아줄것이다. 솔직히 내가 안기는 보다는 내가 아해를 안는게 더 좋다."
"알겠습니다. 쇼타콘 천마님."
"쇼타콘 아니라고 대체 몇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것이냐!"
안은 자세 그대로 천마를 들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아해야? 지금 뭐하는 거냐?"
"더 안겨 있고 싶다면서, 그래서 이동시간에도 안아주는 거지."
"크흠, 그렇군."
천마도 나에게 안겨 있는 것이 마냥 싫지 않았는지 조용히 내 몸에 기대왔다.
띵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다가 한 층에 도착했고 나는 그대로 천마를 들고 내렸다.
"아해야? 여긴 1층이 아니다만?"
"1층에서 내린다고 한 적 없는데? 아까 보니 여기에도 레스토랑이 있더라고."
천마를 데리고 레스토랑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예약이 가득 찼습니다."
천마를 안은 채로 연하한테 전화를 하려는 그 때 갑자기 높으신 분 처럼 보이는 사람이 빠르게 달려왔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마련해 놨습니다."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거야...'
아침에도 그렇고 아까 점심에도 그렇고,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를 계속 보고 있는 모양이다.
직원? 사장? 아무튼 높아보이는 분을 따라서 간 곳은 VIP라고 적혀 있는 곳이었다.
안에는 단 둘만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보였는데 그 사이에 준비를 한 건지 아주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주문은 저에게 시키시면 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기본적인 가격이 백만원대에서 놀았지만 나한테는 가장 완벽한 카드인 하연이 카드가 있었다.
"뭐 먹고 싶어?"
"이거랑, 요거랑... 이것도 먹고 싶다!"
천마가 수많은 메뉴를 시켰고 직원이 전부 다 받아 적었다.
"아해는 뭐 먹고 싶냐."
"너 먹는 거 뺏어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알았다. 그러면 이거 두 개 추가시키겠다."
천마 얘도 먹성 하나는 엄청 좋단 말이지.
저 많은걸 혼자 다 먹을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이 와인도 줘라."
"알겠습니다."
직원이 물러가고 방 안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노을이 살짝씩 지고 있었는데 덕분에 상당히 좋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데서 밥도 먹어보고, 연인을 사귀었군."
"네가 나보다 돈이 많으면서 뭔소리야... 그리고 내 돈이 아니라 하연이 돈이거든?"
"잘난 동생을 둔 것도 아해의 능력이지."
천마가 방긋하고 웃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워서 나도 방긋하고 웃었다.
"분위기도 있고 나름 마음에 드는 곳이다. 음식까지 맛이 있다면 아마 금상첨화겠지."
"어, 그런 것 같아."
천마가 밝은 미소를 잠시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드디어 이야기를 꺼내려는 건가?'
"아해야, 내 과거가 그렇게 궁금한가?"
"어, 미치도록 궁금해, 자꾸 숨기니까 더 궁금해."
연인끼리 과거 이야기도 못해줘?
"어제 밤새 생각을 해봤다. 아해가 내 과거를 이야기 하는 정도로 나를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아해에게 계속 숨기기만 해서는 안된다고도 생각해봤다. 오늘 좀 튕겨 보다가 아해가 포기하면 말할 생각이 없었지만..."
내가 포기할 리가 없지.
천마가 진심으로 싫어하고 거부감을 표출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계속 천마를 두드릴 거다.
"아해가 포기할 리가 없으니, 내가 포기해야 할 듯 하다."
'나이스!'
데이트 보다는 천마의 심경 변화로 인해서 성공한 것 같았지만, 좋은 게 좋은거지.
꼭 내 계획을 통해서만 내가 원하던 바를 이룩할 필요는 없잖아.
그리고 방에서만 천마를 건드렸으면 천마가 이렇게 나왔겠어? 며칠 정도는 더 걸렸을 지도 몰라.
"그래도 당장 내 모든 과거사를 말하기엔 좀 부끄러운 것도 있어서, 오늘은 아해가 원하는 것 딱 하나만 말해주겠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딱 하나만 말해준다고 하면 물어보고 싶은 게 바로 나오지.
"이름이 뭐야?"
"이름이라..."
천마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뭐일 거 같나."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줘."
천마가 지긋이 눈을 감았다.
"화련, 유화련이라고 한다."
"유화련, 이쁜 이름이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