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닫히지 않는 게이트3
* * *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됐다.
어떤 방식으로 탐사를 진행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끼리 조를 이루어 같이 움직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다 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솔에서 지원 나온 이고양."
"네!"
늘어지는 회의 속에서도 정신줄을 꽉 붙잡고 있던 덕분에 나를 부르는 하연이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넌 내 옆에 붙어서 이동한다. 공격력은 높은데 방어력이 약한 너한테는 가장 알맞은 곳일 거야."
"알겠습니다!"
미리 얘기되어 있던 내용이었다.
내가 게이트로 들어간다고 해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겼으면 좋겠는지 하연이가 바로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한것이었다.
'별다른 변수가 없으면 더 이상 내 이름이 불릴리는 없어.'
나는 외부인이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연이와 한 팀을 이룬 상황인 만큼 굳이 내가 언급이 될 필요가 없었다.
모두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이나 행동 양식만 계속 듣고 있다보니 어느새 회의가 끝났다.
"내일 아침 9시에 게이트로 진입한다. 그 때까지 모든 팀들은 개인 장비와 고용장비들을 준비하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절도있게 돌아서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으으! 회의 진짜 오래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박지현이 내 주변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넌 대장님 옆에 붙어서 이동하는 거지?"
"네, 아무래도 총을 쓰다 보니 공격력은 충분한데 몸을 지킬만한 상황은 안되니까요. 대장님 옆이면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 거기서 대장님이나 다른 분들을 최대한 보조해 드리는 게 가장 효율적이겠죠."
"개인 장비들 가지고 있는 거 있어?"
"네, 있어요."
안그래도 어제 연하가 자매 기술자를 닥달해서 개인 장비들을 만들었다. 입는 방식의 장비인데 이것저것 보관 공간도 많고 방호력도 충분해서 아주 만족하는 상황이었다.
"솔에서 받았어?"
"사제로 샀어요."
"돈이 얼마나 있다고 개인 돈을 써?"
"중요한 일이잖아요. 그리고 여동생들이 돈을 잘 벌거든요, 걔네가 사줬어요."
"여동생?"
박지현이 내 몸을 훑어봤다.
"네가 17이면 네 동생들은 16살 이하라는 건데 그 나이에 돈이 많다니.. 진짜 대단하네."
"저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만 들어가봐라, 나는 우리 애들이랑 또 회의할게 있어서."
"네, 수고 많으십니다."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한 뒤에 회의실밖으로 나왔다.
터벅터벅 걷다보니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고 그와 동시에 시야가 우리집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강압적으로 이동시켜야해?"
"솔에서 온 지원병이 암흑가로 들어가는 모습을 들키는 것 보다는 낫죠."
뒤를 슬 바라보니 하연이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저는 고위 각성자들이랑 마무리 회의를 해야해서요. 밥은 월하랑 둘이서 드셔야 할 것 같아요."
"연하도 같이 하는 거야?"
"네, 연하도 우리도시 소속 A급 각성자니까요. 당연히 같이 회의하죠."
"알았어. 잘 갔다와."
하연이의 팔을 툭툭 치면서 격려해 주니 하연이가 방긋 웃으면서 사라졌다.
'월하는... 안 보이네.'
앞으로 한동안 S급 각성자와 몬스터를 경계해야 하는 몸이 됐으니 미리 일을 끝내놓는다면서 아침 일찍 나갔었다.
평소라면 돌아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모양이었다.
연하도, 하연이도, 천마도 없다.
하지만 리우잉은 있으니까 현수한테 정신을 맡기자.
월하는 다음날 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밤까지 현수가 내 육체를 차지 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일어나세요. 슬슬 준비해야 해요."
"어, 알았어."
새벽같이 일어나서 마지막 만찬을 먹고 개인 장비를 착용했다.
워낙많은 물건이 들어있어서 조금 무겁긴 했지만 들고다니는게 불가능 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이트 근처에 내려 드릴 테니까, 그 때부터는 걸어서 오세요."
"알았어."
우리가 게이트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7시도 안된 이른 시간이었다.
약속보다 2시간이나 빠른 시간이긴 했지만 하연이 같은 고위 각성자들은 따로 할 일이 있었는지 모두 모여있었다.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끼어드는 것도 그래서 멀찍이 떨어진 골목길에 기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각성자들을 바라만 봤다.
그렇게 제대로 해가 뜨고 다른 사람들도 차차 등장하기 시작한 8시 쯤에 밖으로 나왔는 데, 회의실에서 봤을 땐 적어보였던 인원들이 한 곳에 우르르 몰려 있으니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이고양, 내 옆으로 오도록."
"알겠습니다."
빠르게 움직여서 하연이의 옆으로 갔다.
"네가 해야할일은 알고 있겠지?"
"총기를 사용해 B급 몬스터를 죽이는 것입니다."
B급 용 몬스터 탄환을 사용한다고 해서 B급 몬스터가 한방에 절멸하진 않지만 대체적으로 강력한 위력이 먹혔기 때문에 비각성자인 나도 고위 몬스터를 잡을 수 있었다.
'조준력이 높은 사람이 보통 내가 하는 역할을 하지.'
총은 누가 쏘든 위력의 차이가 거의 없다.
총알에 마나를 담아서 쏘면 확실한 차이가 생기긴 하겠지만 일단 방아쇠만 잘 당길 수 있다면 누가 쏘든 위력만큼은 비슷하다.
그래서 가장 잘 쏘는 사람을 구하는 데, 지금까지 내가 권총을 쏘아 왔던 역사가 적지 않고 나름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만큼 하연이의 짐이 되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알고 있으면 됐다. 무슨일이 생겨도 연하의 옆에서 떨어지지 말도록. 내 옆 붙었다는 괜히 큰 싸움에 휘말릴 수 있으니 말이다."
"언니는 참... 제가 안 싸우는 줄 알아요?"
"누가 안싸운다고 했어? 그래도 너는 정보계열의 각성자잖아? 전투를 하는 것보다는 이능을 발휘해서 정보를 수집해 주는 게 훨씬 좋지. 아무래도 전선에 비해서는 떨어져 있을 거고 말이야."
"그와 동시에 오... 고양이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전력은 되고 말이죠?"
연하가 누가 들을까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맞아. 원래는 내 옆에 붙여서 다닐려고 했는데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해도 네가 이고양의 옆에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맡겨만 두세요. 제 목숨을 버려서라도 오라... 고양이를 반드시 지킬 테니까요."
"굳이 목숨까지 안 걸어도 되는데..."
다 같이 살아오는게 좋잖아.
"이고양 말이 맞아, 게이트 초입부분을 탐사한 결과 이 게이트안에 있는 몬스터 들은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아. 일부의 몬스터만 보고 전체를 일반화 하는 건 좋지 않지만 최소한 출발파고 몇시간 정도는 아주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거야."
우리끼리 구석에 뭉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게이트의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출발시간이 다가오네요."
"그러게 말야."
"언니는 긴장 안돼요?"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연이가 굳은 얼굴로 이야기 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잖아.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아."
"... 천마언니가 있잖아요."
"천마님한테 더 이상 손 벌리고 싶진않아. 우리랑 아무리 친해도, 일단 도시적인 입장에서 보면 외지인이니까."
연하의 고개가 푹 쳐지자 하연이가 연하를 꼭 끌어안고 토닥였다.
"너무 걱정하지마, 우리는 전부 무사히 나올 거야. 그리고 게이트의 비밀도 밝혀낼거고."
그런 모습을 괜히 다른 사람이 볼까 나만 마음고생하고 있었다.
언니가 동생의 긴장을 풀어주는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늘 단단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경비대장으로서의 하연이의 이미지가 깨질 수도 있으니까.
특히 솔에서 우리도시로 넘어오면서 권위 주의적인 방식으로 경비병들을 교육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걸리기도 했다.
"이제 긴장 좀 풀렸지?"
"네, 풀렸어요."
하연이가 마지막으로 연하의 등을 두들기고 안은 걸 풀었다.
그리고 경비대들을 바라봤는데 하연이가 특별한 방법을 쓴 건지 아무도 하연이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후우... 다들 모였나?"
다시 근엄하고 진지한 투로 돌아온 하연이의 말에 경비대 사람들이 대답했다.
"1조, 다 왔습니다."
"2조도 다 모였습니다."
"3조, 아직 한 명이 안 왔습니다."
"빨리 오라고 해."
"4조 다 왔습니다."
중요한일이니 만큼 아직 8시 20분도 안됐는데 3조의 한명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모였다.
그 사람도 갑자기 고장난 소모품을 다시 구해오려고 갔다고 하니 다들 40분 일찍 출근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묻겠다. 두렵나?"
"아닙니다!"
"긴장되나?"
"아닙니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근처에 울려퍼졌다.
"우리는 오늘 새 역사를 쓴다. 기존과 판이하게 다른 게이트를 완벽하게 공략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기존에 훈련이 잘돼있어서 그런걸까? 별말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사기가 크게 올랐다.
"그러면, 지금부터 게이트에 입장한다. 내가 가장 먼저 발을 들일 것이며, 연하가 가장 마지막에 들어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어제 미리 회의했던 상황이기 때문에 하연이를 필두로 빠른 속도로 게이트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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