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회의가 진행되는 중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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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개 빡치네...'
회의는 지진부진하게 진행됐다.
내 판단으로는 1시간이면 끝날만한 회의가 벌써 수시간이 지났는데도 절반점까지 오지 못했다.
"그러니까 등반형 게이트는 등반형 게이트를 전담하는 특수팀이 필요하다니까?"
"설명 못 들었어? 각성자를 성장시키는 용도로 만들어진 게이트라잖아. 특수팀만 계속들어가면 그 특수팀만 성장하지 진정한 위협을 벗어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진정한 위험이 따로 있을 지 등반형 게이트 자체가 위험일이 어떻게 알아?"
회의장 전체가 시끌시끌할 정도로 많은 대화들이 오가고 서로에 대한 반박도 끊임없이 이루어졌지만 알맹이가 없었다.
차라리 무조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는 거면 더 나았을 뻔했다.
저들이 상대 내용에 반박하는 이유는 상대의 의견보다 자신의 의견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반박을 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상대가 자신과 반대 파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일단 상대의 말을 무조건 반대하는 거고 그 속에는 등반형 게이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없었다.
'파벌 나눠서 싸우고 있는 길드원들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오히려 길드장 쪽이야...'
작정하고 파벌이 나뉘는 걸 막으려고 한다면 너무나 쉽게 막을 수 있다.
언니가 다른 도시의 경비대장으로 발령 받으면서 솔의 유일한 S급 각성자가된 길드장인데 그 힘을 가지고 파벌 생기는 것 정도를 막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마 일부러 파벌을 내버려 두는 거겠지.'
길드장이 파벌을 내버려두는 구첵적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길드장이 되어 본 것도 아니고 길드장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아는 건 길드장이 한성격 하는 사나운 인물이며 자신의 손해보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 뿐이었다.
회의 자체가 진행이 안될 정도로 상황이 개판이 됐는데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건 길드내에서 격한 파벌다툼이 벌어지는 것이 길드장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똑같은 얘기만 3시간째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중재를 하는 게 정상 아니야?
언니는 새벽까지 회의를 하고 또 길게 늘어지는 회의 탓에 바닥에 업드려서 주무시고 계시고 파벌이 없는 각성자 중 일부는 회의장을 탈주하기도 했다.
근래들어 회의만 하면 이런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내 마음만 타들어갈 뿐이었다.
'이렇게 시간말 끌다가 결국 전담팀의 의견을 길드장이 말하는 식으로 결론이 나겠지.'
파벌이 아무리 강해도 길드장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고 애초에 그들 스스로가 합리적인 판단하에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반대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인 만큼 길드장이 직접나서서 상황을 정리한다면 금세 회의가 끝날 것이 뻔했다.
'이런 곳에서 경비대장을 지낸 게 용하다...'
언니가 경비대장을 맡았을 땐 파벌 싸움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호랑이 없는 산에는 여우가 왕이 된다고, 길드장 바로 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언니가 사라지자 길드 내부에서 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펼쳐졌다.
나는 언니가 남겨놓은 경비대 안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다른 파벌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최대한 피할 수 있었지만 지들끼리 싸우면서 각자 세력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정말 역겨웠다.
'그렇다고 우리 경비대에 파벌이 없던 건 아니지만...'
파벌이라기 보다는 모임에 가깝긴 한데 그 모임에 끼지 못하는 애들에게 명백한 차별이 가해졌으니 파벌이라고 말해도 크게 부족함이 없으리라.
우리 언니가 잘못 심어주고간 문화기도 해서 고치려고 마음먹고 천천히 뜯어 고칠 때 오라버니를 따라서 옆도시로 갔다
지금은 잘 해결했으려나 모르겠네.
"그러니까 그 방법은 단점이 너무 많다니까?"
언니도 자고 있는 와중에 나까지 회의에서 집중을 놔버리면 이 절망적인 회의가 어디로 흘러갈 지 몰랐기 때문에 스르르 풀리려는 정신줄을 꽉 부여잡고 회의에 집중했다.
***
내가 어느정도 분위기를 끊은 상태에서 라면이 나오니 더 이상 싸우는 얘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영씨와 미나씨 둘 다 침을 꼴깍 삼키면서 라면을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더 이상 싸울 걱정은 없어 보였다.
'역시 싸움을 말리는데에는 맛있는 음식이 최고인가?'
아무리 봐도 더 싸울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라면을 먹기로 했다.
사장님 마음에 따라 늘 메뉴가 바뀐다더니 오늘은 해물이 가득 들어가 있는 해물라면이었다.
'도대체 수산물들을 어디서 구하는 거지?'
우리 도시 같은 작은 도시에도 호수가 있는 걸 보면 솔 같은 큰 도시에 양식장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월파가 랍스터까지 삶아 준 적이 있었지만 다양한 해물들을 한 데 담겨 있는 라면을 보고 있으니 인지부조화가 왔다.
"후루르르르르륵!!"
큰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미나씨가 라면을 마실 것 처럼 입에 대고 들이키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그릇의 기울기가 순식간에 90도를 향해 갔는데 라면을 입에 대고 단 한 호흡만에 모든 라면을 비우고 내려놓으셨다.
'뭐지 개 미쳤는데?'
그 빠름에 놀라서 멍하고 미나씨를 바라보고 있으니 미나씨가 부끄러우셨는지 볼을 살살 긁으셨다.
"하하... 조개나 먹어야지."
그리고는 한번에 마시지 못한 조개류들을 먹기 시작하셨다.
"얘가 원래 많이 먹고 빨리 먹거든 흔한 일이니까 신경쓰지 말고 너 먹을거나 먹어."
"알았어요..."
젓가락을 들어서 라면을 들어서 먹으니 나는 잘 모르는 해물특유의 향과 맛이 내 입을 감돌았다.
'존나 맛있네.'
저번에 먹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여기 라면은 너무 맛있는 거 같다.
한 끼에 15만씩 받을만한 가치는 느껴진다니까?
오늘만큼은 내가 작아진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아진 만큼 똑같은 양의 음식이라도 더 많다고 느껴지니까.
조개도 까먹고 새우도 먹고 각종해산물들을 먹는 동안 미나씨와 아영씨는 진작에 다 먹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의 사상에 관련된 제대로된 투기장이 올랐는데 라면에 집중하다보니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 지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벌써 국물밖에 안남았네...'
심지어 그 국물마저도 중간중간 마시면서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양이 남은 건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그릇을 들어서 마셨다.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내 목을 시원하게 행궜다.
국물만 모아서 차로 팔아도 충분히 잘 팔릴 것 같은 맛에 자꾸 입맛만 다시게 됐지만 입맛을 다신다고 해서 이미 다 먹은 라면이 돌아오진 않았다.
"여기는 한 번에 한 그릇 밖에 안파는 게 문제란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한 번에 좀 많이 팔았으면 좋겠는데..."
"재료 문제로 한 사람당 한 그릇밖에 안판다는 데, 어쩔 수 없지뭐."
아영씨가 이쑤시개로 자신의 이를 쑤시면서 일어났다.
"당연히 네가 사는 거지?"
"뭐? 저번에도 내가 샀거든? 이번에는 네가 사지?"
"아냐, 이번엔 네가 사야해. 왜냐면 내가 결제하면 꼬맹이건 결제 안해줄 거거든.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솔에 온 걸 텐데 15만원씩이나 되는 현금이 있겠어? 네가 안사주면 여기서 그릇이나 하루 종일 닦는 신세가 될테니까 네가 내야 해."
'생각해 보니까 수중에 돈이 없었네.'
어제 하연이랑 연하 짜장면 사준돈을 마지막으로 돈이라는 건 한 푼도 존재하지 않는 몸이 됐다.
저번에 하연이가 빌려줬던 카드는 이미 돌려준지 오래기 때문에 15만원이나 하는 돈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면 네가 너랑 내거 사줘. 수현씨 라면은 내가 계산한 테니까."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해. 50만원도 안되는 돈이 뭐가 아깝다고 이렇게 번거롭게 계산하냐?"
"돈이 문제가 아니라 네 태도의 문제거든?"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야영씨가 30만원 미나씨가 15만원을 결제하셨다.
"미나씨 라면 사주셔서 감사해요."
"야! 꼬맹이 내가 돈 더 많이 냈는데 왜 얘한테 감사해 하냐?"
"제 라면은 미나씨가 사주신거잖아요? 아영씨는 미나씨한테 있는 빚을 갚은 것 뿐이고요."
"요놈이!"
아영씨가 거친 손길로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팔을 올려서 아영씨의 손길을 막으려고 할 때 미나씨와 야영씨의 움직임이 싹하고 끊겼다.
미나씨와 아영씨의 움직임만 끊긴 게 아니라 묵직하게 숨을 조여오는 감각이 내 목을 압박해 왔다.
강한 압박에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때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해야?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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