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화련이가 돌아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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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숨이 쉬어 지질 않았다.
나한테 가해지는 어마어마한 압력에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아해야."
"꺄아아아아악! 잠깐만!!"
내 어깨를 잡은 화련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지간한 철근도 가볍게 주물러뜨릴 만큼 강한 힘이 내 어깨에 가해졌고 그 엄청난 힘에 나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하... 하연이랑 연하가 길드에서 회의하고 있어서 기다리는 중이었어..."
어깨가 우드득하고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고통에 집중할 시간은 없었다.
화련이가 바로 치료한 듯 뼈가 으스러진 것처럼 아프다가도 지금은 그렇게 까지 아프지 않았으니 아픔따위에 집중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혼자서 기다리면 되지 왜 저년들이랑 같이 기다리고 있는 거지?"
화련이가 내 몸을 잡고 돌려서 나를 마주 봤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꿰뚫을 듯 쳐다보고 있었는데 눈에 담긴 흉흉한 살기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아해가 보고 싶어서 일이 해결되자마자 잠도 안 자고 날아왔는데 아해는 다르나 애들도 아니고 모르는 여자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군, 저년들이 아해를 강제로 잡아왔다고 하기엔 여기는 너무 평화로운 음식점인데 말이다. 딱히 저항한 흔적도 보이지 않고 말이야."
"그게..."
"적합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면 아해는 몰라도 저 년들은 확실히 죽을 것이다."
화련이가 원래 이렇게 과격한 사람이었나?
다른애들이랑 있을 때는 천마가 양보해주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에 여자 문제로 이렇게까지 화나 있는 화련이를 본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굳이 여자 문제가 아니더라도 화련이가 이렇게 화를 낸 것 자체가 처음이다.
지금까지 낸 화라고 해봤자 투정이나 삐짐에 가까운 귀여운 화지 이렇게 찐텐으로 빡친 모습은 이번에 처음 보여주는 거니까.
나한테 시간이 10시간 정도 있으면 화련이의 화를 완벽하게 풀어줄 수 있는 멋진 방안을 생각해 낼 수 있을지도 몰랐겠지만 나한테는 그만한 여유시간이 없었다.
1분만 지체해도 내 뒤에 있는 두 여성의 목숨이 날아갈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까.
일단 아무 생각 없이 화련이의 품에 안겼다.
원래 컸던 건지 내가 작아져서 크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는 가슴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아해야? 고작 이런 걸로 내 화는 풀리지 않는다."
"미안해."
화련이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천마 너는 지금까지 중국에서 고생고생하면서 일하고 나 보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있었을 텐데 나는 평화롭게 있어서 미안해."
"나는 아해에게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다. 설명을 해... 읍!"
까치발을 들고 화련이의 입에 입술 박치기를 박아버렸다.
아무리 화가 난 상태라고 해도 무지성 입술 박치기의 위력은 견디지 못했는지 화난듯 치켜세워졌던 눈빛이 스르르 풀리고 볼에 홍조가 깃들었다.
"일단 진정 좀 해봐 그렇게 화난 상태로 있으면 나도 겁만 먹지 제대로된 설명을 해줄 수가 없어."
"... 알았다."
화가 완전히 풀린 건 아닌 듯 입술을 때자 다시 화난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풀린 표정으로 변했다.
"왜 저년들과 같이 여기서 라면을 먹고 있는거지?"
"하연이랑 연하랑 아는 사이인가봐 밥 사준다고 하길래 따라왔지..."
"맞습니다! 백하연 대장님과 백연하 대장님과는 아주 잘 아는 사이입니다!"
미나씨가 때를 봐서 큰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맞아요! 대장님한테 입은 은혜가 있어서 대장님 오라버니 분께 밥이라도 한 끼 사드리려고 왔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자신만만한 표정을 유지해 왔던 아영씨 조차 화련이의 카리스마 앞에서는 기를 펼 수 없었는 지 덜덜 떨면서 소리쳤다.
"절대로 대장님의 오라버니 분께 관심이 있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대장님에게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밥을 사 드린 것 뿐입니다!"
"맞아요. 이런 땅꼬마는 한 트럭을 가져온다고 해도 싫다고요."
"지금 우리 귀여운 아해를 욕하는 것이냐?"
화련이가 아영씨에게 가불기를 걸었다.
'귀엽다고 하면 또 관심 있냐고 뭐라고 할 거잖아.'
"제 취향은 아니라는 말이었어요. 남자는 역시 여자보다는 키가 커야 하지 않겠어요?"
"아해의 본래 키가 너보다는 크다."
아영씨의 얼굴이 살짝 꿈틀거렸다.
더 몰아붙이면 안해 때려쳐 하고 폭주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재 빠르게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무튼 절대로 이상한 이유로 만나는 거 아니야. 그냥 밥이나 먹고 회의 끝날 때 까지 시간 좀 때우려고 있던 거지."
"... 이번만 넘어가 주겠다. 다음 부터는 우리가 옆에 없을 때 누가 아해에게 호의를 배푸려고 해도 전부 무시하도록."
"알았어..."
화련이가 우리가 막 일어났던 자리 중 빈 자리를 하나 찾아서 앉았다.
"나도 배가 고픈데 라면 좀 시켜먹어도 되겠지?"
"네네! 당연히 되고말고요!"
"아해는 한 그릇으로 충분한가?"
"조금 더 먹고 싶긴 한데..."
"그러면 세 그릇 시키거라. 내가 두 그릇 반 정도 먹고 나머지 반을 아해한테 주면 될테니."
미묘한 정적이 우리 사이를 흘렀다.
이 라면집은 한 그릇 밖에 못 시킨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화련한테 전달해 줘야하긴 할 텐데 아무리 화련이의 분노가 좀 잠재워졌다고 한들 여전히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누구 하나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해야겠지?'
아영씨나 미나씨가 말했다가는 진짜 큰 일이 날 수도 있으니까.
"여기 한 사람당 한 그릇씩 밖에 못 시켜 재료 문제 때문에 1인당 한 그릇씩만 판데."
"가게 주인 어딨나."
"저기..."
카운터를 가르키자 화련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렇게 난리를 피웠음에도 다른 공간과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쪽을 향한 시선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화련이의 협박을 가장한 위협이 끝나고 우리 라면이 나왔던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3그릇의 라면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거야?"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건물 전체가 무너질 거라고 협박했을 뿐이다."
오늘 따라 얘가 많이 예민하네. 평소에는 이렇게 까지 다혈질도 아니었고 성격도 되게 온순했는데...
"중국에서 무슨 일 있었어? 오늘 따라 엄청 까칠해 보여..."
"아해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 딱히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니다."
화련이가 나를 번쩍 들어서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내가 없는 동안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알려달라. 백씨 자매가 둘 다 불려가서 회의를 할 정도면 보통일은 아닐텐데."
"호로로롭."
화련이에게 지금까지 있던 일을 설명해 주기 전에 일단 라면부터 먹었다.
칼칼하고 매운 국물이 내 입안을 코팅했다.
"네가 중국으로 가자마자 등반형 게이트가 나타났어."
"등반형 게이트가 뭔가?"
"닫히지 않는 게이트라고 했던 거 있잖아. 중국에서 나타났던 게 우리 도시에도 나타났어."
"역시 전세계적인 현상인가 보군..."
라면을 천천히 먹으면서 게이트에서 있던 일을 풀어놨다.
게이트가 3개의 층으로 분리되어 있던것, 그리고 게이트의 보스인 샤킹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까지 상세하게 풀어놨다.
물론 내가 이런 고급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흘린다고 생각했던 아영씨와 미나씨의 경악어린 눈빛을 받아야 하긴 했지만 별 문제 없었다.
길드장이 알아서 하겠지.
"우리와 비슷하군 우리도 안에서 지성이 있는 보스 몬스터를 발견했다. 다만 아해쪽과는 다르게 우리의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제압당했지. 제압당한 상태에서 말한 정보량은 아해쪽과 큰 차이가 없는 걸 보면 그들에게도 제약이 가해져있다는 사실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중국은 어떻게 대처하기로 했어? 우리는 태양길드의 중진들을 모아다가 회의만 6시간째 하고 있는데 천마신교는 네가 왕이나 다름 없으니까 이미 결론이 났을 거 아니야."
"이런쪽 일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다. 그곳의 판단에 모든 걸 맡기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거지... 그런데 태양길드의 중진들이 다 모였다고?"
화련이가 눈을 좁히면서 아영씨와 미나씨를 바라봤다.
"겉보기엔 A급 각성자인것 같은데 설마 태양길드가 A급 각성자를 중진 취급해 주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길드는 아니겠지? 설마 태양길드 소속이라는 것 부터 거짓말이었던거냐?"
"아닙니다! 파벌싸움으로 변질된 회의를 보기 싫어서 뛰쳐나왔습니다!"
"회의를 탈주한 년 잡으러 나왔다가 수현씨를 만나서 밥한끼 대접해 드리러 왔습니다!"
엄청 각져있네, 하연이 한테 저렇게 대했으려나?
"태양길드엔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전담팀이 없나?"
"있긴 한데 세력이 많이 약합니다. 아무래도 고위 각성자가 부족한 곳이니까요."
"그렇군."
화련이가 라면을 호로록 먹었다.
맛있었는지 쉬지 않고 라면을 계속 먹었는데 그렇게 먹은 라면이 총 6그릇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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