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6화 〉 화련이가 돌아왔다­2 (176/265)

〈 176화 〉 화련이가 돌아왔다­2

* * *

화련이가 라면을 다 먹은 뒤 계산을 마무리했다.

화련이의 라면은 미나씨가 계산했는데 네가 계산하라면서 미루던 아까와는 달리 서로 계산하겠다고 지갑을 내미는 훈훈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맛있게 잘 먹었다. 내가 방금 막 돌아와서 낼 돈이 없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그러면 일하는 곳으로 돌아도록 아직 회의 진행 중이라면서."

"넵!"

미나씨와 아영씨 모두 부리나케 뛰어서 사라지셨다.

그 모습이 얼마나 간결한지 누가 보면 도망이라도 가는 걸로 착각할 듯한 모습이었다.

"화는 좀 풀렸어?"

"백씨 자매의 부하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은인의 가족에게 밥을 사고자 하는 것까지 일일히 화를 낼 수는 없지."

진짜로 이 상황을 이해해 준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맛있는 거 먹고 나를 보고 있다보니 예민함이 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당장의 위기는 해결한 듯 싶었다.

"중국에선 잘 지냈어?"

"일만 해결하고 바로 돌아왔다. 잘 지냈는지 어땠는지 말할 것도 없지. 내가 중국에 있을 때의 대부분의 시간을 게이트에서 보냈으니 말이다."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이야기 해줘도 괜찮잖아."

"별 일 없었다. 천마신교는 인력이 넘쳐나서 말이다. 등반형 게이트라고 했나? 그 게이트가 5개가 넘게 나타났지만 각자 S급 각성자를 한 명씩 파견하니 손쉽게 깰 수 있었지 내가 들어간 곳은 특히 더 쉬웠고 말이다."

"다행이네."

"등반형 게이트를 클리어 하고 최소한의 회의만 마치고 바로 돌아왔다. 달리 더 할 이야기는 없군."

천천히 걸으면서 화련이의 몸에 기댔다.

"나 많이 보고 싶었어?"

"많이 보고 싶었다. 중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아해를 만나고 싶다는 감정을 참기가 어려워 지더군. 어떻게 아해 없이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는지 의문이야."

"이제와서 버티라고 하면 못 버티겠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이젠 아해가 없는 인생은 상상도 하기 싫다."

"나도 이제 네가 없는 인생은 상상 못하겠어."

소화도 할겸 천천히 산책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뭐가 말이냐?"

"새로운 위험이 나타난다고도 하고 등반형 게이트도 새로 생겼잖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당연히 버틸 수 있지. 아해는 내가 누군지 모르나? 나는 천마다. 어지간한 위험으로는 나에게 일말의 피해도 줄 수 없다. 그리고 등반형 게이트는 우리에게 이로운 게이트가 아닌가."

"이로운 게이트까지 가나? 그냥 몬스터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 게이트 아니야?"

화련이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등반형 게이트는 단순히 몬스터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실험해본 결과 낮은 등급의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이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마나가 소폭 상승하는 효과를 봤다. 그리 대단한 양은 아니지만 일부러 보스를 잡지 않고 하층에서 몬스터만 잡는 다면 전체적인 전력을 조금씩이지만 꾸준하게 올릴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하겠지."

몬스터를 잡으면 마나가 성장한다고?

'그러면 나도 몬스터를 잡으면 마나를 더 얻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권총으로 열 마리 가까운 몬스터를 잡았지만 내 마나가 성장했다는 사실은 현수에게 듣지 못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잡은 게 아니라 총으로 잡아서 마나가 성장하지 않은걸까?

"나도 마나를 키울 수 있는 거야?"

나도 모르게 텐션이 올라가서 화련에게 붙으니 화련이가 내 눈을 슬 피하기 시작했다.

"천마야?"

"그것이..."

화련이가 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 어물정 거리는 것이 절대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아해와 같이 마나가 있긴 하지만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그들의 마나가 성장하는 모습은 관측할 수 없었다. 각성자가 소폭 성장할 동안 아예 성장하지 않더군."

"아..."

나도 모르게 낮은 탄식이 내뱉어 졌다.

괜히 실망한 티를 내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텐션이 뚝 떨어졌다.

낮아진 내 텐션이 신경 쓰이는지 화련이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마 아해가 성장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 거다. 아직 연구가 전부 다 이루어진 상황은 아니니 벌써부터 실망하기엔 이르다."

"실망한 적 없어."

나를 보며 어벙하게 있는 화련이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래 어차피 강해지는 건 포기한지 오래잖아?'

이제와서 못 강해진다고 다시 말해도 그렇게 크게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너 저도 되는 실력자도 마나가 늘어나지 않지?"

"늘기는 한다만 그 양이워낙 작아서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준이지 천마신교에서는 등반형 게이트를 닫지 않고 등급이 낮은 각성자들의 수련장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몬스터를 잡으면서 전술 훈련도 하고 마나도 성장시킬 수 있으니 메리트가 대단하지."

"우리쪽도 그렇게 결론이 나려나?"

아무리 파벌싸움이 격해도 언젠간 끝이 날 거 아니야.

이런 문제들을 전담하는 팀이 있다면 아마 화련이와 비슷한 답안을 내 놓지 않을까 싶다.

샤킹의 말을 100%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각성자들이 성장한다는 메리트가 워낙 대단하니까.

'잠깐, 우리 도시 사람들은 등반형 게이트가 각성자들을 성장 시켜준다는 사실을 모르는데?'

"화련아."

"아해야. 내가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잖느냐. 또 벌을 발고 싶은 것이냐?"

"천마야, 지금 여기서 연한테 말 걸 수 있어?"

"어딨는지 짐작이 가니 충분히 가능하다. 왜 그런가? 연하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등반형 게이트에서 몬스터를 잡으면 마나가 성장한다는 거, 연하한테 전달해 줄 수 있어?"

말을 꺼내자마자 아차 싶었다.

등반형 게이트에 대한 정보는 기밀로 다루어질만한 정보인데 사실상 천마신교의 정보를 솔쪽으로 넘기라고 말한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다시 입을 열어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정정하려고 했지만 행동력 빠른 우리 화련씨는 이미 연하한테 정보를 넘겨 버렸다.

"말했다. 연하가 당황하는 모습이 참 귀엽더군, 지금 이걸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천마신교의 기밀 같은 건데 태양길드에 말해줘도 되는 거야?"

"어차피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도 알게 될 사실이다. 굳이 기밀이라고 숨길 것도 없지. 그리고 본좌또한 중국보다는 한국에 더 많이 있지 않는가. 내 말 한마디에 태양길드의 방침이 더 나은방향으로 변한다면 나에게 있어서도 손해 볼게 없지."

화련이에게 오른쪽 엄지를 들어서 보여줬다.

"하연한테 연락이 왔다."

"무슨 연락이 왔는데?"

"회의가 아주 길어질 거라고 한다. 자기가 판단하길 적어도 10시간은 더 걸릴 거라는 군, 태양길드는 천마신교와 달리 파벌이 많아서 자기 휘하의 각성자들을 집어넣으려고 난리를 부릴테니 그만큼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한다."

"10시간? 진짜 오래 걸리네..."

"천마신교에 파벌이 없다라... 하연이도 착각을 하는 군."

파벌이 있어? 화련이가 파벌같은 건 다 때려 잡을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천마신교에도 파벌이 있어?"

"당연히 있지, 정치적으로 싸우는 관계는 아니지만 천마신교는 기본적으로 사제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같은 스승을 둔 이들끼리는 친한감이 있지. 그 뿌리를 모으고 모으면 결국 나 하나로 귀결 되긴 하지만 천마신교가 어느정도 세를 잡아나간 후에는 내가 일반 교도들에게 까지 가르침을 배풀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검마 파벌, 권마 파벌 이렇게 나뉘는 거야?"

"그렇다. 그 외에도 다른 S급 각성자나 검마, 권마, 리우잉 다음으로 제자로 받아드렸던 이들에 의해 파벌이 나눠지기도 했지. 작은 회의나마 진행했던 것도 파벌 때문이었다. 내가 중재하지 않으면 이 놈들이 서로 알력다툼을 할 게 뻔했으니까. 강함에 대한 집착이 참으로 강한 놈들이라 내가 중재하지 않았더라면 난동이 좀 벌어졌을거야."

"천마신교도 우리처럼 열 몇 시간씩 회의를 했으려나?"

내 의문에 천마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회의는 무슨 회의냐 당연히 비무로 누구 말이 옳은 지 결정됐겠지. 그렇게 되면 검마휘하의 애들이 게이트를 독점할 게 뻔했으니 내가 아해를 만나는 시간을 1시간씩이나 미뤄가면서도 만나고 온 것이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자기 애들 챙기고 싶은 건 누구나 다 똑같지. 크게 과하지만 않으면 문제될 거 없다. 그런데 앞으로 10시간이나 되는 시간이 남았는데 가만히 서 있을 건가?"

"응?"

"아까 나를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으니 이제 벌을 받아야지."

화련이가 내 손목을 잡고 호텔들이 있는 거리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