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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화 〉 실종­1 (177/265)

〈 177화 〉 실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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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길드의 회의가 끝날 때 까지 계속 화련이한테 잡혀있었다.

화련이의 끊임 없는 공격 속에서 버티고 버티다 보니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결국 백씨 자매들이랑 합류할 수 있었다.

"오라버니...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잠을 잘 못 잤거든..."

연하가 화련이를 빤히 쳐다봤다.

"회의하던 중에 천마 언니 목소리가 들릴 때는 진짜 깜짝 놀랐어요. 언제 오셨어요?"

"얼마 안됐다. 연하 너에게 말을 걸었을 시점과 거의 비슷하다. 그냥 그 때 왔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지."

"오셨으면 오셨다고 말이라도 해주시지 그랬어요."

"아해랑 합류하고 바로 말해주려고 했는데 아해가 아주 발칙한 짓을 하고 있어서 말이다."

화련이가 위쪽에서 내 어깨를 양손으로 짚었다.

그 손에 담긴 힘이 상당히 강력해서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릴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었길래 발칙하다는 표혀을 써요? 다른 여자들이라도 만나고 있었어요?"

화련이가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연하와 하연이의 표정도 상당히 험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끊어 버리면 이상해지잖아! 끝까지 설명해줘."

"아해가 알아서 설명하라."

"오라버니? 도대체 어떤 여자랑 만나신 거에요? 설마 솔에도 오라버니가 구하신 여자가 따로 있는 건 아니죠?"

연하가 다리를 굽혀서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물었다.

"그런 거 없어. 내가 솔에 온 건 저번에 하연이랑 같이 온 게 처음이란 말이야."

"그러면 누구랑 같이 있었는데요?"

"너희 부하라고 하던데? 아영씨랑 미나씨."

"걔네들이랑은 어떻게 만났어요? 회의하다가 중간에 뛰쳐나가는 건 봤어도 오라버니랑 동선이 겹칠 일은 없는데... 설마 그 년들이 방에서 쉬고 있는 오라버니를 강제로 끌고 나가거나 한 건 아니죠?"

연하의 입에 불이라도 붙은 듯 어투가 상당히 격해졌다.

연하의 뒤에 있던 하연이한테서도 묵직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것이 내가 제대로 변명해 주지 않으면 두 사람한테 큰 화가 가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거 아니야. 숙소에만 누워있기 심심해서 밖으로 나왔는데 우연히 마주쳤어."

"우연히요?"

"어, 그 쪽에서 날 알아보더라. 어제 너희랑 같이 밥먹는 걸 본 건지 아니면 다르게 정보를 구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를 보자마자 너희 오빠라는 걸 바로 눈치채던데?"

"저희 주변에 걔네가 있었어요?"

"모르지. 그 년들이 작정하고 숨었으면 우리도 굳이 찾아내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걔네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우연히 너희 옛 부하를 만났고 그 사람들이 대장님한테 감사한 마음을 나한테 갚는다면서 밥 한끼 사준다고 해서 밥 먹으러 같이 갔을 뿐이야."

내 설명이 납득이 됐는지 연하와 하연이의 노기가 상당히 풀렸지만 미심쩍다는 표정까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개네가 오라버니한테 밥을 사줬다고요? 미나는 충분히 사줄 법도 한데 아영이 걔가 남한테 밥 사줄만한 인물은 아닌데요?"

"그래서 미나씨가 사주셨지."

"그건 내가 확인했다."

"일단 믿어드릴게요. 얘기도 딱딱 맞아 떨어지고 굳이 믿지 않을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에요."

좋아 무사히 넘겼어.

애초에 화련이가 든든한 지원군으로 존재하는 이상 하연이와 연하가 나를 더 압박할 수는 없겠지.

"내 얘기는 이쯤 하고 회의가 끝났으면 더 이상 솔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어진거야?"

"아뇨. 저는 남아있어야 해요. 회의 중에 갑자기 각성자의 성장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더니 길드장이 더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모이라고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일단 다시 태양길드로 끌려가서 대책팀이랑 더 이야기를 해야해요."

"회의가 끝났더니 또 회의가 나타났구나."

"괜찮아요. 이번 회의는 파벌싸움을 변질될 위험은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너무 묵살하는 건 아닐지 정도만 조심해서 이야기 하면 금방 끝날거에요. 애초에 저는 상황 설명 정도만 해주고 제대로 된 대책은 대책팀이 세울테니까 편하게 앉아서 날먹이나 하면 돼요."

그리 말하면서 연하가 나에게 꼭 안아왔다.

"으아, 역시 오라버니품이 편해요."

"내 품이라니 네가 나를 안고 있잖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좀 알아들어 줘요. 그냥 오라버니가 좋다는 의미잖아요."

아무리 못해도 하루 정도는 솔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말을 듣고 연하가 딱 해졌는지 대놓고 나를 독점하고 있음에도 하연이와 화련 모두 어떤 방해도 없이 우리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먼저 돌아가도 되는 거지?"

"네 귀여운 여동생을 버리고 먼저 돌아가세요."

"굳이 버린다는 표현을 쓰냐..."

"언니는 너무 딱딱히시다니까요? 장난 좀 칠 수 있는거지. 돌아가는 것도 알아서 돌아갈테니까 굳이 순간이동으로 데려다 주시지 않으셔도 돼요."

"왜? 연락하면 1분안에 바로 태워다 줄텐데."

연하가 오른쪽 눈을 찡긋 감았다가 떴다.

"그런 이유가 있어요. 중간에 해야할 일이 좀 있어서요."

"길드장이 또 이상한 거 시켰어?"

연하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일 마치고 느긋하게 와라."

하연이가 연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면 저희는 바로 돌아갈까요?"

"그러도록 하지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고 싶구나."

"다음에 봐요."

연하의 배웅을 받으며 순간이동으로 우리 도시로 돌아왔다.

'할 때 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사기적인 능력이란 말이지.'

순간이동 단일 능력만으로도 못해도 B급 각성자정도가 될 수 있을 텐데 S등급은 전부 사용할 수 있다니...

"후우, 역시 집이 편하군."

화련은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퍼질러서 업드렸고 하연이도 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 위에 업드렸다.

"월하 얘는 어디간걸까요?"

"글쎄 슬슬 저녁이니까 돌아오지 않을까? 그리고 어디있는지 대충 알 수 있지 않아? 같은 S급 이잖아."

"귀찮아요오..."

아무리 하연이라도 긴 시간동안의 게이트 공략 이후 바로 장시간 회의를 진행하니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안마라도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하연이의 위에 올라가서 꾹꾹 밟아줬는데 밟을 때 마다 이상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하읏! 너무 좋아요 오라버니."

"한 번만 더 그런 신음소리내면 바로 내려 가버린다?"

"진짜로 좋아서그런건데 어떡해요."

"하아..."

그래 얘는 지금 피곤한 상태니까 내가 이해 해줘야지.

그렇게 하연이 등을 꾹꾹 밟아주고 있다 보니 문이 열리고 리우잉과 월하가 동시에 들어왔다.

"왠일로 둘이 동시에 들어와?"

"리우잉씨께 부탁할 일이 있었거든요."

­사람들 좀 때려주고 왔어!

"사람들을 때려줘? 도대체 무슨 일을 한거야."

"마나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힘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어요. 그래서 리웅씨에게 부탁했을 뿐이에요."

월하가 태연하게 걸어와서 빈 자리에 앉았다.

"회의는 잘 끝났어요? 하연씨 상태를 보니까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에요. 분명 어제 아침에 게이트가 닫힌 걸로 관측했는데 왜 오늘 저녁이 돼서야 왔죠? 이쪽 게이트 담당이라도 되셨어요?"

"우리 길드가 원래 회의가 길어 진짜 급한 일이 아니면 쓸모 없는 파벌싸움만 길게 늘어지거든."

"길드장님이 힘이 많이 약하신가봐요?"

"아냐. 길드장 힘 존나쎄, 일부러 안막는 거야. 왜 파벌싸움을 막지 않는지는 몰라도 무언가 꿍꿍이가 있으니까 건드리지 않는 거겠지."

"아무튼 이제 돌아오셨으니 저희 도시 지킴이 역할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어,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렇게 알아."

기운없는 하연이와 월하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 리우잉이 화련이 위로 올라가서 등을 밟아주기 시작했다.

"그래 거기다. 제자가 연인보다 낫구나. 아해는 자기 여동생 챙긴다고 나한테는 신경도 안쓰고 있는데 말이다."

"아까 실컷 즐겼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는 데?"

"아해가 뭘 모르나 본데 나한테 아해의 기운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아해의 곁에 있고 싶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이냐?"

"제자의 기운이나 느끼지 그래."

"그런데 연하씨는 어디가셨어요? 같이 간거 아니에요?"

"길드장이랑 추가로 할 이야기가 있다더라 그리고 오면서 할일도 있다고 하고 아무리 늦어도 3일 안에는 들어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누굴 걱정해요. 연하씨도 A급 각성자신데 연하씨한테 위험한 일이 생길 정도면 저희가 눈치채지 못할리도 없고요."

그때는 몰랐지.

연하가 며칠이 지나도 안 돌아올 줄은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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