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 애들이 돌아왔다
* *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연하의 방으로 달려갔다.
지난 3일 동안 연하를 걱정하면서 생긴 습관이었는데 다행이 연하는 자기 방에서 아주 편하게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편한지 이불까지 던져버리고 배를 들어내고 자고 있어서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나왔다.
'다행이 있네...'
어제 구해왔으니까 당연히 있는 게 맞지.
어제는 진짜 아찔했다.
연하가 1년동안 한 게이트 안에 갖혀있을 뻔 했다는 건 진짜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가져오기에 충분했으니까.
거실 소파에 나와서 앉아있으니 사현이가 밥을 하러 일어나서 나왔다.
'응? 잠깐만 쟤가 왜 여깄어?'
솔에서 공부하려고 갔다고 하지 않았나?
"사현아?"
"아 형, 오랜만이에요."
"네가 왜 여깄냐?"
"방학이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침을 하는 데 오랜만에 하는 밥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언제 왔어?"
"오늘 새벽에 왔어요. 원래 어제 들어오려고 했는데 솔에서 사귄 친구들이 놀자고 해서 우리 도시에서 놀만한 대를 찾아 놀다가 다 같이 호텔 하나 잡아서 잤거든요. 저랑 아리말고는 다들 부잣집 자제들이라 그런지 돈도 안 아까워 하던데요?"
"올거면 올거라고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지 그랬어. 마중나가줬을 텐데."
사현이랑 아리도 우리 가족이다.
같이산지도 벌써 개월단위가 가까워진 만큼 애들이 남이 아니라 진짜 친동생으로 느껴지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말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니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여왕님께 미리 말씀 드렸는데 연하누나가 실종된 상태라서 마음이 심란하신 상태셨다면서요? 그래서 말씀하지 마시라고 부탁드렸죠. 어제 여왕님한테 연하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맘 편하게 놀 수 있던 거기도 하고요."
"괜히 걱정끼친 것 같아서 미안하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사현이도 참 의젓하단 말이지.
처음 봤을 때는 성격나쁜 소매치기였는데 지금 시점에선 그 때의 사현이의 성격이 상상도 잘 가지 않는다.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네 많이 사겼어요."
"여자애들? 아니면 남자애들."
"여자애들이랑 많이 친해졌어요. 왠지 모르게 저한테 먼저 다가와주는 여자애들이 많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아가씨랑 아리가 다른 여자애들이랑 싸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잘 합의 된 건지 안 싸우고 친하게 지내요. 어제 같이 논 것도 그 친구들이고요."
사현이한테 명복을 빌어주도록 하자.
쟤는 아리랑 가연이 만으로도 그렇게 고생했으면서 왜 사서 자기 고생을 늘리는 걸까?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우으..."
사현이와 한가롭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연하의 방에서 연하가 밍기적거리며 기어나왔다.
원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애가 아닌데 지금 일어난 걸 보면 지난 시간동안 있었던 일 때문에 애가 민감해 졌거나 내가 이불을 올려준 게 화근이 되어서 깨어난 모양이다.
"일어났어?"
"오라버니이..."
비틀비틀거리면서 나에게 안겨오길래 꼬옥 하고 안아줬다.
"힘들면 더 자지 그래?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연하가 게이트 안에서 있던 시간만 5일이다.
그 동안 침대도 없는 맨바닥에서 쪽잠만 겨우 자면서 버텼으러 텐데 그 때문인지 굉장히 피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괜히 나 때문에 푹 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히히... 맛있는 냄새가 나요..."
"사현이가 밥하고 있거든."
"사현이요? 걔는 지금 솔에 있는 거 아니에요오?"
"오늘 새벽에 돌아왔어요. 오랜만이에요 누나."
"그래 오랜만이다... 근데 말 걸지 마 지금 나는 오라버니의 품을 느끼고 있단 말이야.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발음은 다 뭉개지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있다.
'완전히 잠에 취해 버렸구만.'
얘가 지금 자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최소한의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연하를 꼬옥 안아주면서 달래고 있으니 어느새 사현이가 아침을 다 만들었다.
"다들 일어나세요! 아침 다 됐어요!"
처음 왔을 때는 무서워서 조심조심 깨우더니 이제는 주방에서 큰 소리만 쳐서 사람들을 깨웠다.
이 집에서 사현이의 행동에 화낼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저렇게 당당한 것도 괜찮겠지.
다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걸어오는 도중에 화련이만 멀쩡하게 걸어왔다.
S급 각성자도 아침에 약한 거 보면 참 특이하단 말이지.
"뭐야? 네들이 왜 여깄어?"
하연이도 월하한테 딱히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지 식탁에 음식을 세팅한 사현이와 어느새 사현이 양옆에서 사현이를 꼭 안고 있는 가연이와 아리를 보고 당황해서 물었다.
"방학이라서 내려왔어요."
"얘기라도 해주지 그랬어."
"연하 누나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셔서 굳이 말씀 안 드려도 된다고 했죠."
다들 밥을 먹으러 식탁에 앉으니 오랜만에 식탁이 꽉 차 보였다.
"그러면 앞으로 한 동안은 여기서 지내는 거야?"
"네, 적어도 한 달 간은 이 도시에서 머무를 것 같아요."
"학교에서 친구들은 많이 사겼어?"
하연이의 말에 나는 상당한 기시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분명 피 안 섞였는데...'
왜 하는 질문이 이렇게 똑같지?
아무리 피가 안섞였다고 해도 같이 지낸 날들이 워낙 오래돼서 그런가?
"네 많이 사겼어요."
"아리랑 가연이도 친구 많이 사겼어?"
"친구... 네, 친구죠. 많이 사겼어요."
애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것이 사현이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너희 반응이 왜그래? 혹시 왕따당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
리우잉이 어울리지 않게 엄한 표정을 짓고 애들을 바라봤다.
"왕따는 무슨 왕따에요. 아가씨가 S급 각성자인 여왕님의 혈연인거 학교 애들이 다 아는 데 어떻게 왕따를 해요."
"맞아요. 아무도 저희를 왕따시키지 못해요."
"가연이 얘가 다른애들을 왕따시켜서 문제죠..."
아리가 작은 소리로 읍조리니 가연이가 아리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왜 찔러!"
"내가 언제 다른 애들을 왕따시켰다고 그래!"
그렇게 애들의 싸움을 구경하면서 밥을 먹으니 금세 다 먹을 수 있었다.
"그러면 언니는 이만 일하러 간다."
"같이 나가요 하연씨."
"언니 저 솔에 좀 데려다 줘요. 길드장한테 보고할 거 있어요."
"이번에 돌아올 때는 내가 데려와 줄테니까 꼭 나한테 연락해라. 알겠지?"
하연이가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연하를 바라보니 연하가 딱딱하게 굳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연이와 월하, 연하까지 밖으로 나가니 순간적인 공백이 느껴졌다.
집안이 꽉 차있다가 사람들이 갑자기 나가니 왠지 횡 해 보였다.
오랜만에 나랑 수련이라도 할래?
"좋아요. 학교에 있는 그 어떤 선생님도 언니만큼 잘 가르쳐 주시진 못했거든요."
자연스럽게 리우잉과 애들이 같이 수련을 하러 갈 것 처럼 보이자 나도 일어나서 애들을 따라갔다.
수현이는 왜 따라와?
"애들 수련하는 것 좀 구경하려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구경 좀 하자.
수현이 너는 애들 수련하는 모습 본 적 없지?
"어, 초반에 살짝 봤다가 한동안 못봤지."
아마 깜짝 놀랄거야. 아리랑 가연이 모두 엄청나게 성장했거든 어릴 때 각성해서 나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만큼 둘 모두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나 다름 없어!
리우잉이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데 화련이가 옆에서 딴지 걸지 않는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 듯 보였다.
"사현이는?"
사현이는 비각성자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우면 쓸만해 질 거야.
하긴 당장 리우잉도 비각성자라는 걸 생각하면 사현이도 지금부터 배우면 꽤 세지겠지.
리우잉을 따라서 애들의 수련을 구경했다.
아리와 가연이는 몰라볼 정도로 크게 성장해 있었는 데 싸우는 것도 그렇고 마나를 이용하는 방식도 그렇고 엄청나게 늘어서 이제는 내가 둘을 제대로 제압하려면 꽤 힘을 써야 할 것으로 보였다.
"쟤네들도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되는 거야? 리우잉한테 배우고 있잖아."
"그건 아니다. 본인들이 우리 신교에 들어올 생각이 없는데 굳이 애들을 우리 신교로 끌어드리고 싶진 않아."
아리와 가연이 뿐만 아니라 사현이도 굉장히 잘 싸웠다.
비록 비각성자지만 마나를 발현해서 움직이는 걸 보면 저 나이대의 나만큼은 아니덜라도 또래 비각성자랑 비교하면 아마 확실히 차이가 있으리라.
"나만 멈춰있는 것 같네."
강함에 대한 열망은 이제 포기하기로 했는데... 눈 앞에서 애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씁쓸해 졌다.
"아해가 강해질 방법...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응?"
"이번에 특수 게이트 들이 나오면서 입수한 새로운 정보들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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