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각성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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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지는 건 일찍이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사람인 화련이의 입에서 방법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비각성자로 태어나서 한계 막혀 더 성장하지 못했던 나에게도 기회가 있는 걸까?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더 이상 애들에게 보호 받는 인간이 아니라 애들과 함께 싸우고 때로는 애들을 보호하기도 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을까?
내 눈에 담긴 강력한 열망을 읽었는지 화련이가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왜 시선을 피해?'
너는 천마잖아.
내가 아무리 사나운 표정을 하고 있어도 귀엽다면서 나를 바라볼 뿐이지 절대로 나한테 두려움 같은 거 느끼지 않잖아.
왜 시선을 피하는 거지?
그런 생각과 동시에 다른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화련이도 미안한 상황이면 내 눈을 피한다.
일상속의 가벼운 미안함이면 오히려 뻔뻔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나에게 제대로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할 때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사실었다.
'뭐가 미안한거지?'
화련이 성격상 나한테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테고...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강해질 수 없는건가?'
내 눈에 담긴 강렬한 열망을 화련이가 눈치채지 못했을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내 열망만큼 강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화련이가 알고 있다면?
충분히 미안해서 시선을 돌릴 만한 이유가 됐다.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네."
"아니다 아해야. 아해가 강함에 대해 얼마나 큰 열망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알지 못한 탓이지..."
우리 사이에 얇은 정적이 흘렀다.
만약 이 공간에 우리 둘만 있었더라면 무한한 고요함이 우리 둘 사이를 계속 매꾸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다행이게도 이 곳에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들의 기합소리, 그리고 사현이의 비명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멋대로 기대한 내 잘못이지... 그래서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 거야?"
"확실시 된 사안은 없다 우리 신교에서도 아직 추정하는 중이지."
"어떤 방식으로 강해지는 건데."
"인공 각성이다."
인공 각성... 참 그리운 이름이네.
어릴 때 화련이랑 같이 받은 실험이름이었으니까.
"인공적으로 각성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게 됐으면 난 이미 진작 각성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 있다. 등반형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에게 마나의 본질에 대해 물어보니 아주 작은 실마리가 열렸다. 당장은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천마신교 내부에서는 인공적인 각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는 중이다."
"이제 개나소나 다 각성자가 되는 시대가 오겠네."
화련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일은 없다. 만약 인공각성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를 위해 사용되는 자원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결코 다 모으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재료들이 들어가는 데 그 많은 재료들이 사람 한 명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사용된다는 것 자체가 인류 전체에 손해가 되는 행동이 될 정도로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뭐야. 어차피 나도 못하는 거였잖아."
"왜 못하나."
"자원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절대 사용안하는 기술이 될 거 아냐."
화련이가 풉, 하고 가볍게 웃었다.
"아해야. 내가 누군지 잊었는가?"
"천마님이시지."
"그래 이 몸이 곧 천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여인이 자신의 남자를 위해서 그 정도 재료를 구해주지 못할 것 같느냐? 아해가 원한다면 그까짓 재료 얼마든지 구해다 줄 수 있다. 난 그만한 힘이 있고 위치가 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인류에 손해가 될 정도로 많은 자원을 사용하는 건 좀 그런데..."
"S급 몬스터 한 마리 분량의 재료가 소진 될 뿐이다. 그 몬스터 한 마리에서 수많은 부산품들이 나오기에 인류입장에서 손해라는 문장을 사용했을 뿐이지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니다."
"그러면 아까는 왜 미안한 표정 지었어?"
아직 불가능한 기술이라고 해도 나중이 되면 충분히 가능한 기술이고 그 기술을 화련이의 힘으로 나에게 적용시켜 줄 수 있다면 화련이가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었다.
아주 당당한 표정을 지었어야지.
"당장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그랬다. 그리고 당장 인공각성으로 각성이 가능한 정도는 고작 F급에 불과하다. 아해가 원하는 강함을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F급 에서 시작해서 올라가면 되니까 괜찮아."
비각성자가 각성하는 건 하늘에 맡겨야 하는 일이지만 각성자가 승급하는 건 노력의 여하로 얼추 커버가 된다.
특히 F급에서 D급 까지는 노력만 한다면 수 년내에 올라갈 수 있다는 통계를 들어본 적이 있으니 F급으로 각성한다고 해도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
큼큼, 스승니임
리우잉이 어울리지 않는 콧소리를 내면서 화련이에게 달라 붙었다.
방금 각성 관련한 얘기가 들린 것 같은데요.
리우잉의 눈이 아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이 리우잉도 각성에 대해 상당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하긴 어떻게 보면 나보다 각성이 훨씬 고플테니까.'
내가 리우잉에 대해서 아는 건 거의 없다.
리우잉과 이야기 하는 건 주로 현수고 현수와 리우잉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땐 의식을 완전히 꺼버리니까.
'우리 누나 맨날 각성 안해도 된다고 하는데 눈 보면 각성 엄청 하고 싶다고 티나.'
'그럴 만 하지, 각성도 안했는데 B급 몬스터를 우습게 때려잡는 강자잖아. 더 강한 힘에 대한 동경은 늘 가지고 있겠지.'
'그것도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천마의 제자로 들어온 검마랑 권마에 비해서 자기가 너무 딸리는 것 같다고 한탄 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야."
"리우잉 너는 반드시 각성시켜 줄거다. 아해를 각성시켜주는 것이 내 사적인 감정에 의한 일이라고 치면 너를 각성시키는 것은 공적인 일이니 말이다. S급 몬스터 하나를 갈아 넣어서 리우잉을 각성자로 만들 수 있다면 아주 남는 장사지."
고마워요 스승님!!
리우잉이 크게 소리치면서 화련이를 꼭 껴안았다.
저 멀리서 애들이 스승님, 뭐하고 계세요. 하는 표정으로 리우잉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리우잉은 애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화련이에게 꼭 안겨 있을 뿐이었다.
"대신 그 만큼 일을 해서 채워야 할 것이다. 아해를 각성시키는 건 내 명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니 그 누구도 말을 붙일 수 없겠지만 리우잉 네가 각성하는 건 천마신교를 위해서 사용하는 자금인 만큼 그 자금에 걸맞는 일을 해서 천마신교의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근데 그 인공각성이라는 건 언제쯤 할 수 있는건데?"
"나도 잘 모르겠다. 애들 말로는 빠르면 한 달이면 임상실험이 가능하다는데 아직 연구된 적이 없는 분야니만큼 애들의 말을 전부 믿는 건 불가능하겠지.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3개월 늦으면 년단위까지 걸릴 것 같다."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네."
그 때를 대비해서 폼 낮아진거나 복구할까?
요즘 전투를 아예 안 했더니 예전보다 확실히 실력이 떨어진 것 같은데...
"아해가 각성하면 무슨 능력을 각성하게 될 지 궁금하다."
"무슨 능력이긴... 그냥 반사신경이나 순발력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어릴 때 인공 각성 실험을 당하면서 생긴 미약한 마나로 얻은 능력이 그거였으니까.
"그렇다고 확신할 순 없다. 원래 각정자 개인의 특수성은 D급은 돼야 정립되는 것이 보통인데 아해는 아직 F급 각성자도 아닌데 이능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F급 각성자일 때도 아해의 각성능력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인가? 아니면 능력이 유지 될 것인가. 만약 능력이 유지된다면 마나가 적다는 이유로 F급 각성자로 분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수많은 의문이 따라 붙을 것이다."
"그렇게 들으니까 엄청 골때리긴 하네..."
"혹시 아나? 두 개의 능력을 각성한 사람이 될지 말이야."
"그건 진짜 말도 안되는 가정 같은데?"
어떻게 사람이 각성능력을 두개나 가지고 있어?
모든 이들의 각성능력은 단 하나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그 능력을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짐으로 인해 능력이 여러개가 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능력은 하나밖에 각성할 수 없다.
월하도 무력화하나고 하연이도 베기 하나잖아. 그걸 응용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해서 그렇지 근본적인 각성능력은 하나다.
"혹시 모르는 일이지. 만약 아해를 각성시켰을 때 능력이 두개가 된다면 다른 동기들을 각성시켜서 실험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동기... 각성...
뭔가 기억날락 말락한데...
"지금생각해 보니까. 이수아가 딱 그 케이스 아니야? 실험당하는 중에 자연각성했잖아."
내가 이수아를 언급함과 동시에 화련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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