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8화 〉 게이트 안에서­1 (188/265)

〈 188화 〉 게이트 안에서­1

* * *

"이제 갈거야?"

수아가 파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 가봐야지."

눈에 눈물이 찔끔 흐를 정도로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언제까지 미르에 머무를 수는 없었으니까.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자주 찾아올 테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

나 혼자 찾아오는 건 불가능해서 화련이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사소로운 문제점이 있긴 했지만 최대한 자주 찾아오려고 노력할 거다.

오랫동안 안 찾아왔다가 얘가 삑 돌아서 폭주해 버리면 위험했으니까.

"알았어..."

수아가 고개를 팍 숙였다.

"그러면 다음에 보자."

수아를 꼭 안아주고 화련이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나중에 보도록하지."

화련이가 나를 잡고 순간이동을 하려는 그 때.

세상이 변했다.

***

­구우우우우우우우우

아까 부터 낮은 진동이 계속해서 내 전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으윽..."

"일어났나?"

겨우 고개를 들어 일어나니 화련이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상황에 맞지 않게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우와..."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야."

사진기가 있었으면 지금 화련이의 모습을 꼭 찍었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근데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분명 너랑 같이 공간이동 하려고 했었는데..."

"특수게이트가 나타났다."

"특수게이트?"

화련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게이트라는 게 원래 이렇게 자주 나타나는거야?"

저번에 연하가 끌려간 곳도 좀 많이 이상한 게이트였는데...

"지금까지는 그렇게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를 성장시켜주겠다는 놈들이 나타나면서 특수 게이트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놈들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어서 특수게이트의 출현빈도가 늘어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야."

"아우우... 아파라..."

수아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일어났다.

"여기는 어디죠?"

"특수 게이트 안이다. 검은색의 게이트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우리를 집어 삼키는 걸 목격했다."

"우리만 집어삼켰어?"

"어. 우리가 목적이라는 듯 다른 사람은 아예 건드리지 않고 우리만 깔끔하게 옮겼다."

이상한 일이네...

마치 게이트가 자아라도 있는 것 같잖아?

'보스 몬스터의 계락인가?'

그런데 왜 굳이 우리를 데리고 온 거지?

다른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우리만 옮길 이유가 없잖아.

"이상한 게이트군.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는 게이트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 말이야."

화련이의 말대로 이 게이트는 정말 이상했다.

모든 게이트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게이트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있었다.

열린 길이 존재하며,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끝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곳엔 그런게 없었다.

동굴처럼 보이는 작은 공간이 전부일 뿐 어디를 둘러보아도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하하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어린 아이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보스 몬스터인가 보네요."

"여타 몬스터 없이 바로 보스몬스터가 나오다니... 아무래도 우리에게 볼일이 있는 모야이다."

­빙고!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사람 만한 원숭이 한마리가 나타났다.

키는 나랑 비슷한 정도지만 몸이 두툼한 것이 한 대 맞았가는 갈비뼈가 나가는 선에서 끝나지는 않을 듯 보였다.

"너는 누구지?"

­나는 원숭이산의 지배자인 안숭님이시다. 너와 대결하기 위해서 친히 게이트를 만들어 찾아왔지.

"호오, 나랑 말이냐?"

­그래, 너랑 말이야.

안숭의 눈빛은 비록 원숭이여도 그 의도를 알 수 있을 만큼 강렬했는데 한시라도 빨리 화련이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왜 나지?"

­네가 지구에서 가장 강해보였거든.

화련이의 어깨가 살짝 들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듯 보였지만 나는 화련이가 상당히 기뻐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는 인류를 성장시키려는 쪽이냐?"

­맞아. 저번엔 제대로 3개짜리 게이트를 만들어서 인간들의 성장에 기여했으니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러왔어. 그게 너와의 싸움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손해다만?"

­한 번 싸워주면 안되냐? 혼날 각오까지 하고 온 거란 말이야.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나에게 충분한 대가를 제시하라. 그렇지 않으면 싸워줄 수 없다.

안숭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선제시.

"뭐?"

­선제시 하라고 뭘 원하는 데?

"내가 원하는 걸 너는 이뤄줄 수 있나?"

­들어봐야 아니까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야.

자칫 날카롭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안숭의 목소리 톤 자체가 어린이 톤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나쁜 분위기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해를 각성시키고 싶은 데 가능하겠나?"

­각성? 얘를 말이야?

안숭이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쑥 훑어봤다.

짐승 특유의 습기 찬 호흡이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각성쪽은 내가 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긴 하지만... 마나 정도는 더 늘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좋아. 그러면 바로 대결하도록 하지."

뭐야. 이렇게 바로 대답한다고?

아니, 내가 마나를 더 얻을 수 있다고?

가슴이 두근하고 뛰기 시작했다.

각성을 하는 정도로 명확한 차이가 나진 않겠지만 마나가 더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봐.

안숭이 잠시 가만히 서있더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화련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이냐?"

­나는 제약이 많은 몸이란 말이야. 지금 내 몸상태는 평소의 내 모습이 아니니까. 최대한 객관적으로 싸우고 싶어서. 서로 신체능력을 동일하게 하고 싸워도 되지? 그러면 적어도 서로의 무술 실력 정도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테니까.

"... 알았다. 한 번 덤벼 보거라."

­그러면 바로 덤빈다?

화련이의 모습을 한 안숭이 화련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쿵!!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퍽하고 휙하고 쿵하니 사건이 종료되어 있었다.

안숭은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고 화련이는 아주 멀쩡한 표정으로 일어나 있었다.

신체능력을 약화시켜 조정했는지 평소의 화련이의 몸놀림 보다 느렸기 때문에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대충은 파악이 가능했는데 단순하게 안숭이 화련이보다 약했다.

안숭은 화련이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지만 화련이는 안숭을 여유롭게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

"자, 나의 승리지?"

­... 너 진짜 강하구나...

안숭이 벌떡 일어나 앉아 말했다.

화련이가 아무리 강하긴 하지만 여자긴 여자라서 자기 몸을 움직이는데 나름 조심하는 편인데 안숭은 그런거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지 막 움직였기에 왠지모를 어색함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해야! 저거보지 말거라!"

속옷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오기 직전에 화련이가 내 눈을 가렸다.

나를 괴롭힐 때는 속살까지 다 보여주면서 이렇게 보여주는 건 왜 막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옷 제대로 입어라!"

­왜?

"아무튼 제대로 입어라!"

­힝... 알았어.

안숭이 옷을 제대로 고쳐 입었는지 화련이가 내 눈에서 자신의 손을 땠다.

"후우... 다행이군..."

"천마님은 부끄러움이 많으신가 보네요. 저는 수현이 앞에서는 어떤 꼴이 되든 아무 상관 없는데."

"내가 민망하니까 그런짓은 하지 말아줄래제발?"

수아의 손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옷깃쪽으로 향하길래 미간을 부여잡고 간곡히 부탁했다.

수아도 진심으로 장난칠 생각은 없었는지 바로 옷깃에서 손을 내려놨다.

­너 근데 진짜 세다. 어떻게 그렇게 센거야?

"재능이다."

­인간 치고는 너무 대단한 재능인데?

"그러면 탈인간급의 재능이라고 해두지."

­우리세계...

뭐라 말을 하려던 안숭의 말이 턱 하고 끊겼다.

­큰일날 뻔했네. 아무 생각 없이 말하려다가 제약때문에 바로 사라질뻔 했지 뭐야.

"지금 사라져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아해의 마나는 늘려주고 가라."

­기다려봐.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필요한 것도 많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아. 그걸 이 공간에 구현하려면 못해도 이틀은 걸릴 테니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뭐? 이틀?

"더 빨리는 못하나?"

­못해. 왜? 빨리 나가고 싶어?

"외부에 일행이 있다. 아마 오래 돌아오지 않으면 걱정할 것이 분명하다."

­걱정하지 마 게이트를 이루는 구성요소중 대부분을 포기했더니 남는 여력이 많거든 최대한 적은 시간이 흘러간 시점에서 밖으로 내보내 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있으셔.

"얼마나 빠르게 나갈 수 있나?"

안숭이 턱을 괴고 앉았다.

­글쎄? 외부 기준으론 2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그정도면 괜찮군."

­쟤료 준비할 테니까 편안하게 기다리고 있어.

그말을 마지막으로 안숭은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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