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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화 〉 게이트 안에서­2 (189/265)

〈 189화 〉 게이트 안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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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료를 구하는 데 이틀 가까이 걸린다던 안숭의 말이 맞았던 걸까?

한 번 사라진 안숭은 20분이 지나도록 돌아올 생각을 안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작은 동굴에 갖힌 우리들은 멍하니 앉아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주 고요하군... 작은 동굴안에 갖혀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말이다."

"동굴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거야? 저번에는 이것보다 훨씬 커다란 구조물도 박살냈잖아."

화련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 구조물은 게이트가 아니라 게이트 내부에 있는 구조물이라 박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이 동굴은 게이트의 공간 그 자체다. 아무리 나라도 공간자체를 파괴할 수는 없다."

"천마님... 생각 보다 약하시네요."

"뭣이?"

수아의 말에 화련이가 벌떡일어나서 수아를 노려봤다.

"아니... 생각보다는 약하시다고요. 저는 천마님이 너무 강하신 분이시라서 안되는 게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죠."

"나도 인간이다. 멍청한 년아."

"알았어요. 천마님, 너무 화내지 마세요오오."

수아가 아주 평화로운 어투로 말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이렇게 누워있으니까 어릴 때 생각나고 좋네요. 옆에 수현이도 있고... 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기도 있고..."

"너는 어린 시절이 좋았나?"

화련이의 당황한 말 처럼 나도 수아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를 괴롭히지도 않고 딱히 생체 실험이 진행되지도 않은 실험이었지만 늘 챗바퀴 굴러가듯 똑같은 삶을 살다보니 많이 지루하기도 했고 나의 자유를 억압 받는 생활은 아무리 추억보정이 되도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자체가 좋았다기 보다는 그때는 수현이랑 많이 친했으니까요... 제가 지금 어떤 삶을 살더라도 수현이랑 그만큼 친했던 그 시절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수아의 말은 묵직했다.

말에 담긴 어감도 묵직했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나를 향한 사랑도 묵직했다.

그녀에게 나는 대체 뭐였던 걸까?

"제가 수현이한테 능력을 사용한 게 문제죠... 그 일만 없었으면..."

"네가 아해한테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아마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결국 아해를 데리고 시설을 빠져나왔을 확률이 높으니... 그래도 중원에 대려가진 않았겠군, 다만 더 일찍 찾아올 수는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해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이유로 아해에게 찾아오는 것을 미루고 있던 것이니 말이다."

수아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크게 달라졌을 거에요. 제가 의도하지 않아도 수현이가 미르에 다시 온 것처럼 그 평행세계의 수현이도 결국 미르에 한 번은 들리게 될 텐데 제가 아예 수현이를 세뇌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괜찮은 상황에서 만났을 거에요. 수현이는 어릴 적 친구였던 저를 보고 반가워 해줬을 것이고 저도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수현이를 보고 기뻐했겠죠... 적어도 지금 관계보다는 훨씬 더 나았을 거에요. 수현이도 상처 입지 않았을 거고요..."

수아의 말투에서는 짙은 후회가 느껴졌다.

그 말 속에서 왜 괜히 세뇌를 해서 수현이와의 관계를 깨트렸을까 하는 후회 뿐만 아니라 나에게 세뇌를 검으로서 내가 받은 정신적인 충격까지 함께 걱정해 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수아에 대한 마지막 경계가 완전히 사그라 들었다.

수아는 진짜로 바뀌었다.

단순히 나와의 관계를 깨지게 한 세뇌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나에게 세뇌를 건걸 후회하고 있다.

그녀가 나에게 상처 입힌 그 행위를 미안해 하고 있다.

"수아야."

"...왜?"

"아까 말했지만 난 이미 널 용서했어."

"거짓말... 나 같은 쓰레기를 용서해 줄리가 없잖아."

수아의 말은 아주 어둡고 침침했다.

방금전까지는 나름 밝은기가 섞여있었는 데 내 말이 그녀에게 트리거로 작용했는지 아주 어둡고 눅눅한 듯한 목소리가 되었다.

"정말 멍청하군."

그 모습을 보다못한 화련이가 엄한 눈초리로 수아를 바라봤다.

"수현 수현 지껄이던 네가 아해의 말을 못 믿으면 어떡하자는 거냐? 아해는 분명히 너를 용서했다. 항상 아해의 옆에 붙어있는 나는 알 수 있다. 아해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동의하지 못하는 일이긴 하지만 아해는 틀림없이 널 용서했다."

"..."

"그러니 마음 놓고 받아들여라. 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다시 너를 용서해 줬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음을, 네 안의 상처탓에 이미 너를 용서한 수현에게 다가가지 못한다면 너무 멍청한 일이 아닌가."

화련이가 빠륵 말을 읍조린 후 후련한듯 바닥에 앉았다.

"... 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

당연히 못 돌아가지...

이건 내가 수아를 용서해준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였다.

늘 붙어 있을 수 있던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당장 사는 곳부터가 달랐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친할 수 있던 예전과는 다르게 서로 해야할 일이 있었다.

이제는 어른이 된 우리는 어린애처럼 친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옛날이지만 딱 하나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너랑 내가 친구라는 사실 하나는 예전과 다를게 없겠지.

엉엉 우는 수아를 꼭 안아줬다.

벌써 나이가 20대 중반인데 뭐 그렇게 울음이 많은지 모르겠다.

내 옷을 가득 적실정도로 시원하게 울어댄 그녀는 그재서야 평온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웠다.

"어때, 기분이 좀 나아졌나?"

"어, 훨씬 나아졌어."

그녀의 갑작스런 반대에 화련이가 흠칫하고 굳어버렸다.

"아해야, 내가 지금 잘 못들은 것이냐?"

"그걸 왜 수현이한테 물어봐. 천마씩이나 돼서 설마 자기 귀도 못 믿는 거야?"

화련이에게 말을 거는 수아의 말투는 아주 평온했다.

그 말이 존댓말이었다면 지금까지의 수아와 큰 차이가 없었겠지만 지금 문제는 그녀가 화련이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화련이가 존댓말 반말을 일일이 따지는 성격은 아니었다.

당장 연하나 하연이가 천마를 편하게 대한다고 해...

'아닌가?'

곰곰히 생각하며 나 말고는 화련이한테 반말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겉으로는 나는 상관 없다. 하는 인자한 인상을 풍기면서 전음같은 걸로 상대를 협박한 거 아니야?

아무튼 화련이의 표정엔 상당한 화가 깃들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수아가 자신에게 반말을 내뱉으며 아주 편하기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심지어 수준급의 돌려까기를 구사하여 화련이를 까고 있었기 때문에 화련이의 열불이 확하고 치솟아 오르는 게 나한테도 느껴질 정도였다.

"너... 지금 뭐라고 했나?"

"왜? 이번엔 나한테 물어보려고? 천마쯤 되는 인간이 왜 그렇게 자기 자신한테 믿음을 못 가져? 넌 할 수 있어! 유캔 두잇!"

"천마야, 진정 해."

얼굴이 새 빨게질 정도로 진노한 화련이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언급할 뻔 했지만 우리 둘만 있는 자리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같이 있는 자리다 보니 그녀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수아에게 주먹을 휘두를 듯 위협적으로 수아를 바라보고 있는 화련이의 모습에 재빨리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어 화련이를 막아섰다.

"왜 그렇게 화내? 설마 내가 너한테 반말 썼다고 그렇게 화를 내는거야? 자기는 처음 본 사람한테 반말하면서 친구한테 반말했다고 화 내는 거 보면 좀 깬다 너."

"뭐? 누가 누구 보고 친구래? 너 진짜 죽고 싶어?"

화련이가 현대인과 다름 없는 말을 사용하면서 수아를 노려봤다.

급한 상황에서 저런 말투 나오는 걸 보면 지금까지 엄근진한 말투를 사용했던 게 오히려 컨셉일지도 몰라.

"나이도 같고 어릴 때 같은 곳에서 지냈고 친구의 친구인데 친구라고 말도 못해? 아니, 말하는 건 그렇다고 쳐도 목숨까지 위협당할정도로 이상한 일을 한거야?"

"네가 반말하는 것도 물론 싫지만 내가 화가 난 이유는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듯 한 언행을 하고 있지 않느냐!"

"에이, 친구끼리 이 정도 장난도 못쳐? 나는 드립이라고 친건데 네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니... 미안해 아무리 장난이어도 상대가 상처 입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쳤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심했네."

'수아 얘 사람 놀리는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말로 장난 치는 것에선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인 연하가 와도 얘는 상대하기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수아가 저렇게 말하자 화련이만 난처해 졌다.

여기서 화를 계속 내면 상대의 장난에 빡쳐서 상처를 입은 와중에 날뛰는 상태가 되는 거니까.

수아의 절묘한 말에 화련이가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안숭이 돌아왔다.

­너희 뭐하고 있어?

귀여운 그 목소리에도 분위기는 전혀 풀리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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