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일!일!일!1
* * *
이곳은 식스의 집무실.
나와 화련이, 그리고 수아는 식스의 서슬퍼런 눈빛 앞에서 다같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그 화련이 까지도 쫄게 만드는 걸 보면 식스가 아주 단단히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잘못도 아닌데...'
우리라고 게이트에 빨려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것이 아니다.
안숭이 화련이와 싸우기 위해서 근처 있던 우리들까지 한 번에 잡아서 삼킨 것 뿐인 데 그것가지고 이렇게 혼나고 있으니 억울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대놓고 불만을 표출할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그녀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거야?"
식스가 사나운 표정과 어투로 수아에게 말했지만 수아는 화들짝 놀라면서 화련이에게 설명을 넘겼을 뿐이다.
안숭도 화련이를 데리고 가기 위해서 우리까지 먹은 것이니 내가 생각해도 나나 수아 보다는 화련이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훨씬 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말이다..."
화련이가 상황을 설명했다.
안숭이라는 보스 몬스터가 자신과 싸우기 위해서 자신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는 내용까지는 진실이었는데 그것빼고는 모조리 거짓이었다.
우리가 늦게 나오게 된 이유인 나의 마나 증폭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안숭과 싸우는 데에 2시간 정도 들었다는 내용으로 포장했다.
게이트에 직접들어가 본적이 없는 식스의 입장에선 화련이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화련이의 연기력은 아주 대단해서 진실을 알고 있는 나 까지 속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경지에 접어들었으니까.
"하아... 너희 잘못은 아니라는 거네?"
"우리가 무슨 변명이라도 하는 것 처럼 말하지 마라. 우리는 진짜 잘못이 없다."
"미안... 내가 요즘에 예민해져서 말이야. 하루가 멀다하고 도시에서 사고가 터지는 데 멘탈이 안나가고는 베길수 가 없었거든... 괜히 까칠하게 굴어서 미안."
식스가 책상으로 축 처지면서 업드렸다.
"도시 업무가 그렇게 바쁘냐?"
"어. 엄청 바빠. 아직 안정화가 완전히 이루어 지지 않았다 보니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이 터지는데 아직 제대로된 경비 병력을 육성하지 못해서 행정력이 따라가지를 못하거든 아마 솔에서 지원해준 경비 병력이 없었으면 아마 미르는 진작에 개판이 됐을 거야."
"옆에 이수아를 두고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건가? S급 각성자 한 명이 나서서 일을 처리하면 아마 어지간한 A급 각성자 다섯 명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만?"
식스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일단 수아의 이능이 세뇌라는 게 너무 위험해. 아무리 수아가 세뇌를 사용하지 않는 다고 해도 수아의 능려이 세뇌라는 사실이 도시에 퍼지기만 해도 개판이 날 확률이 너무 높아서 수아는 얼굴 마담 정도로만 세우고 도시의 행정처리에는 사용할 생각이 없어. 그리고 도시 권력에 대한 문제도 있고..."
"S급 각성자가 도시의 권력을 쥐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아가 이 도시의 지배자가 될 생각으로 덤벼들어도 솔이나 내가 알아서 잘 처리 해 줄테니 권력에 대한 문제는 크게 덜 수 있는 것 아닌가."
"미안, 잘 못설명했다. 권력이 아니라 파벌단위의 문제야."
"파벌?"
어디를 가든 파벌이 문제구만, 태양길드도 파벌때문에 골머리를 단단히 앓고 있던 것 같은데 미르라고 다를 건 없어 보였다.
"미르의 중추 세력은 크게 셋으로 나뉘어, 첫번째는 혁명단 출신의 인물들, 초기 부터 지배자를 타도하기 위해 힘 써줬던 인물들이니 만큼 고위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 그리고 수아를 따르는 신도들, 지금은 세뇌가 풀리긴 했는데 수아에 대한 충성도가 너무 무시무시해서 다루기 힘들지만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쳐낼 수가 없는 애들이야. 그리고 마지막은 지배자를 몰아낸 이후의 신 미르에서 새로 영입한 사람들."
"그 세 종류가 각자 파벌을 만들고 있다는 거야?"
"어."
식스가 고민도 하지 않고 즉답했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어. 자기 파벌의 사람들이랑만 교류한다는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서로 싸우지도 않고 관직을 두고 싸우지도 않아. 하지만 수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신도들 쪽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그 애들이 내가 잡일 같은 걸 처리하는 걸 두고 볼리가 없으니까..."
"수아말이 맞아. 자신들의 여신님이 한낯 미르의 지배자인 내 명령을 듣는 모습을 보면 아마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거야. 심하면 쿠테타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일이 발생하면 미르의 행정력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민심도 펑펑 터지고 내일은 팍팍 늘어나게 되겠지."
식스가 많이 힘든 가 보다.
얼굴에 다크서클이 가득 끼어있는 걸 보고도 얼추 눈치를 채고 있었는데 말투가 채념한듯 멘탈이 나간 어투라 상황이 더 심각해 보였다.
"그렇게 늘어나는 일이 수아를 써서 줄일 수 있는 일의 양보다 현저히 많아서 수아를 이용해서 미르의 행정을 관리할 생각은 없어..."
"어쩔 수 없군... 힘내거라."
화련이와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식스의 명복을 빌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야... 수아는 여신이라는 입지 때문에 몰래라도 행정에 관여할 수 없지만... 내 눈앞에 우리 도시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S급 각성자가 있네?"
그녀가 누구를 지칭하는 지를 명확했다.
굳이 식스의 눈앞으로 한정하지 않아도 현재 미르에 존재하는 S급 각성자는 수아를 포함해서단 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식스가 지칭하는 S급 각성자란 곧 화련이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제발 부탁한다! 우리 도시의 행정에 보탬이 되어줘."
"... 큼... 그대는 누군데 감히 이 천마한테 도움을 청하는 것이지? 무례하도다."
아무리 화련이라도 일하는 건 싫었는지 식스의 말에 딱잘라서 선을 그었다.
"누구냐니! 어릴 때 시설에서 같이 지냈던 6호지! 너는 1호잖아!"
"내가 1호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난 잘 모르겠다만?"
"수아가 그랬어! 네가 1호라고 어릴 때 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도와주면 안되냐? 우리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얘기도 자주하고 밥도 종종 같이 먹고 그랬잖아."
"그건 식스 네가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것이지 나랑 딱히 친했던 건 아니지 않느냐?"
"네가 1호라는 건 일단 인정하는 거지."
화련이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네가 만든 문제는 아니라지만 너 때문에 안숭이라는 보스 몬스터가 게이트를 열었고 그 것 때문에 해결해야하는 일이 늘어난 건 맞잖아. 선심쓰는 셈 치고 딱 하루만 도와줘라... 제발 부탁이야..."
식스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화련이에게 빌었다.
그 모습이 짜증나기보다는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에 화련이도 푹 한숨을 내쉬며 고민했다.
"딱 하루 만이냐?"
화련이가 조용히 읍조리자 식스가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빛내며 화련이를 바라봤다.
"어! 딱 하루만이면 돼! 지금 부터 24시간만!"
어째 시간이 늘어난 것 같은데?
화련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눈빛이 상당히 싸해졌지만 식스의 반짝 거리는 눈빛을 보며 차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다. 지금부터 딱 24시간만 미르를 위해서 일해주지. 옛 동료기도 하니 보수는 받지 않아도 좋다."
"보수를 받아도 좋으니까 딱 48시간만 일해주지 않을래?"
48시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마자 화련이가 식스를 살벌하게 노려봤지만 식스는 화련이에 대한 공포보다는 과로에 의한 피해가 더 컸는지 눈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화련이를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안된다. 나는 딱 24시간만 일하고 갈거다."
".... 알았어... 그러면 1호가 우리를 위해서 일해주는 만큼 이수현 너도 우리를 위해서 일할 거지? 동료가 일하는데 설마 그 동료를 내버려두고 혼자서 놀고 있지는 않을 거 아니야."
"나는 평범한 비각성자일 뿐인데?"
"비각성자는 비각성자 나름대로 쓸모가 있거든, 각성자가 능력을 쓸 수 없는 곳도 있고 비각성자만이 잠입할 수 있는 곳도 있거든 그러니까 일이 없어서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를 마셔!"
그런 걱정 한 적 없는데?
누가봐도 하기 싫다는 걸 돌려서 말한 거잖아.
"저기, 내가 일한다는 데 굳이 아해까지 일을 시킬 필요는 없지 않나. 내가 아해몫까지 일할 테니 아해는 그냥 편히 쉬게 나둬라."
"그러면 1호가 48시간 동안... 꾸엑!"
다시 한 번더 튀어나온 48시간은 참지 못했는지 화련이가 식스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24시간, 딱 24시간만 일하고 떠날거다. 알겠나."
식스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화련이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수현이가 할 일도 네가 할 거면 25시간은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애절함에 나랑 화련이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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