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일!일!일!2
* * *
결국 화련이가 24시간 30분 동안 일하는 것으로 극적인 합의를 봤다.
S급 각성자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자랑하는 화련이가 30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내가 24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의 양보다 훨씬 많으며 또 더 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화련이의 논리를 식스가 인정한 것이었다.
'근데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인데...'
처음 계약된 건 화련이마 24시간 일하기로 한건데 괜히 나를 한 번 건드렸다가 넘어가면서 화련이가 일할 시간만 늘어난 건 아닌가 싶었다.
화련이도 그게 걸리는 영 상쾌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고작 30분 정도 더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식스에게 항변하지는 않았다.
***
식스는 천마가 일할 동안 그녀의 곁에 꼭 붙어있었다.
아직 미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천마를 혼자 알아서 일하라고 두는 것 보다는 누군가 한 명이 붙어서 일을 알려주는 것이 낫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실제로 식스와 천마가 따로 일하는 것 보다 식스가 천마 옆에서 일에대해서 가르쳐 주며 일하는 것이 훨씬 효율이 좋았으니 아예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이걸 없애면 되는거냐?"
"반문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건 바로바로 해주지 않을래? 아직 찾아가야 하는 곳이 많이 남아있단 말이야."
식스의 깐깐한 어투에 천마가 한숨을 지으며 지하도에 박혀 있던 거대한 바위를 없애 버렸다.
가루하나 날리지 않고 깔끔하게 사라져 버린 바위는 사람을 써서 해결하려 했다면 하루는 꼬박 걸리는 데다가 인력도 많이 들게 분명해서 함부로 손을 뻗지 못하고 있던 바위였다.
"크으, 역시 S급 각성자야. 성능 확실하다니까?"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식스는 바로 천마에게 붙어서 그녀가 순간이동해야할 좌표를 알려줬고 천마는 식스가 알려준 정보에 따라 이동해서 그곳에서도 일을 해야 했다
"여기 땅 전부 뒤집어 엎어줘. 다음 농사를 위해서 한번 엎긴 해야 하는 건데 우리 도시에는 너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각성자가 없어서 사람 손으로 엎어야 하는데 이 넓은 밭을 다 뒤엎으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말이야."
천마가 능력을 사용해서 밭을 전체적으로 갈아엎었다.
그녀의 강력한 이능앞에서는 수 제곱 키로미터 단위의 밭도 작은 수준에 불과했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모든 밭을 전부 갈아 엎을 수 있었다.
"크으, 역시 천마야! 이제 거름 좀 뿌려줘."
"거름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거름과 비슷한 건 보이지도 않았다.
"좌표알려줄테니까 여기랑 거기 왕복하면서 거름을 뿌려주면 돼."
넓은 밭에 뿌릴 거름인 만큼 그 양이 상당했는데 그런 거름을 옮기는 것이 영쉬운 일은 아니었다.
미르에 남아있는 차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나르던가 해야했는데 냄새나는 거름들을 들고 나르는 일은 다른 일에 비해서 강도가 높은 일이었고 일반인이 한 두 번 왕복하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양이었기 때문에 꼭 각성자의 손길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각성자가 해야할 다른 일들은 많았고 각성자 같은 고급인력들에게 거름이나 나르는 일을 시켰다가는 자존심 상해할 사람들도 많았기에 지금까지 남겨 놓고 있는 일이었다.
물론 천마한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천마는 미르에 속한 각성자가 아니라 외부인이었으니까.
24시간 30분 동안 단물을 쪽쪽 빨아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천마가 식스에게 받은 좌표와 밭을 오가면서 거름을 날랐다.
순수하게 뿌리는 거름의 질량은 아까 갈아 엎었던 밭에 비하면 적은 양이긴 했지만 한 번에 같이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기 때문에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다보니 10분 정도 되는 시간이 소모 됐다.
"너무 늦게 끝났다.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거짓말이다.
식스의 생각으론 아무리 천마여도 20분 이상의 시간은 잡아먹지 않을까 생각하고 데려온 것인데 그녀의 생각보다도 훨씬 빨리 끝난 것이다.
일반 적인 일터였다면 일찍 끝난 만큼 빨리 끝내주던가 아니면 지금 빨리 일한 만큼 다음 일이 널널해 지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식스는 천마를 단 한시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천마가 해결하는 일들은 시간이 많이 잡아먹히거나 인력이 많이 드는 일인데 천마의 이능을 사용하면 그 시간을 압도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일들이 주로 선정되었다.
몸의 힘을 쓰는 것이 아닌 넘쳐나는 마나를 쓰는 것인 만큼 천마가 육체적으로 느끼는 부담감은 덜했지만 문제는 그 빡빡함이었다.
'주... 죽여줘...'
그 천마조차 힘들어 할 정도로 아주 깔끔한 톱니바퀴처럼 모든것이 딱딱 맞춰서 진행됐는데 그 일처리에 틈이 없었기 때문에 천마에게 주어지는 쉬는 시간은 아예 없었다.
쉬는 시간 하나 없이 24시간 내내 일하는 것은 천마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천마가 노동에 대한 경험이 있었더라면 자신의 힘을 조절해 가면서 일처리를 늦췄을 텐데 몬스터랑은 자주 싸워봤어도 노동을 한 경험은 없는 천마 입장에선 계속해서 풀 강도로 일하다 보니 그만큼 더 힘들기도 했다.
물론 식스 입장에선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한 천마에게 경외감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천마 갓갓.'
24시간 동안 진행된 천마의 일도 슬슬 끝이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수현 대신 일한다고 했던 30분이 남아있었는데 이렇게 빡세게 일할거면 30분이 아니라 5분을 더 일하는 것도 과했을 텐데... 하는 후회감이 천마를 뒤덮었다.
'내가 지금 일하는 동안에도 아해는 이수아와 함께 꽁냥꽁냥대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속으로 열불이 확 뻗쳤다.
오늘밤은 이수현에게 뜨거운 맛을 선사해 주지 않으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강렬한 화가 그녀의 머리를 지배했다.
사실 이수현은 몇번이고 천마에게 새참이라도 가져다 주기위해서 그녀를 찾아 이동했지만 거의 10분 간격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일할 정도로 빡센 업무 강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계속 엇갈리기만 했다.
평소의 천마라면 자신의 기감으로 수현이 자신을 위해서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아줬겠지만 일에 집중하고 있는 천마는 이수현의 행방을 일일히 다 살필 정도로 여유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수현의 노력은 허공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얼마 안남았다! 화이팅!"
식스 입장에선 아주 계탄 날이었다.
천마가 헤치운 일의 양은 그야말로 막대했다.
도시가 전부 달려들어도 일주일이상 걸릴 만큼 많은 일을 천마는 혼자 해냈다.
이 마저도 온 도시가 힘을 합쳐서 일주일이지 기존에 진행되는 일도 마저하고 사람들 끼리의 마찰까지 전부 계산한다면 일년이 지나도 다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양의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단 하루만에 처리하다니 식스의 입장에선 천마가 복덩이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24시간 30분... 끝났다."
기쁜 목소리로 말하는 식스에게 천마의 딱딱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싸늘해서 천마와 같이 24시간 30분 동안 잠도 안자고 밥도 안 먹고 돌아다니면서 정신이 더 피폐해진 식스조차 제 정신이 들게 할 정도였다.
"어... 어... 맞아 끝났지..."
"나는 이만 아해에게 돌아가 보겠다. 지난 24시간 30분 동안 참 좋은 시간을 보냈다."
천마가 식스의 어깨를 툭툭 치고 사라졌다.
아무래도 천마에게 단단히 잘 못 보인 것 같았지만 식스는 아무런 상관 없었다.
천마 덕분에 1년이 지나도 해결할 수 있을 지 없을 지 알 수 없는 양의 일을 모두 처분했으니 마냥 기쁠 뿐이었다.
***
"너 괜찮아?"
24시간 30분 만에 돌아온 화련이의 몰골은 빈말로도 정상이 아니었다.
밥도 안 먹고 조금의 휴식도 없이 굴리고 있다는 수아의 말이 거짓이 아닌듯 화련이의 눈빛은 공혀했고 눈빛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화련이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곧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처음 에는 나를 보고 기운을 차린 거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련이의 눈빛에 새겨진 감정은 명백한 분노와 시기였으니까.
얘가 왜 이런 감정을 가지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식스에게 가졌던 감정을 나에게로 전이한건가?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는 도중 천마가 나를 들었다.
화련이는 내가 반응할 틈도 없이 나를 들고 모텔로 끌고 들어갔다.
"내가 일하는 동안 아해는 이수아년과 즐겁게 놀았겠지?"
이제야 화련이가 나에게 가지는 분노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거 아니...읍!"
화련이는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내 위에 올라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