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 각성2
* * *
그녀가 내 볼에 입을 맞추자 마자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내 몸안에 어떤 마나를 남겨두고 사라졌는데 지금상태에서 다루는 것은 불가능 할 듯 보였다.
'이게 뭐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를 공격하려 드는 것 같진 않았다.
내 마나와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게이트를 클리어 하면 뭐든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네 말이 맞아.'
현수의 말대로 게이트를 클리어 하면 내가 각성을 하게 될 것이고 각성을 하게 되면 이 마나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겠지.
'그녀가 나한테 함정을 파놨을 가능성도 있나?'
그녀가 만약 인류를 도와주려는 쪽의 존재가 아니라 인류를 적으로 삼고 공격하는 진영의 존재라면?
'그랬으면 네가 아니라 더 중요한 인간들을 함정으로 몰았겠지.'
'나만큼 편하게 속일 수 있는 중요한 인간이 없잖아.'
나는 본체의 실력은 거의 없다 시피 하지만 주변인들이 엄청나게 대단한 인간이었다.
비각성자중에서 나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안 들어갈 거야? 함정이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말았어야지.'
'그것도 맞는 말이야.'
'애초에 구슬도 사라져서 돌아갈 수도 없어. 우리가 가야할 길은 게이트 안쪽 밖에 없어.'
그래도 현수가 같이 있어주니까 어느 정도 안심이 되네.
아마 혼자였으면 고민을 5분 정도 더 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찬란히 빛을 내 뿜고 있는 게이트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위이이잉!!!
무언가가 열렬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곧 게이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파앗!
과한 눈뽕을 한 번 당한 후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수많은 몬스터 무리가 몰려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몬스터 들은 일정 간격으로 갑작스럽게 나타난 게이트에 빨려들어갔는데 그 주기가 연하가 말했던 게이트의 빈도와 비슷했다.
'일정 몬스터가 나온 다음에 잠깐의 휴식 시간이 있다는 것 까지 똑같아.'
몬스터가 다 빈 다음에는 바닥 전체가 움직여서 새로운 몬스터가 있는 바닥을 깔았기 때문에 그러기 위한 시간이 추가적으로 소모됐다.
아마 연하가 말한 휴식시간은 저렇게 발생하는 모양이었다.
'공장같네.'
현수의 말이 맞았다.
이곳은 공장이었다.
구체적으로 따지고들면 공장이 아니라 상하차 센터에 더 가깝긴 했겠지만 수많은 몬스터들이 질서정렬하게 운반되는 모습은 공장을 떠올리게 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찍어내고 게이트를 통해 내보낼 수 있던거지?
'아니, 그 전에.'
이건 일반적으로 깰 수 있는 게이트와는 그 모양이 달랐다.
이곳은 게이트가 아니라 공장이었다.
이 시설 전체를 무너뜨리는 게 게이트를 클리어 하는 조건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었지만 당장 어디부터 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직진해 볼까...'
내가 있는 곳은 몬스터 들이 게이트를 타고 운반되는 곳의 바로 위쪽이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이곳에 이런 구조물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정면 밖에 길이 없었으니 일단 마냥 걸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제는 구슬이 없다.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일단... 이곳도 게이트니까 보스 몬스터가 있으려나?'
이 정도로 거대한 게이트였다.
설마 이런 게이트를 만들고 관리하는 이가 없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러면 다른 도시들에서도 이런 구조물이 있는 건가?'
솔이랑 천마신교에도?
나중에 화련이가 오면 물어보자.
그녀는 분명히 이런 게이트를 찾아내고 클리어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잡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걸으니 구석에서 밝은 빛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빛이 나는 곳으로 이동하니 내가 들어왔던 게이트 보다는 한참 덜하지만 그래도 밝게 빛나고 있는 게이트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후우..."
단검을 들고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뭐가 나올지 모른다.
현수가 마나를 끌어올렸고 내가 감각을 끌어올렸다.
서로가 준비가 되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게이트 안으로 한 발자국 내밀었다.
***
뭐지?
난 분명히 게이트 속으로 발을 집어넣었는데...
발에 아무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붕 뜬 느낌이었다.
눈을 떠보니 모든것이 새하얀 공간이었다.
일어났는가 도전자여!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는 기계음과 비슷했다.
인간의 내지르는 듯한 목소리에 기계음을 섞었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감이 오려나?
아무튼 상당히 시끄러운 목소리였다.
네가 날 방해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은 알고 있다. 내 성격대로 라면 너를 당장 짓잇겨 죽여야 하겠지만 놈들과 협약을 맺은 게 있으니 너에게 시험을 내리도록 하겠다! 너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라! 너 자신을 이겨내라! 그러지 못한다면 너는 이곳에서 스러질것이고 만약 너 자신을 이겨낸 다면 이 게이트는 네가 클리어한 전리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놈들과 협약을 맺어?
'이 놈은 우리를 침공하려는 쪽인가?'
안숭이나 샤킹, 그리고 나에게 이곳을 안내해준 흡혈귀와는 다르게 우리를 공격해 오는 쪽인 모양인가보다.
지금까지 나타났던 게이트들이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나타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나빠졌다.
속에서 부터 새겨져 오는 반감이 들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화를 낸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속으로 꾹 참아 넘겼다.
'언젠가는 복수해 주마.'
자! 첫번째 시련이다 도전자여!
바닥이 생기고 내 눈앞에 나와 똑같이 모습을 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들어냈다.
너와 완전히 똑같은 존재다. 이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너는 더 나아갈 자격이 없다.
'쫑알시끄럽네.'
쾅!!
일격이었다.
현수가 다리에 마나를 모아 한 번에 쏘아지듯 앞으로 나아갔고 놈이 반응하는 것을 역으로 계산해서 몸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놈은 현수가 작정하고 분출한 마나를 견뎌낼 수 없었고 결국 일격에 폭사했다.
말도 안돼... 그 놈은 너와 완벽하게 같은 놈이었단 말이다! 육체도 실력도 마나도 이능도 너랑 하나도 다르지 않을 텐데...
'이로서 너와나는 다른 존재라는 게 증명됐네.'
아무래도 놈의 능력으로는 내 속에 있는 현수까지 복사하지는 못했나 보다.
마나가 아무리 많아도 현수가 없다면 제대로 다룰 수 없었다.
단지 순발력이나 반사신경적인 영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을 뿐 단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이게 끝이야? 나와의 싸움이라는 것 치고는 너무 심심하게 끝났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의 육신과의 싸움에선 승리했지만 네 안의 벽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을까?
그의 말이 끝나고 검은 연기들이 우수수 올라오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는 각각 뭉쳐서 여러개의 인영을 만들어 냈고 그 인영들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니... 그 모습은 내가 익히 아는 모습들이었다.
'쟤네들이 왜 여기서 나와...'
화련이 월하, 하연이, 연하, 그리고 수아까지.
내가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이들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것이 네 안의 벽이다. 네가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고 상정한 이들이지, 아주 대단한 놈이 들어오셨군.
그가 씨익하고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질 정도로 그는 기쁜 어투를 가지고 있었따.
네 벽을 넘어봐라. 네 안의 만들어진 한계를 깨 부숴라. 그러지 못한다면 너는 나가지 못할 것이다.
말이 벽을 넘으라고 하는 거지 그의 목소리에는 나를 향한 비소가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절대로 깨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는 목소리에 내 기세가 팍하고 꺾였다.
'쟤네들을 어떻게 이겨...'
특히 화련이... 화련이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든 평생 따라잡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는 애였다.
내 감정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걸까? 그녀들의 모습이 점점 커져만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작아지고 그녀들은 커졌다.
나는 가만히 있고 그녀들을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게 그녀들과 나의 차이였다.
'너도 각성하고 달려나가면 애들을 따라잡을 수 있어!'
현수의 응원이 들려왔지만... 글쎄? 내가 쟤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연하라면 몰라도 다른 애들을?
이런 마음을 가지니 연하의 크기가 쑥하고 작아졌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을 뿐이었다.
'씹새끼야 정신 차려! 네가 마음을 먹어야 따라잡을 수 있는 거라니까? 진심으로 마음 먹기만 하면 바로 클리어 할 수 있어! 나가서 애들봐야지. 안 그래? 나는 이미 리우잉 누나를 넘어설 생각을 하고 있는 데 너는 찌질 하게 뭐하는 거야.'
그래... 해보자.
나는 쟤들보다 잘 나질 수 있다.
쟤들 보다 세질 수 있다.
속으로 그렇게 아무리 중얼거려도 애들은 작아지지 않았다.
푸하하하! 그런 자기 속임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해야만 이곳을 나갈 수 있다!
아무래도 이곳을 나가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