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게이트 정화3
* * *
과장 조금 보태서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게이트를 정리하고 있던 날들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직 화련이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리우잉이 말한 리우잉이 해결하는 영역을 통해 추산해 보면 화련이가 해결하는 영역또한 알 수 있었는데 얼마 화련이를 만났고 빠르게 헤어진 만큼 진짜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우리가 지나다닌 중국의 국토가 거의 4분의 1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는 데 화련이는 우리보다 빨리 이동하면서 우리보다 빠르게 게이트를 클리어 하고 있고, 또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슬슬 끝날때가 보이고 있었다.
실제로 화련이가 처리한 도시에 도착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었기도 했고.
그렇게 너덜너덜한 몸을 이끌고 게이트 밖으로 나오니 리우잉과 화련이가 서 있었다.
저 멀리에 권마도 서 있었지만 검마도 아니고 권마와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물론 같은 일을 한 동지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동질감이 들긴 했지만 말이야.
"수고 많았다."
"여러분 여기 계시다는 건... 다른 도시도 전부 처리했다는 뜻이겠죠?"
월하의 영혼없는 말에 화련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빨리 중국의 모든 도시를 안정화 시킬 수 있었다.
"다행... 이네요..."
월하가 털썩... 하고 쓰러지러 하기에 옆에서 들어주려 했는 데 나까지 같이 넘어져 버렸다.
"많이 힘들었나 보군."
먼저 시작한 저희랑 거의 비슷할 정도로 많은 게이트를 닫았으니까요. 아마 엄청 고생했을거에요.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현수와 2교대를 돌리긴 했지만 이젠 육체도 한계고 정신도 한계였다.
아무리 월하라고 해도 일 주일간 쉬지 않고 일하는 정도의 피곤함을 이기지는 못했는지 눈이 감기는 게 보였다.
"편히 쉬도록 하여라."
화련이의 마지막 한 마디를 듣고 바로 기절해 버렸다.
***
"으으윽."
머리가 띵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잔 듯 잠에서 일어났음에도 정신이 빠르게 돌아오지 않았다.
푹신한 침대가 내 몸을 힘껏 잡아끄는 듯 했으며 몸 위에 올라간 침대의 무게는 천근과도 같았다.
그렇다고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억지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일어나니 알 수 없는 방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없을 정도로 큰 크기를 가지고 있는 방은 내가 지금까지 봤던 모든 방의 모습보다도 고급스러웠다.
모든 가구가 전부 고급이었고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뷰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몸을 너무 험하게 굴려서 그런지 당장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잠들기 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다음에야 여기가 중국이고 나는 화련이에게 게이트를 클리어 하는 방법을 알려주려 왔다가 조금이라도 화련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게이트들을 클리어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미친 짓이지...'
단순히 화련이를 빠르게 만나기 위해서 움직인 거라면 아마 조금 천천히 움직였을 것이다.
적어도 하루에 3시간 정도는 휴식하면서 잠도 보충하고 기력도 보충하면서 움직였겠지.
하지만 그렇게 느긋하게 움직이지 않은 것은 우리가 빠르게 움직일 수록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아주 당연한 이유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자 1주일 정도를 쇠빠지게 돌아다녔고 그 결과 화련이를 만나자 마자 잠에 드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화련이가 걱정하려나...'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자 내 몸에 평소에 입던 옷이 아니라 수면복 처럼 보이는 옷이 걸쳐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아색으로 이루어진 옷이었지만 결코 촌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게 내가 문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문이 먼저 열렸다.
"일어나셨군요."
아주 침착하고 매혹적인 목소리였다.
문이 열리자 등장한 여성은 메이드 복으로 추정되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검은색과 붉은 색을 적절히 조합한 옷이라서 그런지 그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화련이를 두고 다른 여자한테 한눈 팔다니, 눈이 뽑히고 싶은 거 아니냐고?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내 눈 앞에 있는 건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화련이었으니까.
'얘가 존댓말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월하한테 감염돼서 컨셉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어... 일단 일어났는데..."
"따라오시죠."
메이드 주제에 차갑고 침착하게 말하는 것이 그 목소리 안에 묘한 끌림이 있었다.
굳이 반항하지 않고 그녀를 따라가니 화련이의 집무시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는데 당연하게도 화련이는 없었다.
"천마님이 지금은 자리를 비우신 모양입니다."
"천마는 내 옆에 있잖아..."
"천마님이 어디 계시다는 거죠? 제 눈에는 당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래... 대충 그런 컨셉인거지?
화련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괜히 초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단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화련이가 나를 이곳으로 대려오라고 시켰어?"
내가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자 그녀의 미간이 빠직 하고 갈려나갔다.
"화련. 이라니요. 저희 천마신교엔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마 이름인데 그것도 모르나보지?"
"저희 천마님은 그 누구한테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시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손님분이 착각하신 것 같군요."
"그래? 그러면 묻는 말에 대답해줘. 천마가 나를 이곳에 데려오라고 시켰어?"
"네. 일어나시자 마자 바로데려오라고 하셨는데 지금 안 계신걸 보니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뭐하느라 바쁜데."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쓱 다가와서는 멱살을 잡고 내 몸을 그녀의 얼굴 앞으로 잡아끌었다.
"감히 자신의 이름을 입에 올린 아해를 처벌하느라 바쁘다 하시는 군요."
그녀의 입술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
"푸하아아아..."
그녀에게 한껏 유린 당한 뒤 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지만 그녀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함부로 내 이름을 입에 올린 업보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
"아해가 나에게 먼저 공격한 것이 문제가 아닌가."
화련은 뻔뻔하게 말하며 자기 자리로 추정되는 커다란 의자에 앉았다.
목을 지탱하는 부분이 화련이 보다 적어도 머리 하나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어쩌면 저정도가 화련이의 진짜 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얼마나 큰거야...'
앉은키가 머리 하나 더 크다는 건...
일단 키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자.
"너무 오래 안일어나서 억지로 깨울까 걱정했다."
"얼마나 자고 있었는데?"
"3일을 내리 샜다. 검마에게 들어보니 못해도 일주일은 잠도 안자고 몸을 혹사했을 텐데 그 정도 지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3일? 오래도 잤네...
"우리가 도움이 좀 됐나?"
"당연히 도움이 됐다. 아해와 월하, 그리고 현수가 없었더라면 아마 3일 이상의 시간이 더 소요 되었을 텐데, 중국 전체가 어지러운 와중에 3일의시간이 지체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 낼지 추산도 제대로 안될거다. 아해는 정말 큰일을 해주었지."
화련이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머리를 숙였다.
"야..."
단순히 머리만 숙인 모습은 간혹 본적이 있지만 아예 허리까지 숙인 모습은 이번에 처음 봤다.
"고맙다. 중국을 대표해서 감사를 표하지."
그 자존심 높던 화련이가 허리를 숙여서 감사를 표했다.
"말로만 감사할 것은 아니고 아해에게 물질적인 보상도 지급할 것이다."
"됐어. 보상은 무슨 보상이야."
어차피 화련이 돈이 내돈이고 내돈이 화련이 돈이나 다름 없는데 무슨 보상을 준다고 그래.
"형식적으로 건넬 필요가 있으니 꼭 받아라.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게이트를 닫아준 영웅들인데 그들에게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다면 여론이 불탈것이 뻔하니 말이야. 월하에게도 비슷한 가치의 보상을 할 예정이고 말이야."
"나는 물질적인 보상은 없어도 되는데, 네가 있잖아."
"호오..."
나를 바라보는 화련이의 눈이 깊어졌다.
"아해야.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구나? 그래, 자신감도 훨씬 높아진 것 같고 눈빛도 다르고... 각성도 한 듯 보이는 군, 게이트를 클리어 했다는 건 아해 마음속의 벽또한 넘어섰다는 이야기인데... 많이 성장했군."
화련이가 나를 보며 밝게 웃었다.
"더 이상 너희에게 보호만 받고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
"좋은 마음가짐이다 아해야."
화려이가 나를 꼭 안아 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