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피의 마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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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킹, 정확히 말하면 고블린 킹에게 강신한 여성에게 패배한 이후 화련이가 상당히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천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늘 집에서 나랑 꽁냥대거나 수련 비슷한 것을 할 때는 내 수련을 도와주는 식이었는데 고블린 킹에게 패배한 이후 마음을 독하게 먹은 것인지 정말 열심히 수련을 시작했다.
물론 내 눈으로 천마가 수련을 하는 걸 볼 수 있을리는 없어서 그녀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몰랐겠지만 매일 새벽같이 나가서 밤에야 돌아오는 것을 보면 굉장히 빡세게 훈련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수련하는 천마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천마가 나한테 집착하는 이유가 목적을 잃은 삶에서 나를 목적으로 살기를 바랬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인지 새로운 목표를 찾아낸 것 처럼 활기차게 움직였다
그렇다고 나에대한 사랑이 식은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밤에 돌아온 후에는 그 동안 나를 못 본걸 충당하겠다면서 잘 때까지 나를 지긋이 바라보기도 했고 다른 애랑 자는 날인데도 제발 같이 자달라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렇게 오라버니가 보고 싶으면 그냥 낮에 만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주변에서 같이 훈련하면 되는 일이잖아요."
"아해의 훈련과 나의 훈련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아해는 아직 마나가 부족하고 신체능력도 부족해서 등반형 게이트를 돌아다니면서 근간을 쌓는 것이 의미가 있다. 마나를 다루는 훈령르 하는 것도 몬스터를 잡으면서 하는 것이 훨씬 효율이 높지. 하지만 나는 이제 마나와 육체능력의 성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경지에 도달했다. 무림이었다면 다음의 경지를 노려봤겠지만 이곳엔 그런것도 없으니 마나와 몸을 더 잘 다루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아예 밤에 수련하고 낮에 오라버니랑 같이 지내는 게 어때요? 화련이 언니라면 아예 안자고도 생활할 수 있잖아요."
연하의 말을 들은 화련이의 얼굴이 흉귀처럼 일그러졌다.
"연하 너의 말은 매우 좋은 생각인 것 같지만..."
화련이 연하의 양쪽볼을 잡고 그대로 올려버렸다.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그렇다.
연하는 저번에 내가 고블린 킹의 시선을 끌겠다고 뛰어들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외쳐버린 화련이의 이름을 듣고야 만 것이다.
천마를 보면서 '화련아!' 하고 소리치면서 떨어졌는데 천마의 본명히 화련이라는 걸 모를리가 없었다.
그 이후부터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을 때 연하가 화련이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는 데 한 두번 부른 것 만으로 화련이에게 모든 기가 빨려버리는 나와는 다르게 연하를 상대로는 똑같은 짓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연하를 때리거나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화련이도 진지하게 화를 내며 연하를 대할 수 밖에 없었다
본인딴에는 진지하게 화를 내는 거지만 화를 내면서 연하의 뺨을 잡아당기는 등의 행동을 해서 그런 걸까? 화련이의 화가 연하에게 잘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연하가 화련이의 그런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는지 장난식으로 이름으로 부르는일만 더 늘어났는데 내가 저렇게 불렀으면 날 잡아서 괴롭혔을 거면서 연하한테는 왜 그렇게 관대한지 모르겠다.
"에이, 왜요? 천마라는 딱딱한 칭호보다는 화련이언니~ 하고 부드럽게 부르는 게 훨씬 더 낫잖아요! 이 참에 다른 언니들한테도 이름 알려줘요!"
"안된다! 내 이름은..."
그리고는 자기가 왜 화련이라는 이름을 싫어하는 지, 전생의 나를 끌고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주야장천 연하에게 읇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연하는 화련이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화련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나?"
"아니요! 안 듣고 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화련이언니가 훨씬 정감이 간다고요. 안그래요 오라버니?"
갑자기 화살이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를 골먹이겠다는 듯 장난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하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을 하면 나를 죽여버리겠다는 듯한 화련이의 시선을 동시에 받고 있으니 온탕과 지옥탕을 오가는 듯 몸이 저릿저릿했다.
"글쎄... 화련이 의견을 듣는게 맞지 않을까? 결국 자기가 듣기 싫은 거니까 말이야. 아무리 어감이 이쁘고 좋아도 듣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서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오라버니는 겁쟁이시네요."
상대가 상대잖니.
"그래서, 언제까지 여기 계실거에요? 오늘은 저랑 오라버니랑 같이 자는 날인데."
"... 알았다. 가겠다. 오늘 부터는 밤에 수련하고 낮에는 아해와 같이 있도록 하지."
"바이바이! 갈 때 불 꺼주세요."
화련이가 나가면서 불을 팍! 하고 껐다.
"잡시다!"
연하가 내 몸을 꼭 껴안고 잠에 들었다.
화련이가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걔가 밤에 수련한다고 하면 수련중에 마주칠 사람들을 걱정해야지 화련이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연하의 온기를 느끼며 그대로 잠에 들었다.
***
화련이가 수련시간을 옮기자 내 수련을 봐줄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수련을 바로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로는 아직 마나랑 신체능력이 성장할여지가 많이 남아있고, 제대로된 강함을 손에 얻으려면 기술보다는 근본적인 능력을 손에 얻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등반형 게이트를 돌아다니는 것만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수련이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해의 강함은 굉장히 언 밸런스한 상태다."
"어떻게 언밸런스한건데?"
"기술적 강함의 몸의 강함을 한참 웃돌고 있다. 이는 아해나 리우잉 같이 각성을 하지 못하고 기술만 단련한 이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나마 리우잉은 내 밑에서 마나의 기초라도 배웠지만 아해는 배운 게 없어서 육체를 다루는 법에 모든 힘을 몰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각성 등급을 올려 육체 능력을 올리고 올라간 육체능력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지 나한테 기술을 배울 때는 아니다."
"마나를 다루는 방법 정도는 알려줄 수 있잖아."
"아해는 이미 기초는 다 땠다."
화련이가 내 이마를 툭툭 치며 말했다.
"물론 아해가 당장 배울 수 있는 기술들도 있다. 당장 부족한 마나를 더 잘 쓰기 위한 방법도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아해는 나를 따라잡는 것이 목표라고 하지 않았는가. 목표가 다르면 가는 길도 달라야 한다. 아해의 수준에서 나에게 다가오려면 최적의 효율의 루트로 움직여도 힘들텐데 왜 다른 길을 택하려 하는가."
화련이의 말도 이해가 됐다.
지금의 나는 마력적인 입장에서 보면 마나가 딸려서 고위 기술을 배울 수가 없고, 육체적인 입장에서보면 몸이 기술을 못 따라준다.
어떻게 됐든 일단 근본적인 능력을 강화시키는 게 먼저이기 때문에 화련이에게 무언가를 알려달라고 하는 건 어폐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해 정도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 아닌가. 아직 F급 이기도 하고 등반형 게이트에 무제한적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말이야."
"다음 주 정도면 E급은 될 것 같아."
"적어도 C급은 된 다음에야 나에게 가르침을 청하도록."
C급이라.
내가 도달할 수 있는 높이기는 할까?
화련이에게 다가간다는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C급각성자가 되는 데도 얼마나 걸릴 지 확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알았어. 그러면 거기서 구경이나하고 있어."
그렇게 낮 내내 몬스터를 잡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꿈틀.
"으윽!"
갑자기 가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아해야?"
내가 고통을 느끼니 화련이가 사색이 되어서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은 굉장히 심각해 보였다.
왜 일까?
그렇게 심각한 일일까?
아니면 그녀도 모르는 이유로 내가 아파서 그런 것일까?
심장이 콕콕 쑤시듯 아파왔다.
그 통증은 10초 정도 지속되더니 내 앞에 붉은 피로 이루어진 양피지가 나타나 촤르륵 펼쳐졌다.
"이건..."
넌 혼자 안 될 것 같아서 나의 힘을 줬는데 도대체 뭘하고 있는 것이냐. 일반적인 마나를 쓰는 것...
흡혈귀의 목소리가 들리다가 중간에 끊겨 버렸다.
나에게 이야기를 할 힘이 부족했던 걸까?
피로 물든 양피지가 천천히 접혀 나에게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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