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 월하와의 데이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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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한 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써 놓고 월하는 뭐가 그렇게 바쁜 지 내 손목을 잡고 공간이동을 사용했다.
처음엔 카페, 두 번째엔 호수, 세 번째에는 스티커 사진을 찍었고 이제 슬슬 점심시간도 다가오니 분식집에 가지 않을까 생각하던 내 앞에 분식집이 나타났다.
'이걸 맞추네.'
나 스스로에게도 어떻게 맞췄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였다.
"들어가요."
월하가 내 손을 잡아 끌고 안쪽으로 향했다.
이전에 카페에도 사람이 많았던 것 처럼 월하가 가게 전체를 전세 낸 게 아니었기 때문에 분식집에도 사람이 많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앉을 두 자리 정도는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 곳에 앉을 수 있었다.
휙!
자리에 앉자마자 뭔가 다급해 보이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설마 하연이나 연하같은 애들이 분식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굉장히 익숙한 뒷 모습을 가진 소년 한 명이 여자애 두 명과 함께 앉아있었다.
'쟤 사현이 아니야?'
사현이도 나에게 들키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것 같고 나도 월하랑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었으니 말을 걸 생각은 없었지만 사현이 앞에 앉아있는 여자애 두명이 아리와 가연이가 아니라는 점은 좀 의외였다.
'쟤가 뒤지려고 작정을 한 건가?'
걔네들 성격상 자기들 빼놓고 사현이 혼자서 밥만 먹어도 엄청 서운해 할텐데 혼자서 먹는 것도 아니고 여자랑 같이 밥을 먹는다고?
자기무덤을 파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문 좀 할게요."
"네, 어떻게 드릴까요?"
"치즈 떢볶이 12인분이랑 튀김 종류별로 10개씩 주실 수 있으신가요?"
"포장이신가요?"
"아니요. 먹고 갈려고요."
월하의 즉답에 종업원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드는 게 보였다.
충분히 당황해 할만 했다.
3~4인 분도 아니고 12인분을 시켜서 둘이서 먹는 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겠지.
"다른 일행분들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나옵니다."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이 정도는 충분히 둘이서 먹을 수 있는 양 아니에요?"
"일반적인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
한 번에 많이 시켜서 그런걸까?
음식이 나올 때 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월하는 다른 식탁에 올라가 있는 음식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대화를 주도해 가는 것도 충분히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떡볶이가 나오기 전까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다른 쪽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한테 떡볶이를 상납하면서 까지 바라는 게 뭐야?"
"그게, 아리랑 가연님이 요즘 나한테 되게 쌀쌀맞게 굴거든, 너희 걔네들이랑 친하잖아. 알고 있는 사실 없어?"
"우리가 걔네랑 친하다고? 너 걔네랑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어땠는지 잃어버린거야?"
"맞아. 전학 온 다음에 딱히 친한애들이 없어져서 걔네랑 같이 노는 거지 친한 거 아니야."
아주 친한 사인가 본데?
'예전에 솔에 보냈을 때 만난 애들인가?'
도시를 재개발하면서 우리도시에도 각종 시설들이 생겨서 사현이랑 애들을 그쪽 학교에 보냈는데 아마 솔에서 전학을 온 아이들인 모양이다.
"아무튼, 너희라면 뭔가를 알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불러봤어."
"스으읍, 떡볶이 가지 상납을 받았는데 그냥 모른척 하기도 그렇고... 옴뇸."
"말을 해주기도 그렇고... 옴뇸..."
가연이와 아리한테 걸린다고 해도 맞아죽지는 않을 것 같은 건전한 이유에 그들에게서 귀를 땠다.
"떡볶이 나왔습니다."
거대한 그릇에 떡볶이가 가득 담겨서 왔다.
튀김을 담는 그릇도 아주 거대한 데다가 높이 쌓여 있어서 건너편에 있는 월하의 얼굴이 잘 안보이는 수준이었다.
"이제 먹을 까요?"
"그래. 먹자."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니 그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어차피 월하가 다 먹어야 갈 수 있는 것이니 천천히 먹었다.
월하가 먹는 속도가 나보다 몇배는 빠르긴 했지만 그녀가 먹어야 할 분량이 나의 열배가까이 되었음으로 오히려 내가 속도를 늦춰야 다 먹는 타이밍을 비슷하게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카페에서 얘기를 실컷 나눠서 그런지 월하는 조용히 떡볶이만 먹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조용히 떡볶이만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팍! 하고열렸다.
튀김에 가려져 잘 안보여서 고개를 슬 돌려서 바라봤는데 그곳에는 단단히 화가 나 있는 아리와 가연이가 보였다.
얼굴에 나 화났어요. 라고 적혀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아리와 가연이는 조금의 시간 소모도 없이 사현이가 있는 위치를 찾아 사현이에게 다가갔다.
"아리야?"
"오빠 왜 이 년들이랑 여기에 있어?"
사현이가 아리의 손에 잡혀 그대로 허공에 떴다.
옷이 마구 찌그러질 정도로 강하게 잡고 있는 걸 보면 사현이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 내가 저런 상황이었으면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의 압력이 아니라 아리가 풍겨대는 살기에 질식했을 것이다.
아리가 크게 소리치며 말하자 월하도 아리가 들어온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쟤네들 왜 여깄어요?"
아리와 가연이 모두 사현이에게 집중하는 것 처럼 보였기에 우리를 눈치 챈 것 같지는 않았다.
"사현이는 아까부터 여기에 있었고 아리랑 가연이는 방금 들어왔어."
"저도 알아요."
월하가 싱긋 웃으면서 메롱 하고 혀를 내밀었다.
하긴, 월하가 주변에서 무슨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진 않겠지.
"밥먹는 데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네요."
"왜 이년들이랑 같이 있냐고! 오늘 수행 평가때문에 늦게 온다고 했잖아!"
아리가 사현이의 멱살을 잡은 손을 격하게 흔들자 사현이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무슨 인형처럼 마구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불쌍해서 말려야 하나 고민이 들었지만 월하가 아주 재미다는 표정으로 튀김을 먹으며 그 장면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평안하게 애들의 싸움을 구경하기로 했다.
'백씨 자매랑 화련이도 이걸 보고 있겠지?'
월하가 갑자기 순간이동 했다고 해도 그걸 화련이가 따라잡지 못 할리가 없었다.
분명 어디엔가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다가 이 꿀잼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너희는 뭔데 사현이랑 여기있는거야?"
사현이 멱살은 아리가 잡고 흔들고 여자애들 압박은 가연이가 전담했다.
사현이랑 가연이가 처음 만났을 때 가연이가 사현이를 노예 취급 했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얘가 부른 거야. 우리는 잘 못 없어."
"뭐? 오빠가 불렀다고?"
아리가 사현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잠시 풀더니 곧 더 세게 잡고는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쟤네들 왜 불렀어! 왜 불렀냐고!"
아리가 사현이를 반쯤 죽일 기세로 마구마구 흔들었다.
너무 빠르게 사현이가 흔들리다 보니 말을 할 여유도 잡지 못하는 걸로 보였는데도 아리는 사현이를 계속해서 흔들어 댔다.
이렇게 난리를 치고 있는 데도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제지하지 못했는데 얘들이 하필 우리 도시에서 가장 부잣집 애들만 다닌 다는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높으신 분들의 치정극에 휘말려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위험이 있으니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거겠지.
"이제 슬슬 그만 볼까요?"
"그러자."
"거기, 꼬마들. 다른 사람 밥먹는 데 방해되니까 좀 조용히 해주지 않을래?"
아리가 감히 누가 자기 하는 일을 방해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꺾다가 월하와 내 얼굴을 확인한 후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왜 여기계세요?"
"왜 여기있긴. 데이트 나왔지, 그러다가 쟤 죽을 것 같은 데 슬슬 놔주는 게 어때?"
아리의 손에 잡혀서 이리저리 구른 사현이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단정한 교복은 잔뜩 늘어져 있었고 몸을 덜덜 떨면서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어 하는 것이 진짜로 괴로워 보였다.
아리가 툭하고 손을 놓으니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컥! 콜록!"
"사현이가 왜 너희랑 같이 안 놀고 얘네들이랑 같이 노는지 궁금하다고?"
"네."
아리의 분노도 월하에 대한 공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가연이 또한 아리와 마찬가지로 바짝 굳은 채 월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부 너희들 때문 아니냐. 이야기 들어보니까 너랑 가연이가 요즘 자기한테 쌀쌀맞게 군다고 해서 친구들한테 너희한테 맞을 각오하고 물어보러 온건데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하면 안되지."
"아..."
아리와 가연이가 후회 막심한 표정으로 사현이를 내려다 봤다.
"말해봐. 왜 사현이한테 쌀쌀맞게 대했어?"
"그게... 곧 오빠 생일이라서 그랬어요.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오빠한테 말 안한건데..."
"그런거였어? 뭐야 서로 호의로 그런거네."
정말 다행이게도 사현이는 반쯤 기절한 상태라 듣지 못한것으로 보였다.
"그러면 서프라이즈 잘 준비해, 우리는 데이트 마저 할게."
"네! 수고하세요!"
월하가 다시 나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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